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보통 구애행위와 관련되어 있어, 당사자 간 해결할 문제이다. (O, X)
피해자가 단호하게 대처하거나, 잘 달래면 해결할 수 있었을 문제이다. (O, X)
대부분 잘 모르는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 (O, X)
보통 20대 여성에게 일어난다. (O, X)
심각한 범죄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가해자를 처벌하기보다는 상담이나 치료를 행하는 것이 좋다. (O, X)

정답은 모두 X입니다. 얼마나 맞추셨는지 궁금한데요. 한국 사회에서 이 범죄는 때로는 스토킹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데이트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지속적 괴롭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최근 보도된 것만 해도 스토킹 피해 여성에게 수백 회의 메시지를 보내며 괴롭히고 회사에 찾아가 소란을 피운 사건, 결국 살인에 이른 사건까지 다양한 양태가 있습니다. 뉴스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범죄 유형이 된 것이지요. 그러나 스토킹범죄의 실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중 일부는 현재 경범죄 처벌법으로 신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작 범칙금 8만 원에 불과한 처벌은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스토킹 범죄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어, 사실상 피해자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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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의 스토킹 행위는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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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협의체를 꾸리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된 법이 아니라면 여타의 여성폭력 문제처럼 도리어 스토킹 범죄를 '용인하는' 결과밖에는 안 될 것입니다.

가정폭력·성폭력 등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상담하고 정책 감시 및 제안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여성의전화는 2000년대 초반부터 스토킹 범죄에 대해 이야기해왔고, 2013년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 법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한국여성의전화는 우리 사회에서 스토킹 범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지에 대해 제안하고자 합니다.

"지구 끝까지 쫓아가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표현은 관용어처럼 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는 결코 그저 관용어가 아닙니다. 여성들은 친밀한 관계였던 남성의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몸을 피하고, 그중 누군가는 남편 혹은 전남편으로부터 쫓깁니다. 수십 통의 협박 전화와 문자가 끊임없이 걸려오고, 전송됩니다. 여성들은 집과 직장 앞에, 또 피신한 곳을 추적해 그 앞에 나타나는 가해자들을 맞닥뜨립니다. "네가 도망치더라도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죽이겠다"는, 남편 혹은 전남편을 말입니다.

'아내'들에게 '스토킹'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남편의 폭력은 일상 속에 엉겨 붙어 있었습니다.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성들은 일상 자체를 떼어냈습니다. 가해남편을 피해 다른 곳에 숨고, 경찰에 폭력을 신고하며, 이혼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감히' (자신의) 가정을 떠나려하는 여성들에게, 가해자의 '스토킹'이 이어졌습니다. 

A씨는 남편의 폭력을 경찰에 고소하고 집을 나와 피신했지만, 남편은 A씨가 피신해 있는 곳으로 찾아와선 행패를 부리며 A씨를 위협했습니다. A씨의 생활 반경은 급격히 축소됐습니다. 피신해 있는 곳에서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었습니다. 밖으로 나서면 남편이 위해를 가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로운 외출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B씨는 오랜 기간 남편의 폭력 속에 있다가 별거했습니다. 하지만 B씨와 B씨 어머니에 대한 남편의 폭력과 협박은 계속됐습니다. 더구나 B씨 어머니의 직장에도 남편이 나타나는 등의 스토킹이 이어졌습니다. B씨와 B씨 어머니, 자녀들 모두 가해자가 거주지나 직장에 찾아올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일상은 이제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삶의 모습은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여성들은 가해자의 반복되는 스토킹 행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의를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변의 안전이 최우선 문제가 됐습니다. 가해자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지도 몰랐습니다. 오늘 또 나타날지도 몰랐습니다. 길을 나서면 사방이 두려웠습니다. 여성들은 더 이상 집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가해자로부터 몸을 숨겼습니다. 일상엔 불안감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에 무참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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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으로 나서면 남편이 위해를 가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로운 외출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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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편의 스토킹 행위는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이 됐습니다.

더군다나, 아내를 찾아가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위협하는 가해남편의 행위는 '가족'이기 때문에 스토킹으로 명명조차 되지 못했고, 그래서 더욱더 드러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얘기될 수 없었습니다. 또한 가해자의 스토킹 행위를 신고한다 해도, 직접적인 폭력 피해가 발생하거나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만 '가정폭력 사건으로라도' 처리될 수 있었습니다.

관련 해외연구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의 반 이상이 배우자에 의한 스토킹 피해를 경험하며, 폭력 피해를 입거나 살해당한 피해자의 약 90%는 폭력을 가하는 배우자로부터 스토킹 피해를 입었습니다. 가정폭력과 스토킹, 살해위협·살해는 연속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법원은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과정에 있는 여성들에게 부부상담명령을 내리고, 가해자에게 자녀들을 주기적으로 볼 수 있는 면접교섭권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혼재판 과정 중 변론이나 조정 기일이 잡히면 가해남편을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두려운 여성들에게, 이는 안전에 대한 중대한 위협입니다.

C씨는 남편의 폭력에서 피신했으나, 가해자는 자녀들이 비밀 전학한 학교를 알아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C씨는 또 다시 피신했습니다. 이혼소송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법원에서 가해자가 자녀를 만날 수 있도록 면접교섭권을 주었습니다.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과도 같은 나날을 지나온 C씨의 맥락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살아남는 건 C씨의 몫이었습니다. 

가정은 '여성'들이 깨뜨려선 안 됐습니다. 여성들은 '아내'이자 '어머니'이며, 집에 있(어야 하)는 '집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집을 나간 '집사람'을 쫓았습니다. '자식'을 찾았습니다.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처자식'을 찾는 건 당연한 '권리'였습니다. 이혼 법정에선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정을 지키고 싶다고 호소했습니다. 법원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남편이 안쓰러웠습니다. 손찌검 정도는 '처자식이 맞을 만한 짓을 했으면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부상담을 해보라고 시켰습니다. 부모 자식 간은 천륜인데 자녀를 봐야하지 않겠냐며 면접교섭권을 내줬습니다.

여성과 자녀들은 몸이 떨리고, 치가 떨렸습니다.

폭력을 가하는 남편은 일차적 문제였습니다. 여성들의 폭력 경험을 사소하게 여기거나,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사회는 무참했습니다.

'아내'에 대한 스토킹은 더 많이 드러나야 한다

가해남편은 여성의 일상에 가장 가깝게 밀착돼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가해자는 직장, 가족 관계 등 여성의 각종 개인정보는 물론이고, 여성이 어떤 부분에서 취약한지도 알았습니다. 가해자는 이러한 점들을 효과적으로 이용했습니다. 교묘하고 집요하게 여성을 찾아내고, 협박하며, 위협했습니다.

가해자는 이혼하면 친정 식구들을 죽이겠다고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폭력에서 벗어나기를 주저했습니다. 폭력에서 피신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이미 가해자의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에게 보복에 대한 두려움은 매우 실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것도 두렵지만, 주변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위험에 처하는 건 더더욱 두렵고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스토킹범죄로 인한 광범위한 피해 실태와 그 심각성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확산되면서, 스토킹처벌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여론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2013년~2016년 상반기 상담통계 집계결과에 의하면, 스토킹 가해자의 평균 97%는 아는 사람이었으며, 그중 (전)애인이 69.1%, (전)배우자 7.9%(배우자에 의한 스토킹 피해가 잘 드러나지 않는 문제를 고려했을 때 제한적인 수치임) 등 스토킹 피해의 대부분이 친밀한 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에 의해 발생했습니다.

스토킹범죄 처벌 및 방지를 위한 정책마련과 법 제정 과정에서 이러한 스토킹범죄의 특성을 반드시 주요하게 반영하여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족'이기 때문에 드러나지 못한, '가족'이기 때문에 용인하거나 묵과된 가정폭력 가해자의 스토킹 또한 '스토킹범죄'로서 처벌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데이트 상대자, 배우자, 동거인 등 신뢰관계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에 대해 스토킹범죄를 행한 경우엔 가중해 처벌하도록 하는 법조항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더 많이 드러나야 합니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아내'에 대한 스토킹이 '스토킹'으로 이름 붙여지고, 인권을 침해하는 사회적 범죄로서 처벌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