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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미사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리고 있다.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미사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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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5일 오후 2시]

"고 백남기 농민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합시다. 30년 전으로 폭락한 쌀값 제값 받게 해달라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더는 훼손하지 말라고 외친 백남기 농민에게 돌아온 것은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는 살인적 국가폭력 물대포와 317일 동안 병상에서의 모진 사투였습니다.

하느님, 이 땅의 민주주의 위해 자신의 십자가를 온전히 지신 백남기 농민의 영혼을 받으시어 편안히 쉬게 하소서…."

천주교 신부의 조용하지만 힘 있는 기도가 명동성당 내부에 울려 퍼졌다. 생전 가톨릭 신자로서 가톨릭농민회에 속해 있던 고 백남기 농민(69·세례명 임마누엘)의 장례 미사가 진행된 자리에서였다. 이날 장례 미사는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돼, 간간이 훌쩍이는 소리만 들려왔다.

지난 9월 25일 숨진 백남기 농민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작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지 358일째 되는 11월 5일, 고인 유가족 동의로 '생명과 평화 일꾼 고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이 진행됐다. 발인 전날인 4일 저녁에도 고 백남기 농민이 안치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300여 명이 참가한 추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부인 박경숙씨, 아들·딸 백두산·백도라지·백민주화씨 등 상복을 입은 유가족들은 발인이 엄수된 오전부터 붉은 눈시울에, 지친 기색이었다. 백 농민의 네 살 배기 손자만 졸린 듯 두 눈을 비비며 조잘거릴 뿐이었다. 문정현·서영석 등 천주교 신부들과 세월호 유가족, 약200명 조문객들도 발인에 함께 했다. 입관실에서 한 신부가 "백남기 농민을 주님께 맡기오니 생명과 평화의 낙원으로 데려가게 하소서"라고 말하자, 딸 백민주화씨는 고개를 숙였다.

발인 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장례미사가 거행됐다. 강론을 맡은 김희중 대주교(광주대교구)는 "고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의 장례미사는, 슬픔을 넘어 분노가 더 크게 채워지는 이별"이라며 "공권력의 부당한 사용으로 한 생명이 죽었는데 아직도 공식 사과가 없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국민을 보호할 분들, 정부 당국자들이 책임지고 해결해 달라"고 호소했다.

김 대주교는 세월호 유가족도 언급했다. 그는 "(정부 당국자들은) 물 속에서 죽어가는 자식들을 어떻게 해보지도 못한 어머니들의 울부짖음을, 이 시대 젊은이들의 울부짖음을 들어야 한다"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국민 곁으로 돌아서시라. 국민의 분노가 하늘에 닿기 전에 해결하셔야 합니다"라고 부탁했다. 다음은 김 대주교의 말이다.

"고 백남기 임마누엘 농민이 우리 곁을 떠났다기보다는, 이 땅의 민주화와 농촌 현실에 무관심했던 우리가 떠밀어서 떠나간 것이 아닌가 하며 이러한 현실에 저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땀 흘려 길러낸 우리 먹을거리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다는 외침이, (정부의) 살수 물대포에 의해 잔인하게 죽어야 할 정도로 부당한 요구였습니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국가가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그러나 아직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 고 백남기 형제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잘 마무리해야 하겠습니다.
정부 당국자들도 이에 협력해주시기를 간절히 당부하고 기도합니다."


대주교의 일갈 "정부는 국민 분노가 하늘에 닿기 전에 돌아서라"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남기 농민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남기 농민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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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은 이에 "아멘"으로 화답했다. 1100여 명 참석자는 명동성당 전체를 꽉 채워 앉은 뒤 자리가 모자라 뒤에 서 있기도 했다. 미사를 집전한 염수정 추기경은 "우리는 모두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슬픔에 빠져 있고, 우리나라도 지금 큰 위기와 혼란에 빠져 있다"며 "고 백남기 임마누엘을 위해 정성을 다해 하느님께 기도한다"고 말했다.

큰딸 백도라지씨는 미사 말미 수척한 얼굴로 성당 제대 앞에 나가 "장례 미사를 여기서 치르게 돼 아버지도 기뻐하실 거라 생각한다"며 "참석한 시민들, 장례를 준비해주신 분들, 가시는 마지막 길 함께 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의 추모 미사가 5일 오전 9시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미사에 참석한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 윤소하 정의당 의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현찬 백남기투쟁본부 공동대표 등이 나란히 사 있다. 영결식은 이날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의 추모 미사가 5일 오전 9시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미사에 참석한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 윤소하 정의당 의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현찬 백남기투쟁본부 공동대표 등이 나란히 사 있다. 영결식은 이날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다.
ⓒ 문재인 전 대표 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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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미사에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 표창원·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도 참석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미사 시작 전 장례 위원들과 만나 "백남기 선생님과 유가족분들, 농민들에게 그저 죄송스러운 마음"이라며 "얼마나 마음이 아프십니까"라고 애도를 전했다.

한 시간가량의 장례 미사를 마친 이들은 고인의 영정 사진을 확대한 그림을 선두로 해 고인의 꽃상여, 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인 '만장' 등을 뒤따라 고인이 쓰러진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까지 행진했다. 만장에는 "책임자를 처벌하라", "살인정권 물러가라" 등 글귀가 쓰여 있었고, 여기에는 300여 명 시민이 백 농민 판화가 새겨진 옷을 입고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같은 시각 종로 인근에는 경찰차 40여 대·경찰 300여 명 등이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고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빕니다", "살인정권 물러가라", "박근혜 퇴진·구속" 등 현수막이 나부꼈다.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 앞 노제에 참가한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은 퇴진하라"고 외치며 종로 거리를 거쳐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했다.

장례 미사를 마친 이들은 고인의 영정 사진을 확대한 그림을 선두로 해 고인의 꽃상여, 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인 '만장' 등을 뒤따라 고인이 쓰러진 종로 르메이르 빌딩까지 행진했다.
 장례 미사를 마친 이들은 고인의 영정 사진을 확대한 그림을 선두로 해 고인의 꽃상여, 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인 '만장' 등을 뒤따라 고인이 쓰러진 종로 르메이르 빌딩까지 행진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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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미사를 마친 이들은 고인의 영정 사진을 확대한 그림을 선두로 해 고인의 꽃상여, 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인 '만장' 등을 뒤따라 고인이 쓰러진 종로 르메이르 빌딩까지 행진했다.
 장례 미사를 마친 이들은 고인의 영정 사진을 확대한 그림을 선두로 해 고인의 꽃상여, 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인 '만장' 등을 뒤따라 고인이 쓰러진 종로 르메이르 빌딩까지 행진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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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씨는 지난해 '쌀값 보장·밥쌀용 쌀 수입 반대' 등을 외치며 민중 총궐기에 참석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 직사로 인해 쓰러졌다. 당시 백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쌀값 21만 원'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쓰러진 후 두개골 골절·뇌출혈 등으로 서울대병원에서 뇌수술 등 치료를 받았으나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결국 지난 9월 25일 오후 사망했다.

물대포 직사 등 '과잉진압' 논란을 빚은 경찰은 백 농민 사망 후에도 수차례 부검 영장 발부를 청구해 논란이 됐다. 백씨가 쓰러진 지 304일째 백남기 농민 청문회가 열렸으나, '사과하는 게 맞지 않느냐'란 질문에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람이 다쳤거나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본다. 법률적 책임을 분리해야 한다"고 말해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편 지난 1일 백남기투쟁본부는 "국민의 요구가 특검과 책임자 처벌을 넘어 박근혜 정권 퇴진으로 확대됐다"며 "곧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를 진행할 계획이다, 고인을 보내드리는 영결식과 노제에도 끝까지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고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 일정은 5일~6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 5일 오전 발인·장례미사 등을 시작으로 오후 2시 백남기 농민 영결식과 오후 4시 추모 집회, 오후 7시 추모 촛불집회를, 6일 고인 생가에서 노제 및 광주광역시 금남로 노제(운구행진 금남로~서방시장) 등이 예정돼 있다. 백남기 농민의 시신은 6일 오후 5시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치된다.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남기 농민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남기 농민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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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이 열리는 광화문 광장 모습. 사진 왼쪽으로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 무대가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주한대사관의날 행사장이 꾸려져 있다. 각 국가별 부스가 설치돼 있는 모습.
 5일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이 열리는 광화문 광장 모습. 사진 왼쪽으로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 무대가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주한대사관의날 행사장이 꾸려져 있다. 각 국가별 부스가 설치돼 있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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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이 열리는 광화문 광장에 백남기 농민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시민들이 운집해 있다.
 5일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이 열리는 광화문 광장에 백남기 농민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시민들이 운집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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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이 열리는 광화문 광장 북쪽에는 주한대사관의날 행사 무대가 꾸려져 있다. 각 국가별 부스가 설치돼 있는 모습. 광화문 너머로 청와대가 보인다.
 5일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이 열리는 광화문 광장 북쪽에는 주한대사관의날 행사 무대가 꾸려져 있다. 각 국가별 부스가 설치돼 있는 모습. 광화문 너머로 청와대가 보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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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백남기 농민, #백남기 장례식, #백남기투쟁본부, #추모 촛불집회, #민중총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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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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