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을지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2016) 공식 기자회견에서 김동호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6일 오후 서울 을지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2016) 공식 기자회견에서 김동호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이정민


69개국 301편. 외형은 평소와 큰 차이가 없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소화할 수 있는 영화가 300편 정도임을 감안하면 300편의 상영은 적정 수준이다.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프리미어 작품도 123편으로 130편 안팎의 종전 위상을 유지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외형일 뿐이다. 정치적 탄압 논란을 겪으면서 예산은 크게 줄었다. 부산영화제 측은 아직 미확보된 스폰서가 있다며 구체적 예산을 밝히지 않았으나 부산시 60억에 영화발전기금 9억 5천만원, 주요 스폰서들의 후원 금액이 10억 정도 되는 점을 고려하면 대략 80~90억대로 추산되고 있다. 종전 120억에 비교할 때 3분의 1 정도 줄어든 액수다. 

아시아필름마켓은 주요 행사들이 크게 축소됐다. 마켓에서 함께 부스를 꾸렸던 국내 영상위원회들은 다른 장소에서 행사를 열기로 해 외형적으로도 위축이 불가피해졌다. 영화의 핵심을 이루는 감독과 촬영감독, 프로듀서, 영화노조가 보이콧 유지를 결의한 것은 여전히 큰 난관이다. 이들 단체들이 부산영화제와 함께 진행하던 행사들은 모두 취소됐다. 예년 수준의 작품 수는 유지했다고 해도 불안정 요소들이 넘쳐 나고 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에서 열린 21회 부산영화제 상영작 발표 기자회견은 지난 2년 간 부산영화제를 흔들어 댔던 서병수 시장이 영화제를 얼마나 망쳐놨는지는 확인시켜준 순간이었다. 개폐막작은 일부 주목을 받았을 뿐, 개별 작품에 대한 의미 등은 상대적으로 묻혔고 의미있게 준비한 특별전도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주요 관심사는 보이콧 철회와 유지로 갈라진 영화단체들의 분열과 이에 대한 부산영화제의 입장이었다.

서병수 시장이 흔들어 댄 상흔 곳곳에

BIFF2016 기자회견, 목타는 강수연 집행위원장 6일 오후 서울 을지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2016) 공식 기자회견에서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물을 마시고 있다.

▲ BIFF2016 기자회견, 목타는 강수연 집행위원장 6일 오후 서울 을지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2016) 공식 기자회견에서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물을 마시고 있다. ⓒ 이정민


지난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이후 사실상 박근혜 정권의 대리인 역할을 하며 영화제를 상처냈던 서병수 시장이 만들어 놓은 상흔은 곳곳에서 엿보였다. 지난 20년간 영화제를 지켜온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부재가 대표적이다. 문제의 근원은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흔들어 놓은 서병수 부산시장인데, 달리 어쩔 방법이 없다는 부산영화제 집행부의 태도는 보이콧  유지 영화인들과의 거리감만 드러냈다.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보이콧 단체들을 설득하겠다고 밝혔으나 입장 차이는 뚜렷했다.

김동호 이사장은 7월 정관개정으로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확보됐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보이콧 유지를 결의한 영화단체들의 문제의식과는 차이가 컸다. 보이콧 단체들은 부산영화제가 부산시와 재협상을 통해 제도적, 구조적 독립을 확보하길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김 이사장은 "더 이상 개정은 없다"고 강조했다. 또 영화계가 줄곧 요구해온 서병수 시장의 사과에 대해서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이 수차례에 걸쳐 대신 사과했다"며 정리된 일로 못 박았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 대한 명예회복 문제는 "불행하고 안타깝지만 재판에 회부된 이상 재판 결과에 따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영화계가 정치적 탄압으로 인식하고 있고, 김 이사장도 영화인들과의 사석에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복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식적인 입장은 달랐다. 영화계는 부산영화제의 정상화를 이용관 전 위원장의 명예회복과 복귀로 인식하고 있다.

정치적 탄압 논란 속에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전현직 부산영화제 관계자들을 영화제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탄원서를 냈고 프로그래머들이 재판에 방청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들의 재판을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는 영화계 인사들은 "부산영화제 관계자들이 지난 8월 재판에 처음 왔다"고 말했다. 그간의 무관심이 유감스럽다는 반응이다. 8월 재판 방청도 감독조합 등 일부 영화단체가 보이콧 유지를 결정하면서 실무자를 재판에 파견하는 식으로 관심을 두자 안팎의 시선을 의식했던 것 같다는 것이 이들의 평가다. 부산영화제 일부 관계자들도 "재판 중인 사람들을 영화제가 외면한다는 지적은 틀린 말이라 볼 수 없기에 달리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다만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재판 중인 일부 인사들에 대한 징계가 과도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내부 규정에 따라 결정했다면서, 재판 결과에 따라 충분히 논의하고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영화계 인사들은 정치적 탄압으로 시작된 기소와 재판이고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징계부터 한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부산영화제가 부산시에 성의 표시를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재판 중인 당사자들은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으나, 주변의 가까운 인사들에 따르면 재판 결과에 따른 징계가 아닌, 전후 상황 고려 없이 소명 절차도 없는 무조건적 징계에 상당한 서운함과 계획적인 의도가 있다는 의심 및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절묘한 개막작 <춘몽>, 배우로 출연한 감독들의 선택은?

 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춘몽>. 한예리가 주연을 맡았고, 윤종빈, 양익준, 박정범 감독 등 연기파 감독들이 주요 배역으로 출연했다. 이들 감독들이 부산영화제 보이콧을 선언한 영화감독조합 소속이라 이들의 부산영화제 참가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춘몽>. 한예리가 주연을 맡았고, 윤종빈, 양익준, 박정범 감독 등 연기파 감독들이 주요 배역으로 출연했다. 이들 감독들이 부산영화제 보이콧을 선언한 영화감독조합 소속이라 이들의 부산영화제 참가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계는 참여와 불참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부산영화제 측은 작품수급에 만족하는 표정인데, 개막작 <춘몽>은 장률 감독의 작품으로 양익준, 박정범, 윤종빈 감독, 이준동 제작자 등이 배역으로 출연했다.

이에 대해 영화감독조합은 "장률 감독은 조합원이 아니고 부산영화제에 선정된 한국영화 역시 제작사나 배급사들이 출품한 것이지 감독조합의 입장이 바뀐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영화감독조합은 보이콧 유지가 전체 투표를 통한 결정임을 강조하며 회원들에게 단체의 결정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개막작 주요배역을 맡고 있는 양익준, 윤종빈, 박정범 감독의 참여 여부가 주요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일단 양익준 감독은 8일 서병수 시장이 영화제를 공격했음을 비판하면서 "부산영화제를 통해 태동한 감독으로 고향에 나쁜 놈이 들어앉았다고, 술수를 쓰고 있다고, 먼발치서 고향을 보며 발만 동동 구를 순 없으니 가봐야 겠다"며 고민 끝에 개막식에 참석하기로 결정했음을 밝혔다.

일부 감독은 "이들이 참여할 경우 감독조합 차원의 보이콧 결정이 무의미해 지는 것 아니냐"며 "어느 정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보이콧 유지를 따르든 개인적으로 참가하든 개별입장을 존중한다는 것이 단체들의 공식 입장이지만 영화인들 개개인은 예민한 사안이라 눈치가 보인다며 답답함을 호소하는 분위기다.

부산영화제 측은 감독조합의 보이콧을 고려한 선택은 아니라고 밝혔으나, 보이콧 유지 쪽에서는 의도성이 다분한 개막작으로 보는 모습이다. 어찌됐든 보이콧 논란이 있는 가운데 부산영화제의 올해 개막작 선정이 절묘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춘몽>에 주요 배역을 맡아 참여한 제작자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올해 영화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제작자 단체인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부산영화제 참여 결정과는 입장을 달리하는 모양새다. 이 대표는 지난 8월 31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치러지는 올해 부산영화제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영화제는 어쨌든 잔치판이다. 정치적 보복 때문에 혼자 고통을 겪고 있는 이용관 위원장을 모른 체하고 잔치판에 끼어 놀 염치는 없다"고 밝혔다.

부산영화제 참가하겠다면 적극적인 투쟁 보여줘야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에서 배우 김꽃비와 김조광수, 여균동 감독이 당시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과 강정마을을 지지하는 의미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에서 배우 김꽃비와 김조광수, 여균동 감독이 당시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과 강정마을을 지지하는 의미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일부 영화계 인사들은 개막식을 비롯한 영화제 행사를 서병수 시장의 사과와 영화제 독립성을 요구하는 투쟁의 장으로 활용하자는 안을 내놓고 있다. 영화인들까지 부산영화제를 놓고 서로 반목하지 말자는 것이다.

한 제작배급사 대표는 "이용관 전 위원장이 없는 자리에 서병수 시장이 오게 되면 그 자체가 문제가 있고 영화인들이 분노할 일 아니냐"며 "개막식에서 피켓 시위나 1인 시위를 하고 서병수 시장에게 야유를 퍼붓는 방향으로 가면 참석하는 사람들도 부담이 덜 할 것"이라고, 영화인들의 강력한 투쟁 의지를 주문했다.

보이콧을 결의한 일부 단체는 부득이 참여할 수밖에 없는 회원들이 있다면 '레드카펫 입장 과정에서 부산시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이나 영화제 독립성 및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문구를 종이에 적어 펼치라'는 지침을 전달한 상태다. 그간 부산영화제 개막식에서는 파업중인 노동자들에 대한 지지와 세월호 추모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영화인들의 행동이 있어 왔다.

한 중견 감독은 "이용관 전 위원장이 저렇게 당하고 있는데 아무 일없다는 듯이 영화제만 치른다는 게 말이 되냐"며 "영화인들이 굳이 영화제에 가겠다고 한다면 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부천영화제가 지나간 과거를 털고 회복되는 데 12년이 걸렸는데, 부산영화제는 이제 시작처럼 보인다"며 "영화계가 지속적인 투쟁을 벌이지 않으면 이 수렁을 벗어나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지난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가(BIFF) 열리는 영화의전당 앞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정병철 다큐멘터리 감독

지난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가(BIFF) 열리는 영화의전당 앞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정병철 다큐멘터리 감독 ⓒ 유성호



부산영화제 김동호 강수연 이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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