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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오랜 불황을 겪고 있다. 일류 선진국 중 하나이고, 명실상부한 경제 강대국인 일본이지만, 세계사에서 꼽을 만한 이상 현상을 겪고 있는 것이다. 디플레이션 기대 때문에 경제 정책이 제대로 먹혀들지도 않고 물가 상승률은 마이너스인 상황이다.

이런 난관을 타개하겠다는 명목 하에 일본의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를 이끌고 있다. 그의 새로운 경제정책 덕인지, 우경화에 대한 비판과 야권의 연대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의 자민당은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아직도 아베 정권은 순항 중이다.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을 말하는 '아베노믹스'는 엄청난 논쟁거리다. 오랜 디플레이션과 불황을 겪은 일본의 타개책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아베노믹스의 핵심인 양적완화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도 일본과 같은 불황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 아베노믹스와 유사한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베노믹스 정책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겪어온 독특한 형태의 불황과 경제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베 이전의 정권이 시도했던 다양한 경제 정책과 불황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심리를 알아야 아베 정권의 구조와 높은 지지율을 파악할 수 있다.

박상준 저 <불황터널>
 박상준 저 <불황터널>
ⓒ 매경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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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면서 일본 와세다 대학의 교수인 박상준 교수가 아베노믹스의 배경과 효과에 대해 자세히 써놓은 책이 <불황터널>이다. <불황터널>은 아베노믹스에 관한 책이지만, 이에 앞서 일본 경제의 역사적 배경과 현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다. 단순한 숫자가 아닌 맥락을 파악하며 경제적 지표를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일본은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장기 침체를 겪고 있다. 일본은 패전 이후 가파른 경제성장을 통해 경제 대국으로 거듭났다. 일본의 대표적 주가지수인 니케이 지수는 1989년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90년부터 주가가, 91년 중반부터 지가가 폭락하며 버블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일본 경제는 혼란을 겪었다. 1992년부터 2010년까지 일본의 연평균 1인당 GDP 증가율은 0.6%다.

물론 선진국의 경제 성장률은 개발도상국의 경제 성장률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본의 침체는 그저 단순한 경제 성장률 감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전체 인구 중 25.9%가 65세 이상 고령자이다. 이는 경제 활동 인구의 감소와 경기 침체라는 악영향으로 이어진다. 경제를 원활하게 가동할 인력이 모자라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일본은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인 '디플레이션 스파이럴'을 겪고 있다고 한다. 물가가 높으면 소비자들에게 고통이 되니 물가 상승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가상승률이 낮으면 좋은 것이 아니다.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가 되면 생산자에게는 당연히 타격이 크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물건값이 더 내리기를 기대하며 소비를 뒤로 미룬다. 소비가 위축하면 생산자들은 기대한 만큼 물건을 팔 수 없고 결국 가격을 더 내려야만 한다. 생산활동 역시 위축될 것이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더 내리기를 기대하고 다시 소비를 뒤로 미룸으로써 생산을 더 위축시키고 당연히 소득수준도 하락하게 된다. 물가의 하락이 경기침체를 부르고, 경기 침체가 물가를 더욱 하락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 45p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콜금리를 0.5%까지 내렸음에도 일본 경제는 끝없는 침체를 거듭했고 경제 관료들은 인플레이션이 될 듯 말 듯 하다가 결국 또 디플레로 빠지는 절망을 경험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극약 처방이 바로 아베노믹스이다. 저자는 디플레이션 터널을 탈출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양적완화 정책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황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아베노믹스의 세 가지 화살'인 양적완화, 기동적 재정정책, 장기 성장 전략에 대한 분석이다. 핵심은 앞의 두 정책이다. 양적 완화는 시장의 통화를 늘려서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겠다는 전략이다. 본원통화(현금통화+중앙은행 당좌예금)를 계속 늘려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겠다는 계획이다. 기동적 재정정책은 GDP의 200%에 달하는 정부부채를 내버려 둘 수도 없고 정부지출 안 늘릴 수 없으니 늘릴 지출은 늘리고 정부부채를 줄이겠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해외의 상황이 2009년 정도로 악화되지 않는다면 아베노믹스가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물론 아베노믹스가 성공적으로 실시된다고 하더라도 일본이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다. 고령화된 일본이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후발 주자들을 제치고 다시 세계 2위 경제 대국이던 시절로 돌아가긴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아베노믹스가 성공한다면, 디플레이션이 끝나고 경제 정책이 효력을 발휘하는 보통의 경제가 될 것이라고 바라본다.

한국에도 이런 불황이 닥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도 양적완화를 대비해야 할까? 저자는 가까운 장래에 한국이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으로 진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비록 한국이 소득 격차가 크고 청년실업률이 높지만, 한국 기업의 부채비율과 금융권의 부실채권비율은 양호하다는 것이다. 양적완화 역시 아직 한국에 필요한 단계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일본의 경제는 한국과 다른 점도 있고 같은 점도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중앙정부 채무 비율이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일본과 같은 빠른 고령화를 겪고 있고. 불황터널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사례는 참고할 것이 많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불황터널 진입하는 한국 탈출하는 일본

박상준 지음, 매일경제신문사(2016)


태그:#아베, #아베노믹스, #일본, #경제, #디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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