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열하(熱河)의 피서산장(避暑山莊) 호수구(湖水區). 열하는 '온천'이 많아서 얻은 이름이다. 당시 공식지명은 '승덕'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연암은 책 내용과 제목에 모두 '열하'라는 지명을 썼다.
 열하(熱河)의 피서산장(避暑山莊) 호수구(湖水區). 열하는 '온천'이 많아서 얻은 이름이다. 당시 공식지명은 '승덕'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연암은 책 내용과 제목에 모두 '열하'라는 지명을 썼다.
ⓒ 김태빈

관련사진보기


김태빈, 레드우드, 2016
 김태빈, 레드우드, 2016
ⓒ 레드우드

관련사진보기

북경한국국제학교에 파견되어 세 해 동안 현지 한국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돌아온 현직 고교 교사가 책 한 권을 냈다. <청소년을 위한 연암답사 프로젝트>라는 다소 기다란 제목의 이 책은 부제는 '물음표와 느낌표로 떠나는 열하일기'다. 

'연암'에다가 '열하일기'와 '답사'가 나왔으니 이 책의 얼개는 눈치 채고도 남겠다. 지은이 김태빈 교사는 2013년부터 북경에서 머물면서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연암과 다산, 추사를 공부하며 글을 써온 이다. 그의 <오마이뉴스> 블로그 '김태빈의 공부'에는 그 '공부'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그는 연암의 '길 위의 삶'에 주목해 연행의 노정과 열하, 북경의 관련 유적지를 여러 차례 답사했다. 2014년에는 자기 반 아이들과 함께 연암의 연행 노정 전체를 답사했다. 북경에서 산해관과 심양을 거쳐 압록강까지, 연암이 갔던 장장 1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되밟은 것이다.

21세기 훈장과 학동이 되밟은 '연행길'의 길잡이

전문가가 아니라도 책 내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시대이긴 하지만, 국외에 파견된 교사가 틈틈이 이룬 답사의 결과를 오롯이 책으로 묶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게 어찌 답사에 쓰인 적지 않은 시간과 경비만의 문제에 그치겠는가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하여 연행 전체 여정 두 차례, 열하 열 차례, 북경은 스무 차례 이상을 답사했다고 한다. 답사지도 만만한 국내가 아니라, 말도 길도 어두운 중국 땅이다. 그것은 힘들여 하는 일의 목적에 대한 믿음과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저자는 '열하일기를 만난 이후 자신이 누린 행운과 감동을 아이들과 나누고자' 이 책을 썼다. 그는 연암 문학의 위대성과 도저한 사유의 깊이가 아니라 200년 전에 연암이 밟은 길을 뒤따르면서 얻은 '소박한 깨달음과 소소한 즐거움'(작가의 말)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고스란히 3년간의 가외 시간을 쏟아 넣은 것이다. 

박지원 초상. 연암은 1780년에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 특별 사행(使行)의 정사로 임명된 8촌 형 박명원의 수행원으로 북경을 다녀와 <열하일기>를 썼다.
 박지원 초상. 연암은 1780년에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 특별 사행(使行)의 정사로 임명된 8촌 형 박명원의 수행원으로 북경을 다녀와 <열하일기>를 썼다.
ⓒ 실학박물관

관련사진보기

아시다시피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청나라 여행기다. 연암은 마흔네 살 때인 1780년(정조 5년)에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萬壽節, 칠순 잔치) 특별 사행(使行)의 정사로 임명된 8촌 형 박명원의 수행원으로 북경(당시엔 연경)을 다녀온다.

사행 대표인 정사(正使) 박명원의 개인비서 격인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암은 음력 5월 25일에 한양을 떠나 10월 27일에 돌아오는 150여 일의 '연행(燕行)'을 떠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국가 외교사절로서 청나라의 수도인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을 방문하는 '연행'의 기회를 얻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연행은 단순히 이웃나라의 수도를 방문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국가 공식 외교사절단이면서도 연행사(燕行使)는 중국과의 경제·문화 교류의 창구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이었다. 또 연행의 전 과정은 바로 선진 문명을 접하고 자기를 발견하는 '문화의 통로'였던 까닭이다.

비록 수행원의 자격이긴 하지만 '백수'였던 연암이 그 사행단의 일원으로 압록강을 건넌 것은 이만저만한 행운이 아니었다. 연암은 어렵사리 얻은 이 선진문화 체험을 꼼꼼하게 기록하였고 이를 기초로 26권 10책의 <열하일기>를 썼던 것이다.

그 '열하일기'의 여정을 230년 뒤 한 고교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따라간다. 연암이 말을 타거나 걸어서 간 길을 사제는 자동차로 뒤따랐다. 연암의 여정을 뒤따르는 길, 그러나 아쉽게도 21세기의 훈도와 학동들은 압록강을 건너지는 못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아이들과 그 '도강(渡江)'을 '열하일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상상으로 재현하면서 연행에 나서는 것이다.

이 책은 <열하일기>의 여정을 따르면서 크게 세 부분으로 짰다. 압록강에서 북경까지를 다룬 제1부(연암의 연행), 북경과 열하의 견문을 각각 2부(연암의 북경), 3부(연암의 열하)로 나눈 것이다. 제목 때문에 열하를 강조한 여느 책과 달리 이 책에서는 북경에 더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열하에 머문 날(6일)에 비기면 북경은 그 다섯 배도 넘게 체류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마치 눈앞의 아이들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이루어지는 서술은 쉽고 편하다. 그러나 필요한 대목마다  짚어야 할 의미를 놓치지 않고 챙기는 저자의 눈길을 따라가다 보면 정작 '열하일기'를 읽지 않은 사람도 <열하일기>의 내용과 얼개를 얼마간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연암 답사 지도. 지은이는 자기 반 아이들과 함께 연암의 연행 노정 전체를 답사했다. 북경에서 산해관과 심양을 거쳐 압록강까지, 연암이 갔던 장장 1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되밟은 것이다.
 연암 답사 지도. 지은이는 자기 반 아이들과 함께 연암의 연행 노정 전체를 답사했다. 북경에서 산해관과 심양을 거쳐 압록강까지, 연암이 갔던 장장 1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되밟은 것이다.
ⓒ 레드우드

관련사진보기


저자는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연행을 진행한다. 여느 독자들이라면 무심코 지나갈 대목에서도 지은이는 꼬치꼬치 그 인과를 따져 묻는 것이다. 그는 연암의 '열하 투어'가 왜 반쪽짜리였는지, 당대의 조선사신관, 즉 연암의 북경 '베이스캠프'가 어디였는지, 연암이 왜 자금성을 반밖에 보지 못했는지를 시시콜콜 들여다보며 설명해 준다.

청소년 눈높에에 맞춘 연행답사의 충실한 도우미

물음표나 느낌표로 시작되는 각 장의 제목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미션 수행 형식'을 빌려서 아이들이 연행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영원성에서 연암이 탄식한 이유는?', '북경, 연암은 봤지만 우리는 볼 수 없는 것은?', '조선 유학자 연암, 이단의 성소를 탐하다?', '찰십륜포(札什倫布), 연암이 만난 이단의 괴수는?' 따위의 제목 앞에서 아이들은 쉬지 않고 도파민을 분비할 수밖에 없으리라. 

지은이는 '연암을 따르는 길에서 두 가지 즐거움'을 선물한다고 밝힌다. '연암의 실수'와 '연암의 탄식'이 그것이다. <열하일기>는 당대를 매우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책이지만 사소한 오류가 몇 군데 보인다. 지은이는 아이들과 함께 이를 찾아 바로잡는 것이다.

또 연암은 구경벽이 남달랐지만 일정과 당시 여건 때문에 가지 못한 곳이 여러 군데였다. 그러나 연암의 노정을 따라나선 21세기 사제의 연행에선 그칠 게 없다. 연암이 갈 수 없었던 자금성의 내궁, 이른바 'Forbidden City'나, 열하에 있는 황제의 행궁인 '피서산장(避暑山莊)'과 '보타종승지묘(普陀宗乘之廟)'와 '보녕사(普寧寺)'도 두루 구경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가, 연암의 탄식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산해관  성안. 연암은 옹정제가 쓴 '상애부상' 편액이 종고루에 걸렸다고 썼지만 이는 착오다. 예의 편액을 쓴 이는 건륭제이고, 이 편액은 종고루가 아닌 영은루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산해관 성안. 연암은 옹정제가 쓴 '상애부상' 편액이 종고루에 걸렸다고 썼지만 이는 착오다. 예의 편액을 쓴 이는 건륭제이고, 이 편액은 종고루가 아닌 영은루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 김태빈

관련사진보기


산해관을 지나면서 연암은 옹정제가 쓴 상애부상(祥靄榑桑:상서로움이 해 뜨는 곳까지 피어오른다) 편액이 종고루(鍾鼓樓)에 걸렸다고 썼다('관내정사', <산해관기>). 그러나 예의 편액은 건륭제가 썼고 영은루(迎恩樓)에 걸려 있는 것이다.

연암은 또 북경에서 찾은 '풍금이 있는 당'을 '서쪽 천주당'이라고 쓰고 있는데 실제 그가 방문한 곳은 선무문 천주당, 즉 남당(南堂)이었다. 경황이 없었던 걸까, 착각하거나 잘못 기록한 부분이다. 천하의 연암도 장기간 여행 하면서 실수를 한 것이다.

오늘날 자금성을 찾는 관광객과 달리 연암은 사신단의 일행으로서 황제의 공적 집무 공간인 외전(外殿)만 구경할 수 있었다. 황후를 중심으로 한 사적 공간인 내궁(內宮)은 황제만이 출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달 넘게 북경에 머물렀어도 연암이 자금성을 '반만' 보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연암은 또 중국 전래 최고 국립교육기관인 국자감을 찾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국자감의 대표적 볼거리인 유리패방과 벽옹(辟雍)을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둘은 연암이 다녀간 지 4년 뒤(1784년)에 완공되었기 때문이다. 사제는 이 답사를 통하여 200년 전후의 역사적 시공간을 넘나드는 것이다.

열하에 도착한 조선 사신단에게 배정된 숙소인 태학. 연암은 <열하일기>에정사와 함께 명륜당 뒤쪽 대청의 오른쪽 방을 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열하에 도착한 조선 사신단에게 배정된 숙소인 태학. 연암은 <열하일기>에정사와 함께 명륜당 뒤쪽 대청의 오른쪽 방을 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 김태빈

관련사진보기


이 책은 단순히 <열하일기>의 여정을 따르는데 그치지 않고 '여행 가이드북'으로도 충실하다. 각 장에 내용과 관련된 현재 지도와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마무리까지 돕는다. '답사를 위한 마침표'에선 지명을 소개하고 지명의 간체자와 중국어 발음까지 넣는 친절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여정에서의 '역사적 성찰'도 가볍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기능적인 실용서로 매길 수만은 없다. 연행의 여정을 시시콜콜 안내하고 설명하면서도 여정의 인솔 교사는 우리 역사를 비판적으로 되새기니 말이다. 여행으로 들뜬 아이들에게도 그것은 꽤 묵직한 울림일 듯하다.

심양은 병자호란 이후 두 명의 왕자가 8년간 억류되었고 50만 명의 조선인 포로가 노예시장에서 팔려 갔던 비극의 현장이었어. 그런데 왜 청나라 조정은 조선 사행단에게 이곳에서 이틀씩이나 머물라고 했을까? 아마 일종의 암묵적 위협이었을 거야. 과거를 기억하라는! 그래서인지 심양은 사신들이 반드시 관복으로 갈아입고 입성해야 하는 세 곳 중 한 곳이기도 했어. - 1부 '연암의 연행' 중에서


열하로 가는 길. 앞의 마을이 고북구이고 마을을 안고 흐르는 물길이 조하(潮河)다. 이 물길을 건너는 이야기가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다.
 열하로 가는 길. 앞의 마을이 고북구이고 마을을 안고 흐르는 물길이 조하(潮河)다. 이 물길을 건너는 이야기가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다.
ⓒ 김태빈

관련사진보기


부록으로 '연암이 못 간 곳'까지 살핀 이 여정의 끝에서 지은이는 친절하고 꼼꼼한 인솔자에서 다시 교사로 돌아가 역사를 소환한다. 이국의 풍정에 심취했을 아이들과 함께 저자는 저 18세기, 개혁이 강제되어야 했던 사회변동의 시대를 성찰하는 것이다.

연암에게 청나라의 선진 문명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어. 그건 조선을 개혁하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 명분에만 함몰되지 않고 실리를 추구해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한 당대 청나라의 정치 현실은 자신이 속한 붕당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명분만을 앞세우고 백성의 삶은 전연 돌보지 않는 조선의 실상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었어.

우리가 지금 다시 연암과 <열하일기>를 호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단다. '슈퍼 차이나' 운운하며 패권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을 우리는 여전히 조선시대의 보수적 사대부처럼 무시하거나 일부 북학파 학자들처럼 맹신해. 자기 중심과 주체성을 지키면서도 끊임없는 호기심과 개방성으로 당대 청나라를 보고 듣고 배웠던 연암은, 중국과의 지혜로운 '동행'이 거의 유일한 선택지인 현재의 우리에게 그 자체로 훌륭한 모델이야. - '여행을 마치며' 중에서


어느덧 너도나도 국외여행을 즐기고, 중고교 수학여행도 나라밖으로 나가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열하일기>의 여정을 따라 청소년들이 답사여행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국외여행이 일상이 된 게 현실이고 시대의 진전이다. 현직 국어교사가 고전 <열하일기>와 씨름해 낳은 이 책의 존재 이유는 그래서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청소년을 위한 연암 답사 프로젝트 - 물음표와 느낌표로 떠나는 열하일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도서, 2016년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겨울방학 청소년 추천도서 선정

김태빈 지음, 레드우드(2016)


태그:#연암답사 프로젝트, #박지원 열하일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