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포스터.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포스터. 영화는 김정호의 족적을 중심으로 그의 위대한 묙표의식을 재조명한다. ⓒ CJ엔터테인먼트


또 한 명의 역사 속 인물이 스크린으로 다시 태어났다. 호는 고산자, 우리가 익히 아는 대동여지도의 제작자 김정호다.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아래 <고산자>)는 이렇게 최근 이어지고 있는 사극, 시대극 열풍에 살포시 기세를 더할 예정이다.

오는 9월 7일 개봉하는 영화는 제목 그대로 김정호의 삶을 담아냈다. 소설가 박범신의 <고산자>를 원작으로 강우석 감독이 처음 도전한 사극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배우 차승원이 김정호 역을, 유준상과 김인권, 신동미, 남지현 등이 각각 흥선 대원군, 조각장이 바우, 여주댁으로 분했다. 그 면모가 30일 오후 서울 왕십리 CGV에서 언론에 선공개됐다.

왜 김정호인가

강우석 감독이 수차례 밝혔듯 영화는 원작을 읽고 감명 받은 이후 "안 만들면 후회할 것 같아" 태어나게 됐다. 김정호에 대한 빈약한 사료들, 게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부 왜곡된 자료 등을 감안하면 분명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강우석 감독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고 "찍기 시작한 직후 후회부터 했다"고 고백했지만 결국 결과물을 냈다.

좋은 원석에 대한 끌림 혹은 김정호의 가치를 알리려는 영화적 사명감이었을 수도 있다. 강우석 감독이 그린 김정호는 곧 이 나라에 대한 지리 정보를 모든 사람과 나누고 싶어 했던 '민주적 위인'이었다.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빈틈을 상상력으로 채운 것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영화는 김정호가 어떻게 아버지를 여의었고, 왜 지도에 집착하는지를 대략적으로 설명한다. 강우석 감독의 스무 번째 영화는 이런 대의명분이 강하게 느껴진다.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한 장면.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한 장면. 등장하는 모든 풍광에 컴퓨터 그래픽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백두산 천지를 비롯해 북한강, 합천 황매산, 여수 여자만, 마라도 등 우리나라 곳곳의 절경이 영화에 담겨 있다. ⓒ CJ엔터테인먼트


좋은 명분이라도 영화는 작품으로 말해야 하는 법. 우선 마라도, 백두산 등 우리나라 곳곳의 아름다운 지형을 그대로 담기 위해 9개월이 소요됐다는 홍보문구에서 알 수 있듯 화면을 채우는 우리나라는 매력적이다. "봄에서 겨울까지의 계절 변화는 그 어떤 컴퓨터 그래픽 사용이 없이 발품을 팔고, 기다려 가며 찍었다"는 강우석 감독의 말대로 자랑거리로 뽑을 수 있겠다.

제일 중요한 지점은 왜 지금 김정호를 조명했느냐다. 강우석 감독은 역시 이에 대해서도 분명히 설명했다. "원작을 읽었을 때의 감동, 각박한 삶을 사는 요즘 시대에서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단다. 촬영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인 대동여지도 원판을 직접 본 이후 "그 위대함에 울컥거렸다"다는 강 감독의 말에선 직접 느낀 감흥을 영화에 오롯이 살리고 싶었던 바람을 읽을 수 있었다.

너무나 위대해진 김정호

분명한 명분이 있었지만, 작품 전체로 봤을 때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띈다. 가장 크게는 캐릭터 설정이다. <고산자>의 중심축인 김정호의 업적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그에 비례해 주변 캐릭터가 소모적으로 사용되고 말았다.

이런 식이다. 지도에 미쳐 사는 김정호는 순실(남지현 분)이라는 딸이 있는 어엿한 가장이기도 하다. 영화는 훌륭한 목표의식을 지녔고 존경받기에 아무런 흠이 없어 보이는 이 위인이 실은 딸에겐 한없이 부족한 아버지이기도 하다는 걸 묘사한다. 일종의 부성애 코드로 극적 슬픔을 담보하는 셈인데 매우 전형적 묘사라 기대했던 것만큼 극적 효과를 거두진 못한다.

대동여지도 제작을 돕는 바우(김인권 분)는 그나마 대의를 함께 하기에 유기적으로 김정호와 이어져 있다. 하지만 김정호에게 호감을 보이는 이웃집 아낙 여주댁(신동미 분)과 순실은 슬픔을 위해 기능하는 캐릭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그려졌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이 두 여성 캐릭터가 맞는 비극이다. 박범신 작가의 원작에 묘사된 천주교도 박해 사건 설정을 그대로 차용하는 셈인데 이는 결국 순실과 여주댁의 비극이 김정호의 무관심보다는 본인들의 종교적 신념 때문이라고 해석될 여지가 크다.

이는 곧 김정호 캐릭터의 완결성에 흠집을 내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지로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서로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이 제대로 맞물리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영화 속에서 김정호는 큰 슬픔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아버지로서 느껴야 할 마땅한 슬픔이지만 찜찜한 게 사실이다. 공생애와 사생애 사이의 간극이 클 수밖에 없는 김정호라는 인물에게, 일종의 캐릭터적 면죄부를 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한 장면.

<고산자> 속 순실은 아버지의 애정을 갈구하지만 동시에 그의 일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응원하는 인물. 매력적인 캐릭터일 수 있으나 극적 비극을 위해 소모되고 만 면이 없지 않다. ⓒ CJ엔터테인먼트


반면 김정호의 안티테제로 기능하는 대원군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대동여지도는 백성이 아닌 국가의 소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수주의자지만 자신의 이익을 마치 국가적 이익인 양 포장하는 여타 세도가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는 인물로 묘사됐다. 다른 캐릭터에 비해 완성도가 높았고, 이를 연기한 유준상 역시 캐릭터에 깊이 천착했기에 가능한 결과로 보인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투캅스>(1996) 등으로 한국영화제작사 기획시대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강우석 감독의 초기를 연상케 하는 코미디는 반갑다. <고산자>가 마냥 진지하게 읽힐 것을 경계한 감독 나름의 고민이 엿보인다. 언론 시사 직후 간담회에서 강우석 감독은 "<고산자> 흥행 이후 처음부터 끝까지 웃기는 본격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한 줄 평 : 배우들의 호흡은 기대 이상, 캐릭터 완성도가 그래서 더 아쉽다
평점 : ★★★☆ (3.5/5)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관련 정보


원작 : 고산자(박범신 작품)
출연 : 차승원, 유준상, 김인권, 남지현, 신동미
제작 : 시네마서비스
제공/배급 : CJ엔터테인먼트
크랭크인 : 2015년 8월 17일
크랭크업 : 2016년 5월 4일
러닝타임 : 129분
관람등급 : 전체관람가
개봉 : 2016년 9월 7일

 

차승원 고산자, 대동여지도 유준상 강우석 김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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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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