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에 캔디> 스틸 이미지.

언뜻 유치하리라 생각했던 프로그램인데, 한 번 보니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 tvN


처음엔 5분만 보고 말 생각이었다. 그러다 10분이 되고 결국 끝까지 다 보고야 말았다. tvN에서 새로 시작한 <내 귀에 캔디> 이야기다. 새로 시작한 프로그램이라 어떤 프로그램인지 잠깐 보고 말 생각이었는데 끝까지 다 보게 된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내 귀에 캔디>는 출연자들에게 핸드폰 하나를 준다. 그러면 그 핸드폰으로 '캔디'라 불리는 이들이 출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출연자들은 전화를 걸어온 이성이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당연히 시청자들도 출연자들의 캔디가 누누구인지 모른다. 그리고 중간 중간 끊임없이 '잠시 후 캔디가 공개됩니다'라는 자막이 나오고 캔디가 누구인지 궁금한 시청자들은 결국 끝까지 다 보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전략을 잘 짰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든 영화든 예능이든 결국은 궁금해야 볼 가능성이 더 높은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가 이 프로그램을 끝까지 다 본 것이 단지 캔디가 궁금해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귀에 캔디> 출연자들은 모두 미혼이다. 그러다보니 출연자들이 얼굴은 모르고 목소리만으로 대화할 뿐이지만 역시 솔로인 것으로 추정되는 캔디들과 나누는 대화들만 듣고 있어도 <우리 결혼했어요>의 목소리 판을 보는 것처럼 달달하고 설레는 요소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생각보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깊게 표현한 출연자들이 자신의 캔디가 누구인지 안 후에도 정말 그런 마음을 그대로 갖고 갈 수 있을지 궁금해 하게 한다는 점은 <우리 결혼했어요>에는 없는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또 다른 요소이기도 했다.

호기심과 달달함, 거기에 대리만족까지

 <내 귀에 캔디> 스틸 이미지.

<내 귀에 캔디>가 채우는 욕구는 단순히 판타지가 아니라 그 이상이다. 우리는 모두 관계에 목마르다. ⓒ tvN


그렇지만 역시 그것만으로 내가 <내 귀에 캔디>를 끝까지 보고 있었다는 것은 스스로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내 귀에 캔디>가 갖고 있는 강점이 호기심과 달달함 두 개뿐이라면 끝까지 보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하다 내가 <내 귀에 캔디>를 끝까지 볼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은 호기심과 달달함 외에 채워지지 못하는 어떤 욕구에 대한 대리 만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호기심과 달달함에 눈이 가려 잠시 잊고 있었지만 <내 귀에 캔디>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기에 출연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의 진심을 털어 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내 귀에 캔디>에 역시 TV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이기에 출연자들 모두 100%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을 제공하고 그런 포맷을 제공했다는 점이 그 어떤 것보다 나를 끌어들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털어 놓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 판타지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인터넷과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프로그램의 발달로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과거에 비해 몇 배로 많아진 시대다. 그러나 '혼술'이라는 말이 이제 익숙해질 정도로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막상 번호를 눌러 연락할 친구는 도리어 줄어든 시대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학교가 아닌 사회에 나온 이후로는 쉽게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학창 시절 친구가 평생 친구라는 이야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과거 인기를 얻었던 tvN 드라마 <미생>에서 오상식(이성민 분)은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 반가워한다. 그러나 정작  인사를 받은 친구는 이곳이 학교가 아니며 사회에서의 갑을 관계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기를 요구하며 불쾌해 한다. 아무리 과거에 친했던 사이라도 사회에 나와 사회 생활을 하게 되면 이해 관계로 얽힐 수도 있다. 사회에 발을 딛는 순간 누구를 만나든 정말로 아무 생각없이 만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귀에 캔디>라는 프로그램은 아무 생각 없이 상대방과 대화를 나눌 친구를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고독하고 외롭지만 마음을 털어 놓을 공간이 없었다면 그런 이야기를 들어줄 캔디를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그래, 안다. 프로그램의 취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렇지만 적어도 그런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 주겠다는 그 환상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외롭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지는 않을까.

그래서 <내 귀에 캔디>가 예능 프로그램이니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처럼 되기는 힘들다 하더라도 앞으로 <우리 결혼했어요>의 목소리 판 버전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달달함과 설렘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프로그램은 많이 있지만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털어 놓을 수 있는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프로그램은 많지 않으니.

내 귀에 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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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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