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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에 질린 까꿍이

지난 19일 저녁, 아이들과 함께 뉴스를 보고 있는데 또다시 경주 지진 소식이 보도됐다. 전처럼 직접적인 흔들림은 느끼지 못했지만 앵커는 또다시 급박한 목소리로 경주 4.5도 지진을 알렸고, 뉴스는 곧이어 속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운동장의 대피 현장. 학생들과 시민들이 모여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운동장의 대피 현장. 학생들과 시민들이 모여있다.
ⓒ 이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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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1주일 전과 마찬가지로 포항에 살고 있는 사촌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그 전만큼은 아니지만 모두 겁에 질려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녀석. 부디 조심하라며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옆에서 함께 TV를 보던 까꿍이가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뉴스를 보고서도 무슨 뜻인지 몰라 희희덕거리는 동생들과 달리 녀석은 어렴풋하게나마 죽음의 의미를 알고 있는 탓이었다.

우리 까꿍이가 벌써 죽음을 두려워할 만큼 컸던가. 그러나 대견함도 잠시,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은 우선 녀석을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아빠, 또 지진 일어나? 그러면 우리 죽을 수도 있어?"
"아니야. 우리 집은 지진 일어난 곳으로부터 엄청 멀어. 산청 외가도 멀지? 그보다도 먼 곳에서 일어났어. 괜찮으니까 울지 마. 알았지?"
"그럼 우리 집은 괜찮은 거야? 지진 일어나지 않지?"
"응? 지진이 아예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안 날거야. 걱정하지 마. 아빠가 있잖아. 지진이 나도 아빠가 우리 까꿍이 지켜줄게."

어느새 다 큰 까꿍이
 어느새 다 큰 까꿍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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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녀석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 1%의 가능성에도 공포를 떨칠 수 없는 듯했다. 아내가 옆에서 그게 뭐냐며, 다시 아이를 안심시키라고 다그쳤다. 결국 난 가능성을 지우고 아이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괜찮아 까꿍아. 서울은 지진이 일어나지 않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자. 알았지?"
"진짜? 서울은 안 일어나?"
"그럼. 아빠하고 서울에 있는 산 다녀봤지? 바위가 많았잖아. 서울은 땅이 바위로 만들어져서 흔들리지 않아."
"그럼 다행이다. 알았어. 아빠도 잘 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어쨌든 그제야 녀석은 안심했는지 울음을 그쳤고, 잠을 청했다. 세상에 '100%는 없다'고, '절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초등학교 1학년한테는 분명 무리인 듯했고, 그보다는 아이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100% 안전한 곳은 절대 없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겠거니.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는 초등학교 1학년
▲ 세상이 궁금한 아이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는 초등학교 1학년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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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막상 이렇게 아이를 안심시키고 나니 또 다른 걱정이 슬며시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아이가 안심을 한 것은 그만큼 아빠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인데, 난 그 신뢰를 저버린 것이기 때문이었다.

까꿍이가 나중에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 물론 까꿍이도 그것이 하얀 거짓말이었다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어쨌든 거짓말은 거짓말인 터. 그렇게라도 까꿍이를 안심시키는 것이 옳은 일이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것이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기대할 뿐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현재 경주 지진을 둘러싼 정부의 발표와 국민들의 신뢰 문제가 떠올랐다. 아빠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까꿍이와 달리 현재 많은 국민들은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하고 있기에 그만큼 시국이 더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양치기 소년, 대한민국 정부  

월성원전 1∼4호기는 12일 발생한 강진으로 현재 정밀 안전점검을 위해 수동 정지된 상태다. 이번 지진 발생지역 반경 50km 안에 고리와 월성원전 등 원전 13기가 밀집해 있다. 정부는 원전이 규모 6.5~7.0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원전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 수동 정지된 월성원전 1∼4호기 월성원전 1∼4호기는 12일 발생한 강진으로 현재 정밀 안전점검을 위해 수동 정지된 상태다. 이번 지진 발생지역 반경 50km 안에 고리와 월성원전 등 원전 13기가 밀집해 있다. 정부는 원전이 규모 6.5~7.0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원전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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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지진이 일어났을 때부터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걱정한 것은 결국 원전이었다. 지진의 직접적인 피해도 문제였지만, 일본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진으로 인한 원전 파손은 지역과 세대를 가로지르는,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최악의 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와 같은 국민들의 우려에 대해 즉시 반박하고 나섰다. 원전은 무조건 안전하니 걱정 말라고 했다. 비록 국민안전처의 홈페이지는 먹통이 되고 긴급재난문자는 터무니없이 늦게 발송되었지만, 원전은 안전하고 또 안전하니, 그 발표만은 믿어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의심쩍어했지만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세상에나 그렇게 많은 원전이 바로 그 지역에 밀집되어 있는데 어찌 그곳에 제대로 된 조사도 않고 원전을 지었겠는가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역시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의 마냥 안전하다는 발표가 결코 신뢰할 수 없음을 가리키는 증거가 곳곳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경주의 여진이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으며, 19일에는 모든 이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4.5도의 여진이 일어났다. 기상청은 끊임없이 5.8도 이상의 지진은 그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하지만, 적지 않은 학자들이 7.0도의 지진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정부가 이미 이 지역의 단층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보고 받았으면서도,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계속해서 원전을 개발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원자력 마피아들의 힘이 막강하다지만, 모두가 공멸할 수 있는 가능성 앞에서 어찌 마냥 괜찮다고 주문을 외우며 원전 개발을 강행할 수 있단 말인가.

항상 누런 옷을 입고 등장하여 '걱정하지 말라'고 외치는 정부. 기시감이 들 수밖에 없다. KBS 뉴스 화면 갈무리.
▲ 7월 말의 정부 항상 누런 옷을 입고 등장하여 '걱정하지 말라'고 외치는 정부. 기시감이 들 수밖에 없다. KBS 뉴스 화면 갈무리.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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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로써 정부는 결정적으로 신뢰를 잃었다. 그리고 그 결과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럽다. SNS 상에는 대지진설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으며, 울산의 알 수 없는 때지어 움직이는 숭어떼 사진들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경주에 무슨 일이 생기기 전, 아이들을 데리고 경주의 신라 유적들을 얼른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도대체 누가 정부의 '안전하다'는 말을 믿을 수 있는가. 세월호 참사 때에도 아이들은 책임 있는 자들의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을 듣다가 모두 죽지 않았던가. 결국 지금의 이 혼란은 모두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딸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하는 아빠와 정부가 같을 수는 없다. 정부는 국민들을 위해서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비겁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재앙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국민들에게 낱낱이 밝혀야 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모아지는 국민들의 여론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섬기는 자세이며,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정책이기도 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천진난만 어린이들
▲ 아침의 까꿍이 천진난만 어린이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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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까꿍이가 일어나 다시 묻는다.

"아빠, 지진은 진짜 괜찮은 거야?"
"응. 경주에서도 크게 일어나지는 않았대. 괜찮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사실 지진은 서울에서도 일어날 수 있어.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그 확률이 매우 낮아. 교통사고보다도. 우리가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

나의 말뜻을 모두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녀석은 다행히도 어제만큼 겁에 질린 모습은 아니었다. 믿음직한 아빠가 끊임없이 괜찮다고 이야기 하고, 또 공포를 어느 정도 극복했기에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거겠지.

아직까지 좋은 나이
▲ 초등학교 1학년 아직까지 좋은 나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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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정부가 경주에서 시작되고 있는 혼란을 극복하려면 결국 이와 같은 과정을 지켜야 한다. 우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현재 우리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말 그대로 밑바닥이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도, 메르스가 창궐했을 때도 정부는 쉬쉬거리기만 했을 뿐, 국가가 국민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세월호 특조위의 정상화 등을 통해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하며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그 다음 정부는 있는 그대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무조건 유언비어이고, 무조건 안전하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필요하면 줄기세포나 광우병, 심지어는 피겨스케이팅 전문가도 되는 우리 국민 아니던가. 정부는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며 정보를 독점하려고 하지만 이는 온갖 억측만을 만들어낼 뿐이다.

마지막으로 정보는 그렇게 얻어진 사회적 합의를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의 정책방향과 다르다면 충분한 논의를 통해 국민을 설득해야 하고, 그것도 아니면 아예 정책을 바꿔야 한다. 경주에서 일어나는 지진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해서 살 수 없다고 하는데, 소위 원자력 마피아들의 무모한 주장만 앵무새처럼 읊어댈 수는 없지 않은가.

안보는 국민들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다. 현 정부는 안보 하면 북핵만을 언급하며 입에 거품을 물지만, 현재 국민들의 삶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북핵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퍼져있는 불신이다. 만인이 만인을 믿지 못하고 만인과 투쟁하는 이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것도 안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디 정부가 빨리 신뢰를 해복하기를 바란다. 국민들이 초등학교 1학년처럼 마냥 공포에 떨 수는 없지 않은가.


태그:#육아일기,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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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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