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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두리 해수욕장에서 늦여름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

지두리 해안은 해수욕장이 아늑하고 편안하다. 그것은 해수욕장의 폭이 넓고, 길이가 길며 수심이 얕기 때문이다. 지두리 해수욕장의 길이는 1㎞이고 폭은 300m나 된다. 또 수심이 얕을 뿐 아니라 모래까지 단단해 해수욕을 즐기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주차장이 탈의실과 샤워실 바로 옆에 있어 접근성도 좋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해수욕장과 연결된다. 8월 15일 해수욕장이 폐장을 했는데, 해수욕객과 관광객이 아직도 많은 편이다. 그것은 금년 여름이 유난히 더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두리 해수욕장이 위와 같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물속으로 들어가 해수욕 하는 어린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대청초등학교 3학년 조수빈과 5, 6명의 어린이들이다.

물 속의 아이들
 물 속의 아이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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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애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남자 애들은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 물안경을 쓴 남자 아이도 있다. 이들은 방학 마지막 날과 늦여름의 더위를 즐기는 듯했다. 다행히 바다 쪽으로 경계를 알리는 부표들이 떠 있다. 또 애들의 부모가 하나 둘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애들의 노는 모습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그렇다면, 이 애들은 내동에 사는 학생들일 것이다. 내동에는 해수욕장이 없기 때문이다.

지두리 해수욕장을 찾은 사람들은 우리 같은 관광객 외에 연인들도 보인다. 셀카봉을 가지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안타까워 내가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또 아주 작은 애를 데리고 나온 엄마도 있다. 슬리퍼를 신은 채 발을 물에 담그고 장난을 치는 아이가 귀엽다. 물이 발등을 간질이는 쾌감을 즐기는 모양이다. 엄마는 조금 떨어져 자연을 즐기고 있다.

지두리 해수욕장은 이처럼 가족 단위 피서지로 유명하다. 우리도 이곳 지두리 해수욕장에서 30분 정도 늦여름의 오후를 즐긴다. 다음 행선지는 모래울동이다. 한자로 표기하면 사탄동(沙灘洞)이 된다. 모래여울이 모래울이 되었고, 이것을 한자로 옮기다 보니 사탄이 된 것이다. 사탄동(대청4리)은 농토도 부족하고, 서풍이 불어 농사에는 부적합한 지역이다. 그래서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해 왔다.   

송림이 있어 아름다운 사탄동 해변

모래울동 해수욕장 송림
 모래울동 해수욕장 송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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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 송림과 모래 해변이 어우러진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이 많고, 서풍받이 경치가 아름답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는 모래울 해변을 산책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 해수욕장을 감싸고 있는 송림을 찾아간다. 모래울 해변 솔밭은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고 조망이 좋아 휴식하기에 좋은 곳이다.

우리는 마을 입구 쪽 솔밭으로 들어가 나무 데크를 통해 해수욕장으로 내려갈 것이다. 이곳의 소나무는 토종 적송이다. 줄기가 붉은색이고 거북 등처럼 갈라져 있다. 또 기린의 얼룩처럼 줄무늬가 있다. 그래선지 기린송(麒麟松)이라고도 부른다.

해수욕장 너머 갑죽도
 해수욕장 너머 갑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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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밭 중간중간 솔집과 긴 의자가 있어 잠시 앉아 쉬어갈 수도 있다. 소나무는 수령이 100년 정도는 되어 보인다. 송림 사이로 바다를 보니 갑죽도(甲竹島)가 가까이 보인다. 갑죽도는 바위섬이어서 윗부분에만 식물이 자란다. 거북이가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형상을 하고 있다.

송림 끝의 나무 계단을 통해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면 바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해수욕장이다. 모래울 해수욕장 또는 사탄동 해수욕장은 길이가 1㎞, 폭이 500m이다. 곱고 단단한 모래, 얕은 수심, 파란 바닷물, 푸른 해송이 어우러져 해수욕장으로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여름의 끝이어선지 해수욕객이 없다.

임경업 장군 초상
 임경업 장군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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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해변을 산책한다. 모래가 단단해서 걷기가 좋다. 바다로부터는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고, 파도는 잔잔하다. 대청도에서 가장 좋은 해수욕장이 이곳 모래울동과 지두리에 있다. 모래울동에는 30채도 넘는 집이 있으나, 대부분 노인들만 살고 있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선진동으로 또 인천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마을이 한적하기만 하다.

이곳 모래울동에는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그것은 임경업 장군이 풍어를 가능케 해주는 신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정월 대보름에 이곳에서 풍어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사당만 있지, 제사는 지내지 않는다. 배도 없고 어부도 떠난 사탄동 해변에는 제사지낼 주체도, 제사지낼 대상도 사라지고 말았다. 

대청도는 고려말 유배지였다

울창한 숲과 바위가 어우러진 대청도
 울창한 숲과 바위가 어우러진 대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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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도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에도 보이고, 서긍의 <고려도경>에도 보인다. <고려사 지리지>에 보면 1018년 백령도에 진을 설치하고, 대청도와 소청도를 부속도서로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서긍은 1123년 송나라를 떠나 배로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 가면서 대청도와 소청도를 지난다.

"대청도는 멀리서 바라보면 숲이 울창해서 먹으로 검푸른 눈썹을 그린 것 같다. 그래서 고려인들이 대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날 오전 배로 이곳을 지나갔다. 소청도는 대청도와 형상이 비슷하다. 다만 산이 낮고, 초석(焦石)이 많다. 신시(申時)에 배가 지나갔는데,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송림과 바다가 어우러진 대청도
 송림과 바다가 어우러진 대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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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도와 소청도는 고려시대에도 이처럼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소청도의 초석은 분바위를 말하는 것 같다. 분바위는 분칠을 한 듯 하얗고, 밤에도 달빛에 비쳐 하얗게 반사되는 모습이 환상적이기 때문이다. 분바위는 그 때문에 뱃사람들에게 방향잡이 역할을 했다.

고려말 대청도는 유배의 땅이었다. 고려 말 김방경(金方慶: 1212-1300) 장군이 이곳으로 유배를 왔고, 원나라 태자들도 이곳으로 유배를 왔다. <고려사>에 의하면 김방경은 1278년(충렬왕 2년) 왕의 국문을 받고 대청도로 유배되었다.

"2월에 왕이 다구와 함께 방경과 그의 아들 흔(忻)을 국문하였다. […] 방경이 아뢰기를, '주상께서 이러실 줄은 몰랐습니다. 신은 군인 출신으로 지위가 재상에 이르렀으니, 몸이 죽어 없어질지라도 나라에 다 보답할 수 없는데, 어찌 한 몸을 아껴 없는 죄를 자복해서 사직을 저버리겠습니까.' 하고, 다구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나를 죽이려거든 곧 죽여라. 나는 불의에 굴복하지 않겠다.' 하였다. 그리하여 갑옷 감춘 것을 죄명으로 뒤집어씌워 방경을 대청도(大靑島)에, 흔을 백령도(白翎島)에 귀양 보내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석방하였다."

대청도에서 바라 본 소청도
 대청도에서 바라 본 소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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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4년(충숙왕 11년)에는 원 나라에서 발라태자(孛刺太子)를 대청도로 귀양 보냈다. 그가 귀양에서 풀려난 것이 1329년이니 무려 5년 동안 대청도에 산 셈이다. 그리고 1330년(충숙왕 17년)에는 원 나라 명종(明宗)의 태자(太子) 타환첩목이(妥懽帖睦爾)를 대청도(大靑島)로 귀양 보냈다. 그렇지만 그는 다음 해 12월 원나라로 소환되었다. 그는 1333년 원나라 11대 오하트 칸(烏哈噶圖汗)인 혜종(1320-1370)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그의 부인 중 하나가 고려인 보현숙성황후(普顯淑聖皇后) 기씨(奇氏)다.

그래선지 대청도에는 원나라 태자와 관련된 전설과 흔적이 남아 있다. 양지동에는 원나라 태자들이 유배되어 살았다는 궁궐터가 있다. 대청초등학교 자리가 그곳이다. 고려 말 이곳에는 태자의 유배를 따라 호종한 사람들의 집이 100여 호는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내동 뒷산에서 고려시대 무덤을 여럿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해넘이를 즐길 수 있는 두 곳

흰색의 독바위
 흰색의 독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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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울동에서 다시 고개를 오르면 광난두 정자각이 나온다. 이곳에서 방향을 남동으로 틀어 고개를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해넘이 전망대가 있다. 이 전망대는 광난두 해변과 독바위 해변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남쪽으로 소청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또한 서쪽으로 넘어가는 석양을 볼 수 있다.

좌측으로 보이는 독바위는 삼각형 모양으로 홀로 서 있다. 갯바위 낚시터로 유명한 곳이다. 오른쪽 서풍받이 방향으로는 마당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가운데 왼쪽으로 소청도 등대가 하얀 모습을 드러낸다. 소청 등대는 1908년는 소청도 서쪽 끝에 설치되어 야간에 배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1903년에 세워진 팔미도 등대에 이어 서해안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등대다.

농여해변의 석양
 농여해변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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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곳 해넘이 전망대를 찾은 시간이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석양을 보기엔 너무 일렀다. 그래서 우리는 고주동(庫住洞)을 지나 선진동으로 간다. 바닷가에 왔으니 선진동 보건지소 인근 식당에서 매운탕으로 저녁식사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나면 농여 해변으로 일몰을 보러 갈 것이다. 일몰시간은 오후 7시 30분이다. 


태그:#지두리 해수욕장, #모래울동 해수욕장, #유배지, #김방경과 원나라 태자, #해넘이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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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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