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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다방이 자리한 건물은 1969년도에 지은 건축물이다.
 금다방이 자리한 건물은 1969년도에 지은 건축물이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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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읍내와 아리랑고개에서 내려오고, 산성리에서 올라오는 길이 모이는 역전사거리, 역쪽으로 몇 발짝만 걸어가면 충남 예산에서 가장 오래된 '금다방'이 있다.

서쪽으로 창문을 시원스레 열어 놓고 건물 외벽에 무늬타일을 붙여 멋을 부린 건물외형은 47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크게 변한 게 없다.

건물 오른편 짝으로 금다방으로 오르는 계단이 넓게 나 있다.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붙여놓은 신주(놋쇠)가 사람들 발자욱으로 다 닳아버렸다.

세월을 거슬러 맨질맨질해진 계단을 한칸씩 밟고 올라가 다방문을 열면, 거기 20여년전의 시간이 정지돼 있다.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붙여놓은 신주가 사람들의 발자욱으로 닳아버린 모습.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붙여놓은 신주가 사람들의 발자욱으로 닳아버린 모습.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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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담배연기와 은근한 커피향, 그리고 사람들의 온기…. 쉴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뒤로 보자기에 싼 쟁반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김양, 연신 줄담배를 피우며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여유롭게 신문을 뒤적거리는 노신사, 기차시간을 기다리는 이방인, 아리랑 성냥곽에서 성냥골을 꺼내 탑을 쌓으며 히히덕 거리는 애숭이들, 그리고 구석에서 소파에 어깨를 깊숙이 파묻고 배달나간 김양을 속절없이 기다리는 늙은 총각.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의 풍경인데 어느 시점에서 정지돼 하나둘씩 지워졌다.

정감있던 나무로 만든 여닫이 현관문과 나무창문, 그리고 합판벽은 소방법이 강화되면서 방화문, 문틀창, 석고보드벽으로 바뀌었다.

배달 나간 김양 기다리던

아직도 카운터에 공중전화기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카운터에 공중전화기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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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커피메이커와 컵 진열장. ⓒ 무한정보신문
 오래된 커피메이커와 컵 진열장. ⓒ 무한정보신문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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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으로 밀려난 오락기.
 구석으로 밀려난 오락기.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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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총각이 어깨를 깊숙이 묻던 소파도 보이지 않고 키낮은 탁자도, 그탁자 위에 늘상 있던 재떨이와 아리랑 성냥곽도 사라졌다. '기다리다 먼저 간다' 등등의 매모를 꽂아 놓았던 입구쪽 벽에 걸려 있던 메모판도 찾아볼 수 없다.

늘 카운터 앞을 지키며 단골 손님을 반기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얼굴마담도, 미니스커트에 스카프로 멋을 내고 4거리를 주름 잡던 김양, 이양, 최양, 박양도 모두 떠났다. 손님들도 시나브로 빠져나간 금다방을 이제는 주인 혼자 쓸쓸히 지키고 있다.

그래도 금다방엔 많은 것들이 옛모습 그대로 그시절을 되살린다. 카운터엔 아직 공중전화기가 있고, 아주 오래된 독일제 커피메이커(브라빌러)에서는 은은한 커피향이 일품이다.

또 갈아닦기한 바닥과 고풍스런 천장, 큰 괘종시계, 한 쪽 벽면을 다 차지한 보춘도(매화 그림액자)에서는 여전히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전 주인이 선물받은 그림인데 수백만원 들여 표구(액자)를 했다고 한다.

커피메이커 원조는 '다방'

금다방 2대 주인 김복순씨가 주방에서 주문한 커피를 준비하고 있다.
 금다방 2대 주인 김복순씨가 주방에서 주문한 커피를 준비하고 있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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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황마담 언니한테 인수한 게 1998년 6월 13일이에요. 그 언니가 69년도에 다방문을 처음 연 뒤 줄곧 운영하다 나한테 물려줬으니까 내가 두 번째 주인이죠."

1969년(등록일은 1973년 2월 19일)에 지금은 광주시의 한 요양원에 머물고 있다는 황영호(85, 일명 황마담)씨가 문을 열었다니 47년 역사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예산읍에서 문을 열었던 다방들은 호수다방(옛 터미널 옆 도유한의원 자리, 목조건물), 왕실다방(신우신협 옆), 송림다방(모하치과 인근), 수정다방(주교리) 등 다수가 있었으나 모두 문을 닫았고 금다방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방이다.

금다방 하면 황마담이었다는데, '오래도 했거니와 허우대도 멀쩡하고 대인관계 잘해서 예산읍내, 역전을 통털어 행세 좀 하는 사람이면 그녀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1998년도에 황마담에게 가게를 인수해 금다방의 두 번째 주인이 된 김복순(63)씨는 이젠 "좋은 시절(영업이 잘 됐던 때) 다갔다"고 한다. 간간이 바둑을 두러 오는 노년의 고객들 몇몇과 이따금씩 들르는 초로의 신사들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황마담 언니가 자꾸 해보라고 하고 주변에서도 부추겨서 주인소리 한 번 들어보게 이름이라도 지어보자는 맘으로 인수했어요. 딱 두 달만 할 작정이었는데…. 그게 6개월이 되고, 1년이 되고, 2년이 되더라고요. 그 때까진 장사가 참 잘 됐어요. 차양이라고 있었는데 통통하고 인성도 좋고 김자옥 같이 목소리가 참 예쁜 아가씨인데, 걔랑 둘이서 운영할 때 하루 매출이 50만원씩 올랐어요. 500원짜리 커피 팔아 그렇게 돈을 벌었으니 말도 못하게 손님이 많았던 거죠. 그러고는 내리막길이었어요. 가게가 안되니까 사채 쓰고 이자에 허덕이고 2년만 하고 그만뒀어야 하는데…"

그녀의 표정에 회한이 묻어난다.

500원짜리 커피 100잔

텅빈 다방 창가에 어르신 두분이 바둑 삼매경에 빠져 있다.
 텅빈 다방 창가에 어르신 두분이 바둑 삼매경에 빠져 있다.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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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다방에서 팔았던 음료는 꽤 다양했다. 허기진 아침 손님을 위해 계란노른자를 띄운 모닝커피와 냉커피, 홍차, 인삼즙, 마즙 그리고 여성들을 위해 준비한 우유, 주스, 콜라, 사이다 등 주방은 쉴틈없이 돌아갔다. 일반적으로 마시는 다방커피는 설탕 2~3스푼, 크림 2스푼이다.

음료 말고도 편법이긴 했지만 술도 있었다.

"캡틴큐, 세븐 등 주로 국산양주를 조그만 유리잔으로 한 잔에 1000원씩 팔았어요. 또 '하이볼'이라고 위스키에 우유와 사이다를 막 섞어서 거품을 낸 술인데 참 맛있었어요."

그 시절 다방에서 이뤄지는 만남도 진풍경이었다. 다방 말고는 맞선을 볼 마땅한 장소가 없던 시절이다.

"토요일이면 2~3쌍씩 맞선을 보러 왔어요. 저쪽 구석에 특별히 의자 커버를 씌운 맞선 전용테이블을 마련해 놨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그 때는 다방을 사무실 삼아 사업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어요. 여기서 사업상 필요한 사람들도 만나고, 서류도 꾸미고 마담에게 전화받는 일까지 부탁하기도 했어요. 그때야 컴퓨터, 핸드폰이 있길 하나, 자동차가 많길 하나, 그런 시절이었으니까요."

2000년대 초까지는 차 배달이 참 많았다. 밥을 먹어도, 개인사무실에 한두명만 모여도, 심심풀이 고스톱을 쳐도, 심지어 논두렁에서도 차를 배달시켰다. 면단위 다방들도 종업원들을 많게는 5~6명씩 두고 성업하던 때였다.

보온병과 컵을 앉혀놓은 쟁반을 보자기에 싸들고 걷거나 오토바이에 싣고 시내를 누비는 이들을 보는 것도 일상의 재미였다. 티코 같은 경차를 사고 카맨을 고용한 다방들도 속속 생길 정도로 티켓다방이 성업하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많던 티켓다방들은 어느날 등장한 보도방에 밀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맞선 전용자리 있던 때

다방벽에 걸려 있는 봄을 재촉하는 ‘보춘도’.
 다방벽에 걸려 있는 봄을 재촉하는 ‘보춘도’.
ⓒ <무한정보>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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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발전하고 살기 좋아졌다고 하지만 요새는 여유가 없어졌어. 식사를 하고 나면 자판기 커피 한 잔 빼먹고 일터로 가기 바쁜 세상이야."

다방 주인과 함께 커피를 마시던 초로의 신사가 던진 말이다.

다방이 쇠락의 길로 접어든데는 커피자판기의 영향도 컸다고 한다. 식당과 사무실, 공공장소마다 커피자판기라는 게 들어오니 다방 갈 일이 없어졌다는 것. 사람들 삶이 그만큼 바빠졌고 굳이 만남이 없이도 컴퓨터로, 핸드폰으로 일이 성사되는 세상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금다방이 문을 닫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이 곳을 찾는 오래된 고객들 때문이다. "권오창 전 군수님, 윤익로 조합장님을 비롯한 그분들의 지인분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충북 청원이 고향인 김순복씨가 예산에 머문 세월이 그새 30년이 넘었다. 이제는 아무데로도 떠날 수 없는 진짜 예산사람이 됐다.

"지겨운 세월이었지만, 내가 생각해 봐도 참 착실하게 열심히 살았어요. 한 때는 군에서 상도 준다고 했는데 싫다고 했어요. 열심히 사는 거야 나를 위해 그런 건데 상 받을 일은 아니잖아요."

이제는 커피를 팔아 가게세 내기 빠듯하다는 금다방을 그녀가 쉽게 내려 놓지 못하는 것은 꼭 다른 할 일이 없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많지는 않지만 사랑방 삼아 찾아오는 지인들 그리고 가끔씩 누군가가 문을 밀고 들어와 "어, 여기 아직도 그대로네"하고 놀라며 추억을 회상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의 만남과 추억이 소중해 다방문을 닫지 못하는 것일게다.

커피를 시켜놓고 다방벽에 걸린 보춘도의 의미를 새겨 본다.

'늙은 송은 굳건하고 매화는 눈을 만났는데도 홀로 되어 봄을 재촉한다. 달 아래 청명한 향기 그윽하다'

활짝 열린 서쪽 창문으로 오후로 넘어가는 역전4거리 풍경이 거침없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와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다방, #금다방, #커피, #역사,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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