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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근황을 기사로 전하다 보면 종종 일부 야권 지지층 독자들께 꾸지람을 듣는다. 일베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지 않으니 자꾸 기사화하지 말아달라는 재촉이다. 사람들이 일베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안다. 일베 이용자들이 곤충이 아니라 사람임을 알면서도 '일베충'이라 부르는 것 역시 생물학적 사실판단이 아닌 도덕적 가치판단이란 것도 안다.

사람들은 섞이고 싶지 않은 이물질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도록 진화했다. 혐오감은 때때로 생리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이 경우 사람들은 문제의 근본 원인을 간파하고 해소하기보다는 불쾌감을 주는 상대를 제거·회피하고부터 보자는 식의 태도를 취한다. 이것은 미봉책일 뿐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 한다. 싫든 좋든 일베도 자유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한 쪽만 피한다고 벗어날 수 있을 리 없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1. 싫든 좋든 그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사례①] 2012년 11월. 대선을 앞둔 문재인 캠프는 안철수와 단일화에 성공하며 새누리당 박근혜의 지지율 추격에 탄력을 받고 있었고, 직접 연설문을 검토하다가 의자에서 잠든 문재인을 찍은 광고로 표심을 공략했다. 긴 연설을 다 기억 못 한다면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세 마디만 기억해달라며 "사람이 먼저"인 문재인에게 표를 달라는 호소였다. 복병을 만나리라고는 예상치 못 했을 것이다.

18대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TV 광고 영상(연설편).
 18대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TV 광고 영상(연설편).
ⓒ 민주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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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문 후보가 앉은 의자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임스 라운지 체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소문의 진앙으로 지목했는데 그곳이 바로 일베다. 일베 이용자들은 서민적 이미지를 앞세우는 후보가 어떻게 고가 의자에 버젓이 앉느냐며 조롱했다. SNS까지 소문이 확산되자 문재인 캠프가 해명까지 나섰다. 해당 의자는 지인의 땡처리 매물을 50만 원을 주고 재구입한 중고라는 해명이었다.

그러나 여론의 반응은 그리 전향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같은 해 이명박 전 대통령 손녀의 '몽클레어' 패딩 가격이 지탄을 받았던 사건이 다시 회자돼 범 진보 진영이 '이중잣대'를 범하고 있다는 역풍만 불어왔다. 패딩 논란 당시 공세에 가담했던 일부 야권 지지자들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 한 채 익숙한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다. 박근혜 후보의 가방도 50만 원짜리 '몽삭' 브랜드라는 피장파장 논리를 꺼내 진흙탕 싸움에 말려든 것이다.

[사례②]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 바다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전 국민이 유가족에게 강한 감정이입을 했다. 유가족이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 선동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습관적인 정치 혐오도 일각에서 튀어나왔지만, 상대가 자식 잃은 부모인 만큼 대세는 아니었다. 그런 여론이 불과 몇 달 사이 뒤집혔다. 유가족이 과도한 특권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무임승차 혐오' 정서가 퍼졌는데, 그 확산에 개입한 것이 바로 일베다.

사람들은 단식 중인 유가족을 '폭식 투쟁'으로 조롱하던 일베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런데, 일베의 표현 방식은 분명 비상식적이었지만 메시지 자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널리 확산된 양가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에 불과한 것이기도 했다.(관련 기사: 그들을 세금 도둑으로 만드는 방법 끝나지 않은 물음 '내게 세월호는 무엇인가') 정치권도 이러한 정서를 놓치지 않았다.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과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자료를 보며 이야기 하고 있다.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과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자료를 보며 이야기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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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세월호 사건은 고통사고인데도 특별한 지원 요청이 많다. 천암함 피해자보다 과잉 배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고,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도 세월호 특별 조사 위원회를 겨냥해 "세금 도둑, 탐욕의 결정체"라고 공격했다. 여기에 여론을 파악하지 못하고 세월호 유가족 대학 특례 입학을 거론한 야권 일부 의원의 자충수까지 겹쳐, 결국 유가족은 고립됐고 '진상 규명'이라는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사례③] 2016년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이 향년 68세로 사망했다. 2015년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서울대병원에 후송돼 4시간의 수술을 받았지만 중태에 빠졌고 연명 치료를 받다가 급성경막하 출혈에 의한 급성신부전으로 사망한 것이다. 그런데 주치의 백선하씨는 의사 집단의 압도적인 '외인사' 소견에도 불구하고 '병사'로 진단하겠다는 뜻을 고집해 '백남기 농민 사인 논란'을 촉발시켰다.

이 와중에 인터넷상에는 이른바 '빨간 우의 가격설'이라는 괴담이 떠돌았다. 출처는 일베였다. 2015년 11월 16일 오후 6시 47분. '토러스'라는 일베 이용자는 "빨간 우비의 괴한, 그의 정체는?"이라는 글을 올려 "저놈(빨간 우의 집회 참가자)의 가격 솜씨는 보통을 훨씬 넘어선다. 북한의 격술 기법과 일치한다. 광주사태 때에도 북한 공작원 개입 증거가 있듯이 이번 사태에서도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추천 266, 반대 3)라고 주장했다.

일베 이용자들은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 위로 빨간 우의가 넘어진 사실과, 백남기 농민의 얼굴 부위에 골절이 생긴 것에 착안해 이런 주장을 지지했다. 빨간 우의 가격설은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 등도 거론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오류인데, 하나만 짚자면 지난 13일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느린 영상으로 빨간 우의의 손이 백남기 농민의 얼굴을 가격한 게 아니라 땅을 짚었다는 걸 증명했기 때문이다.

모든 걸 '북한'과 연관시키지 않으면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는 한 일베 이용자. 그의 사고 흐름은 강박증적으로 북한을 좇는다. 즉 '종북 우파'인 것이다.
▲ 일베도 종북일 수 있다 모든 걸 '북한'과 연관시키지 않으면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는 한 일베 이용자. 그의 사고 흐름은 강박증적으로 북한을 좇는다. 즉 '종북 우파'인 것이다.
ⓒ 일베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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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베의 주특기들을 논파해보자

이처럼 일베는 중요한 사건마다 '정치적 주체'로서 여론에 영향을 미쳐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일베와 동일한 논리가 다른 시민과 정치인들에 의해 공론장에 오르내렸다. 각각의 시민과 정치인들이 실제로 일베를 의식하고 그랬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후자일 경우야말로 한국 사회에 '일베적 멘탈리티'라 부를만한 태도가 얼마나 문제의식 없이 퍼져 있는지 보여주기만 할 뿐이다. 사람들이 중요한 순간에 판단을 그르치지 않으려면, (일베의 주장에 동의하든 안 하든) 정치적 주체로서 일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흐름을 미리미리 간파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일베가 즐겨 쓰는 무기는 크게 셋이다.

이중잣대론, 무임승차론, 집회변질론. (1) 우선 '이중잣대론'은 앞서 언급한 [사례①]에서 드러났다. 당시 일베는 '문재인은 임스 라운지 체어에 앉아도 되고(A), 이명박 손녀는 몽클레어 패딩 입는 것(B)은 안 되냐'는 식의 유비 추론(비교) 전략으로 문재인 캠프와 야권을 몰아세웠다. 이에 야권 지지자 일부가 맞대응한 전략, 즉 '박근혜 가방도 몽삭 브랜드다(C)'라는 논리는 형편없는 것이었다. 이런 논리는 결국 '박근혜도 잘못했거든?'과 같은 피장파장 오류에 불과하다. 새 논란만 낳을 뿐 문재인 자체를 방어하는 논리는 아니다.

따라서 일베가 먼저 제기한 주장을 논파하지 않고 다른 논점으로 이탈해버렸기 때문에 무당층 유권자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못한 것이다. 이럴 경우 무당층 유권자들이 '그놈이 그놈이네'라고 환멸을 느끼며 투표를 포기할 가능성만 높아진다. 실제로 무당층의 투표를 포기하게 만드는 게 18대 대선 당시 김무성이 밝힌 새누리당의 전략이었다. 그럼 일베의 주장은 어떨까?

역시 틀렸다. 일베의 유비 추론이 성립하려면, 문재인 캠프와 이명박 가문 사이에 '결정적인' 유사성이 존재해야 한다. 일단 임스 라운지 체어든 몽클레어 패딩이든 그런 고가품들을 구입하려면 문재인 캠프와 이명박 가문 모두 '돈이 많다'는 점을 공유할 것이다. 그런데 이점은 '결정적인 유사성'이 될 수 없다. 단순히 '돈이 많다'는 사실로부터 각각의 정치인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양쪽은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일베의 논리대로라면 이른바 '강남 좌파'들 역시 나쁜 사람들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직관에 부합하지 않는다. 모두가 빈곤하게 사는 하향평준화 사회를 지향하지 않는 이상(여기에 사회가 합의할리도 없지만), 강남 좌파가 살만한 사람들인 건 죄가 될 수 없다. 진짜 핵심은 각각의 부자들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느냐다. 이명박은 부자이면서도 부자가 잘 살면 거기서 떨어지는 콩고물로 가난한 사람도 잘 살게 된다는 낙수효과를 추구했고, 문재인은 부자(?)이면서도 복지 정책을 추구했기 때문에 서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따라서 문재인을 비판하려면 정책 자체를 비판하든가 해야 하는데, 일베는 '서민을 위한다는 사람이 고가품의 의자에 앉다니'와 같은 엉뚱한 공격으로 선거판만 어지럽힌 것이다. 일베는 '잘못된 유비 추론의 오류'를 범한 것이다. 물론 사태의 원인 제공에는 일부 야권 지지자들도 책임이 있다. 애초에 몽클레어 패딩 논란을 촉발시켜 빌미를 제공한 건 야권이다.

이명박의 낙수효과 정책을 당연하게 나쁜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야권은 몽클레어 패딩이 '부자들의 탐욕의 산물'쯤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야권의 생각이지 정파를 초월해 보편적으로 통용될만한 엄밀한 비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표심을 구하는 후보가 직접 네거티브전에 나설 수도 없었다. 애초에 패딩에 격분한 사람들이 그냥 이명박 정부 5년간 민생이 얼마나 불평등해졌는지 관련 통계 기사를 공유하는 편이 현명했겠다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세월호 참사와 천안함 침몰 등을 비교하며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는 '잘못된 유비 추론'의 대표적 사례. 비교 대상이 군인인 이유에는 '희생과 인정'이라는 젊은 남성들의 경제 시스템을 움직이는 보상심리도 반영이 돼 있다.
 세월호 참사와 천안함 침몰 등을 비교하며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는 '잘못된 유비 추론'의 대표적 사례. 비교 대상이 군인인 이유에는 '희생과 인정'이라는 젊은 남성들의 경제 시스템을 움직이는 보상심리도 반영이 돼 있다.
ⓒ 일베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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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베의 두 번째 주무기. '무임승차론'도 이중잣대론과 비슷한 문제를 내장한다. [사례②]에서 살펴봤듯 세월호 특별법 국면에서 일베는 유가족을 특권층으로 몰아붙였다. 또한 당시에 천안함과 세월호를 비교한 주호영 의원의 주장도 일베 내에서 회자가 됐다. 그런데 천안함과 세월호도 '결정적인' 유사성이 없다. '배가 침몰했고 사람이 죽었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다.

군과 민간의 배·보상 체계는 엄연히 다르다. 군인이 보상을 제대로 못 받았으면 국방부에 따져야 하고, 국가와 선사가 구조의무를 다 하지 못 했으면 양쪽에게 배상받는다. 이러한 '결정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일베는 이를 무시했고(보통 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사실 외면의 오류' '오류에 빠지고 만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미묘한 맥락 상의 차이에 주의를 기울일 만큼 섬세하지 못하다. 이 허점을 의도했든 아니든 공략한 일베식 주장이 먹혀든 이유다.

유가족 대책위는 일관되게'진상 규명'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요구해왔고 또한 그것이 '대세'였다. 몇몇 일베 이용자들은 유가족들 사이의 일부 의견 불일치나 특례 입학 사례를 들며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정보의 검색이 편리해진 인터넷 환경에서 일베가 아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모른다고 무조건 가정할 수는 없다. 그런 몇 가지 정보로 유가족을 규정하는 태도가 엄밀하지 못한 '확증 편향'에 불과하므로 일베와 다른 결론을 내릴 뿐이다.

그 몇 가지 사례 중 특히 '노력과 보상'이라는 공정성 논란과 관련해 문제가 되는 특례 입학조차, 다른 관점에서 기준을 세워야 할 여지도 있다.(관련 기사: "자기계발서 읽었다는 건 '낚였다'는 뜻") (3) 일베는 '집회변질론'을 논할 때  확증편향을 잘 저지른다. 그래서 백남기 농민 사망 때도 빨간 우의가 넘어졌다는 정보만으로 '북한 개입'이라는 허무맹랑한 결론을 내렸다가 논파된 것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든 각종 집회에 대해서든 무리한 주장은 반복돼 왔다.

왜 그럴까? 일베에게 집회란 '변질된 것'이라기보다 차라리 '변질돼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학계의 관련 논문들은 일베가 강한 '대인 불신'을 갖도록 사회화된 경향이 있다고 보고한다. 이들에게 진보 좌파는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서 '선동'하고 '분탕'이나 일으키고 호남은 '통수'(뒤통수)나 치는 2등 시민일 뿐이다. 반면에 자신들은 묵묵히 '노오력'하고 질서를 준수하며 인정과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1등 시민이다.

이 '1등 시민'들은 대의와 신념에 따라 저항권을 행사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집회 현장에서는 수만 명의 참가자들이 수만 가지의 선택을 할 수 있으며 또 전반적인 경향성을 증명할 수 없는 이상, 그것들 각각의 맥락에 따라 가치판단이 내려져야 한다는 사실을 '불법 집회'라는 한 마디로 쉽게 정리 처분하는 것이다.

물론 각각의 집회는 때때로 모순과 부족한 점이 있다. 일베느 그럼에도 실패의 교훈이 쌓여 시민은 성장해 변화를 만들어왔고 또 그런 나라에 자신들이 살고 있음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유감이다. 유감이지만 당장 어쩔 방법은 없다. 다만 이렇게 일베적 멘탈리티의 실체를 대중에게 꾸준히 전시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덜 당황하시도록 길잡이 역할을 할 뿐이다.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일베의 주특기를 접해도 당황하지 마시고 당당히 논파하시라.


태그:#일베, #최순실, #박근혜,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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