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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가 최순실씨가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태블릿PC에 담겨 있는 최씨의 사진을 지난 26일 공개했다. 한편 최씨는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이 태블릿PC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JTBC 캡쳐=연합뉴스]
 JTBC가 최순실씨가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태블릿PC에 담겨 있는 최씨의 사진을 지난 26일 공개했다. 한편 최씨는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이 태블릿PC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JTBC 캡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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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내내 국민들의 혼을 비정상으로 만들어놓은 최순실 사건을 보며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다.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할 때 '반짝'했던 전병민씨다.

전씨는 김영삼 대통령(YS)이 여당대표 시절 꾸렸던 외곽조직 '임팩트코리아'의 기획실장을 맡아 김 대통령의 홍보 전략 수립에 기여한 '공신'이었다. 그는 이미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캠프의 선거 전략에도 기여했다.

'전두환 친구' 노태우의 이미지를 중화시키기 위한 '보통사람 노태우' 슬로건과 당선 뒤의 원탁회의 주재, 007가방 직접 휴대 등이 그가 속한 팀 '한가람기획단'에서 짜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1990년 봄 YS 진영으로 넘어간 뒤에도 그는 박관용·최병렬이 이끄는 전략홍보팀에서 'YS 대통령 플랜'에 일익을 담당했다.

지금도 YS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하나회 숙청과 공직자 재산공개 등의 개혁 과제를 다듬었던 그는 1993년 2월17일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당당히 입성했다. 고졸 학력은 최고의 책사 기용에 큰 문제가 아니었다(이후 '고졸' 대통령이 2명이나 나왔지만, 그때만 해도 '스펙'을 많이 따지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동아일보>가 3일 만에 "전씨의 장인(한현우)이 해방정국의 정객 고하 송진우의 암살범"이라는 내력을 보도한 것이다(송진우는 일제시대부터 동아일보의 주필과 사장을 지낸 인물이었다).

전씨는 당일 보도가 나오자마자 사표를 낸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최근 시사저널에 연재한 회고록에서 "D신문(동아일보)이 거품을 물자 YS는 아예 신설했던 정책기획수석 자리마저 폐지했다. 전씨가 부임하기도 전에 낙마하면서 언론들은 앞다퉈 신임 장관들에 대한 검증에 나섰고 10여 명이 줄줄이 중도하차하는 계기가 됐다"고 상황을 술회했다.

1993년 전병민과 2002년 노무현의 '연좌제'

지금 같으면 "장인이 한 일을 엮는 것은 연좌제 아니냐"는 항변이 나올 법하지만 당시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 2월 22일자 경향신문는 사설에 이렇게 썼다.

"전씨는 '연좌제'가 폐지된 것이 언제인가'라고 기자들에게 반문했다. 옳은 말이다. 오늘과 같은 다양한 개방사회에서 연좌제는 말도 안된다. 그러나 국민의 정서 속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독립운동가요, 민족지도자이며 한민당을 이끈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남아있는데 그를 암살한 사람이 아무리 정치범이라고 해도 좋을 수가 없다. 바로 그의 사위가 권력의 핵심에서 국책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은 께름칙하다.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았지 하는 미묘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미안하지만, 이 사설에 나오는 '께름칙하다', '미묘한 감정'이라는 표현을 보면서 헛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연좌제가 달리 연좌제인가? 사람의 능력보다는 "너는 네 장인 때문에 안 돼"라는 낙인이 연좌제 아닌가?(그가 지역민방사업자 선정 비리로 구속된 것은 그로부터 6년 후인 1999년 10월 13일의 일이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테니 임명되지 않는 게 맞았다'는 전지적 작가 시점은 거두어달라.)

'전병민 정책기획수석 사퇴'를 다룬 1993년 2월21일 한겨레 3면 기사.
 '전병민 정책기획수석 사퇴'를 다룬 1993년 2월21일 한겨레 3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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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장인의 허물이 사위 앞길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근대적인 각성이 싹튼 계기는 아마도 1992년 4월 5일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대구)때일 것이다. 전날 이인제 캠프는 노무현 후보 장인의 좌익 전력을 거론했는데, 노 후보는 "평생을 가슴에 한을 담고 산 제 아내가 그 때문에 또 눈물을 흘려야 합니까"라는 연설로 대구 경선에서도 승기를 잡았다.

다시 세간의 화제인 최순실 사건을 돌아보자.

나는 최씨가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부속실장, 하다못해 연설비서관을 했어도 일을 꽤 잘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평소 대통령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의중에 어떤 생각을 담고 있는지 속속들이 잘 아는 참모가 주변에 있어야 대통령도 일을 제대로 할 게 아닌가? "최씨가 영어를 꽤 잘해 통역도 했고, 박 대통령을 대신해 크고 작은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등 굉장히 자신감 있고 유능해 보였다"는 증언도 있다(10월 26일 조선일보).

박 대통령은 왜 최순실을 '베일의 실세'로 묶어두었나?

본인이 허세인지도 모르는 청와대 비서실장, 대통령한테 등보이면 안 된다 해서 뒷걸음질로 나오다가 카펫에 걸려 넘어지는 장관(8월 11일 김무성 전 대표의 증언) 등에 둘러싸여서 무슨 일이 되겠는가?

박 대통령이 최씨 관련 의혹보도가 처음 나왔을 때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9월 21일 청와대 수석회의)이라고 현실과 동떨어진 말을 내놓을 때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참모가 한 사람도 없었다. 적어도 '최순실 비서실장'이었다면 자기 이외의 실세가 전횡을 부리는 꼴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씨가 공직자였다면 언론도 그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끈을 놓지 않았을 것이고, 그 역시 딸의 고등학교에 돈봉투를 두고가는 따위의 경거망동을 삼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왜 최씨를 '베일의 실세'로 묶어두었냐는 의문이 생긴다.

첫째는, 최씨의 아버지(최태민)를 둘러싼 구구한 소문들이 걸렸을 것이다. 일제 순사 출신에 목사와 승려를 오갔다는 복잡한 종교적 배경, 영애 시절의 박 대통령에 접근했다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전력 등등의 범상치 않은 과거사들이 나오면 대통령 자신에 대한 평판도 깎일 것이라는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둘째는, 최씨의 재산 문제가 걸렸을 것이다. 그 동안 언론이 추적한 결과만으로도 최씨는 싯가 200억 원 대의 서울 강남 빌딩을 비롯해 최소 400억 안팎의 재산가인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3월 25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고위공직자 정기재산변동사항'에 따르면, 청와대 비서진의 평균 재산은 21억7537만원으로 집계됐다. 말 많은 우병우 민정수석의 재산도 400억을 넘지 못했다(393억6754만원). 최씨 같은 사람을 공직에 기용했다가 언론의 재산추적 보도로 치러야할 대가를 대통령은 감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사과를 하는 모습을 여의도 정치권에서 지켜보고 있다.
▲ 박근혜 "최순실 도움 받았다" 시인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사과를 하는 모습을 여의도 정치권에서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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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국민들 앞에 당당하게 내세울 수 없는 인물이라면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이라도 거리를 두는 게 옳았다. 행여 영원히 비밀로 할 수 있으리라는 안이함에 젖어 최씨에게 각종 연설문이나 인사안, 외교 문건을 통째로 넘겼다면 통치권자로서의 자질을 따져볼 문제다.

일간 기준 14%까지 떨어진 대통령 지지율(갤럽)은 그동안 누적된 대통령의 '비정상'에 대한 분노의 응답이다.

야당에 가장 손쉬운 옵션은 '장외투쟁', 그러나...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당장 많은 사람들이 이번 주말부터 대규모 규탄 시위로 대통령 하야나 탄핵을 압박할 심산이다. SNS에는 야당, 특히 민주당과 국민의당도 '당연히'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야당에게 가장 손쉬운 옵션이 '장외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제1야당 민주당은 19대 총선에서도 127석을 얻었지만, 과반수 여당에 막혀 큰힘을 쓰지 못했다. 2013년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 2014년 세월호 특별법 협상 과정에서는 장외집회나 단식 농성을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교과서적인 얘기로 들리겠지만, 의원들은 밉든 곱든 국민의 대표다. 국민들이 하지 못하는 비범한 일을 하라고 이들을 국회로 보낸 주체도 국민이다.('특혜'라고 아니 할 수 없는 최순실 딸의 엉터리 리포트를 공개해 이슈화한 사람이 민주당의 초선 김병욱 의원이다. 이런 의원들이 최순실 사건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남는 장사' 아닐까?) 앞으로도 '예산안 처리'를 무기로 의원들이 정부를 상대로 따질 것이 많은데, 그들을 거리로 불러내는 것이 과연 생산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28일 오전 "정의당처럼 탄핵과 하야 움직임을 같이 갈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29년 전 지금의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했던 '87년 6월항쟁'의 거리 지휘부(연세대 총학생회장) 일원이었다.

그를 비롯해 많은 야당 의원들은 20세기 반독재투쟁 전선에서 일가를 이뤘던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전략적 인내'를 택하고 있다. '다른 선택'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기득권 세력은 장외투쟁 몇 번으로 무너질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태그:#최순실, #전병민, #우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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