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듯이, 누구나 가슴에 한때 사랑했던 존재가 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배우, 내가 사랑했던 노래, 내가 사랑했던 감독, 내가 사랑했던 드라마…. 그런가 하면 노래 한 곡, 또는 드라마(영화) 한 편 때문에 인생이 바뀐 분들도 있을 겁니다. 첫사랑만큼이나 우리를 설레게 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남자라면 누구나 강함에 대한 로망이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이소룡 영화를 보면서 특유의 괴조음을 따라 하며 허공에 발차기 한 번 날려보지 않은 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나는 유독 강함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것 같다. 남들보다 유달리 연약한 신체적 조건과 여린 심성 탓에, 남을 때리기는커녕 차라리 맞고 다니는 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겐 무술 도장을 다닐 정도의 용기조차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정도로 나는 소심했고, 겁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직은 더벅머리 중학생이었던 2006년으로 기억된다. 무료함을 달래고자 이리저리 리모컨을 돌리다가 우연히 멈추게 된 채널에서는 낡은 화질의 영화 한 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굉장히 오래전에 제작된 듯한 그 영화는, 바로 세계적인 액션 스타 성룡의 첫 히트작 <취권>(1978)이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이 영화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리라는 것을.

영화 <취권> 공식 포스터 영화 <취권>은 1978년 개봉한 무협영화로, 당시 무명이었던 배우 성룡을 세상에 처음 알린 영화였다.

▲ 영화 <취권> 공식 포스터 영화 <취권>은 1978년 개봉한 무협영화로, 당시 무명이었던 배우 성룡을 세상에 처음 알린 영화였다. ⓒ 오사원


단순했기에 신선했던 영화

<취권>은 중국 무협영화의 역사에 있어 새로운 전기가 된 작품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불멸의 쿵푸 스타 이소룡의 영화가 전 세계를 흽쓸었고, 많은 이들이 그의 액션에 열광했다. 그러나 그가 34살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무협영화의 인기는 주춤하게 된다.

바로 그때, 성룡이 나타났다. 성룡은 이소룡을 모방하기보다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액션을 선보이고 싶었다. 그러한 고민과 끊임없는 연구 끝에 나온 결과물이 바로 <취권>이었던 것이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상대방을 방심시킨 뒤, 갑작스러운 일격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취권>은 많은 관객에게 신선함을 안겨주었고, 성룡 특유의 코믹함과 결부되어 상상 이상의 대박을 터뜨린 것이었다.

물론 영화의 스토리 구조는 40년 전 영화답게 굉장히 단순하고 진부하기까지 했다. 사고만 치고 다니는 철부지 소년 황비홍(성룡)이 괴팍한 사부님 아래서 혹독한 수련을 통해 궁극의 무예비기인 취팔선권(취권)을 습득하여, 아버지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을 쓰러트린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구조 자체가, 다양한 반전으로 버무려진 영화에만 익숙해져있던 내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특히나 와이어나 CG와 같은 특수효과를 일체 쓰지 않고, 실제 무술을 익힌 전문 무술배우들이 펼치는 액션은 밋밋하면서도 사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성룡이 영화 속에서 구사했던 아크로바틱한 전통 쿵후 액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었다.

취권을 선보이는 성룡의 모습 영화 <취권> 속 한 장면으로, 황비홍 역을 맡은 성룡이 취권을 몸소 선보이고 있다.

▲ 취권을 선보이는 성룡의 모습 영화 <취권> 속 한 장면으로, 황비홍 역을 맡은 성룡이 취권을 몸소 선보이고 있다. ⓒ 오사원


호기심에 보기 시작한 영화였지만, 어느새 나는 영화 속 액션에 깊이 몰입해있었다. 그리고 홀딱 반해버렸다. 어쩌면 황홀경에 빠졌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는지도 모르겠다. 연체동물처럼 온몸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다양한 초식으로 상대와 합을 주고받는 결투 장면들을 보면서 무술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까지 오른 것이 아닌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무술 독학의 실패

강함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찼던 소년에게, 이 영화는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당장 중국무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장에 갈 용기는 없었고, 강남의 대형 서점에 가서 서가 한 편에 꽂혀있던 '쿵후 교본' 한 권을 당장 구입했다.

'단련시킨 당신의 잠재능력이 당신을 <쿵후>의 유단자로 만든다'

한눈에 마음을 사로잡는 책의 문구를 보면서, 부푼 마음으로 책을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나도 이 책 한 권으로 무술의 고수가 될 수 있다'는 원대한 착각에 빠져 온종일 책과 씨름하며 다양한 초식들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를 보자마자 구입했던 '쿵후교본' 영화 <취권>을 보고 감동을 받은 중학생은, 그 길로 강남의 대형서점으로 달려가 이 한 권의 쿵후교본을 사들고 온다. 그리고 무리한 독학을 시도하다가 첫 번째 좌절을 맛본다.

▲ 영화를 보자마자 구입했던 '쿵후교본' 영화 <취권>을 보고 감동을 받은 중학생은, 그 길로 강남의 대형서점으로 달려가 이 한 권의 쿵후교본을 사들고 온다. 그리고 무리한 독학을 시도하다가 첫 번째 좌절을 맛본다. ⓒ 김경준


그러나 책을 펴들기 시작한 지 얼마 못 되어, 나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낡고 오래되어 흐릿한 화질의 사진을 비롯해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용어들의 난립, 복잡한 동작 설명은 내가 하는 동작들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용기를 내어 두드린 도장 문

능력의 한계를 절감한 나는, 책을 집어 던지며 큰 결심을 하게 된다.

'그래! 도장에 가자!' 

그렇게 큰맘 먹고 용기를 내어 두드린 동네 태극권 도장의 문에서부터 내 무술인생이 시작되었다. 당시 그 문을 두드리기까지 많은 망설임과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강함'을 위해 용기를 냈고, 무술이라는 세계에 한 발짝 내딛게 된 것이었다.

이후 나는 참으로 다양한 무술을 수련해왔다. 처음이 어렵지 막상 무술을 배우기 시작하니, 다른 무술 도장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동네에서 배우는 태극권에 만족하지 못했던 나는, 실제 취권을 지도하는 곳이 있다는 소문을 접하고, 인천 차이나타운까지 달려가서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화교 사부님 아래서 무술을 배우기도 했다. 이후에도 견자단의 <엽문>으로 유명한 영춘권과 복싱을 배웠고, 우리 전통무예에 관심이 생겨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무예24기'를 수련해오고 있다.

중국무술을 수련하는 나  고등학생 시절, 차이나타운의 한 체육관에서 중국무술을 수련하고 있는 내 모습. 매주 주말마다 서울과 인천을 왕복하며 3년 동안 무술 수련에만 전념했다.

▲ 중국무술을 수련하는 나 고등학생 시절, 차이나타운의 한 체육관에서 중국무술을 수련하고 있는 내 모습. 매주 주말마다 서울과 인천을 왕복하며 3년 동안 무술 수련에만 전념했다. ⓒ 김경준


화교인 사부님 밑에서 무술을 배울 당시에는 고등학생이었다. 한창 입시를 준비해야 할 고등학생이 인천까지 무술을 배우러 다니고 있으니, 부모님의 반대와 간섭도 심했다. 매주 주말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지하철을 타고 왕복하며 무술을 배우러 다니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만 보던 무술을 직접 배운다는 즐거움은 비할 데 없는 즐거움이었다. 더욱이 그때까지 나는 무언가 열정을 갖고 해본 일이 하나도 없었다. 공부에도 재능이 없고, 예·체능에도 재능이 없었다. 물론 무술에도 재능은 없었다.

그러나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비록 남들보다 무술을 습득하는 능력이 뒤처져도, 나는 그저 무술을 수련한다는 과정 자체가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고 즐거웠다. 그래서 배우고 싶은 무술이 있다면 거리와 시간, 비용을 마다치 않고 달려갔다.

현실이 되어버린 어릴 적 로망

나이가 들면 어릴 적 품었던 로망은 그저 철부지 시절 추억 정도로만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낭만이 있던 대학 시절도 지나가게 되면, 처절하리만치 치열한 생존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어릴 적 꿈은 그저 꿈으로만 남곤 한다.

그러나 내게 무술은 어느 순간부터 삶의 동기이자 목표로 자리 잡았다. 그저 취미로 시작했던 무술이었지만, 이제는 진지하게 직업으로서의 무술가의 길을 걷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대안학교인 '열정대학'에 '함께 무예배워볼과'라는 무예24기 과목을 개설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이태원대학'이라는 대안학교에도 창술 과목 개설 준비를 추진하는 중이다.

내 목표는 '나만의 문파를 세워 제자를 받아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다. 남들이 보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벌써 극구 말리는 사람도 있다. 정글과도 같은 한국 사회에서 비주류의 대표적인 길인 무술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험난한 길임을 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산 정상에서 무예를 선보이다.  북한산 정상에서 무예24기의 일종인 왜검을 선보이고 있는 장면이다.

▲ 북한산 정상에서 무예를 선보이다. 북한산 정상에서 무예24기의 일종인 왜검을 선보이고 있는 장면이다. ⓒ 김경준


그러나 나는 여전히 꿈을 꾸며 묵묵히 수련에 임한다. 괴짜 사부가 혹독한 수련을 통해 궁극의 비기를 제자에게 전달해주던 <취권>의 한 장면처럼, 나 역시 혹독한 수련을 통해 습득한 무예의 정수들을 제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다. 영화 속 사제관계는 사실상 내가 꿈꾸는 이상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 내 선택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면, 책장에 꽂힌 <취권>의 DVD를 꺼내 돌려본다. 벌써 수십 번 돌려봤기에 이제는 등장인물의 광둥어 대사까지 줄줄이 외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볼 때마다 새롭고, 영화 속 배우들은 내게 영감을 주는 것만 같다. 그렇기에 내게 <취권>은 무술가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동기를 유발한 아주 고마운 인생영화임이 틀림없다.

나는 오늘도 <취권> DVD를 꺼내든다. 영화 속 성룡은 오늘 내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

덧붙이는 글 내가 사랑한 영화 <취권>
취권 성룡 무예24기 무술 쿵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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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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