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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 초대 이사장이 되신 분은 젊은 시절 삼성물산과 신세계에서 근무하며 전산시스템 개발에 참여했던 분이다.
나는 IT(Information Technology) 문외한이다. IT의 원래 개념은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물론 개발, 저장, 처리, 관리하는 데 필요한 모든 기술'(출처; 네**)이다." 내가 IT를 다루는 일은 기껏해야 SNS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다. 이 정도면 문외한은 아니라고 우겨 보지만 역시 나는 '저장, 처리, 관리'하는 데는 젬병이다.

2002년에 우연히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제공하는 '꼬마공동체'라는 온라인 공간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개인 블로그라는 서비스를 여러 포털에서 제공하고 있지만 그 때만 해도 진보네트워크센터에는 블로그 서비스가 없었다.

'꼬마공동체'를 2년 정도 쓰다가 드디어 진보네트워크센터에서도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한다기에 바로 갈아탔다. 블로그에는 개인적인 소소한 얘기를 썼고, '정보를 주고받는' 기능에는 손색이 없었다.

더구나 그 때, '꼬마공동체'를 이용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블로그로 갈아탔기 때문에 '꼬마공동체'에서 맺은 인연은 블로그로 쭉 이어졌다. 나는 그 익명의 사람들이 궁금했다.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번개'를 치고 사람들을 만났다. 다른말로는 '오프'라고 불렀다.

온라인에서는 마치 가면을 쓴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 보니 그들의 가면은 벗겨지고 궁금증이 풀렸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갈수록 '번개'를 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 번개의 위력은 대단했다. 1박 2일의 산행을 제안해도 거침없이 왔으니까.

요즘은 페이스북을 하느라 블로그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며칠 전 블로그 홈에 갔다가 눈에 띄는 제목을 보게 되었다. 2004년 블로그를 하면서 알게 된 지각생(본명 인동준)의 글이었다. "사회단체의 '기술 빈곤' 해결을 위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지금도 전국 어디선가 어떤 활동가의 PC가 망가져가고 있을지 모르겠다"로 시작하는 그 글에는 "한 사회적기업에서 컴퓨터가 고장 나 유명한 정비 업체를 불렀다. 중요한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 컴퓨터를 통째로 들고 가서 고쳐 왔는데 하드디스크가 바뀌어 있고 사용하던 프로그램이 모두 삭제되었다는 말을 들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결국 자신에게 의뢰를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유명한 정비 업체에서 고쳐 온 PC의 하드는 저용량에 중고품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바가지를 씌운 것이다. PC를 잘 모르는 사회단체 활동가는 유명하다는 정비 업체의 말을 그대로 믿고 맡겼을 뿐이다.

이런 사례를 무수히 본 지각생의 고민은 "사회단체가 어떻게 하면 IT를 잘 쓸 수 있을까"로 이어지면서 "단체들이 돈이 없기도 하지만 결국은 활동가들의 '기술빈곤'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듣던 중 반가운 내용의 글이었다. 신선한 발상이다.

프로젝터를 이용해 총회 알림을 띄움
▲ 공동체 IT 사회적협종조합 창립총회 프로젝터를 이용해 총회 알림을 띄움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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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개그를 좀 하는데 이날은 긴장한 탓인지 별로 안웃겼음.
▲ 창립총회를 진행하고 있는 지각생 원래 개그를 좀 하는데 이날은 긴장한 탓인지 별로 안웃겼음.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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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그 때 그 '지각생'으로부터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 (http://ictact.kr)을 만든다고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시국도 하수상하고 어디에 마음을 둬야 할지 모르겠는데, 거기라도 가서 자릿수를 채워주자'는 생각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 날이 그제(11월 1일)였다.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이 뭐지? 또다시 IT에 문외한인 나를 한탄하면서 자료집을 먼저 보내 달라고 했다. 창립총회에서 볼 자료집은 관련된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므로 그 전에 만든 자료집이 있으면 보고 싶다고 했다.

자료집을 보니 비영리단체나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는 활동가를 위해 컴퓨터 수리와 교육 및 기술 지원을 사회적협동조합의 형식을 빌어 더 광범위하고 질적으로 수준 높은 IT기술 지원 체계를 접하게 한다고 돼 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그저 기특하기만 했다.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해 본 나 역시 모든 일을 컴퓨터로 했기 때문에 활동가에게 PC는 내 몸의 수족과도 같은 존재다. 조금 오버하면 단체의 '심장'이었다. 왜냐면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단체는 단체의 모든 활동을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전달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IT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정보전달'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전에 나와 있는 IT의 정의대로 '프로그램의 개발, 저장, 처리, 관리'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컴퓨터를 너무 좋아해서는 안된다.

머리도 식힐겸 컴퓨터와 바둑을 두었는데 갑자기 내 머리가 '삑사리'가 나서 컴퓨터에게 지면 땅에 떨어진 자존심을 누가 책임지느냔 말이다. 거기다 컴퓨터하고는 술을 마실 수도 없지 않은가. 아무리 1인 가구가 많아지고 인공지능이 대부분을 해결해 주는 시대가 온다고 해도 같이 술 마셔주는 컴퓨터가 생기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일했던 '동자동사랑방'에서도 어느 날 '컴'이 말을 듣지 않았다. 대표는 A/S를 불러 해결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 때 번뜩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앞에서 말한 '지각생'이다. 허우대가 멀쩡한 지각생은 그 때까지만 해도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 않았고, 단체를 돌아다니며 고장난 컴퓨터를 수리해 주고 있었다.

지각생은 컴퓨터를 수리만 해 주고 오지 않았다. "컴퓨터 고장의 가장 큰 원인은 컴퓨터 내부에 쌓인 먼지"라면서 켜켜이 쌓인 먼지를 정교한 솔을 이용해 깨끗이 청소해주고 갔다.

이런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 돈 없는 단체들은 지각생을 찾았다. "돈을 조금 밖에 못 주는데 홈페이지 제작을 부탁해도 될까요?"라고 말하면 착한 지각생은 "그러마" 하며 거절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런 지각생을 불러 고장난 컴퓨터를 부탁하고 잘 모르는 컴퓨터 용어를 묻기도 했다.

컴퓨터를 다 고쳐준 지각생에게 나는 열악한 재정 상태를 들이대며 "미안하지만 수고비를 술로 대신 하면 안될까?" 하며 운을 뗐다. 내 말에 지각생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가 답을 대신 했다. 암묵된 합의로 수고비 대신 술로 퉁쳤던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왔다.
▲ 총회에 참석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왔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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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랜 시간 지각생이 준비하고 꿈꿨던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이 드디어 창립총회를 했다. 그동안 찾아다니며 IT기술 교육을 하고 컴퓨터를 수리해준 지각생의 덕을 본 시민단체의 활동가들과 지각생의 뜻에 동의한 기술 개발자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그 자리에서는 9명의 이사를 선출했고 일부 정관을 수정했다. 초대 이사장이 되신 분은 젊은 시절 삼성물산과 신세계에서 근무하며 전산시스템 개발에 참여했던 분이다. 그 밖에 비정규노동센터의 사무국장,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상임이사, IT분야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사람들로 이사진을 꾸렸다. 지각생도 이제 어엿한 이사가 되었다.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은 "시민사회단체가 IT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공정하고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의 정관 제3조에 명시했다.

나는 지금 시민사회단체 활동가가 아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활동가가 될 수 있고, IT기술을 익혀야 한다. IT 문외한인 나도 이제는 IT가 겁나지 않는다. 이렇게 든든한 사회적 협동조합이 버티고 있으니 무서울 게 없다. 총회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지각생은 내게 말했다.

"스머프(온라인에서 내 닉네임)도 이제 술 좀 덜 먹고 조합원이 돼야 하지 않겠어? 스머프는 지금 개인이니까 1구좌(50000)만 해도 돼."

IT 문외한을 벗어나려면 술을 덜 먹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라도 조합원이 돼야 하나?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아니, 낚인 건가?


태그:#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 #IT, #사회단체 활동가, #인터넷,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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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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