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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칭 '교통 오타쿠', 자칭 '교통 준전문가'가 연재합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그런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기자 말

선전지하철 11호선이 지상구간을 시원하게 달린다. (Public Domain)
 선전지하철 11호선이 지상구간을 시원하게 달린다. (Public Domain)
ⓒ 중국 선전 시 교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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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도, 배에도 '비즈니스석', '1등석'이라는 이름의 특실이 있다. 버스도 우등버스가 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버스'까지 생겨난다고 했는데, 납기를 못 맞춰 추석 연휴에는 운행을 못 한단다. '특실'의 역사가 가장 긴 것은 철도이다. 증기 열차가 '칙칙폭폭' 소리를 낼 때부터 '1등석'부터 '3등석'까지 갈라졌다. 열차는 자연스럽게 신분제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인도의 국민적 영웅 마하트마 간디는 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1등석을 탔다가 '쿨리', 즉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표를 가졌음에도 차에서 쫓겨났다. 이를 계기로 사회 운동에 투신하고, 비폭력주의자가 되어 인도의 독립을 이끌어냈다. 그만큼 '특실'은 부유층, 그리고 사회 전반의 기득권층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경제성장기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치졸하게 '등석'으로 나누기보다는 쿨하게 '열차' 단위로 나누었다는 것이 차이다. 서민 열차였던 통일호는 늘 복닥복닥했다. 반면, 새마을호를 타고 여행을 하는 사람을 위해선 서울역에 전용 대합실을 제공했고, 호텔 식당차가 있었다. 물론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통일호는 너무 불편해 도태되었고, KTX를 타는 사람들을 위한 '전용 라운지'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지만 말이다.

보통의 시민도 '특실'정도는 편하게 탈 수 있고, 조금 무리해서 비행기의 '비즈니스석'을 탈 수 있을 정도로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비슷하게 대도시권의 중산층이 늘어난 중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전의 지하철에서 '비즈니스석'을 도입했다는 소식을 다들 접하셨나. 오늘은 '뒷북'을 치는 이야기다. 도대체 선전시의 '비즈니스석'은 왜 그렇게 욕을 먹고 있을까?

'지옥' 벗어나자고 만든 특실... 전 세계의 망신감

선전 시의 비지니스 객차 모습. (Public Domain)
 선전 시의 비지니스 객차 모습. (Public Domain)
ⓒ 중국 선전 시 교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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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하철은 매일 아침 서울 9호선을 뛰어넘는 지옥도를 그려내고 있다. 베이징 지하철 13호선의 러시아워 풍경이 유튜브 인기 동영상에 올랐을 정도이니, 밀린다 밀린다 하는 한국의 9호선과는 비교도 안 된다. 차량을 무작정 공급할 수조차도 없다. 열차를 도입해도 열차를 더 끼워 넣을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용객은 많은데,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물리적인 한계를 초과한 셈이다.

이미 사이쿄 선이나 조반 선에서의 지옥을 겪어 사회문제를 겪은 바 있는 일본에서는 좀 똑똑한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린샤(グリーン車)' 내지는 '특쾌, 급행 등 다양한 급행체계 도입' 등이다. 그린샤는 사서 고생하고 싶지 않은 승객이 이용하고, 다양한 급행체계는 한정된 차를 최대한 많이 운행할 수 있으면서 이용객의 불편을 더는 장점이 있었다. 중국 선전시의 11호선 열차에는 일본의 '그린샤' 개념을 도입했다. 그린샤는 일본의 '특실'이다.

선전 지하철 11호선은 지난 6월 28일 개통하면서부터 특실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9호선이 '급행'과 '완행'을 분리하는 정책을 편 것과 비교할 만 하다. 전체 열차 8량 중에 두 량을 특실로 만들고, 요금은 국제선 항공기의 비즈니스-일반석 차이 정도인 세 배 정도로 책정했다. 개통 이후, 나머지 여섯 칸 열차를 이용하는 일반석 이용객들의 어마어마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실제로 보도된 열차 내의 풍경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나머지 여섯 칸에서는 서울의 '2호선'보다 더하게 승객이 몰려 타는데, 두 칸은 출퇴근 시간에도 승객이 얼마 없어 텅텅 비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국망 언론사들이 주목하고, 국내에서도 '해외토픽'으로 주목을 받았다. 일종의 국제 망신을 톡톡히 당한 셈이다.

그런데 우리도 피곤할 때는 우등고속버스를 타고 KTX의 특실을 타듯, 지하철도 앉아가고 싶을 때 특실이 있어 돈 더 내고 앉아갈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지 않나. 일본에도 '라이너'나 '그린샤 객차'라는 개념이 있고, 우리도 ITX-청춘 열차가 경춘선의 특실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걸 알고 보면 유독 선전의 지하철 특실이 '까이는 것' 같아 보인다. 왜 선전의 비즈니스 칸이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을까?

선전시를 보기 전에... '줬다 뺏는 건 나쁜 거잖아요'

ITX 청춘이 빠른 속도로 통과하고 있다. 선전 지하철에 비해 ITX 청춘이 덜 비판받는 이유는 '쾌속성'에 있다. (CC-BY-SA 3.0)
 ITX 청춘이 빠른 속도로 통과하고 있다. 선전 지하철에 비해 ITX 청춘이 덜 비판받는 이유는 '쾌속성'에 있다. (CC-BY-SA 3.0)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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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시 사례를 보기 전에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왜 이것이 문제일까?'이다. 사실, 이번 문제와 비슷한 논란이 대한민국에서도 있었다. 경춘선 ITX-청춘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논란과 비슷하다. 일정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업체, 그것도 공공재를 운영하는 업체라면 노선을 증차할 때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없지만 노선의 요금을 인상하거나, 노선을 감차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영화 <하녀>에서 전도연의 대사가 있다. "줬다 뺏는 건 나쁜 거잖아요!". 경춘선에 급행열차인 ITX가 도입되면서 경춘선의 배차간격이 기존 20분에서 30분으로 늘어났다. 빈 자리는 ITX가 채웠는데, 당시의 경춘선 연선 지역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당초 책정된 요금도 9000원 선으로, 같은 구간을 지하철로 이용하는 것에 비해 요금이 3배가 나왔다. 선전시의 사례와 도긴개긴이라는 것이다.

연선 주민들이 지역 커뮤니티에서 연일 코레일을 '까고', 지역 언론에서는 당시 운행하던 중앙선이나 수도권 전철 1호선에 비해 선택폭이 좁은 경춘선 연선지역에 이게 무슨 일이냐며 개탄하던 그때 그 모습은, 비즈니스석을 설치하는 것에 대한 선전시의 지역 여론, 나아가 중국 전역의 여론이 충돌하는 것을 보는 듯하다. 물론 코레일이 한시적이긴 하나 30%의 요금을 할인하고, 연계 교통편을 확충하면서 반발이 일단락되긴 했다.

그런데 선전시는 미묘하게 다르다. 6월 28일 개통부터 비즈니스석은 두 칸이었다. 심지어 종점에서 종점까지의 거리가 50km로 멀지만, 표정속도가 80km/h 정도이기 때문에 종점인 비터우역에서 반대편 종점인 푸톈역까지 5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비즈니스석이 일반열차의 일부이기 때문에 비즈니스석'만' 급행의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비즈니스석을 타든, 일반열차를 타든 소요시간은 같다는 이야기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선전시는 '줬다 뺏은 사례'라기에는 조금 부정확한 면이 있다. 하지만 개통 때부터 '빼앗은 좌석'을 끝까지 주지 않으려는 모양새이다. 문제는 이렇게 큰 반발을 뒤로 하고 만들어진 비즈니스석에 이용객은 많을까.

선전 지하철의 비지니스 객차 전용탑승구. 이번 논란의 뜨거운 중심이 되고 있는 곳이다. (CC BY-SA 4.0)
 선전 지하철의 비지니스 객차 전용탑승구. 이번 논란의 뜨거운 중심이 되고 있는 곳이다. (CC BY-SA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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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석의 이용객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북경청년보>의 보도에 따르면, 매달 수십 퍼센트씩 이용객이 증가해서 선전 11호선 열차는 개통 2개월 만에 콩나물시루가 된 지 오래라고 한다. 하루 평균 30만 명까지 이용하는 이 열차의 비즈니스석의 이용객이 최소한 ITX-청춘처럼 러시아워 시간대에 '매진'이라도 찍어준다면 지금까지의 비난이 무색할 수도 있겠다.

8량 중 6량을 콩나물시루로 만든 대가로 만들어 낸 비즈니스 객차에는 하루 평균 전체 승객의 10% 정도가 이용한다고 한다. 열차의 25%를 비즈니스석으로 만든 것치고는 초라한 성적이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일반석의 승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오는 9월 두 번째 주부터 열차 간격을 좁힌다고 한다. 이럴 바에야 한 량을 입석 칸으로 돌리는 게 더 나아 보이기도 한다.

시 당국에서는 공항까지의 이용객이 많이 이용할 것이라고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공항버스나 택시가 비즈니스석보다 저렴한 촌극이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주말에는 지하철을 우선으로 이용하는 외지에서 온 '호갱님' 덕분에 이용객이 생각보다 많지만, 평일에는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는 승객이 전체의 10%도 채 되지 못한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비즈니스 칸만 따로 모아서 공항 급행을 만들었으면 그나마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요한 것은 '풀뿌리 대중교통'의 평등

중국의 언론들은 '대중교통에서의 평등'이 작은 지하철 하나에서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대중교통은 누구나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논리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처럼 통 크게 열차 단위로 특실과 일반실을 나눴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하는 생각도 다시 든다.

돈 많은 자가 비즈니스석을 거의 '전세 내듯' 이용하고, 이들로 인해 나머지 승객은 열차 안만 '터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복장도 터지는 지경에 다다른다. '한 칸만 줄여도 저 콩나물시루를 벗어날 수 있는데'라는 생각에 말이다. 아니, 비즈니스석의 인기가 많았어도 '수강신청' 뺨치는 자리 확보 때문에 조금 늦은 이가 복장이 터지는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대한민국에서 특실을 운영하는 열차는 좌석 지정제로 운영되는 열차이기 때문에 선전시와 같은 '갑론을박'을 벌일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이런 특이한 해외토픽은 '토픽'으로만 넘겨야 할까, 아니면 이 해프닝이 주는 교훈인 '대중교통은 평등하게'를 다른 교통정책에 도입할 생각을 해야 할까.

일단은 후자를 고른 독자들이 많으리라고 본다. '대중교통에서의 평등', 국내에 이 논리를 적용해보자. 멀리 갈 것도 없이 교통소외자와 교통약자, 그리고 오지의 시민이 편리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떠오른다. 이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에 부러운 마음이 들 것이고, 자신이 마음 편히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에 분노할 것이다.

노약자나 장애인이 이용하기 쉽도록 턱이 없는 저상버스를 만들고, 두메산골의 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공영 콜버스를 운영하는 것. 나아가 나이, 장애 여부를 따지지 않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교통 서비스의 질이 모든 지역에서 일정하게 나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대중교통의 평등'이다.

대중교통, 그중에서도 모든 시민이 필수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지하철, 버스 등의 '풀뿌리 대중교통'은 모두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이야기, 이것이 이번 선전시의 '비즈니스석(商务车厢)' 해프닝이 가져다주는 교훈이다. 중국의 사례를 웃음삼기 전에, 우리의 대중교통은 정말 평등했는가를 돌아본다.

다음번에는 요새 '핫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철길 위에서의 찰칵' 이야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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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교통, #대중교통, #선전, #교통정책, #중국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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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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