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프로필 사진

<오마이스타> 창간 5주년 연속 인터뷰로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만났다. 그는 사회에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 김진혁


EBS <지식채널e>가 처음 방송을 시작한 지 올해로 11년(첫방송 2005.09.05)이 됐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지식채널e>는 감동적인 서사와 그 서사를 뒷받침 해주는 소재, 음악, 문구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지식채널e>를 처음 만든 김진혁 전 EBS 피디를 찾았다. 그는 "어떤 유사한 프로그램도 한동안 <지식채널e>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고, 나 또한 <지식채널e>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제작한 프로그램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김진혁 피디는 2005년부터 3년간 지식채널e를 만들고 이후 2013년 EBS에서 '반민특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중 회사의 방해로 회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당시 김진혁 피디는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회사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진술한다. 그는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적을 옮겨 다큐/교양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진혁 피디는 해직 언론인을 다룬 다큐멘터리 <7년 - 그들이 없는 언론>의 개봉(11월 예정)을 앞두고 있다. <7년 - 그들이 없는 언론>은 올해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 차례 상영이 됐고 곧 있을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한 차례 더 상영될 예정이다. 영화는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약간의 색보정과 믹싱을 한 수정 버전의 영화가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된다.

대학교 개강을 앞둔 지난 24일 서울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근처에서 김진혁 피디를 만났다. 그와 최근 SNS 상에서 범람하는 짧은 영상에 대한 생각, 영상 콘텐츠 제작자가 가져야 할 자세, 그리고 최근 김진혁 피디의 화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짧은 영상에 대한 고민

 <지식채널e> 방송 영상 캡처본

김진혁 교수는 <지식채널e>의 시작과 함께 했다. <지식채널e>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5분 가량의 짧은 영상은 EBS의 대표 프로그램이 되었다. ⓒ EBS


- 역시 '해직 언론인' 중 한 명인 최승호 <뉴스타파> 피디의 영화 <자백>이 10월에 개봉을 앞두고 있고 <7년 - 그들이 없는 언론>도 개봉될 예정이다. 사실 TV에서 상영이 됐어야 하는데 영화라는 플랫폼을 통해 상영이 되는 상황이다.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자백> 역시 전주에서 상영이 됐으니 외부에서 보면 분산된 방송국 피디들이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7년 - 그들이 없는 언론>의 경우 제가 먼저 영화화를 제안한 게 아니라 언론노조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해직 언론인 문제를 이슈 파이팅 하고자 했고 제가 연출로서 섭외가 '된' 상황이었다. <자백>도 원래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기 보다는 국정원 간첩 사건을 꾸준히 취재하는 과정에서 영화화를 생각했다고 알고 있다.

방송이라는 플랫폼의 장점은 제작과 방영이라는 게 패키지로 묶여 있다는 건데 어쨌든 (회사에서) 나오게 되면 쫓겨나든 자기 발로 나오든 보장이 되지 않는다. 물론 스크린 말고 팟캐스트나 유튜브 등의 플랫폼도 접근성이 뛰어난 측면은 있지만…."

- 요즘 유튜브도 그렇고 페이스북 상에서도 2~3분짜리 짧은 영상 콘텐츠가 범람한다. 어떻게 보면 <지식채널e>가 한국에서는 하나의 주제를 짧은 영상으로 담는 시초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일단 플랫폼의 특수성 상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영상이 아니라 글도 짧다. 트위터가 처음 나왔을 때 긴 글을 쓰던 기자들이 정서적으로 굉장히 큰 거부감을 표시한 적도 있다. '140자 가지고 무얼 쓸 수 있겠느냐'고. 이제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가 버렸지. 오히려 거기에 맞추려 노력하지 않나.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지식채널e>가 처음 나왔을 때에도 그런 비판을 많이 받았다. 압축적이라는 찬사가 있는 한편, 겉핥기 아닌지, 깊이감이 떨어진다, 정서적으로 호소한다고. 나는 일리 있는 비판이라고 생각했다."

- 그 당시에?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 부분을 주의해서 만들었다. 지금 SNS 등에서 나오는 짧은 영상을 보면 많이 고민해서 잘 만들고 나도 즐겨 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휘발성이 강하다는 점. '짧기 때문'은 아니다. 소설보다 시가 더 짧아서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하지 않나. 시는 소설을 요약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데 이들 짧은 콘텐츠는 대체로 독자적인 플랫폼으로 취급하기 보다는 '요약 영상' 정도로 읽힌다. 재밌고 의미도 있고 시사적인 이야기도 있는데 과연 이들 영상이 여운이 길거나 '때리는' 느낌이 있나."

- 영상의 길이감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있겠다.
"물론 새로운 걸 잘 따라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면 '규모의 경제'를 이기기 어렵다. 사실 많은 방송국에서 EBS <지식채널e>와 유사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지식채널e>보다 잘 만든다고 본다. 하지만 그만큼 임펙트가 있나? 애매하다. 오래 기억에 남는가? 그것도 아니다. 내가 그 사람들을 쫓아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쫓아오도록 만드는 그런 것을 만들어야겠지."

- 그렇게 힘들여 원조를 만들어 놓아도 금세 잡아 먹히지 않나.
"물론 형식은 그럴 수 있지만 내용은 절대 그럴 수 없다. 내공과 통찰의 문제이기 때문에. 물론 그러려면 만든 사람에게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무한도전>의 장수에는 이유가 있다 

정형돈 쾌유 빌며 "무한도전!" <무한도전>팀이 29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미디어센터에서 열린 < 2015 MBC 방송연예대상 >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진혁 피디는 MBC <무한도전>을 극찬했다. 그는 '도산을 찾아서' 편이 예능이나 '역사 다큐'도 될 수 있고 '무한상사' 편은 '드라마'라고 평했다. ⓒ 이정민


- TV는 많이 보나?
"사실 TV를 안 본 지 꽤 됐다. 평범한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매체 접근성'이라는 면에서 TV를 잘 보지 않는다. 아내는 <무한도전>을 좋아하는데 가끔 그가 볼 때 같이 보거나 영화를 주로 많이 본다. 사실 대부분의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보게 되지 않나."

- 요즘 시청자의 문법이다.
"나도 그런 시청자 중 한 명이다. 방송국 피디 출신이 그러면 안 되는 데 쉽지가 않더라."

- 오히려 수용자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지도?
"그렇다. 오히려 그런 콘텐츠를 보면서 어떤 콘텐츠가 살아남아 눈에 띄는지 SNS나 새로운 플랫폼에서 돌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 그런 것들 중 유독 눈에 띄는 게 있다면?
"MBC <무한도전>. <무한도전>은 예능이면서 이제 역사 다큐이기도 하고 드라마이기도 하다. 독보적이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전통 예능이기도 하다가 어느새 장르가 바뀌어 있다. '왜 쟤네 콘텐츠는 저런 힘이 있을까' 내가 봤을 때 민심을 잘 읽는 것 같다."

- 민심?
"그렇다. 그럴싸하게 이야기하면 시대정신. 한편에서 보면 시청자들과의 관계 맺기에 성공하지 않았나. 예를 들어 종편을 즐겨 보는 사람들은 수직적인 소통, 계몽을 하거나 굉장히 '선생님스러운' 그런 소통에 익숙하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반대로 수평적인 소통의 자세가 대한민국에서 존재하는 프로그램 중에 가장 잘 돼있다. 그 안에 수평적인 소통의 아이콘 유재석이 있다. 나영석 피디의 <삼시세끼>에도 비슷한 '강요하지 않는' '수평적 소통'의 지점이 있다. 사실 <삼시세끼>가 도대체가 앉아서 아무 것도 안하고 잡담만 하는 프로그램이지 않나.

<무한도전>과 <지식채널e>는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고 아직 둘 다 살아있다. 나는 현재 콘텐츠 시장의 시청층의 태도나 그런 것을 이들 프로그램이 잘 읽었다고 본다."

- 지금의 <무한도전>을 있게 한 것이 '수평적인 힘'이라는 말인가?
"그 수평적인 힘이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고, 이렇게 만들면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서로에게 이해된 거지."

- 조금 곡해해보자면 그 '강요하지 않음'이 결국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식으로 흘러 '통합'을 저해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사실 '나는 이걸 선택할 거야, 너는 하고 싶은 것을 해' 이렇게 말하는 게 되게 얄미워 보이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일 수도 있다고 본다. 오히려 '너를 위해서 너는 이걸 해야 해'라고 말하는 게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일 수도 있다는 거다. '너랑 나랑 힘을 합쳐야 할 때 너는 네 방식대로 하고 나는 내 방식대로 할 거야, 하지만 큰 틀에서는 서로 지향점을 공유하자'는 태도가 나는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 그런 태도가 앞으로 문화/영상 콘텐츠 제작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랑 관련성이 있을까.
"그럼. 당연히 그렇다. 강요하지 않고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고자 노력하는 태도. 거기서 더 나아가 '세련미' 또 '웰메이드'까지."

- 수업을 진행하면서 그것 외에도 제작자들에 강조하는 태도나 자세가 있나.
"공감의 지점.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임에도 '이것만은 일단 인정하자'고 하는 어떤 지점. 그걸 토대로 해야 그 위에 무얼 올려놓고 한 번 봐주자 들어봐주자 하는 말이 있지 않겠나. 그게 없는 상태에서 바로 시작하면 논쟁이 된다. 하나의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공감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말하면 공감을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이식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런 거 있지 않나. 그러다 보면 꼰대가 된다."

-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공감을 해야 한다. 어떤 공감의 토대가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늙은 사람만이 꼰대가 아니다. 나는 일베를 하는 친구들이 되게 꼰대라고 본다. 그들은 공감을 전혀 하지 않고 대상화를 한다. 유저 대부분이 여성이든 소수자든 혐오를 하는데 그건 그 대상이 '나랑 같은 지점이 없다'고 보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과거 독일인이 유태인을 혐오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니 죄책감도 없다."

사회 변화는 공감에서 온다  

 김진혁 PD가 만드는 미니 다큐멘터리 <5분>.

김진혁 PD가 만드는 미니 다큐멘터리 <5분>. 형식은 유사하나 <지식채널e>보다는 좀 더 사회 문제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이다. ⓒ 뉴스타파


"<지식채널e>를 내가 만들었지만 1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지식채널e>가 나를 만들기 시작했다."

- 사실 <지식채널e>의 캐치프레이즈는 '생각하는 힘'이었다. 그리고 뉴스타파에서 김진혁 피디가 제작한 <5분>은 보다 직접적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이슈를 다룬다. 물론 영상이 좋기 때문에 제작을 하겠지만 여전히 김진혁 피디가 이런 영상을 '사회 변화'를 위해 만든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 지점에서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프로그램을 만들며 내린 결론은 콘텐츠는 세상을 직접 바꿀 수 없지만 세상을 사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이 처음부터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그럴 가능성이 마음에 있었는데 거기서 미묘한 차이를 보태 영향을 주는 것!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라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바뀌어서 그 결과로 세상이 변하는 것.

다른 하나는 '다수에 대한 확인'이 있다. 어떤 되게 올바르고 매력적이고 멋있는 사고 방식이 있을 때 그런 사고 방식을 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힘 있는 자리에 있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할 때 혁명이 일어난다고 본다. 최근 <터널>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지 않나. 콘텐츠만 보면 '재미 위주'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 주위의 관객들을 보았다. '이거 분명히 세월호를 은유한 영화인데 나만 이걸 기억하는 게 아니네.' 이건 엄청난 힘이다. 공감대이고 '내 마음 속의 확인'이라고 해야 하나.

- 세월호 사건을 거치며 '폭식 투쟁'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그 사회적 공감대가 깨졌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
"요즘 '수평폭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되게 심각하다. 이것의 단초는 노동법. 거기서 촉발되는 노동자신분의 다변화인데. 예를 들어 일베의 청년들은 그런 구조를 인식하기가 어렵다. '내가 지난 번에 만난 어떤 여자애가 나한테 밥만 얻어먹고 다른 남자랑 연애했다'는 기억을 가진 사람의 구체성은 '여혐'으로 가는 거다. 소위 특정 정보 기관으로 의심되어지는 애들이 이런 '구조맹들'에게 왜곡된 논리를 계속 제공한다. 논리적으로 무장시켜 '우리는 소수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거지."

- 수평폭력?
"사실 실업률이 높은 건 정부의 잘못인데 내 입장에서는 당장 주위 수험생과 경쟁을 해야 하지 않나. 재벌 대기업 나쁘다고 하는데 과장님이 밥도 사주고 그리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왜 정치인들은 나한테 해준 것도 없으면서 표를 달라고 하지. 그런 것들. 그런 상황이 곯을 대로 곯았는데 한 게 없지 않나. 나를 포함한 기성 세대가 참 할 말이 없다. 뭘 했느냐는 거다. 반성이라도 해야 하는데 반성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결국 일베의 자양분이 되는 거다. 메갈리아 같은 곳도 올바른 전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분노가 엄청나지 않나. 민주/진보라고 하는 분들이 내부에서 여성 인권을 얼마나 고민했나 솔직히."

"최근에 본 영화는 <우리들>... 질투가 날 정도"

 지난 24일 서울 석관동 모처에서 김진혁 전 EBS <지식채널e> PD이자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 <오마이스타> 창간 5주년 인터뷰가 있었다.

김진혁 피디에게 최근의 화두를 물었다. 그는 "정권 교체가 될까? 그럼 그 방향은 절망인가 회의인가? 된다면 어떤 식으로? 안 된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되지? 그런 질문을 한다"고 답했다. ⓒ 유지영


- 계속 김진혁 피디가 연출한 영상을 볼 수 있을까?
"아마 그렇겠지. 잘 모르겠다. 언제까지 어떤 성취를 이뤄야겠다는 목표가 당장 있진 않다.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서 여기까지 왔다기보다는 하다 보니. 할 것들이 놓여 있었기에 (오게 됐다). 분명한 건 영화보고 떠드는 걸 너무 좋아한다는 거다. 중학교 때부터 이것 외에 다른 취미가 없다. 영화는 끊임없이 내 옆에 있을 것 같다."

-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추천해줄만한 영화가 있나.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최고였다. 약간 질투가 날만큼? 연출자로서 기분이 좋지 않을 정도로 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시샘한 영화를 최근에 본 일이 없다. 아마 나만 그러진 않았을 거다. 모든 연출자가 그러지 않을까?"

- 최근 김진혁 피디의 화두는 무엇인가?
"정권교체가 될까? 된다면 어떤 식으로? 안 된다면 어쩌지?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그런 질문이다. 그게 왜 중요하냐면 '우리 사회가 어떤 분위기로 흘러갈 것인가' 때문이다. 우려되는 부분은 점점 익숙해지는 거다. 이런 세상이. 문제 의식도 크게 없고 MBC는 늘 저대로 있어왔고 취업하려면 인턴을 거쳐야 하고 스펙 쌓아야 하고 그런 식으로 계속. 가끔씩 우리들끼리 즐길 때 즐기고. 나도 익숙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동력이 소멸된다. 그게 과연 괜찮을까?

- 이미 많이들 익숙해지지 않았을까
"'불편하지 않아지는 것' 그래 저런 일이야 늘 저렇게 당하는 거지. 더러운 세상. 영화나 보러 가자.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점차 살풀이 세리모니가 되고 현실적인 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 변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지속되는 요즘이다. 어떻게 해야 조금은 잘 버틴다거나 제대로 지낸다고 할 수 있을까?
"내 화두는 그래서 상상력이다. 지금 필요한 건 상상력이라 생각했다. 사회가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상상해야 한다. '그렇게 되겠어?'가 아니라.

물론 다른 이들이 보기엔 불순한 상상력일 수도 있다. 그런데 '새마을운동' 이야기 요즘 다시 나오지 않나. 나는 그것도 엄청난 상상력이라 본다. 역설적으로 본다면 그분들에게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다. 그들도 가졌는데 '우리'라고 못 가질 이유는 없다. 누가 봐도 우리의 상상력이 훨씬 사실적이고 합리적인데 왜 그걸 실현시키지 못하나?

나는 그런 상상력이 가장 없는 사람이 김종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이 펼치는 전략에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상상력이 너무 없다. 바닥만, 성공가능성만 본다. 그러니 흥도 나지 않는다. 아주 힘든 일을 억지로 하고 그러니 재미도 없고 그렇게 되니 의미도 없다. 총선에 이겨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사람을 시니컬하게 만들고 냉소적으로 만든다. 오히려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보다 그런 사람이 더 나쁘다.

나는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문화 콘텐츠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밀정>이나 <암살> 같은 것. 역사 논란은 있지만 <덕혜옹주>의 박해일. 그 역할이 줄 수 있는 상상력이 있지 않나. 나는 오히려 이런 상상력이 총선의 결과를 만들었다고 본다. 물론 통계에 잘 잡히지 않고 증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종교처럼 떠받드는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에 따라 미끄러운 비탈을 계속 만드는 거다. 예를 들어 갑자기 '종편 폐지 이후 '조중동'에 대해 어떤 지원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세미나를 여는 거다. 물론 미친 생각이지만 모든 언론이 모여 그런 세미나를 한다고 가정해봤을 때 그럴싸해 보이지 않나? 미끄러운 비탈을 계속 만들어 상대방이 미끄러지도록 만드는 그런 것이 상상력이다."

- 마지막으로 공통 질문을 드린다. '김진혁 피디가 보고 싶은 연예 뉴스'가 있다면?
"얼마 전에 설현과 지코의 열애설 기사가 났다. 나는 사실 연예 뉴스는 그런 기사를 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꼭 '들켰다'는 식으로 써야 하나? 들켰다는 건 뭔가 잘못한 일을 했다는 거다. '공개'나 '열애 사실 인정' 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안 썼으면 좋겠다. 띄워주거나 칭찬할 필요도 없지만 건조하게 쓰면 안 될까.

가수면 작곡이나 노래를 하거나 그에 대한 고민을 다루거나 연예인이 갖고 있는 원래의 역할. 대중과 약속된 공감의 지점에 더 부합하는 기사가 나오면 어떨까. 나는 '현아가 생각하는 춤이란 뭘까'라는 식의 기사가 나왔으면 한다. 조회수가 그렇게 낮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잘 나올 거라 본다. 진지하게 접근을 해주는 거다. '선정성 논란'이 있을 때 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고.

나는 연예부서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영향력 면에서 더 많은 책임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손석희가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런 고민을 잘 해야 한다. 의외로 그런 진지한 기사가 많이 없다. 그저 올드미디어에 기대 '쌈마이'처럼 기사나 팔아먹고 앉아 있다. 어뷰징이나 하고. 그렇게 하면 오래 못 버틸 거다."

인터뷰 내내 김진혁 피디는 굉장히 성실하게 답변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몇 번이고 자신이 설명하는 것에 대한 추가적인 예시를 들었고 김 피디 자신이 가진 생각들을 내게 전하고자 했다. 연예 뉴스에 대해 비판을 할 때에는 그 비판이 무척 꼼꼼해서 서늘했다. 인터뷰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답변들의 '성실함'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아마 그건 그가 영상 콘텐츠 제작자들에 주문한 어떤 '공감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김진혁 피디는 최근 뉴스타파 <5분>의 제작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는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 보니 휘청휘청 하더라"라며, "잠시 멈추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3년에 미처 제작하지 못한 반민특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언급하며 "이것까지만 하고 멈춰야지"라고 했다.

EBS에서 제작하려 했으나 끝내 만들어지지 못한 '반민특위' 다큐멘터리로 곧 김진혁 '교수'를 '피디'로 다시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지난 24일 서울 석관동 모처에서 김진혁 전 EBS <지식채널e> PD이자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 <오마이스타> 창간 5주년 인터뷰가 있었다.

인터뷰 내내 김진혁 피디는 굉장히 '성실하게' 답변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 유지영



김진혁 지식채널E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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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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