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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한국인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안창섭 사장의 자기소개 방식이다. 26년째 인도네시아에서 사는 그는 1남 2녀를 둔 다문화 가정의 가장이다.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인 아내와 그 사이에 큰아들 형빈, 밑으로 두 딸을 두고 있다. 한국적으로는 기업운영에 있어 걸림돌이 많아 몇 년 전 하는 수없이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요즈음 그의 얼굴엔 희색만면이다. 한국군에 입대한 큰아들 형빈이가 상병 진급을 한 것 때문이다. 한국말을 잘 못 하는 아들을 한국군에 입대를 시키고 난 후부터 항상 노심초사였는데, 이제 아들이 훌륭하게 적응한 것은 물론 어느덧 전역 시기를 헤아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는 요즘 아들로 인해 상을 받았다. 대한민국 병무청에서 공모하는 '자원병역 이행자 가족 체험 수기'에 응모했는데 영광의 우수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올라 있던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설명 좀 해주세요."

"아 그 사진이요? 형빈이 훈련소 수료식 때 촬영한 것입니다. 그 사진을 바꿀 만한 멋진 사진이 있을 때까진 그 자리에 오래오래 둘 작정입니다.(웃음)"

다소 뜬금없는 질문인데 그는 한바탕 함박웃음부터 터트리고 나서 대답을 시작하더니 말을 할 때도 웃었고, 말을 마치고도 또 한바탕 크게 웃었다.

- 형빈이는 왜 한국군에 입대했습니까? 반드시 지켜야할 의무사항도 아니잖아요?
"그건 형빈이 결정입니다. 형빈인 대학 진학도 한국을 고려한 적이 있었거든요. 한국어 능력이 큰 걸림돌이었지요." 

- 군 입대는 그것과 상관없는 문제 아닌가요?
"형빈이는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영어로 수업하는 국제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지요. 나고 자란 곳이니 인도네시아어야 당연히 잘합니다. 어쨌든 미국 동부지역 Indiana University에 진학했는데, 3학년이 되면서 뜬금없이 한국군에 입대하고 싶다는 거예요. 굉장히 당황했었어요. 사실 제가 형빈이에게 제 군대 시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은근히 한국군에 입대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렇지만 형빈이가 갑자기 입대하겠다고 하니 제가 놀라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날 밤 잠이 안 오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확신이 안 서는 겁니다. 그래서 형빈이를 달래기 시작했지요. 앞으로 한국에 가서 거주할 확률도 거의 없으니 군대에 가기보다는 1년 과정 리더십 교육을 받거나 인턴십 경험이나 해보라고 권했어요."

휴가 나온 형빈이와 함께
 휴가 나온 형빈이와 함께
ⓒ 안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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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호통, "한국말도 못하는 놈이 뭔 손자냐"

- 결과적으로는 군대에 간 거잖아요? 그런데 형빈이가 왜 한국 군대를 입대하겠다고 했을까요?
"그 답은 여러 가지일 수 있는데요, 한 번은 이런 사건이 있었어요. 형빈이 유치원 때였어요. 가족이 함께 한국엘 갔는데 제 아버지가 막 화를 내시는 거예요. 한국말도 못하는 놈이 뭔 손자냐는 겁니다. 정말 아찔했어요. 그 이후 제겐 형빈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어요.

자카르타에서 한국어 학원을 보내기 시작한 것은 물론 가능하면 한국 왕래와 관광, K-Pop 공연 관람을 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죠. 근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성과가 안 나는 거예요. 아이와 사이만 멀어질 것 같아서 한때 포기도 했었어요."

그의 얼굴에 웃음기는 여전했지만 힘든 여정의 순간들이 스쳤다.

"형빈이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여름방학을 하자마자 제가 형빈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갔지요. 3주 동안 경기도 고양시 일산 금계초등학교 '귀국 자녀 특별반' 청강생으로 넣었어요. 근데 그마저 형빈이의 한국어 발전에 큰 계기가 되지 않았어요. 돌아오면 한국어를 사용할 환경이 되질 못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저는 가능하면 그런 시도를 반복했지요.

웃지 못할 순간도 있었어요. 형빈이 9학년 때입니다. 제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학교에 한국 국적 학생 친구가 여럿 있는데 그들과 잘 통한다는 거예요. 전 그럼 그렇지 한국어가 알게 모르게 늘었겠지 했지요. 정말 반가웠어요. 그런데 얘길 듣고 보니 그 애들이 영어를 잘했던 거예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통했겠지요. 형빈이 말은 한국인과도 그냥 영어로 이야기하면 될 것을 뭐하러 애써 한국말을 배우냐는 거예요."

이번엔 내가 폭소를 터트렸다. 웃지 않고 배길 수 없었다. 그런데 마음 놓고 웃어도 될 또 다른 이야기가 그에게서 이어졌다.

면회를 가서
 면회를 가서
ⓒ 안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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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병무청 신체검사와 인성검사 과정에 도전

"형빈이 한국어 가르치려고 갖은 애를 썼는데 정작 한국어는 두 딸이 잘합니다."

그 또한 어찌 성과가 아니랴. 그는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막내딸은 아예 자카르타 한인 성당에서 운영하는 한국유치원을 졸업시켰어요. 초등학교도 한국국제학교에 다니게 했지요. 지금 막내딸은 한국 연속극을 보며 엄마에게 동시에 통역을 해줍니다. 큰딸도 한국여행을 할 때면 제 오빠 가이드를 하곤 했어요."

내가 안창섭 사장에 관해 이야기를 들은 것은 성당유치원 학부모들로부터다. 학부모 회의나 참관 수업, 그리고 행사 때마다 그는 항상 '청일점 학부모'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JIKS)로 이어졌다. 그는 교민사회의 화제의 학부모, 아니 화제의 남자였다. 

- 그렇게 한국어를 못하는 형빈이가 어떻게 입대를 할 수 있었어요?
"정말 곡절이 많았습니다. 근데 그게 형빈이 생각이 확고하니까 되더라고요. 육군 입대로 최종 결정하기까지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형빈이가 나보다 더 의연하더라고요. 2014년 12월 미국에서 날아온 형빈이는 서울지방 병무청의 신체검사와 인성검사 과정에 도전했어요. 물론 저는 옆에서 열심히 도왔지요. 인성검사 때가 고비였어요.

한국어 능력 때문에 인성검사가 불가능했어요. 다행히 감독관께서 내가 도와주는 것을 허락하더라고요. 나는 현장에서 출제 문제에 대해 통번역을 해주고 형빈이는 문제를 풀었지요. 최종 결과는 2급으로 현역 입영대상이었습니다. 형빈이 입대가 점점 현실이 되는 순간들이었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난 뭐 카투사와 같은 근무지로 결정되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상담사에게 넌지시 내 뜻을 전하기도 했고요.

그랬더니 상담사가 한 마디로 그럴 수는 없다고하더군요. 그럴 거면 왜 굳이 입대를 시키려는지 안타깝다는 뉘앙스도 풍겼고요. 그때 형빈이가 제게 정면 돌파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볼 것 없이 재외 영주권자 입영 일자인 그해 2015년 8월 10일에 맞춰 입대한 것입니다."

- 아 참 부인께서는 괜찮았습니까? 한국군 입대를 찬성했어요?
"아내는 멋모르고 찬성했습니다. 지구 상의 희귀한 분단국가 대한민국, 남편의 조국 대한민국의 국군장병으로 아들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심정이야 나름 복잡했겠지요. 그래도 저보다 훨씬 의연했어요. 신병 입소 때 함께 갔었거든요. 울 줄 알았더니 울지도 않아요. 분대마다 통역요원이 있다는 말을 통역해 주었더니 손뼉을 치던 걸요. 언어 문제만 해결되면 만사 오케이란 생각을 했던가 봐요"  

- 그 뒤로도 에피소드가 소설 한 권쯤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습니다. 제가 기본적인 군대 용어를 인터넷에서 찾아 정리해서 프린트를 해줬었어요. 근데 형빈이가 훈련소 입소일 연병장에 모였을 때 우향우, 좌향좌, 뒤로 돌아 등 제식훈련 기본 용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겁니다. 제가 미처 그걸 알려주지 못했어요. 근데 그 1천여 명 입소자들 틈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봐 가며 대열과 하나가 되더라고요. 멀리서 그걸 보면서 우습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지요."

이쯤이니 편안하게 과정을 털어놓지만 참 가슴을 졸인 시간이었을 것 같다.

다국적 친구들에게 한국의 군대 문화를 전파한 아들

"형빈이가 영웅 됐죠. 두 여동생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고, 크나큰 자랑거리가 되었어요. 휴가를 왔을 때 두 딸이 오빠를 보는 눈초리는 예전과 달라도 많이 다르더라고요. 사실 딸들과 형빈이 사이는 오빠 동생을 떠나서 늘 너냐 나야 하는 친구 수준이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나무라듯 관계 정리를 해줄 때가 많았어요. 근데 형빈이 입대로 딸들의 오빠 보는 각도가 한 방에 달라진 겁니다. 형빈이의 군대식 말투와 행동에 대해 키득거리며 흉내를 내기도 했지만, 정말 예전하곤 달랐어요. 

외가가 중국계잖아요? 외가 친척들에게도 형빈이는 큰 관심사였어요. 다국적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였지요. 형빈이가 한국의 군대 문화 전파에 엄청난 공헌을 했습니다.(웃음~) 물론 이것은 군대에까지 잘 녹아든 한국의 IT 환경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 앉아서도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서 형빈이의 군 생활을 잘 알 수 있었으니까요. 훈련소 시절 소대원 카톡방을 개설해준 소대장께도 감사를 드리고, 자대(7포병여단 662포병 대대 3포대) 배치 후 포대원과 그 부모 모두를 묶어준 밴드장께도 고마운 생각입니다."

- 형빈이 편지 많이 받아보셨겠네요?
"물론이죠. 재밌었어요. 편지 땜에 걱정도 많이 했고요. 아마 이병 때일 겁니다. 눈 치우는 일꾼이냐, 빗자루질이나 하러 입대했냐고 썼더라고요. 일병 계급장을 붙이더니 불만이 차츰 없어지더군요."

- 편지는 한글로 썼어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저는 형빈이 입대로 인해 제가 그처럼 바라던 한국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믿었거든요. 근데 이 자식이 편지를 온통 영어로 써서 보내는 겁니다. 불침번, 소대장, 제식훈련, 화생방 등 말 그대로 표기해야만 이해가 분명할 단어를 제외하고는 다 영어로 쓰는 거예요. 그러나 알고 보니 형빈이의 한국어 실력은 일취월장했습니다. 휴가를 왔을 때나 제가 면회를 갈 때나 저를 웃음 짓게 한 것이 바로 형빈이의 좋아진 한국어 실력입니다. 이제 한국어 능력에 자신이 붙은 것 같아요."

면회를 갔을 때 헤어지기 전 한 컷
 면회를 갔을 때 헤어지기 전 한 컷
ⓒ 안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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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에서 느낀 정체성 혼란, 군대 지원에 영향 미쳐

- 그런데 아직도 형빈이가 왜 군대 지원을 했는지 명확히 말씀을 안 하셨습니다.
"아 그랬나요? 아마 결정적인 영향은 미국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형빈이 처지에서 보면 자라면서 정체성 문제가 다소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한국인과 중국인의 피, 그리고 태어나고 자란 인도네시아 사이에서 갈등이 없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미국에서 혼자 생활하다 보니 나름 어떤 갈래가 잡혔겠죠. 그래서 군대를 다녀오는 것이 여러모로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해지는 것임을 느꼈을 것입니다."

- 현실적으로 얻는 것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그럼요. 그런 거 일일이 다 이야기하려면 날 샙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대부분 다 아는 그 군대스리가 이야기 정말 끝이 없잖아요. 더구나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끼리끼리 만나면 체면이고 뭐고 없이 수다들을 떱니다. 거기서 현실적으로 뭘 얻었는지 정말 다양하게 드러납니다.

아들이 달라졌다. 체력이 좋아졌다. 이런 것쯤은 기본이고 각기 나름의 상황들이 있으니까요. 모두 다 재외 영주권자 아들 군대 보내기 홍보대사들입니다. 비싼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귀한 체험했다고들 하지요. 부계건 모계건 한국계라면 꼭 한 번 군대에 보낼 가치가 있다고들 이구동성 이야기합니다."

- 끝으로 안 사장님 다운 이야기 하나 하시죠.
"전 형빈이 아버지일 뿐입니다. 이 귀중한 형빈이 체험이 그 일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저 짐작만 할 뿐이죠. 다만 형빈이 입대로 인해 제게 너무 소중한 순간들이 많이 생겼어요. 앞으로 부자간 소통은 아무 문제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훈련소 퇴소식 때가 생각납니다. 이등병 계급장과 태극마크를 달아주던 순간, 형빈이가 제게 붙였던 그 우렁찬 경례와 건강하고 믿음직한 눈빛 말입니다."

그래, 세상의 어느 아버지가 아들의 그 모습을 잊으랴!


태그:#입대, #자원병역 이행자, #군대, #재외영주권자,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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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2015년 5월 인사동에서 산을 주재로 개인전을 열고 17번째 책 <山情無限> 발간. 2016,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현재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 산마을에 작은 서원을 일구고 있음.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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