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을 코앞에 둔 시점에 우리의 마지막 평가전 상대는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였다. 당시 지단과 앙리, 트레제게, 프티, 비에이라, 튀랑 등 세계 최고의 스타들이 한 데 모인 프랑스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불과 1년 전, 상당수의 주전이 결장한 프랑스에 0-5로 패했던지라 더 그랬다.

그런데 막상 경기 결과는 굉장히 놀라웠다. 2-3으로 패하긴 했지만, 승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좀 더 자세히 표현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이때 최고조가 되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차전에서 중국에 3-2로 승리했다. 우리나라는 전반 21분 정쯔(36,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자책골과 후반 18분 이청용(28, 크리스털 팰리스), 21분 구자철(27, 아우크스부르크)의 연속 득점으로 대량 득점을 기대케 했지만, 후반 29분과 32분 중국의 유하이(29, 상하이 SIPG)와 하오준민(29, 산둥 루넝)에게 연거푸 실점하면서 한 골 차로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뒀다.

앞서 말했던 패했지만 자신감을 획득할 수 있는 경기를 중국이 했다. 우리는 승리를 거뒀지만, 무언가 찜찜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무실점, 전승을 거두었던 것과는 달리 대표팀은 최종예선 첫 경기부터 2실점을 하면서 수비에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장현수의 풀백 기용, 정말 최선인가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대표팀 장현수가 공을 쫓고 있다.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대표팀 장현수가 공을 쫓고 있다. ⓒ 연합뉴스


전반 40분 우리 진영에서 볼을 잡은 장현수(24, 광저우 R&F)는 상대가 압박해오는 상황에도 여유 있게 볼을 지켜냈지만, 어처구니없는 패스로 상대 공격수 우레이(25, 상하이 SIPG)와 정성룡(31, 가와사키 프론탈레) 골키퍼가 일대 일로 맞서는 상황을 초래했다. 만약 월드컵 본선에서 같은 실수가 나왔다면, 실점했을 가능성이 컸다. 실제로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이란과의 홈경기에서 순간의 실수가 본선행을 좌절시킬 뻔했던 아찔한 상황이 있었다. 이를 기억했다면 절대 다시 반복해서는 안될 장면이었다.  

74분 두 번째 실점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첫 실점 이후  수비진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상황에서 장현수는 상대에게 뒷공간을 허용하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반칙으로 위험지역 프리킥을 허용했다. 특히 우레이의 앞쪽에 김기희(27, 상하이 SIPG)가 버티고 있었음에도 도움 수비가 아닌 반칙을 범했다는 것이 상당히 아쉽다.

수비뿐 아니라 공격에서도 장현수가 포진한 오른쪽은 너무 투박했다. 왼쪽에 포진한 오재석(26, 감바 오사카)이 전반 18분 위협적인 침투로 첫 번째 득점의 기점이 된 프리킥을 얻어냈고, 수차례에 걸쳐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낸 것과는 달리 장현수는 전반 31분 지동원(25, 아우크스부르크)의 패스에 의한 기습적인 침투 장면 외엔 공격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분명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수비수다. 실제로 중앙 수비수 자리에 위치할 때, 국가대표로서 손색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제는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장현수의 풀백 활용 비율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수비 능력이 좋으므로 안정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슈틸리케 감독에게 가장 잘 부합하는 선수일 수는 있다. 그러나 최근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던 이용이 있었고, 오재석도 본래 포지션이 왼쪽 풀백이 아닌 오른쪽 풀백이었다는 점 등을 볼 때, 장현수를 굳이 오른쪽 풀백으로 사용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과거 조광래 감독 시절, 전문 풀백 선수가 있었음에도 이용래(30, 수원 삼성)와 김재성(32, 제주 유나이티드) 등 다른 포지션의 선수를 풀백으로 활용하면서 큰 문제가 됐었다는 사실은 슈틸리케 감독이 참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승리의 1등 공신은 지동원이 아닌 홍정호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대표팀 지동원이 첫골을 넣은 후 환호하고 있다.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 한국 대표팀 지동원이 첫골을 넣은 후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날 경기 승리의 1등 공신으로 많은 이들이 지동원을 선택할 것이다. 대표팀 선발부터 다소 논란이 있었지만, 사실상 모든 득점에 관여하면서 슈틸리케 감독의 신뢰에 확실하게 보답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는 활발한 움직임으로 공격의 활로를 개척했고, 그로 인해 생긴 공간을 통해 손흥민과 구자철 등이 슈팅 기회를 잡아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경기 승리의 1등 공신은 따로 있다. 바로 수비수 홍정호(27, 장쑤 쑤닝)다. 이날 그는 실점과도 다름없는 상황을 두 차례나 막아냈다.

먼저, 전반 28분 중국 진영에서 한 번에 넘어온 긴 패스를 우레이가 잡아 정성룡 골키퍼와 일대 일로 맞서는 상황이 나왔다. 다행히 홍정호가 빠르게 따라 붙어주면서 우레이의 슈팅을 태클로 막아 실점을 모면할 수 있었다.

83분에도 중앙선 부근에서 연결된 중국의 스루패스가 모든 수비수를 지나쳐 가오린(30, 광저우 에버그란데)에게 연결됐고, 이게 다시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뛰어들어오던 우레이까지 연결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한 발 빨랐던 홍정호의 기막힌 태클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실점이나 다름없는, 너무나도 아찔한 상황이었다.

최근 독일 분데스리가를 떠나 중국 슈퍼리그로 이적한 뒤, 득점까지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홍정호는 이날 경기에서도 사실상 2골이나 막아내며 맹활약했다. 뿐만 아니라 경기 내내 수비진에서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고, 강점인 공중볼 다툼에서는 압도적인 모습까지 보여줬다.

다만, 너무나도 쉽게 뒷공간을 내주는 장면이 몇 차례 나왔다는 점과 첫 번째 실점장면에서 보듯이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수비 전체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수비진의 맏형이자 리더로서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월드컵으로 향하는 길, 무엇보다 중요한 승점 3점

 축구 국가대표팀의 장현수(오른쪽)와 홍정호가 2일 오전 경기 파주 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회복훈련을 하고 있다. 전날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1차전 중국과의 경기에서 3-2 승리를 거둔 대표팀은 오는 6일 말레이시아에서 시리아와 최종예선 2차전을 치른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장현수(오른쪽)와 홍정호가 2일 오전 경기 파주 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회복훈련을 하고 있다. 전날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1차전 중국과의 경기에서 3-2 승리를 거둔 대표팀은 오는 6일 말레이시아에서 시리아와 최종예선 2차전을 치른다. ⓒ 연합뉴스


이번 중국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승리였다. 그러나 중국이 아시아 2차 예선에서 홍콩과 홈과 원정에서 모두 무승부를 기록하고, 마지막 경기에서 북한이 필리핀에 3-2로 역전패 하면서 극적으로 최종예선에 진출한 팀이란 점을 볼 때, 경기력 자체는 절대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냉정하게 중국은 아시아 최종예선 A조에서 시리아와 함께 전력이 가장 약한 팀이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대표팀이 지난 6월 유럽 원정 평가전 이후 처음 소집됐고, 훈련 시간이 3일뿐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승점 3점'을 획득한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최종 목표는 월드컵 본선 진출이 아닌 그 이상이라는 점에서, 적어도 아시아 무대에서만큼은 만족과 칭찬보다 비판과 개선이 더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아시아 2차 예선을 무실점 전승으로 통과한 것과는 달리 최종예선 첫 경기 2실점이란 기록이 전하는 메시지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4일 뒤, 시리아와의 최종예선 2차전 경기가 열린다. 만족스러운 경기는 아니었지만, 승점 3점을 획득한 만큼 앞으로는 경기력 면에서도 점차 나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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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종예선 한국VS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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