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중국과의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차전이 끝나고 난 후, 팬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90분 동안 진행되는 축구에서 최고의 70분과 최악의 20분이 공존하는 경기였다. 푸짐하게 차려놓은 한정식 한 상을 맛있게 대접받고 마지막에 급체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일부 팬들은 "분명히 이겼는데 웬지 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이날 한중전을 요약하기도 했다. 반면 "어쨌든 승리한 대표팀에게 질타보다는 박수가 필요하다"고 옹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쨌든 이번 중국전이 슈틸리케호와 한국축구에 단지 승패로만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화두를 던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단 긍정적인 측면에서 먼저 봤을 때 한국은 승점 3점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완수했다. 축구에서 내용상 경기를 잘 치르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는 경우는 수두룩하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이웃나라 일본은 같은 날 한 수 아래로 꼽히던 UAE를 상대로 안방에서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다. 최종예선이 결코 만만한 무대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장면이다.

슈틸리케 믿음에 보답한 유럽파들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대표팀 지동원이 첫골을 넣은 후 환호하고 있다.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대표팀 지동원이 첫골을 넣은 후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슈틸리케 감독의 '유럽파에 대한 무한 신뢰'가 보답을 받았다는 점도 이번 중국전에서 의미있는 장면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중국전에서 손흥민-이청용-구자철-지동원-기성용 등 검증된 유럽파들 위주로 공격진과 미드필드를 구성했다. 몇몇 유럽파들은 소속팀에서의 불안정한 입지와 경기력 부진 등으로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유럽파들이 한 수 위의 기량을 과시하며 중국전 승리와 대량 득점에 크게 기여했다.

이날 한국이 기록한 3골(자책골 1골 포함)이 유럽파들의 발끝에서 나왔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특히 가장 우려했던 지동원의 원톱 기용이 기대 이상의 대성공을 거뒀다. 지동원은 이날 직접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한국의 3골에 모두 관여하여 2도움을 올리는 활약으로 슈틸리케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소속팀에서 장기간 부진을 면치못하던 지동원은 이번 대표팀 발탁부터 중국전 최전방 공격수 기용까지 유독 많은 의구심을 자아냈던 선수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중국전에서 추가로 대체 공격수를 발탁하지 않고 20명으로 엔트리를 축소시키며 굳이 위험부담을 자초한 것도 논란의 여지를 만들었던 대목이다. 이로 인하여 일각에서는 A매치 경험이 전무한 황희찬의 깜짝 선발출전을 예상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슈틸리케 감독의 대안은 지동원이었다.

측면과 2선을 두루 소화할수 있고 폭넓은 활동량과 연계능력이 강점인 지동원은, 기존 슈틸리케호의 주전이었던 석현준이나 이정협과는 또 다른 유형의 원톱으로 대표팀에서 활용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현재 슈틸리케호는 최다득점자인 2선 공격수 손흥민도 중국전을 마치고 소속팀으로 복귀함에 따라 황의조가 대체발탁됐다. 시리아와의 2차전에서 공격진의 경험 부족이 우려를 자아낼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원톱 지동원의 부활은 공격진 운영의 숨통을 트여준 셈이다.

처음부터 불안했던 수비, 고민스러운 좌우 풀백 조합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대표팀 장현수가 공을 쫓고 있다.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대표팀 장현수가 공을 쫓고 있다. ⓒ 연합뉴스


점수 차가 3-0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만일 이대로 경기가 끝났더라면 슈틸리케 감독의 용병술은 완벽한 성공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 후반 중국에 내준 2골은 슈틸리케호의 섣부른 자만심에 경종을 울려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70분 이후에 2골을 내준 장면을 두고 점수 차가 벌어져서 잠깐 방심한 탓으로 돌리기 쉽지만, 사실 수비는 시작부터 경기 내내 불안했다. 지난 6월 유럽 원정 당시에도 지적받았던 위험지역에서의 안이한 볼처리와 부정확한 패스 실수로 상대에게 아찔한 역습 기회를 내주는 장면이 많았다. 중국 선수들의 결정력이 좋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1~2골은 더 내줬어도 할 말이 없는 수비력이었다.

좌우 풀백과 골키퍼 문제는 어느새 대표팀의 심각한 고민거리가 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중국전에서도 본업이 센터백인 장현수를 오른쪽 풀백으로, A매치 경험이 전무한 오재석을 왼쪽에 배치했다. 두 선수 다 자신의 주 포지션이 아닌 자리에서 뛰다보니 풀백의 임무인 크로스나 오버래핑 등에서 최상의 기량을 보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강팀과의 경기에서도 이 풀백 조합을 계속 믿고 쓸 수 있을지는 의문부호가 남았다.

골키퍼는 정성룡이 오랜만에 선발로 복귀했다. 정성룡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몇 차례 뛰어난 선방을 보이기도 했지만 실점 과정에서 보여준 느린 순발력과 좁은 수비 범위는 여전히 불안했다.

 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대표팀 기성용이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2016.9.1

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대표팀 기성용이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2016.9.1 ⓒ 연합뉴스


수비불안 문제에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수비는 단순히 수비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국전 결과를 두고 많은 이들이 착각할 수 있는 부분이 '유럽파가 대승으로 이끌 뻔한 경기를, 수비진이 망칠 뻔했다'는 선입견이다.

유럽파가 공격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수비면에서는 오히려 문제가 많았다. 한국이 이날 높은 볼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자주 역습 기회를 내준 것은 유럽파 위주로 구성된 공격과 미드필드진이 전방에서부터 유기적인 압박과 수비가담을 잘 하지 못했고, 이로 인하여 2-3선간의 거리가 벌어지면서 상대가 역습으로 침투할 공간을 자주 내줬기 때문이다.

유럽파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진 후반에는 이런 흐름이 더욱 두드러져서 중국의 거센 공세를 초래하기도 했다. 유럽파에 대한 믿음이 지나쳤던 슈틸리케 감독의 소극적이고 한 발 늦은 교체 타이밍도 위기를 자초했다.

지동원이 이날 전반적으로 좋은 활약을 펼쳐준 것은 맞지만 '원톱'의 측면으로만 봤을 때는 후반으로 갈수록 전방에서 자리를 잡지못하고 밀려나며 습관적으로 2선으로 빠지는 움직임이 많았다. 지동원이 유럽무대에서 공격수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지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3골 중 상대 자책골이나 빗맞은 슈팅이 어시스트가 되는 등 행운이 따라준 면도 적지않다고 했을 때, 이번 중국전만을 두고 슈틸리케호의 공격력이나 일부 유럽파의 기량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

중국전에서 드러난 슈틸리케호의 불안 요소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중국이 자책골로 실점하자 슈틸리케 감독이 환호하듯 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중국이 자책골로 실점하자 슈틸리케 감독이 환호하듯 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슈틸리케호는 호주 아시안컵과 2차예선을 거치며 사실 강력한 수비의 힘을 앞세워 고공행진을 거듭해왔던 팀이다. 그런데 최종예선 이전까지 한국이 만난 상대팀들은 대부분 아시아권에서도 약체로 꼽히던 팀들이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아시아에서도 상대적으로 강팀인 이란, 호주 등에게는 고전하거나 덜미를 잡혔다.

최종예선에서도 첫 경기부터 중국의 성장세에 진땀을 흘렸다. 승기를 잡았을 때 확실히 상대의 기를 꺾어놓지 못한 것이, 앞으로 중국 원정 경기나 최종예선 골득실 같은 변수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 유럽원정에 이어 이번 중국전은 그동안 쉬운 승리에 가려졌던 슈틸리케호의 진짜 전력과 불안요소를 되돌아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 셈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최종예선도 결국 월드컵 본선이라는 더 큰 무대를 향한 과정이다. 러시아 월드컵을 목표로 더욱 강한 팀을 만들어나가야 할 슈틸리케호에게 있어서 쉬운 승리보다는 어려운 과정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최종예선 1차전에서 드러난 중국의 성장세나 일본의 패배 같은 이변들은, 한국도 언제까지 아시아의 맹주 혹은 월드컵 단골손님이라는 과거의 명성에만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월드컵을 향한 길에 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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