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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다. 수요일(14일)부터 일요일(18일)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황금연휴'다. 길게 쉴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이번 명절은 또 어떻게 잘 견뎌야 할지 고민하며 한숨 쉬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아주 많은 집에서,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는 미명 하에 폭력에 가까운 '아무말 대잔치'가 열릴 게 빤하기 때문이다.

나도 4년 전까지는 그런 아무말 대잔치의 피해자였다. 그해 추석 때는 대학 입학 이후 나름대로 기쁜 소식을 가지고 갔었다. 어릴 때부터 되고 싶었던 기자가 되어 추석 연휴 이후 첫 출근을 앞둔 것이었다.

장남과 장녀가 만나 낳은 첫 아이여서 뭐든지 가장 빨리 거쳤던 나는 운 좋게도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알 만한 학교에 들어갔다. 부모님은 꽤 자랑스러워 하셨지만 그때도 고고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준을 충족할 순 없었다. 그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내키지 않았지만, 취직된 기념으로 방문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부모님 말에 어쩔 수 없이 끌려온 차였다.

부러 내세울 마음도 없었다. 학교를 오래 다녀 남들의 눈이 조금 신경 쓰이기도 했고, 어른들이 기대할 만한 '메이저' 언론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나름대로의 '대답'을 준비했다. 평소 서로 1g의 관심도 없던 친척들이 아무렇지 않게 속을 뒤집는 질문을 하거나, 그다지 관심도 없는데 기 빨리게 이어지는 자식 자랑 배틀이 벌어질 때쯤에 적절하게 쓰일 수 있겠지 싶어서.

가족끼리 줄 게 상처밖에 없나요

명절 불화 이유
 명절 불화 이유
ⓒ KBS 뉴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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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내가 대화 소재가 됐다. 작은 언론사에 취업했다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더 묻지도 않으셨다. "여자는 선생 아니면 공무원이 최고"라는 직업관을 가지셨던 분이니 기대도 안 했다.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됐다는 건 아예 무시한 채로 "너희 학교 재단이 모 기업인데 거기 들어가는 게 그렇게 어렵니? 공무원 준비하는 친구들은 주변에 없니?"라는 질문만 돌아왔다.

고등학교 바로 졸업하고 생산직으로 취직한 사촌 동생이 추석 때 용돈을 주어서 장 보는 데 다 썼다거나, 그 동생이 평소의 곱만큼 임금을 준다기에 명절 당일인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 주신 것까지도 좋았다.

그런데 왜 나는 가만히 있다가 "많이 배웠다고 다가 아니다. 이렇게 성실히 일하는 애가 관록이 있는 거다. 어느 회사나 이렇게 관록 있는 애를 좋아하지... 공부 그깟 거 좀 하는 건 별거 아니다"라는 쏘아붙임을 들어야 했던 걸까. 4년이 지난 후 다시 생각해도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요새 발에 걸리는 게 4년제 대학 졸업생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학교 다닌다고 유세 떤 적이 한 번도 없다. 비싼 등록금에 보태주십사 하고 손 내민 적 없이, 학기 중에도 쉴 새 없이 아르바이트 하며 학자금 이자와 원금을 갚았다. 학과 공부가 어려워 적응은 잘 못 했지만 복수전공을 하면서 공부하는 재미를 찾았고, 캠퍼스 바깥에도 분명 더 넓은 세상이 있을 거라 믿고 잘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일을 벌였다.

20대의 많은 부분을 바친 내 대학 생활의 '폭과 깊이'도 가늠하려고 하지 않은 채로,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의 소중했던 날들을 "공부 그깟 거 좀 하는 건 별 거 아니"라는 말로 냉정하게 재단하고 말았다.

서운하고 화가 났다. 많은 친척들이 있는 앞에서 그렇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정도로 기분 상하는 말을 직격탄으로 들은 적은 없었다. 더구나 취업 소식을 가지고 내려온 때 이렇게 한 방 먹을 줄은 몰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만나는 가족인데 내게 주실 건 상처밖에 없나?'

의미도 재미도 없는 아무말 대잔치를 거부합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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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나는 시골에 가지 않는다. 다른 가족들이 가자고 종용해도 거절한다. 서로의 존재를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 대화하고 행동한다는 기본적인 '예의'도 지켜지지 않는 정글 같은 곳에, 왜 나의 귀중한 시간을 뺏겨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집 근처도 아니고 차 막히면 반나절은 도로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왜.

정식으로 밥벌이하는 인간이 된 때에도 찬밥 취급을 당했는데,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하는 소위 '백수'가 가면 또 얼마나 많은 비수가 쏟아질까. 서로 크게 궁금해하는 사이도 아닌데 마치 평소에도 대단히 관심 있었다는 척, '요새 취업 시장이 어렵다는데...', '너도 적지 않은 나인데 이제 결혼을 해야 하지 않느냐' 따위의 질문을 연거푸 받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만 같다.

폭언을 벗어날 수 있는 환경에 놓인 것 자체가 행운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만약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시골에 갔어도 나는 어른들이 깔아 놓은 판에 장단을 맞춰줄 생각이 없다. 취업이든 연애든 결혼이든 알아서 당신들의 일이 아닌 '내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알아서 잘하겠다는 말로, '걱정'을 가장한 '아무말 대잔치'의 싹을 단호히 잘라낼 것이기 때문이다.

뭔가 정말로 염려돼서 충고를 하고 싶다면 '말하는 법'부터 배우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 단지 나이가 조금 더 많다는 이유로 의미도 재미도 없고 기분만 상하게 하는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무슨 일에든 숟가락 얹을 궁리만 하는 어른들은 제발 알았으면 좋겠다, 때로 적절한 침묵은 '금' 그 이상이라는 것을.

제발 아무말 대잔치를 멈춰주세요
 제발 아무말 대잔치를 멈춰주세요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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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추석, #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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