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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말]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는?
영국인들은 역사를 매우 사랑하며 존중한다. 그들은 개인의 역사까지도 매우 사랑한다. "체험은 최상의 스승이다"(Experience is the best teacher)고 하여 기성세대의 체험담을 대단히 귀중한 자산으로 여기며, 여기에서 교훈을 배운다.

지식인의 사회비판은 자동차의 제동장치(브레이크)와 같다.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는 곧 추락하고 만다. 이번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연재는 체험에서 우러난 기록이다. 한 개인의 기록이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지난 시대를 이해하고, 앞날을 살아가는데 지혜를 얻기 바란다. 왜냐하면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하기 때문이다.

신문은 사회의 목탁이요, 거울이다. 비판이 없는 일방의 충성과 맹종처럼 무서운 게 없다. 과거 나치즘이나 파시즘, 우리나라 유신시대가 그 단적인 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그동안 나의 글은 늘 비판에 따르는 대안을 제시해 왔다. 이번 연재 기사 '제Ⅰ부 초록색 견장'에서 다루는 병역문제, 군내 구타 및 부패 부조리 문제 등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의 하나였다. 그 원인과 대안 및 해결책은 마지막 회에서 깊이 다룰 예정이다.

청담(淸談)

당직근무 날이었다. 밤 10시 무렵 화기소대 막사에서 자대 근무자 및 잔류병들의 일석점호를 마치고 나오는데 얼마 전에 전입해온 정 병장이 내 뒤를 따라 나왔다.

한강 하류 산남리부대 근무 중일 때 기자(1969. 12.).
 한강 하류 산남리부대 근무 중일 때 기자(1969. 12.).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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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소대장님, 바쁘십니까?"

"점호만 끝내면 별로. 왜 무슨 일이야?"

"달빛도 좋은데 소대장님과 '청담(淸談)'을 나누고 싶습니다."
"청담?"
"네, 이왕이면 조용한 곳이 좋겠습니다."

엉뚱한 제의였다. 나는 그가 얼이 빠진 듯한 좀 별난 녀석이란 걸 이미 전해 듣고 있었다. 일석점호가 끝나면 무료한 시간이라 흔쾌히 승낙했다.

"좋아, 그럼 10분 후 내 막사로 와."

나는 마지막으로 가장 윗 천막 동(棟)인 3소대에서 일석점호를 마친 뒤, 중대 상황실 당번병에게 긴급상황 때 내 막사로 연락케 했다. 내가 막사로 돌아오자 정 병장은 그때 내 막사 앞에서 보름달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정 병장, 들어와."

나는 거적문을 말아 올린 후 라이터로 램프 등에 불을 붙이려 했다.

"달빛이 좋은데 그냥 두시죠."
"그래? 그게 좋겠군."

선문답

나는 열었던 지포라이터 뚜껑을 닫았다. 무슨 일일까? 저희 소대장을 찾지 않고 굳이 나를 찾은 이유는? 그는 군인답지 않게 '청담'이랬지. 내가 그 까닭을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면 그는 말문을 닫을지도 모른다. 그래, 기다리자. 스스로 입을 열도록. 나는 야전침상에 걸터앉았고, 그는 나무의자에 앉았다.

"담배 태우나?"
"네."

나는 그에게 청자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나도 한 대를 빼물었다. 그가 성냥불을 붙여 먼저 내 담뱃불을 붙인 뒤, 돌아서 자기 담배에도 불을 붙었다. 나와 정 병장은 담배 한 개비가 다 타들어 가도록 피차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마침내 정 병장이 마지막 한 모금을 길게 빨고 꽁초를 바닥에 부빈 다음 재털이에 넣고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김학수 일병한테 2소대장님 얘길 들었습니다. 고교시절부터 소설을 썼고, 국문학과를 나오셨다기에 진작 한 번 만나뵙고 싶었습니다."
"그랬어? 아주 좋은 달밤이야."

나는 선문답(禪問答)처럼 대꾸했다. 나도 화기소대장과 우리 소대 안 하사를 통해 정 병장 신상은 대충 전해 들었다. 그는 강원도 산골출신으로 ㅅ대 철학과를 중퇴한 뒤 탄광에서 막장생활을 하다가 입대했던 친구로 동부전선에서 근무 중 파월했다.

그는 1년간의 월남 파병생활을 마치고 잔여 기간의 복무를 마무리하고자 얼마 전에 우리 중대로 전입해온 자였다. 그런데 화기소대장 얘기로는 한밤중에 헛소리를 지르는 등, 정신이상자라고 했다. 그래서 야간 잠복근무를 내보내지 않고 내무반 근무만 시키고 있었다. 그 며칠 전 화기소대 박한진 소위는 중대장에게 그의 후송을 건의한 바가 있었다.

"2소대장님,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처음 그가 면담을 요청할 때부터 다소 긴장은 했지만, 느닷없는 의외의 질문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너와 나, 피차 군복을 입은 주제에, 게다가 대남방송이 들리는 최전선에서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면박을 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인간은…인간은 말이야. 인간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거야."

나는 지극히 모호한 말로 얼버무렸다. 궁색한 내 답변이 겸연쩍어 슬쩍 그를 쳐다봤더니 정 병장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파월 한국군이 월남에서 수색작전을 펼치고 있다.
 파월 한국군이 월남에서 수색작전을 펼치고 있다.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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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간을 야수로 만든다

"그럼,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란 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가치 부여는 말한 사람의 자유이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을 수도 있을 테지. 그럼 정 병장은 그 말을 어떻게 생각해?"

나는 대답이 궁색한 나머지 그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직사포처럼 쏟았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만물 중 가장 저능아요, 가장 비열한 존재이며, 우주질서를 파괴하는 한 오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래?"

"네, 그렇습니다."
"정 병장의 그런 인간관은 월남전에서 전투를 치른 탓이겠지. 전쟁은 인간을 야수로 만드니까."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쏟았다.

"위정자들이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는 것은 궤변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마 한반도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전쟁 자체가 평화를 깨뜨리는데 무슨 평화를 위한 전쟁이란 말입니까?"

정 병장의 어투는 점차 격앙돼 갔다. 나는 그의 감정을 가라앉히고자 다시 담배 한 개비를 권했다. 그러자 그가 자기 주머니에서 화랑담배를 꺼냈다.

"제 담배를 한 대 태우시지요?"
"화랑담배가 제맛이지. 왜 노랫말에도 있잖아. '화랑담배 연기속에 사리진 전우야…'라는."

나는 내 담배 곽을 주머니에 넣고 그가 내민 화랑담배 한 개비를 뽑은 뒤 지포라이터로 그와 나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가 화랑담배 연기를 뿜으면서 말했다.

"인간의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부터 전쟁은 있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없어지지 않은 한 아마도 전쟁은 이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는 내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후 그가 입을 열었다.

"탄광에서 막장생활을 해도 돈이 모이질 않더군요. 그래서 군에 입대했지요. 그런데 그 전투수당이란 게 제 눈을 멀게 했습니다. 월남에서 전투수당으로 받은 달러로 미군 P.X.에서 물건을 사 오면 한 밑천 잡을 수 있다는 그런 탐욕으로 파월했습니다."
"왜? 파월을 후회하나?"

악몽

"네."
"…. 자나 깨나 한 베트콩 아내와 어린 딸 눈동자가 지워지지 않습니다."

정 병장은 담배를 다 태운 뒤 차분히 얘기했다. 그는 동해안 최북단 해안 초소에서 근무했다. 밤낮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만 듣기가 너무 단조롭고 따분해서 등록금을 벌고자 파월을 지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전쟁을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장차 시를 쓰겠다고 작정했던 그에게 파월은 체험의 폭도 넓히고, 전투수당으로 돈도 모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전역 후 그 지긋지긋한,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막장 생활을 청산하고 대학에 복학해서 남은 학기를 마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자원해 파월했다. 그가 귀국하기 한 달 전 어느 날 밤, 그의 분대원 둘이 매복 초소에서 베트콩의 기습을 받아 가슴이 죽창에 찔리고 목이 잘려 나갔다. 날이 샌 후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그의 소대는 보복하고자 베트콩 은거지를 찾아 나섰다. 마침내 베트콩이 숨어 있는 초막을 찾아 화염방사기로 불을 지른 뒤 M16 소총을 연발에다 놓고 마구 갈겼다.

한참 후 그 초막을 수색하는데 베트콩은 이미 온몸이 벌집이 돼 죽어 있었고, 그의 아내와 딸은 머리가 반 이상 그을린 채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다. 그때 눈에 핏발이 치솟은 그의 분대장은 '이런 빨갱이 종자들은 아예 씨를 말려야 해' 하면서 M16 소총 연발로 갈겨 버렸다.

그들 모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부릅뜬 채 쓰러졌다. 가슴에서는 선혈이 쏟아졌다. 그 전투 후 정 병장은 그들 모녀의 눈빛을 뇌리에서 지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불타는 마을에서 알몸으로 탈출하는 소녀(1973년 퓰리처 수상작, 제목 "Terror of War, 소녀의 절규".)
 불타는 마을에서 알몸으로 탈출하는 소녀(1973년 퓰리처 수상작, 제목 "Terror of War, 소녀의 절규".)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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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도덕률

"전쟁에서 도덕률을 지키기란 직업여성에게 정조를 지키기를 기대하기보다 어려울 테지. 정 병장이 그들 모녀를 죽인 건 아니잖아?"
"저도 공범자입니다. 분대장의 사살을 저지했어야 옳았습니다." 

"분대장은 분대원을 잃은 적개심으로, 또 어차피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하여 자비심에서 편히 눈을 감겨준 게 아닐까?"
"자비심이라뇨? 자비란 말은 아무데나 가져다 붙이는 게 아닙니다."

그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나는 겸연쩍은 나머지 바지주머니에서 지포라이터를 꺼내 램프에 불을 붙인 뒤 불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 취소할게. "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까 가치 부여는 말한 사람의 자유라고 말씀하셨잖아요. "

나는 내가 뱉은 말이 후회스러웠다. 그래, 맞아. '자비(慈悲)'란 말은 거룩한 말이다. 그런 거룩한 말을 아무데나 끌어다 쓸 수는 없지.

"지금은 모두들 미쳐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죄를 짓고도 죄의식이 없어요. 그러나 언젠가는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죄의식을 느낄 테고, 그 죗값을 반드시 치를 겁니다. 과연 우리는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가했던 잔학성을 규탄할 자격이 있을지 의심스러워요."
"정 병장! 말조심해. 아직도 월남전은 계속 중이고, 지금도 많은 전우들이 파월되고 있어. 너 이런 말 함부로 지껄이다가는 보안대에 끌려간다."

"잡아가라지요, 뭐. 차라리 그곳에 끌려가서 실컷 얻어터졌으면 좋겠어요. 그것도 속죄의 한 방법일 테니까요. 소대원들이 저를 보고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걸 알고 있습니다. 누가 미친놈인지 그것은 하늘에 계신 분만이 판단할 겁니다."
"…."

그의 어조는 차분하고 담담했다. 그래,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모두가 미쳐서 날뛸 때는 미치지 않은 사람이 미친 사람이 될 테니까. 친일파 세상에서는 독립운동한 게 흠이 되는 것과 다름이 없을 테지. 이런 세상에 무슨 도덕과 양심이 살아있겠나?

노인과 바다

파월 한국군들이 작전에 투입되고 있다.
 파월 한국군들이 작전에 투입되고 있다.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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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준비를 하는데 참 가관이었습니다. 모두들 굶주린 이리떼 같았어요. 돈이 될 만한 것을 찾느라고 눈에 핏발을 세우대요. 월남에 돈 벌러 왔다는 적나라한, 탐욕스러운 모습들의 극치였습니다. 우리 같은 소총수들이야 한계가 있었지만, 총 한 발 쏘지 않았던 비전투요원이나 장교들은 더 극성이었어요. P.X.에 물건은 금세 바닥이 나고, 심지어 포탄 껍질까지 배에다 실었어요. 1년간 피땀 흘린 값을 보상받겠다는 심보는 이해가 갔지만."
"다 우리나라의 경제개발을 위한 애국심의 발로로 그랬을 테지."

내 말에 그는 벌컥 화를 내었다.

"네에? 그것도 애국심입니까? 물론 저도 한통속으로 좀 가지고 왔습니다. 귀국 후 제 주변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마치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잡은 18피트의 다랑이를 뜯어 먹겠다고 덤비는 상어떼와 같았습니다. 저는 그 악다구니들이 보기 싫어서 보름 휴가 동안 계속 술만 퍼마셨습니다. 그 술은 곧 오줌이 됐고, 전 바지춤을 내리고 태평양에다 쏟아 버렸습니다.
"…."

"저는 그 더러운, 생명을 담보로 한 전투수당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은 노인처럼 앙상한 뼈다귀만 남았습니다. 101보로 가기 전날 밤 마지막 남은 돈으로 맥주를 잔뜩 마시고 광화문 네거리에다 신나게 갈겼습니다. 아주 통쾌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결국 남은 것은 찢어진 영혼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그때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군 그래?"

"… 사람은 자기가 지은 죄업(罪業)에서 벗어날 수 없나 봅니다."
"군인은 별수 없이 명령에 따라 적을 죽여야 한다. 군인은 많은 사람을 죽일수록 훈장을 받고 영웅이 된다. 정 병장, 너무 지난 일에 집착하지 마라. 남은 군대생활 무사히 마친 뒤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죄 닦음이 되잖아?"
"…."

"자, 이제 그만 돌아가. 밤이 깊었다. 나도 상황실을 오래 비웠고."

"말씀도 감사하고, 미친 놈 말을 끝까지 들어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이튿날 저녁 무렵 정 병장은 부식차 편에 화기소대 향도 김 하사의 인솔로 대대 의무실로 갔다. 그의 후송 여부는 군의관의 판단에 맡겨진다고 했다.
 
(* 다음 글에 계속)


태그:#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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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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