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란


인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변화를 싫어한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한때 우리가 진리가 믿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허무맹랑한 주장이 될 수 있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주인공 나탈리(이자벨 위페르 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지는 상황을 몸서리치게 겪는 중이다. 그녀는 신념과 확신으로 가득 찬 유능한 철학 교사이며, 나탈리의 남편 또한 명망 높은 철학 교수다.

그렇게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영위하던 나탈리의 삶은 어느덧 서서히 균열이 나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모델이었던 나탈리의 어머니는 외로움에 사무친 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고, 영원히 나탈리를 사랑할 줄 알았던 남편 또한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며 이혼을 선언한다. 고등학교 철학교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나탈리의 철학책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판사로부터 개정을 거절당하고, 나탈리는 새롭게 출판되는 교과서의 집필진에서도 탈락한다.

나탈리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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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줄 알았던 모든 것들이 하나둘씩 나탈리의 품에서 떠나게 되고,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니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것들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나탈리는 철학교사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젠가 학교에서 퇴직할 것이며, 성인이 된 자식들은 자신들만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젊고 급진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제자 파비엥과 비교할 때, 나탈리는 보수적이고 변화를 싫어하고, 자신만의 생각에 갇힌 한물간 철학자이다.

그러나 나탈리는 급변하게 변하고 있는 상황에 발맞추어 나가기 위해, 억지로 몸을 맞추지 않는다. 대신, 나탈리는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입고,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것들을 떠나보내고, 달라지고 다가오는 새로운 것을 천천히 받아들인다. 여전히 그녀는 풍부한 철학적 지식을 가진 지식인이며, 살면서 터득하고 쌓아온 신념을 바탕으로 그녀만의 방식대로 세상을 살고 있다. 한 사람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관, 믿음 또한 변할 수 있다고 하나, 근본까지 쉽게 바꾸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람은 늘 제 뜻대로 인생을 살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없다.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없는 인간은 언제나 괴롭다.

진정한 사랑과 행복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다. 인간이 끊임없이 진리를 찾고, 추구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이상이지만, 더 나은 세계와 나를 꿈꾸며 바라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은 아닐까.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몸소 받아들이기 시작한 나탈리는 수업 중 알랭의 <행복론>을 인용하며, 행복해지기 전까지만 행복할 뿐이라는 말을 전한다.

그렇게 학생들에게 자신 있게 행복론을 제시하는 나탈리 또한 매일 밤 사무치는 외로움과 우울함에 눈물을 흘리고, 자신을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을 자연스럽게 늘어놓는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엄마, 남편, 아이들, 철학 교사로서의 명성을 다 떨쳐버리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온전한 자유를 찾았다고 하지만, 나탈리는 여전히 온전한 자유를 경험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온전한 자유를 찾기 위해 매 순간 다가오는 것들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지금껏 잘 살아왔고, 앞으로 잘 살아갈 거예요." 

완벽한 이상을 이루고 살 수는 없다. 다만, 이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존재한다. 나탈리는 앞으로 그녀의 삶이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행복하다고 믿는 순간 그 행복은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그럼에도 나탈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엄밀히 말하면 현재의 괴로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 주어진 상황에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머리만 들어도 지근지근 아파오는 철학도 행복하기 위한 하나의 삶의 방편이며,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도, 가질 수도 없고, 소중히 여겼던 것들도 언젠가 떠나보내야 하는 불완전한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 포스터.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 포스터.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작품이다. ⓒ 찬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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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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