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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 철학의 기본 정신은 '무위(無爲)'다. 이것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자 실천하는 것이 있음에도 마치 없는 것처럼 즉 '떠벌리지 않고' 소박하게 행하는 실천을 말한다.
'안반김'은 안철수, 반기문, 김종인이며 이들이 왜 한국 정치사에서 반갑지 않은 거물들인지 논증한다. 꼭 순서대로 연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편도 반기문을 다룬다. - 글쓴이 말

지난 연재: '반기문 대망론'은 위험하다, 왜냐면

반기문이 '상선약수'? 노자가 관뚜껑 박차고 나올 소리

반기문이 유력한 여권 대선 주자로까지 급부상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째로 시기에 잘 편승했다. 그가 유엔 사무총장이 된 시기는 1997년 IMF 이후 빠르게 성장한 자기계발 시장에 멘토, 리더십이 유행하던 2000년대와 맞물렸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를 '한국인의 이상 모델' '노력과 출세의 아이콘'으로 너무 쉽게 소비했고 그도 한국 사회의 신기루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다.

슈퍼 히어로, 파워엘리트, 영향력 있는 인물, 이 시대의 멘토 등 잡다한 명분들로 민간 기업 및 단체들이 실시한 설문 조사들에는 꼭 반기문이 1~3위에 포함됐다. 둘째로, 이것이 반기문 대망론의 원시 형태가 됐고 그 '잠재력'을 정치권이 가만 놔두지 않았다. 친이계든 박지원계든 자신들 진영에 중량감 있는 대권 주자가 없을 때마다 '반기문 대망론'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언론도 끈질기게 반 총장을 차기 대권 지지도 여론조사에 포함시켰다.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 반 총장을 '유력 대권 주자'로 인식하기 시작하자 마침내 2014년부터 1위에 올랐다. 반 총장 스스로도 지난 5월 방한 당시 "국가가 분열돼 있다. 누군가 대통합 선언을 하고 솔선수범하며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등 사실상 '대권 행보'에 무게를 싣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지난 연재에서 반기문 대망론이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직은 성실성의 대가로 받는 보상 같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상선약수라는 사자성어의 원조는 <도덕경>의 저자로 알려진 춘추전국 시대 중국 철학자 '노자'다.
 상선약수라는 사자성어의 원조는 <도덕경>의 저자로 알려진 춘추전국 시대 중국 철학자 '노자'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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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노력이 아니라 노력의 '성격과 방향'인데, 그의 삶에서는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인식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가령 한국 사회에서 재산에서 증여, 상속이 차지하는 비율이 27%에서 42%로 증가한 현실. 소득 상위 10%가 66%의 부를 독점하고 하위 50%는 2%에 그치는 현실. 2015년 서울대 정시모집 신입생 52.2%가 강남 3구 출신인 현실. 반기문 개인은 유엔 사무총장직에 올랐을지 몰라도 전체 일자리 파이는 한정돼 있는 현실.

요컨대 개인 노력만으로 한계에 부치는 환경 요인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찾을 수 없다. 단지 자수성가했다는(이조차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유로 그가 차기 대통령이 되기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5년간 몸소 경험했듯 평범한 사람들이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시절을 돌아보는 외신들의 평가도 냉정하다.

평가들은 다양하지만, 요컨대 반기문은 국제 사회의 위기 때마다 갈등을 회피하는 습성이 나왔다는 지적들로 읽힌다. 그러자 언론 간담회에서 "퇴임 후 거취를 놓고 여러 말이 나오는 건 알지만 임기까지는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도와달라"던 반기문이 갑자기 지난 14일 전미 한인 리더십 콘퍼런스 특별 연설에서 "상선약수는 내 좌우명이다. 물은 지혜, 유연함, 부드러운 힘을 상징한다. 유엔을 이끌며 이 덕목을 적용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역대 최악의 유엔 사무총장이라며 그의 리더십을 평가 절하하는 외국 언론에 대해 동양적 리더십 덕목으로 맞대응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퇴임 후 예상되는 대선 행보를 앞두고 '최악의 총장'이라는 말이 퍼지는 게 불리할 만큼 그 나름의 대응 논리를 만들어 가는 중에 이를 거론한 것으로 해석된다."
(관련 기사: "최악 총장" 비판에 '상선약수' 꺼낸 반기문)

17일 <동아일보> 이승현 기자는 위와 같은 해석을 내놓았다. 필자는 웬일인지 이 해석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필자는 반기문의 이번 발언 역시 위험하다는데 주목한다. 반기문의 주장은 상선약수의 원조인 '노자'가 관뚜껑을 박차고 나올만한 몰이해이기 때문이다.

반기문은 '노자'를 잘못 읽었다

번역은 <도덕경>에 대한 오강남(캐나다 리자이나대 비교종교학) 명예교수, 최진석(서강대 철학과) 교수의 번역본 두 가지를 참조해 필자가 윤문했다.
 번역은 <도덕경>에 대한 오강남(캐나다 리자이나대 비교종교학) 명예교수, 최진석(서강대 철학과) 교수의 번역본 두 가지를 참조해 필자가 윤문했다.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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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년) 제자백가 중 도가 계통 철학자다. 워낙 옛날 사람이라 실존 인물인지도 불분명하고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그가 썼다는 <도덕경>이라는 책 하나가 전해져 도가 철학의 근간을 이룬다. 이 <도덕경> 8장에 등장하는 내용이 바로 위 구절이다. 반기문은 이것을 동양적 리더십이라고 주장하고 이것대로 유엔을 이끌려고 노력했다고 주장하는 셈. 그는 노자를 제대로 이해했을까?

그가 "다투지 않은 것(不爭)"은 맞다. 유엔의 실질적 권력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 가졌다. 따라서 사무총장은 초임 때는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는 '비서형'에 머무르다가 재임에 성공하면 도덕적 권위와 소프트파워를 활용하는 '장군형' 사무총장이 될 여유가 생긴다. <중앙일보> 남정호 기자는 반기문도 한때 그런 길을 걸으리라 예측했지만, <시사인> 천관율 기자에 따르면 실제 행보는 그렇지 않았단다.

"반 사무총장이 외교 관료 출신치고도 유난한 갈등 회피 성향을 보인다는 관찰자(외신)들의 논평은 이번 분석으로 데이터의 지지를 얻었다. 미국의 국제정치 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반 사무총장에게 붙인 별명 '어디에도 없는 남자'는 이렇게 해서 한 매체의 논평을 넘어 국제 공론장의 관점을 대표하는 말이 된다."
(관련 기사: 어디에도 없는 반기문)

<시사인> 천관율 기자는 10년 치 외신을 분석해 위와 같은 결과를 내놓았다. 필자는 이 해석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필자가 다른 기사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반기문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도 머문(處衆人之所惡)" 사무총장과는 거리가 좀 있기 때문이다. 그가 10년의 유엔 사무총장 임기 동안 국가별로 출장을 간 일수는 평균 10.21일인데 분쟁 지역인 시리아는 2일, 대지진을 겪은 아이티와 네팔은 9일, 2일이었다.(관련 기사: 반기문, 국가별 출장 평균 10.21일 시리아, 네팔 2일)

한편 유엔의 주 무대이자 빈곤 국가들이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평균 6일이다. 반면에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은 5개국에 불과한데 전체 출장 일수 1594일 중 약 19%인 303일을 보냈다. 분쟁, 재난, 빈곤 지역보다는 제1세계 강대국들을 가까이한 것이다. 국제회의가 제1세계에서 자주 열린다는 점을 정상 참작해도 이러한 불균형은 지나치다.

어쨌든 유엔 사무총장은 도움이 필요한 나라들을 방문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인간성에 호소함으로써 국제 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내는 자리다. 임기 동안 '한 번 찍고 온' 투어 수준의 출장들도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도 머문 것(處衆人之所惡)"이라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엄밀히 따지면 "만물을 이롭게(水善利萬物)" 했다는 건 과도한 자화자찬이다.

유엔 사무총장직은 하나 밖에 없는 자리고 반기문이 못 하는 '장군형' 사무총장의 역할을 누군가 대신한다면 국제 사회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외신들은 이구동성으로 반 총장을 지탄한다. '갈등을 회피했고 제대로 된 성과를 본 건 무난한 의제들뿐이었다' '정작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기보다 명예박사 학위나 따러 세상을 돌아다녔다' 등등. 이런 비판들을 단순히 '동양적 리더십을 이해하지 못 했다'고 손쉽게 물리치기에는 반기문 측 근거가 약하다.

반기문은 노자를 잘못 읽었다.

자신의 '노력' 강조하는 버릇, 상선약수와 안 어울린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3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국내일정을 마치고 출국하고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3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국내일정을 마치고 출국하고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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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이 노자를 잘못 읽었다는 결정적 증거는 그의 '대응 논리'에서 발견되는 재밌는 일관성에 있다. 그는 자신의 '노력'을 부단히 강조한다.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그가 꺼낸 "유엔을 이끌면서 상선약수의 덕목을 적용하려고 노력했다"는 말뿐만이 아니다.

사실상 대선 출마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히는 지난 5월 방한 때도 "자생적으로 그런 얘기가(반기문 대망론이) 나오니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고 노력한 데 대한 평가가 있구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6월 9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 기자회견에서 재차 대선 출마에 관한 질문을 받자 "사무총장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모든 노력과 시간을 쏟아붓겠다. 이것이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답이다"라고 말하며 즉답을 회피했다.

직접 나서기 곤란할만한 상황에는 측근들이 대신 나서준다. 친노 그룹에서 반기문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반기문의 최측근 김숙 전 주 유엔 대사는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 반 총장은 개인적으로 노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야당에 빚이 있다고 주장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반기문이 유엔 사무총장이 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 때문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반기문의 선거를 지원한 건 유엔 회원국들에 대한 공적인 로비였다.

그럼에도 이 맥락에서 '공과 사의 구분'이라는 수사를 동원했을 때의 정치적 효과는, 주변 환경의 도움을 평가절하하고 반기문 개인의 노력을 평가절상하는 것 밖에는 없다. 맥락을 단절시키고 모든 것을 개인 노력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이처럼 곤란한 상황에서 반기문과 측근들은 '노력'을 강조하며 기름 장어와 같이 유연하게(?) 빠져나가는데 성공해왔다. 이 전략은 지금까지는 통해왔다. 사람들은 무언가 노력하는 듯한 사람을 선뜻 비판하기를 주저한다.

10년은 꽤 긴 경험이므로 실속이 좀 부족해도 얼마든지 자신의 노력의 경험을 늘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누차 강조하듯 이미 고민됐어야 할 것은 노력 자체가 아니라 노력의 성격과 방향이다. 정치란 최소한 '보상 심리'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보상 심리는 노자의 '상선약수' 정신과도 어긋난다. 노자가 물을 "다투지 않는다(不爭)"고 높이 평가한 건 물이 맹목적으로 갈등을 회피해서가 아니라 "만물을 이롭게(水善利萬物)"하고도 자신의 공이라 주장하지 않아서다.

노자 철학의 기본 정신은 '무위(無爲)'다. 이것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자 실천하는 것이 있음에도 마치 없는 것처럼 즉 '떠벌리지 않고' 소박하게 행하는 실천을 말한다. 그런데 자신이 한 노력을 사람들에게 부단히 강조하는 사람이 과연 상선약수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끌어들여도 될까. 상선약수보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가 어울리는 것은 아닐까.


태그:#반기문, #박근혜, #안철수, #김종인, #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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