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간의 종말> 포스터.

영화 <시간의 종말> 포스터. ⓒ 영화사 진진


'푸른 눈의 신부들이 왜 조선으로 오게 됐을까'. 150여 년 전 조선 땅으로 와 기꺼이 목숨을 바친 수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영화 <시간의 종말>로 재탄생했다. 선교사들은 물론이고 8000여 명의 순교자를 낸 병인박해의 비극이 이 작품에 녹아있다.

이렇게만 말하면 가톨릭의 역사를 다룬 종교 다큐멘터리 같다. 24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린 <시간의 종말> 언론 시사 자리에 참석한 김대현 감독은 "선교자들에 대한 홍보 영화나 종교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연출 제의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 보다 큰 주제를 품고 있다는 뜻이다.

명동성당에 얽힌 이야기

영화는 첼리스트 양성원 교수를 비롯한 유명 클래식 뮤지션 그룹 트리오 오원의 음악에 기대고 있다. 프랑스 최초 외국 선교회인 '파리외방전교회'를 배경으로, 그리고 명동성당과 국내 순교지 곳곳에 이들 음악을 배치해 놓고 잔잔한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영화의 제목 역시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이 세계대전 중 포로수용소에서 만든 곡의 이름을 따왔다.

이 음악의 흐름을 타고 김대현 감독이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수많은 신부를 만나 질문한다.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파견된 프랑스 신부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선교를 위해 프랑스 외곽 도시로 파견된 한국 신부들이 그 대상이다. 이들은 종교의 포교라는 목적이 있지만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왔다"고 스스럼없이 사람들에게 고백하고 길게는 수 십, 짧게는 몇 년을 외지에서 헌신한다.

그렇다고 음악영화도 아니다. 김대현 감독 스스로가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어떻게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순교했을까 외부인의 입장에서 궁금했고, 찾아가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비신자의 입장에서 호기심으로 시작한 여정이 <시간의 종말>이라는 결과물이다.

이보다 앞서 영화의 기획을 맡기도 한 양성원 교수의 단순한 궁금증도 있었다. 언론 시사에 참석한 양성원 교수는 "명동성당이 박해당한 순교자들이 묻힌 흙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은 지난해에 들었다"며 "음악가라 소리가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걸 예민하게 듣는데 성당에 순교자들의 DNA가 섞여 있다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고 전했다.

"몇날며칠이 흘러도 그 감흥이 사라지지 않아"서 지금의 작품을 김대현 감독에게 제안한 그다. 양 교수 역시 "감독께 종교영화가 아니어야 하고 음악영화가 아니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주문을 했다"며 "순수한 마음 가지고 희생한 분들이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한국에 오셨는지 그걸 보이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인연의 끈

 영화 <시간의 종말>의 한 장면.

영화 <시간의 종말>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그래서 김대현 감독이 택한 건 인연의 끈을 영화에 고스란히 담는 것이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역만리 땅을 위해 삶을 바친 이들을 쫓다보니 영화는 150년 전과 반대로 이젠 한국에서 떠나온 한국 사제들과 마주한다. 그리고 영화는 설명한다. "은총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부흥기였던 프랑스 가톨릭이 68혁명 이후 급격히 쇠락하고 그 정신을 잃어 갔지만 반대로 그 씨앗을 품은 조선 가톨릭은 현대에 이르러 가장 역동적이며 사회 전반에 자리하는 위치에 섰다.

김대현 감독은 "<KBS 역사 스페셜>로 끝나는 내용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연을 말하고 싶었다"며 "돌고 도는 인연이다. 공허한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가톨릭에서 추구하는) 선종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영화 이후로 제가 SNS에 사회 비판적 이야기를 덜 올리게 되더군요. 사회가 좋게 바뀐 게 아니라 제 변화였습니다. 사회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에 부정적이었거든요. 갑과 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자기 몸에 갑을이 같이 있는 거였죠. 누군가에겐 갑이 되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겐 을이 되는 존재. 이걸 해결하는 과정이 복잡하다고 생각하다고 여겼는데 지금 상황에선 오히려 더 개인으로 파고들어서 선생복종의 의미를 깨닫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대현 감독)

선생복종 혹은 선종은 말 그대로 '선하게 살다가 복되게 마친다'는 의미다. 비신자였던 김대현 감독이 파고든 이 개념이 영화 <시간의 종말>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김대현 감독은 "평생 만나온 신부, 수녀님 보다 이번 영화를 찍으며 만난 신부, 수녀님들이 훨씬 많다"며 "영화 찍는 과정 자체가 인생에 있어서 쉼표를 주고,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였다"고 덧붙였다.

감독과 기획자의 말이 과장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잔잔한 분위기의 영화는 가톨릭이 지닌 종교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특히 영화 말미, 프랑스 선교인들을 대한 조선 사람들의 태도가 내레이션으로 나온다. 이 작품의 백미다. 우리가 얼마나 사람을 존중했고, 열린 자세를 지닌 시민이었던가. 게다가 한국 가톨릭은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아 피어난 게 아니라 스스로 탐구하며 자생한 특징이 있다고 한다. 선대의 이런 모습에서 잊고 있던 우리의 선한 모습을 되짚어 보길 추천해 마지 않는다.

한 줄 평 : 고요함 속에 흐르는 묵직한 감동과 여운. 종교인들만의 것이 아님을 증명하다.
평점 : ★★★★(4/5)

영화 <시간의 종말> 관련 정보

기획 : 첼리스트 양성원
감독 : 김대현
제작 : 인디라인
배급 : 영화사 진진
러닝타임 : 67분
개봉 : 2016년 11월 3일


시간의 종말 가톨릭 천주교 프랑스 병인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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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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