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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그 꿈이 시작되기엔 딱 좋은 나이

넘어지는 것은 아프지만 백 번이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엔 딱 좋은 나이

- 김경원, 열여덟 살 전문.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그 사연을 알고 읽으면 훨씬 각별하게 와 닿는 책이 있다. 열여덟 나이를 잘 표현한 이 시가 수록된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푸른길 펴냄)이 그런 책.

가슴 뭉클해지는 휴먼다큐드라마와 같은 사연으로 나온 책이다. 한 장애인 친구에게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해주고 싶은 친구들과 장애인 소년이 앞날을 잘 헤쳐 나가길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나온 시집이다.

'작은 시인', '별꽃 시인'으로 불리는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광주) 김경원(지체장애3급)과 첫시집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 책표지.
 '작은 시인', '별꽃 시인'으로 불리는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광주) 김경원(지체장애3급)과 첫시집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 책표지.
ⓒ 푸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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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 김경원은 조대부고(광주, 조선대부속고등학교, 아래 조대부고) 3학년 3반이다. 세살 때 터미널에 버려져 시설에서 자랐다. 장애아(현재 지체장애3급)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들 한다. 경원이도 곱지 않은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지체장애아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려진 소년의 가슴이 외롭고 아픈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마음이 많이 힘든데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고 답답해서 종이에 몇 자 쓰기 시작한 것이 제 시의 시작입니다. 시를 쓰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 집니다. 글을 쓰면 글에 빠져서 내 아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청소년이 되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답답하고, 막연히 불안하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하소연도 하고 싶고. 그래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중3때부터란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다. 구체적으로 '앞으로 살아갈 날'을 생각해야하고 그것을 향해 무언가 준비해야만 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고3이 되었다. 하지만 장애 때문에 꿈을 갖는 것도, 그 꿈을 향해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공부 수준이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것이 가장 많이 속상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 없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고, 자신의 각오, 바람, 스스로의 다짐이나 위로, 그런 것들을 시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쓴 시, 경원이의 시를 한 친구가 교실 벽면에 붙여놨고, 점점 더 많은 시들이 고3 교실 벽면을 채워 나갔다. 그렇게 붙여진 장애 친구의 시에 친구들은 공감 스티커로 응원도 하고 마음도 나눴다.

나태주 시인(가운데)과 친구들과 함께. 왼쪽에서 세번째가 김경원 학생이다.
 나태주 시인(가운데)과 친구들과 함께. 왼쪽에서 세번째가 김경원 학생이다.
ⓒ 푸른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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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전문


일기를 쓰듯 매일 시를 쓴다는 경원이가 좋아하는 시인은 나태주 시인과 도종환 시인. 두 시인의 <풀꽃>과 <흔들리며 피는 꽃>을 특히 더 좋아하는데,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경원이가 시를 쓰기로 마음 먹게 한 시라고 한다.

주변 친구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은 것은 시처럼 '자세히 보지 않아서, 오래 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니 위로가 되었고, 시가 누군가를 위로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경원이가 시를 계속 쓸 수 있다면... 경원이도 시집을 내면 안 될까?"

경원이 이야기지만 자신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경원이의 시들을 보면서 친구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막연한 꿈을 향해 도전을 했다. 다음 스토리펀딩 "널 위해 우리는 별이 될 수 있을까?"를 열어 시집 발간을 위한 후원 프로젝트를 연 것,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김경원 군의 시들은 솔직하고 담백한 표현법을 가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힘은 정직함의 능력이고 솔직한 마음 그것입니다. 시에서는 이를 '진정성'이라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진정성 있는 시는 독자를 울리는 힘을 가졌습니다. 무어네, 무어네 그래도 시는 사람을 감동시켜야만 합니다. 감동시키는 데에는 진정성이 최고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이 학생은 이미 알아버렸습니다. 시를 앞에 두고서는 그 무엇보다도 귀중한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학생은 앞으로 시 쓰는 일을 쉽게 그만두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그만두지 말아야 합니다. 분명 이 학생에게 시는 함께 길을 가는 동행인이 될 것이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는 이웃이 될 것입니다" - 나태주 시인 시평


만화캐릭터 같은 풋풋한 그림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짧은 인터뷰도 들어가 있고, 경원이와 경원이의 시에 대한 몇몇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마음의 글도 들어있다. 그래서 시집은 좀  많이 사소해 보인다. 중·고등학교 시절 해마다 가을이면 친구들과 머리 맞대고 만들던 문예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푸른길 출판사 이교혜씨는 말한다.

"나태주 선생님께서 부탁하셨습니다. "이 시집을 최대한 살려 책이 나오게 해 달라"고. 우선 30부를 찍어 우리에게는 시집 상태로 왔는데, 알고 보니 그림 잘 그리는 친구가 그림을 그려 넣는 등, 여러 사람의 재능기부로 나온 시집이더라고요.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들어간 책이었던 거죠. 그래서 원본을 최대한 살려 달라 부탁한 거고."


시집 출간을 목적으로 친구들이 마음을 합한 다음 스토리펀딩 '널 위해 우리는 별이 될 수 있을까?'
 시집 출간을 목적으로 친구들이 마음을 합한 다음 스토리펀딩 '널 위해 우리는 별이 될 수 있을까?'
ⓒ 다음 스토리펀딩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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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인 김경원의 꿈은 반려동물 관리사. 특히 자신처럼 버려지고 상처받은 동물들에 관심이 많다고.
 작은 시인 김경원의 꿈은 반려동물 관리사. 특히 자신처럼 버려지고 상처받은 동물들에 관심이 많다고.
ⓒ 푸른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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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스토리펀딩이나 책에는 있지 않은 이야기가 궁금했다. 시집이 나온 후 달라진 것도 많을 것 같았다. 뭣보다 경원이에게 변화가 많았을 것 같았다. 자신감도 더 커졌을 것 같고, 앞날에 대한 희망 그런 것들도 좀 더 커졌을 것 같고. 듣고 싶었다. 경원이와 시를 교실에 붙이기 시작한 고1 때부터 절친 재하 학생과 안봄 담임선생님께 메일을 띄웠다.

며칠이 지나서야 수신이 확인되거나, 메일을 보낸 지 열흘이 지났는데 수신확인조차 되지 않았다. 수능을 코앞에 둔 고3이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물 마시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고3. 그런데도 장애를 가진 친구와 제자를 위해 시간을 쪼갠 친구들과 선생님들 덕분에 이 시집이 나오게 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이 처음 접했을 때와 또 다른 감동으로 와 닿는다.

뒤에 '조대부고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작은 시인 경원이에게 전하는 마음의 글'이 있다. 경원이의 시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다는 친구도 있고, 못보고 지나치거나 생각하지 못하던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부모님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과 삶에 감사하게 됐다는 친구도 있다. 경원이가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친구들도 많다. 응원의 마음을 더한다. 

"고3인데도 시집을 위해 시간을 쪼개준 친구들과 선생님께 많은 감사 드려요. 장래 희망은 반려동물 관리사입니다. 우선 취업을 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돈을 벌고 나면 대학에 진학해서 반려동물 관리사가 되고 싶습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면 부족한 제 시를 읽으시고 꿈과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김경원과의 서면 인터뷰 중에서)

"우리 학교에서 인사를 제일 잘 하는 미소 천사입니다. 몸이 불편한데도 단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이 없는 모범생이구요. 경원이처럼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졸업 후 취업이나 대학 진학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졸업 후의 일들이 많이 걱정되고요. 경원이에게 해줄 말은, 지금까지 많은 응원과 격려를 받고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되었으니, 이제는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멋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안봄 담임선생님과의 서면인터뷰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 (김경원) ㅣ 2016.10.07 ㅣ 푸른길 출판사 ㅣ 정가:12000원.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

김경원 지음, 푸른길(2016)


태그:#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 #김경원(조대부고 고3 시인), #시집, #나태주-풀꽃, #푸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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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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