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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한숨

정말이지 어지러운 정국이다. 아침에 자고 나면 새롭게 쏟아지는 의혹들. 예전에는 밝히기 어려운 그냥 의혹일 뿐이었겠지만 이제는 상상하는 그 모든 것이 현실일 수 있다는 사실에 기가 막힐 뿐이다. 사드 배치도, 한진해운 처리도, 세월호 7시간도 모두 최순실의 짓일 수 있다는 이 현실 같지 않은 현실.

60~70세대인 부모님의 반응이 궁금했다. 도저히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라던 25% 콘크리트에 속해 있는 당신들 세대는 이번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래서 다음에는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했다. 때마침 며칠 전은 아버지 생신이었다.

5%의 지지율 11월4일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 5%의 지지율 11월4일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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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식구들과 함께 간 본가. 생신상에 둘러앉자마자 어머니께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진짜 나라꼴이 엉망이라며 먼저 말씀을 꺼내셨다. 그래도 어머니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니 다른 분들한테 면이 서지 않느냐고 했더니, 주위 분들의 분노는 자신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으니 부끄럽다느니 후회한다느니 정도를 넘어섰다며 아버지께 의견을 여쭤보라 하셨다.

잉? 아버지한테 왜? 아버지는 심적으로 박근혜를 지지하셨지만 그래도 아들의 계속된 권유로 기호 2번을 찍지 않으셨던가? 그 전에 MB 찍은 것을 후회하신다면서 이번에는 아들 말대로 하신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버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찍으셨어요?"
"......"

아뿔싸.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대선에서 당신이 누구를 뽑았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하신 적이 없었다. 지난 총선 때는 아들 말대로 투표를 하셨다고 말씀하셨지만, 대선에 관해서는 항상 얼버무리셨다. 틈만 나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아들에게 차마 당신의 진심을 밝히기 어려우셨기 때문이리라.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지금껏 그래도 내가 우리 부모님 두 분은 설득했다고 자신했으니 나 자신이 이렇게 한심할 수가. 아득한 표정으로 아버지께 여쭸다.

"그래서 아버지 요즘 느낌은 어떠세요?"
"엉망이지. 박근혜 대통령이 저럴 줄 누가 알았겠니. 속았다는 생각이 들지."
"주위 분들도 다 그렇게 느끼세요?"
"대부분 그런데 그래도 그 중 한 두 명은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 편이다. 이 모든 게 좌파들의 음모라는 거지."

다행히 아버지는 현재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접으신 듯 보였다. 당신이 보기에도 지금 상황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 아닌가. 다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대통령 하야까지 생각하시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나라가 혼란해지고, 북한이 이 기회를 틈 타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이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근원적인 공포였다. 그러셨던 분이 어떻게 중학생이었던 1960년 4.19 때는 거리에 나와 시위를 하셨는지. 어쩌면 북한에 대한 공포는 3공화국 이후에 더욱 확대재생산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야당은 믿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의원 및 전국 시도당원들이 1일 오후 국회에서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진상규명 보고대회를 마친 뒤 본청 앞 계단에서 박근혜 대통령 검찰조사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의원 및 전국 시도당원들이 1일 오후 국회에서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진상규명 보고대회를 마친 뒤 본청 앞 계단에서 박근혜 대통령 검찰조사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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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정치 이야기가 나온 터라 나는 대화를 계속 이끌어 나갔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놀겠다고 옆에서 아우성이었지만 아버지 역시 이번 사태에 워낙 충격이 크신 듯 나의 질문에 당신의 생각을 차곡차곡 말씀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다음 대선에 반기문 뽑으실 거예요?"
"에이. 이제 반기문도 갔지. 원래 반기문은 힘이 없어 보이는 게 대통령감이 아니었어."
"그럼 누구를 지지할 거예요? 문재인?"
"아냐. 문재인도 대통령감이 안 돼. 매가리가 없고 우유부단해 보이잖아. 이번 회고록 사태에도 보다시피 북한에 휘둘리고. 노무현은 그래도 강단이라도 있어 보였지."
"그럼 여당의 유승민? 김무성?"
"글쎄. 다 마뜩잖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아버지는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야당을 대안 세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계셨다. 비록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셨지만, 그것이 곧 기존의 야당에 대한 편견, 즉 야당은 종북좌빨이라는 고정관념을 불식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에게 여전히 야당은 불순한 운동권 세력이었으며, 정권을 잡으면 우리의 것을 뺏어다 북한에 퍼줄 음험한 이들이었다.

그래, 70세 이상을 사신 분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겠는가. 다만 아버지는 당신 세대들의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에 씁쓸해 하셨고, 자신들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한 채 오히려 전 국민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계셨다. 물론 대통령이 진실하게 사과하고 측근들의 비리를 제대로 밝혀내면 용서하시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그럴 리 만무하다는 것을 아버지도 알고 계셨다.  

나는 아버지를 붙들고 다시금 이 시국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결국 지금과 같은 사태를 불러일으킨 건 박근혜 대통령이 깜냥이 안 되는 걸 빤히 알면서도 저 자리까지 끌어올린 <조선일보>와 새누리당 등 보수 세력들이며, 현재 그들은 1987년 6월 항쟁에 대응했던 6.29 선언과 같은 꼼수를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지금이야 국민들의 눈치를 보며 열심히 권력을 비판하는 척 하지만 이미 그들은 시나리오를 짜고 또다시 그들에게 유리한 정권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이제는 더 이상 속으시면 안 된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또한 나는 삼성을 위시한 재벌들의 행태도 강조했다. 언제나 삼성에 입사한 친구 자식들을 부러워하시는 당신들 세대에게 현재 우리 사회에 재벌들이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고 있는 지 이야기했다. 삼성이 최순실의 딸에게 그토록 공을 들인 것은 이미 권력구조를 알았다는 것을 뜻한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은 비자금 몇 푼 쥐여주며 더 큰 혜택을 받았음을, 그리고 그만큼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졌음을 설명했다.

평소 같았으면 대충 알았다 하시고 사랑하는 손주들과 놀아줄 아버지셨지만 이번에는 아이들의 원성을 뒤로 하고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셨다. 그래서 어찌해야 되느냐고, 누구를 찍어야 하느냐고도 물으셨다. 물론 그 질문에 대해 나 역시 뚜렷한 답변은 하지 못했다. 이 급변하는 시국에 그 질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계속되는 그들의 속삭임

옆에서 남편과 아들의 대화를 듣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문득 생각나셨다며 내게 메시지 하나를 보여주셨다. 연락도 자주 하지 않는 친구에게 받았다는 카톡 메시지였는데 내용이 가관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지지를 해야 하는 이유>

박근혜 대통령이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더라도 종북좌빨들에게 권력을 넘겨 줄 수는 없다~!! 지금 당장 눈앞을 보지 말고 1년 후를 생각해 보라. 지옥보다 더 끔찍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2018년 차기 정부 종북좌빨 쓰레기 내각 구성도
대통령 : 문죄인 / 총리 : 박원숭 / 교육부 총리 : 리해찬 / 문화부장관 : 좌제동  / 국정원장 : 리석기 /. 국방부장관 : 김광진  / 외교부장관 : 김홍걸 / 법무부장관 : 리정희 / 경제부총리 : 리재명 / 산업부장관 : 김재연  / 환경부장관 : 한명숙 / 행자부 장관 : 똥청래 / 여가부 장관 : 남인순 / 통일부장관 : 림수경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글 펌.

 옆에서 남편과 아들의 대화를 듣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문득 생각나셨다며 내게 메시지 하나를 보여주셨다. 연락도 자주 않는 친구에게 받았다는 카톡 메시지였는데 내용이 가관이었다.
 옆에서 남편과 아들의 대화를 듣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문득 생각나셨다며 내게 메시지 하나를 보여주셨다. 연락도 자주 않는 친구에게 받았다는 카톡 메시지였는데 내용이 가관이었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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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많은 이들이 희망에 들떠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야당이 정권을 잡게 될 것이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 원장의 미소 권력의 민낯
▲ 원세훈 전 국정원 원장의 미소 권력의 민낯
ⓒ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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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결코 우연하게 등장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도 국정원을 비롯해 사정기관 등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국민의 감시가 소홀해지면 언제든지 그들의 입맛대로 시국을 이끌어가려고 할 것이다. 공포는 이성을 삼킨다. 공포에 휩싸인 자들은 권력의 가장 쉬운 먹잇감이다. 그들은 현재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지금까지 그들이 생존해온 방식이다.

현재 상영되고 있는 영화 <자백>이 포착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섬뜩한 미소를 보았는가? 그것은 원세훈 개인의 인성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무당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사회 권력의 민낯이며, 또한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이기도 하다. 권력에는 일말의 양심이나 염치가 없다. 그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 오고 나서 찾을 가치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이 시국을 엄중히 그리고 끈질기게 지켜봐야 한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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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15년이 넘었는데도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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