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는 올 시즌 여러모로 가장 대조적인 팀이다. 감독의 리더십과 야구철학, 선수구성과 용병술 등 모든 면에서 상반된 컬러로 인하여 두 팀은 만날 때마다 명승부를 펼친다.

양팀은 지난 3일과 4일 넥센의 홈구장인 고척돔에서 열린 2연전에서 사이좋게 1승 1패를 주고받았다. 2경기 모두 막판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손에 땀을 쥐게하는 접전이었다. 3일 경기에서 양팀은 역전을 거듭하는 난타전과 11회 연장 승부 끝에 한화가 13대11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4일은 전날 저녁 경기에 이은 낮 경기였다. 양팀 모두 전날 연장 혈전으로 가용 자원에 있는 투수력을 모두 소진한 뒤라 마운드 운용상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사령탑의 성향 차이가 또 한 번 극명하게 드러났다.

전날 패배에도 투수진 연투 불가 선언한 염경엽 감독

항의하는 염경엽 감독 지난 1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15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준PO) 2차전 두산 베어스 대 넥센 히어로즈 경기. 8회 초 염경엽 넥센 감독이 전일수 구심에게 라이트를 다시 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의 염경엽 감독.(왼쪽) ⓒ 연합뉴스


염경엽 넥센 감독은 경기 전부터 이날 마운드 운용에 확고한 기준을 제시했다. 전날 등판했던 필승조 투수진에서 마무리 김세현을 비롯하여 금민철, 이정훈, 김상수, 이보근까지 무려 5명의 투수에게 휴식을 선언했다. 연투에 따른 선수보호 조치였다. 당연히 선수들을 위해서는 옳은 결단이었지만, 팀으로서는 가뜩이나 전날 연장 역전패의 후유증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마운드 운용에 핸디캡을 부여한 셈이었다.

염 감독의 원칙과 소신에 응답한 것은 선수들이었다. 선발투수의 호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던 상황에서 이날 넥센 선발로 나선 맥그레거는 7.1이닝 4실점 6피안타 2볼넷 7탈삼진으로 역투하며 불펜 운용에 숨통을 트여줬다.

시즌 중반 대체 선수로 합류한 맥그레거는 올 시즌 자책점이 5.63으로 높기는 하지만 11번의 선발등판에서 5회 이전 강판이 아직 단 한차례도 없다. 맥그레거가 이닝이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는 어지간해서는 선발투수를 조기강판시키지 않고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염경엽 감독의 '믿음의 야구'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넥센은 맥그레거에 이어 전날 등판하지 않았던 마정길-오주원의 불펜진까지 단 3명의 투수만 기용하며 한화의 강타선을 5실점으로 막아냈다. 타선은 윤석민과 채태인이 결정적인 고비마다 6타점을 합작하며 한화의 벌떼 마운드를 무너뜨렸다.

9회 이용규의 적시타로 7-5로 추격을 허용하며 2사 2·3루의 마지막 위기를 맞이했을 때는 전날 9회 3점 차 리드를 지키지 못했던 순간의 악몽이 잠시 되살아나기도 했다. 하지만 염경엽 감독은 끝까지 필승조를 소모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지켰고, 오주원이 마지막 타자 정근우를 삼진으로 처리하며 값진 승리를 지켜냈다.

김성근 감독의 마른 수건 쥐어짜는 듯한 선수단 운용

 1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 삼성의 경기. 김성근 감독이 선수들과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 ⓒ 연합뉴스


반면 '창조 혹사'의 대가답게 김성근 한화 감독은 이날도 변함없는 마운드 보직파괴를 단행하며 '혼자만의 한국시리즈'를 치렀다. 전날 불펜으로 등판했던 이재우가 깜짝 선발로 나선 것을 비롯하여 윤규진, 이태양, 박정진 등 이날 등판한 4명의 투수가 모두 이틀 연속 연투를 소화했다. 윤규진과 이태양은 선발 요원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오늘만 사는' 야구의 극한을 보여줬다. 

8회에는 이날 승부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이 나왔다. 넥센이 7-3으로 앞서가던 상황에서 무사 1·2루의 기회를 잡은 한화는 이용규의 안타때 2루 주자 이성열이 홈으로 파고들다가 아웃을 당했다. 첫 판정에서는 포수 박동원이 태그 과정에서 주자의 동선을 가로막아 '홈충돌 방지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세이프가 선언됐지만, 넥센측이 바로 합의판정을 요구한 결과 최종적으로는 아웃으로  판정이 뒤집혔다. 만일 세이프가 되었다면 점수가 3점 차로 좁혀지고 다시 무사 1·2루에 중심타선으로 연결되는 상황이라 한화로서는 결정적인 승부처였다.

그러자 김성근 감독이 벤치를 박차고 나와 강력하게 항의했다. KBO 규정(제28조 심판 합의판정 11항)상 합의 판정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선수나 감독에게 퇴장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되어있다.

공교롭게도 김성근 감독은 지난 8월 NC전에서 김경문 감독이 합의판정 이후에도 항의를 지속했음에도 퇴장 조치가 내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KBO 측은 홈충돌 방지 규정이 올해 신설된 조항인 만큼 운용의 묘를 발휘하여 무조건적인 퇴장보다 먼저 설명이 필요했다고 해명했지만, 김 감독은 '규정대로 하는데 설명이 무슨 필요가 있냐'며 여전히 꼬투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토록 원칙과 규정의 중요성을 역설하던 김 감독은, 불과 한달 만에 똑같은 상황에서 이번에는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자마자 규정을 보란듯이 무시했다.  

심판은 이번에도 김성근 감독에게 규정에 따라 퇴장 조치를 내리는 대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배려심을 보이며 오히려 김 감독보다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염경엽 넥센 감독도 김 감독의 노골적인 합의 판정 항의 위반에 대하여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넥센과 한화는 이번 맞대결에서 사이좋게 1승씩을 주고받으며 표면적으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3위를 지킨 넥센은 같은 날 패한 2위 NC와의 격차를 다시 2게임으로 좁히며 가을야구와 플레이오프 직행을 향한 순항을 이어갔다. 반면 한화는 7위에 머물며 5강권과의 격차가 다시 3게임으로 벌어졌다.

넥센은 전날 경기에서 박정음-이택근-대니 돈 등을 제외하고도 접전을 치렀고, 이날은 필승조 주력들을 모두 제외하는 등 2연전 내내 정상 전력이 아니었음에도 총력전을 펼친 한화와 대등한 모습을 보였다. 주축 선수들을 무리시키지 않고 휴식을 주면서도 상승세를 지킨 넥센과, 선수들을 마른 수건처럼 쥐어짜내는 총력전을 펼치고도 여전히 제 자리 걸음을 벗어나지못하고 있는 한화, 누가 진짜 판정승을 거뒀는지는 명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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