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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말없는 약속 20년'에 이어 이제는 제 자신을 시작으로 나의 심리적, 생활상의 문제들로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에 걸림돌이 됐던 독(자신과 타인에게 해로움을 주는 요인)을 다스렸을 때 건강과 행복을 더 크게 느끼며 당당하게 생활하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이 연재기사의 이름은 '내 안에 독을 다스리면 덕이 되고, 복이 된 사연'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상담한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볼 겁니다. 이 연재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오마이뉴스>에 본인의 이야기가 실리는 것을 동의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름은 가명으로 합니다. - 기자 말

[지난 기사] 외도 중인 남편, 이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진정한 친구는 항상 사랑하니 그는 고난의 때를 위해 태어난 형제이다."-잠언 17:17

그녀와의 만남은 그녀를 시작으로 친정어머님, 남편, 동생, 딸까지 40회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그동안 그녀의 아픔을 하나씩 살펴보기 위해 친정어머님과 그녀와 남편, 그리고 딸까지 한정해 만나봤다.

3대를 살펴보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을 친정어머님과 딸 또한 원하고 있었다. 엄마와 다정한 관계이길 원하고 엄마의 관심과 보호 거기에 적절한 칭찬과 격려, 지지를 원했다. 이렇듯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다양하고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님을 실감한다. 진실하고 소박한 사랑, 관심, 배려, 존중, 헤아림 등이 중요하다.

친정부모님은 그녀보다 성장기나 집안분위기가 나았다. 단, 남편과의 갈등으로 자녀를 제대로 돌보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야 했기에 가슴에 묵직한 응어를 안고 살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좋은 벗(나를 소개한 그녀의 친구) 덕분에 그녀의 딸은 그녀, 그녀의 친정어머님과 같은 아픔을 지니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남편의 외도에 대해서는 상담자 역할은 했지만 결정과 생활에서 변화는 남편과 아내 몫이다. 상담 전과 달라진 점은 아내가 더 이상 나약하고 눈물만 흘리지 않았으며, 남편 또한 본인 행위가 올바르지 않음을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그녀는 본인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엄마 눈치를 보고 지냈던 그녀의 어린 딸도 엄마를 바라보며 순수한 어린아이 표정이 회복되었다.

나와 그녀는 상담 종료후 종종 연락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더 이상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녀를 만난지 만 1년 4개월 만에 신체적 아픔(위암)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였다.

이런 나의 상황을 어떻게 알았는지 수술후 10일이 지났을 때 약에 취해 병실 침대에 누워 잠을 자던 나를 간호하던 언니가 조용히 깨워주었다. 그녀가 바로 앞에 와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온 몸으로 나에 대한 걱정과 안스러움 그리고 뭔지 모를 미안함도 약간 느낄 수 있는 표정으로 아무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또한 그녀와 같이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수술은 끝났으나 솔직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그녀와 나는 손을 맞잡고 눈물만 주루룩 흘렀다. 이렇게 건강하게 나를 찾아온 그녀가 반갑기도 하고 그녀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나를 병간호해주던 언니가 우리 둘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녀는 미얀한 마음을 가득 담아 말했다.

그녀 : "선생님이 저 때문에 너무 신경을 쓰셔서…."
: "00엄마 때문에 이런 것 아닌줄 아시면서… 내 생활중 특히 식습관에 문제가 많았었어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저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거든요."
그녀 : "그래두~ 제가 속을 많이 썩여드렸어요."
: "만약에 00엄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면 저는 상담할 자격이 없는 거예요~ 아시지요?"

그녀는 무엇이 미안한지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죄송하다고 한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그녀 입장에서는 이해는 갔다. 마음이 착하고 순한 사람이니 신경은 쓰일 수 있을 것이었다. 이렇게 그녀는 첫 병원 방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다녀간지 3주가 흐른뒤 그녀는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녀 : " 뵙고 싶어서 왔어요."

첫 방문보다는 밝은 표정으로 그녀의 어린 딸과 함께 병실로 들어왔다.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딸에게 지금 나의 상태에 대하여 설명을 잘 해주었는지 고맙게도 그녀의 딸은 나에게 쉽게 다가와서 내 바로 옆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치 내가 덥석 안아주지 못하는 나의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

: "00아~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이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와주어서 고마워요. 엄마와 함께 손잡고 전철 타고 올 때 좋았나요?"

그녀의 딸은 고개를 끄덕인다.

: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 00까지 데리고 오시느라 수고했겠네요?"
그녀 : "그렇지 않아도 00에게 선생님 이야기를 하니까 선생님을 보고 싶다고 해서 함께 편하게 왔어요. 그리고 우리 둘이서 이렇게 전철타고 다녀보기는 처음이라 00가 너무 좋아하네요."
: "00~ 고마워요!, 저도 00만나니까 기뻐요."

그녀는 물을 떠오던 나의 바로 위 언니와 인사를 나눈 후에도 계속 병실에서 뭔가 망설이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간호해주던 언니에게 "00(그녀의 딸)을 데리고 잠시~ "라고 말 하자 언니는 우리 둘이 할 이야기가 있는 줄 눈치를 채고 00를 데리고 병실에서 나가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나에게 바짝 다가오더니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내 왼손 가운데 손가락에 끼워주며 말했다.

그녀 : "사실 선생님께 뭔가를 해드리고 싶었는데…."

내 왼손 가운데 손가락에 자줏빛이 나는 자수정 반지를 끼워주었다. 순간 여러 가지로 놀랐다. 반지는 뭐고, 그리고 내 손가락 사이즈는 어떻게 알았으며 등등. 내가 말을 못하고 있자 그녀가 먼저 말을 했다.

그녀 : "선생님은 귀도 뚫지 않고 몸에 아무런 장신구가 없어서 액세서리를 좋아하지 안는 분인줄 알지만 저를 오래 기억해주시길 바라며 선택했어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반지도 반지지만 본인이 이렇게 담대하게 할 말과 태도를 분명하게 하는 모습에 더 놀랐다. 그리고 이런 당당함을 지니기 위해 얼마나 스스로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싶어 노력한 그녀가 고마웠다.

내가 궁금해하는 것을 그녀가 말해주었다.

그녀 :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께 뭔가 해드리고 싶었는데 지난번에 병실에서 뵙고 손을 잡고 있을 때 반지를 생각했어요. 그래서 손가락을 보니까 저와 비슷하고 해서 선택하는데 쉬웠어요."

나는 액세서리를 좋아하지 안는 타입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지도하던 학생들과 그 부모들에게 선물을 받았었다. 그러나 2006년부터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해보면서 나의 도덕적 표준이 분명해졌고 그 이후로는 '잘 부탁한다'는 의미의 선물은 하거나 받지 않고 살아오고 있다.

그 결과 지금은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도 신경쓰이지 않고 떳떳하고 자유로워서 마음이 편하다.

사실 전에 받았던 액세서리는 나 또한 조카의 담임선생님들에게 조카를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드렸었다. 요즘처럼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 시행되었다가는 큰일 날 일이었다.

지금도 그녀를 닮은 고운 빛의 자수정은 내 왼손 가운데 손가락에서 늘 나의 초심을 살핀다. 이렇게 살면서 주위 사람들의 필요를 정성껏 살피라고...


태그:#김영란법, #반지, #외도, #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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