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머니 몬스터>는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민낯을 꼬집는다. 적나라하게.

영화 <머니 몬스터>는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민낯을 꼬집는다. 적나라하게. ⓒ UPI 코리아


리 게이츠(조지 클루니 분)는 주식투자 TV 버라이어티 쇼 '머니 몬스터'의 진행자다. 여느 날처럼 생방송이 진행되던 스튜디오에 돌연 총을 든 괴한 카일(잭 오코넬)이 난입하고, 그는 리를 인질로 삼은 채 카메라 앞에 선다. 카일의 요구사항은 자신이 투자한 기업 아이비스(IBIS)의 주가가 폭락한 이유를 밝혀달라는 것. 이에 PD 패티(줄리아 로버츠 분)와 제작진은 인질극을 생중계하는 한편 아이비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8억 달러의 투자금이 하루아침에 증발한 데에 아이비스의 회장 월트(도미닉 웨스트)가 개입했다는 단서를 찾아낸다. 그렇게 리와 패티가 진실에 가까워지는 동안 대중 앞에 생중계되는 인질극 또한 어느새 새 국면을 맞는다.

똑같이 생방송 중 이루어지는 테러를 소재로 하지만, 영화 <머니 몬스터>를 하정우 주연의 <더 테러 라이브>(2013) 같은 작품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분명 스릴러 장르의 얼개를 갖고 있음에도 <머니 몬스터>는 내내 긴장감 대신 폭소를 자아낸다. 테러의 공포에 '오락 쇼'라는 소재를 덧씌우면서 자본주의의 불편한 실상을 코믹스럽게 비꼬고, 거대 자본을 가진 투기 세력뿐 아니라 일확천금을 꿈꾸는 '개미'들의 욕심도 희화화한다. 말하자면, <머니 몬스터>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머니 몬스터'일 수 있다고 역설하는 작품인 셈이다.

 테러범인 카일은, 영화가 진행될 수록 주변의 연민과 이해를 이끄는 인물이다. 관객도 그에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테러범인 카일은, 영화가 진행될 수록 주변의 연민과 이해를 이끄는 인물이다. 관객도 그에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 UPI 코리아


영화 초반부 리에게 폭탄 조끼를 입힌 채 총을 겨누는 테러범 카일은 점차 리와 패티의 연민을 얻고, 관객의 연민을 얻는 데에도 성공한다. 그는 방송만 믿고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거액을 그대로 아이비스에 투자했다가 이를 하루아침에 날린 '억울한 피해자'이며, 그 억울함에 위험을 무릅쓰고 생방송 스튜디오를 장악한 '비탄에 빠진 가장'으로 그려진다.

재미있는 건, 테러의 인질이었던 리와 패티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카일을 '스타'로 만드는 지점이다. 이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대중 앞에 알리고 월트에게서 속 시원한 답을 듣고 싶다는 카일을 위해 분연히 일어선다. 카일의 옷깃에 핀 마이크를 꽂고, 얼굴이 잘 보이도록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댄다. 리는 "주가 폭락의 원인이 컴퓨터 오류에 있다"고 둘러대는 아이비스의 대응에 카일과 함께 분노하고 회사를 추궁한다. 여기에 카일에게 "자네가 우리보다 뭐가 그렇게 불행해서 이러느냐"고 위로하며 이혼남으로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까지 털어놓는다. 카일은 그렇게 테러범에서 '개미들의 대변자'로 변모하고, '머니 몬스터'는 더 이상 오락 프로그램이 아닌 정의롭고 인간적인 양심적 미디어가 되는 듯 보인다.

 <머니 몬스터>의 세계는 코미디. 거대한 코미디. 코미디인 줄도 모르는 코미디.

<머니 몬스터>의 세계는 코미디. 거대한 코미디. 코미디인 줄도 모르는 코미디. ⓒ UPI 코리아


하지만 이같은 짐작은 영화의 시선과 영화 속 또 하나의 시선(TV쇼 '머니 몬스터'의 카메라) 사이에서 묘한 찝찝함을 남긴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사건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은 '지극히 연출적인'패티와 리의 시선이 끼어들면서 객관성을 위협받는다. 그저 '대답을 듣고 싶어서'시작된 카일의 인질극은 두 사람의 해석을 통해 의미가 더해지고, 나아가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기에 이른다. 그렇게 '머니 몬스터'는 횡포를 일삼는 거대 투자세력과 힘없이 무너지는 개미, 자본의 추악함을 고발하는 미디어의 3자 구도를 완성해 내고, 영화는 가만히 이를 응시한다.

'극초단타 매매 알고리즘'을 활용한 아이비스의 인공지능 투자 시스템, 주가를 조작해 시장을 교란하는 개인의 욕심. 그리고 인기를 위해서라면 온갖 자극적인 콘텐츠로 프로그램을 채우는 미디어까지. 8억 달러가 사라졌는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머니 몬스터>의 세계는 어쩌면 그 자체로 코미디인지 모른다. 각자 가진 '지분'이 다를 뿐, 모두가 크고 작은 배역을 맡은 코미디 말이다. 극 중 리가 아이비스를 두고 말한 '분칠한 돼지'란 표현이 꽤 오랫동안 귓가에 남는 이유다. 오는 31일 개봉.

머니몬스터 조지클루니 줄리아로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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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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