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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위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2016.10.25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5일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위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201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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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도 보도 못한 최순실의 국정농단 파문으로 연일 혼란이 계속 되고 있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국민들은 지난 한 주 동안 종편들의 '입'을 하루 종일 기다리는 '진귀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대체 어디서부터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가공인지 혼란스럽다. 최순실을 향한 누군가의 복수극일지 모른다는 정보도 넘쳐흐르고 있다. '박근혜 하야', '최태민', '최순실', '고영태', '정유라', '안종범', '정호성', '영세교'라는 단어가 매일 포털사이트 최상위에 배치된 것은 그만큼 국정농단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관심과 분노가 높다는 뜻일 것이다.

동시에 국정농단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키워드가 지난 10월 26일~28일 3일 동안 지속적으로 검색순위 1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세월호의 7시간'

국정 전반에 개입한 것으로 추측되는 최순실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어떤 행보를 했는지, 또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대응 방향에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잠시 가라앉았던 의혹이 이번 사건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권력이 아무리 진실을 억누르려고 해도 누를 수 없다는 것이 이렇게 증명되고 있다.

'세월호의 7시간 조사', 특조위를 삼켜버린 블랙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아래 세월호 특조위)는 650여만 명 국민들의 청원으로 생겨난 '독립적' 정부기구다. 역사상 특별조사위원회라는 명칭이 사용된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1948년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와 2015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세월호 특조위가 차지하는 역사적 위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세월호 특조위를 성립하게 한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아래 세월호 특별법)은 제5조 3항에서 다음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4·16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구조구난 작업과 정부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에 관한 사항"

세월호 특조위는 특별법이 규정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23일 전원위원회를 개최했다. 그런데 정확히 이 지점부터 세월호 특조위는 살아있는 권력의 '역린'을 건드리게 되었다. 2015년 11월 19일 <머니투데이>가 단독 보도한 "해수부 '세월호 특조위, BH 조사시 與(여)위원 사퇴 표명'…'대응방안' 문건"은 세월호 특조위의 추이를 지켜봤던 정부의 '민감도'가 어느 수준인지 잘 알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정말이지 묻고 싶다. 이 당시 마치 정권의 든든한 호위병을 자처하며 당당하게 기자회견을 열어 "특조위의 꼼수와 일탈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특조위가 일탈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전원 총사퇴도 불사하겠다"고 특조위를 강하게 압박한 여당 측 위원들은 대체 누구에게 충성을 한 것인가.

'역린' 건드린 후 특별조사위원회 급속히 위축

 세월호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옆에서 천막을 치고 특조위 활동 정상화를 촉구하며 6일째 단식을 이어 가고 있다.
 지난 8월 세월호 특조위 활동 정상화를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진행한 이석태 위원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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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조위가 2015년 11월 23일 '정부 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개시 의결한 이후,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을 2016년 6월 30일로 마감해야 한다는 정부 여당의 입장이 완고해졌다. 특조위와 정부 간 진행된 물밑협상도 경색되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아래 농해수위)에서의 논의도 한 치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결국 청와대의 '세월호 특조위 반대'와 맞닥뜨리게 된다.

뿐만 아니다. 2016년에도 2015년과 마찬가지로 정부는 진상규명 관련 예산을 턱없이 부족하게 배정했다. 이는 조사활동을 진행하는 특조위 내부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엄밀한 심사 과정을 통해 채용된 조사관 60여 명이 일하는 세월호 특조위의 예산 '수십억'은 마치 심판대 위에서 '현미경'을 들이대고 살펴보는 것처럼 철저하게 집행됐다. 최순실 관련 예산에 집행된 세금 규모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2016년 7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특조위의 여정은 더욱 험로를 달렸다. 농해수위에서의 '세월호TF'는 늘 그렇듯 난항에 부딪혔고, 일부 파견직 공무원들은 이석태 위원장의 합법적 권한과 리더십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으며, 해양수산부의 일개 산하 기구인 '세월호 인양추진단'이 세월호 특조위의 강제종료를 알리는 공문을 보내왔다. 조사 대상에 오른 기관이 도무지 사리에 맞지 않는, 특조위를 향한 모욕과 멸시의 행태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음을 알고 있다. 특히나 위험한 가정은 가장 먼저 배제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그럼에도 "만약 최순실이 조금 더 세월호 특조위를 어여삐 여기셨더라면..."이라는 헛된 생각이 수시로 드는 요즘이다.

'최순실과 연결고리' 정호성이 핵심 증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0일 오후(현지시간) 페루 리마 쉐라톤 호텔에서 열린 한·페루 비즈니스 포럼에 앞서 정호성 비서관의 보고를 받고 있는 모습.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0일 오후(현지시간) 페루 리마 쉐라톤 호텔에서 열린 한·페루 비즈니스 포럼에 앞서 정호성 비서관의 보고를 받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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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조위는 단 한 번도 '대통령의 7시간'이라는 표현을 공식화하지 않았다. 그것은 국가수반으로서의 품격을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정부 대응의 적정성 조사는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 국가안보실 간 참사와 관련된 구체적인 지시와 보고 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이면 될 일이었다.

이미 청와대는 법원에 4·16 참사 당시의 서면보고 내용을 제출한 바 있는데 이를 공개하면 세간의 의혹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도 있다는 것이 세월호 특조위 3차 청문회에서 나온 주요 요지다.

그러나 이렇게 존재하는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 증인과 참고인을 통한 조사까지 그 영역을 확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실의 비서관(10월 30일에 경질됨)이다.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아래 국정조사 특위)는 2014년 7월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에서 제1부속실의 정호성 비서관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데 끝내 실패했다. 여당이 김기춘 비서실장까지는 합의해줘도 정호성 비서관만큼은 합의 불가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이었던 필자의 시각에서는 김기춘 실장은 몰라도 정호성 비서관은 '세월호의 7시간'을 밝힐 수 있는 핵심 증인이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업무'인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시 어떤 '업무'를 하고 있었는지 알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정부 대응 적정성을 조사하는 데 정호성 비서관을 조사선상에 올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또한 이번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과 관련해서도 정호성 비서관의 이름이 수없이 등장한다. 그는 선(線)과 비선(秘線)의 '연결고리'라고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 통치의 가장 비밀스럽고 은밀한 부분을 알 수 있는 가장 최측근 인사다. 세월호 참사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진실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비정상화의 정상화, 첫 단추는 '세월호'

이번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이 가져올 파문이 워낙 전방위적이라 어디서부터 메스를 가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일단은 가장 시급한 국가지도체계의 개편과 안정이라는 과제를 해결한 이후, '세월호 특별법 개정'과 '세월호 특검 의결'로 무너진 국가 신뢰를 회복할 것을 주장한다.

30일 오후 8시 현재 포털검색어 상위에는 '세월호 7시간'이 떠 있다. 그 일을 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국민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7시간뿐만이 아니다. 당초 늦어도 10월말에 완료된다던 세월호 인양은 연내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으며, 중요한 증거인 세월호 선체마저도 절단되어 인양될 형편에 처해있다. '기술적 차원'이라는 인양추진단의 뜻에 따라 선체가 절단되어 인양된다면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은 영구 미제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또한 세월호 특조위에 수사권·기소권을 배제하는 대신 특검도입을 약속했던 애초의 여야합의가 여당에 의해 단칼에 잘려버려, 특조위가 국회에 제출한 '특별검사 수사를 위한 국회 의결 요청 사유서'는 현재 사(死)문서화된 실정이다. 세월호 특검 실시는 지극히 정상화해야 하는 사안들로서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이 사안들이 부디 최순실씨에게도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비참한 바람을 가져본다.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관으로서, 그리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이지 스스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하루하루 느끼는 요즘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전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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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주어진 시간 낭비없이 살려고 노력하는 시민기자 김동환입니다. 국민대학교 총학생회와 시민단체 흥사단에서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까지 세월호 특조위 진상규명조사관으로 근무했습니다. '근거있는' 소통의 공간을 열기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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