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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본관을 점거중인 이화여대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10일 오후 이화여대 정문 앞 광장에 모여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대규모 행진을 벌이고 있다.
▲ 뿔난 이화인 "총장 사퇴가 사과" 대학 본관을 점거중인 이화여대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10일 오후 이화여대 정문 앞 광장에 모여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대규모 행진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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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말 평단사업(미래라이프 사업)으로 촉발된 이대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이 한 달이 되어 간다. 이대 역사상 유래가 없는 1600명 경찰의 교내 투입은 '감금'하고 있는 학생들로부터  학교 당국자들을 '구출'해 달라는 학교 측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총장도 이에 개입되어 있다.

건물에 들어가 학생들을 '진압'하고 당국자들을 '구출'한 경찰은 총장의 탄원서와는 무관하게 '감금사건'의 주모자를 찾아내야 한다며 3명의 학생들에게 소환장을 보내고 추가로 몇 명을 더 소환하겠다고 통고를 했다. 평단사업은 취소되었으나 또 다른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최경희 총장은 최근 '불통총장'의 딱지를 떼기 위해 부랴부랴 여기저기 '소통의 창구'를 열고 있다. 그러나 26일 거행된 졸업식에서 최경희 총장은 축사를 거부하는 학생들에 의해 한 줄의 축사도 발언하지 못한 채로 단에서 내려왔다. 총장의 '소통의 노력'을 학생들은 여전히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6일 저녁 ECC내 이삼봉홀에서 열린 졸업생과의 열린 대화.
 26일 저녁 ECC내 이삼봉홀에서 열린 졸업생과의 열린 대화.
ⓒ 고은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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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저녁 ECC내 이삼봉홀에서 열린 졸업생과의 열린 대화.
 26일 저녁 ECC내 이삼봉홀에서 열린 졸업생과의 열린 대화.
ⓒ 고은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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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날 저녁 총장은 또 하나의 소통의 자리를 준비해 두었다. '총장과의 열린 대화'. ECC 내 이삼봉 홀에서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열린 '둘째마당: 졸업생과 함께 하는 소통의 장'에는 갓 졸업한 졸업생부터 3대가 이대와 인연을 맺고 있다는 할머니 졸업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였다. 밖에서는 '2년간 '불통'하더니 이제와서 '열린 대화'? 총장의 기만적인 대회 거부합시다!'라는 현수막을 든 학생들이 총장의 사퇴를 연호하느라 소란했다. 전직 교직원들도 꽤 동원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넓은 홀에는 총장에 대한 지지 분위기와 사퇴 요구 분위기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시위가 시작한 날부터 한 달 가까이에 있었던 사실들을 자료화면으로 차근차근 보여주었다. 평단사업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하는 설명과 농성과정에서 회의참석자들이 학생들에 의해 '감금'된 채로 응급실로 차례차례 후송되는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감금이라는 단어는 수차례 반복되었다.

그러나 정작 경찰에 의해 '진압 당한' 학생들의 상태와 폭염에 한 달 가까이 복도와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항의하고 있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학생들은 감금이 아니라 대치상황이었다고 말한다. 문은 열린 상태로, 외부와의 통신도 자유로웠다. 학생들이 막지 않았으면 평단사업은 통과될 위기에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대치상황을 불가피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학교 측의 설명이 끝난 후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작정하고 총장 측을 비호하기 위해 나온 중년, 노년의 졸업생들도 꽤 되는 것 같았다. 발언은 3분 또는 1분으로 제한되었지만 상대가 발언하는 동안 상대에게 항의를 하거나 야유를 하는 경우도 수시로 벌어졌다. 특히 젊은 측은 1600명의 병력투입을 총장이 허락한 것에 대해 집중 추궁했고, 총장은 병력의 숫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으며 당일 현장에 있지 않았고 처장들의 다급한 보고에 따라 허락을 했을 뿐이라며 결과적으로 자기 책임이라고 말하면서도 경찰투입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말을 수차 반복했다.

그에 따라 경찰 투입에 관하여 질문이 재차 이어졌는데 총장의 발언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던 어떤 중년의 졸업생은 "아유, 저런 것들은 총으로 쏴야 해!"라고 소리를 쳐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젊은 것들이 싸가지가 없다"는 소리도 들리는 가운데 김활란의 친일행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갑자기 여기저기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시절에 친일 안 한 사람이 어디에 있어!", "학생 두 명 앞에 두고 시작했던 학교 아니었어?", "김활란이 그렇게 했으니 이대가 이만큼 성장한 거지!"라는 대꾸들이 쏟아져 나왔다.

김활란은 누구인가? 일제 말엽, "미영(米英)을 격퇴하여 버리자! 내 남편이나 아들을 전장으로 보내고 그들의 유골을 조용히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자! 그들의 생명을 국가(일본)에서 요구할 때 못 쓰인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라며 황국신민으로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 황송하고 감격스럽다고 했다. "존엄하옵신 황실을 받들어 모시고... 우리 학교가 앞으로 여자특별연성소 지도원 양성 기관으로 새로운 출발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며 황국 여성으로서 다시없는 특전"이라며 감격했던 사람이다.

이삼봉홀 밖에서 총장사퇴를 연호하는 학생들.
 이삼봉홀 밖에서 총장사퇴를 연호하는 학생들.
ⓒ 고은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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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부당한 행위에 맞서는 21세기의 대학생들은 김활란의 실체를 알고 그 동상에 스프레이를 뿌렸는데 20세기에 교육받은 졸업생들은 김활란을 이화의 구세주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계속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9시가 되자 사회자는 자리를 파할 것을 알렸고 총장에게 몰려간 지지자들은 '절대 사퇴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어떤 이는 "학위 장사 하면 안 되는 거야? 왜 안 되는데? 왜 안돼?"라고 내게 따져 물었다.

최경희 총장이 이 자리를 마련했을 때 본인이나 학교 당국자들이 자기들을 옹호할 사람들의 초대에 각별히 신경을 썼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가는 바이다. 그러나 총장을 비호하며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은 현대를 사는 학생들에게 공감능력도 없으며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의식도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친일파가 반공을 무기로 살아남은 뒤 친미로 변신하여 여전히 기득권을 쥐고 있는 분단 한국의 추한 모습이 여기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친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학교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에 힘입어 총장자리를 고수하려 한다면 최경희 총장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아기의 진짜 엄마는 아기를 포기함으로써 솔로몬에게서 아기를 되돌려 받았다. 솔로몬의 판결에서 최경희 총장은 지혜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생을 살릴 것인가, 총장 지위를 고수할 것인가? 제3자의 눈에는 무엇이 중한지 분명하게 보이건만 최 총장에게는 아직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무엇이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일까?

졸업생들이 학생들을 지지한다는 성명서와 3000여 명의 서명자 명단.
 졸업생들이 학생들을 지지한다는 성명서와 3000여 명의 서명자 명단.
ⓒ 고은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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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대 총장, #최경희, #졸업식, #졸업생, #김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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