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듯이, 누구나 가슴에 한때 사랑했던 존재가 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배우, 내가 사랑했던 노래, 내가 사랑했던 감독, 내가 사랑했던 드라마…. 그런가 하면 노래 한 곡, 또는 드라마(영화) 한 편 때문에 인생이 바뀐 분들도 있을 겁니다. 첫사랑만큼이나 우리를 설레게 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하루를 함께 마무리한 문지애 DJ. 사진은 MBC <만원의 행복> 갈무리

하루를 함께 마무리한 문지애 DJ. 사진은 MBC <만원의 행복> 갈무리 ⓒ MBC


자정 5분 전, 세팅은 모두 마친 상태였다. 잠자리에 누워 이어폰을 꽂고 MP3를 켰다. 모드는 라디오 모드, 주파수는 91.9MHz. 잠자리 옆엔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그저 그런 음악이 나올 때 대신 읽을 책 한 권.

자정 1분 전, 죽인 MP3 볼륨을 높인다. 광고를 피하느라 오프닝을 놓칠 순 없으니. 곧 익숙한 멜로디가 나온다. 몇 번을 들어도 설레는 그 멜로디. 이어서 나오는 "푸른밤, 문지애입니다."

조용히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안도감이 들었다. 하루의 '의무'가 진짜 끝났고 남은 시간은 오롯이 내 것이라는 느낌. 퇴근 후 이동시간을 견뎌 집 문을 열었을 때 직장인의 해방감과 비슷할까.

고3 시절, 내게 <푸른밤 문지애입니다>는 유일한 낙이었다. 공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탈출구였다. 수능이라는 장거리 레이스를 함께 한 페이스 메이커였다.

라디오라는 해우소

 검찰이 25일 밤 마포대교 부근에서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을 보도했던 이춘근 PD를 체포한 가운데, 26일 오전 여의도 본사 로비에서 열린 노조 비상총회에서 문지애 아나운서 등 노조원들이 이춘근PD가 경찰에 끌려가는 영상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검찰이 2009년 3월 25일 밤 마포대교 부근에서 MBC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을 보도했던 이춘근 PD를 체포한 가운데, 같은 달 26일 오전 여의도 본사 로비에서 열린 노조 비상총회에서 문지애 아나운서 등 노조원들이 이춘근PD가 경찰에 끌려가는 영상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 권우성


언제나 해가 질 즈음 학교에서 돌아왔다. 불 꺼진 방에서 30분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잠들지 않으려 음악을 틀어놓고 눈의 피로가 가시길, 몸의 뻐근함이 가시길 기다렸다. 용케도 매번 잠들지 않고 일어나 밥을 먹고 독서실에 갔다. 그렇게 또 11시까지 문제집에 코를 박았다.

밤이 깊어 한산한 차도로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갈 땐 행복했다. 모든 의무를 마친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텁텁한 공간에서 나왔을 때의 상쾌함, 야식, 그리고 <푸른밤>.

자정의 그녀는 변화무쌍했다. 월요일엔 박성광과 티격태격하는 '썸녀'였고(코너 '사랑은 착불로 온다'), 수요일엔 음치임에도 꿋꿋이 노래 부르는 '깨방정'이었으며(코너 '애까페'), 목요일엔 옥상달빛과 수다 티키타카를 하는 만담꾼이었다(코너 '하드코어 인생아'). '아나운서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히 자유분방한 그녀였다.

"저 내일 또 올게요"라는 엔딩 멘트는 거의 듣지 못했다. 끝까지 듣겠노라 늘 다짐했지만 매번 노래가 나오는 중간에 잠들었다. 듣는 시간은 짧으면 30분, 보통은 1시간이었다. 새벽 1시부터 진행되는 대부분의 코너는 다시듣기로 들어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문 DJ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충분했다. 심야 라디오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적막한 밤, DJ와 단둘이 있다는 묘한 느낌을. 몇십 분간 1대1로 위로받는 느낌을. 오밤중까지 깨어 있어야 하는 수험생·취업준비생·사회인의 사연을 들으며 공감했고, 그들을 다독이는 문 DJ의 말에 위안이 됐다.

김재철이 미워진 건 푸른밤 때문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총파업에 들어간 가운데 문지애 아나운서 등 MBC노조 조합원들이 27일 오후 서울 신촌 일대에서 MBC노조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는 전단지를 나눠주며 거리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문지애 아나운서는 2006년 MBC 입사 후 파업 때마다 참여하다가, 2012년 언론총파업을 끝으로 그 다음해 퇴사했다. 사진은 2008년 파업 때의 모습. ⓒ 남소연


문지애의 <푸른밤>은 수능 1달 전 끝났다. 2010년 가을이었다. 하차 소식을 들었을 땐 '멘붕'이었다. 수능 때까지만이라도 함께 할 수 없었나, 허탈했다. 한 해를 함께 한 페이스메이커는 그렇게 중도탈락했다.

기사에 나온 이유는 '건강상 문제'. 하차 3달 후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 게스트로 나온 문지애는 "쫓겨났다"는 표현을 썼다. 하차 5달 전, 문지애는 당시 김재철 MBC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김재철은 물러나지 않았다.

<푸른밤>이 없었다면 고3 생활은 좀 더 황폐해졌을 것이다. 내 삶의 질이 악화될 것을 막아줬다는 점에서 <푸른밤>은 일종의 '복지'였다. 시사에 전혀 관심 없던 그 시절, 김재철이 미워진 것 역시 그가 <푸른밤>이란 복지를 빼앗아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라디오 프로 하나가 누군가에겐 낙이었다는 걸, 누군가에겐 동반자였다는 걸 그는 알까.

6년이 지난 지금도, 위로받고 싶을 땐 문지애의 <푸른밤>을 찾는다. 고이 모셔놓은 녹음 파일을 재생한다. 이전처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느낌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위로받는다. 사는 게 시들시들했다가도 하루 자고 나면 나아질 거라는 낙관 같은 게 생긴다.

라디오를 켜세요, 당신만의 <푸른밤>을 만날 테니

<푸른밤>을 발견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심심함에 몸부림치던 고2 겨울방학, 생전 듣지 않던 라디오를 듣고 싶어졌고 마침 <푸른밤>이 나오고 있었다. 그때 라디오를 켜지 않았다면 <푸른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 다른 선택을 했기에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삶이 제멋대로 흘러간다고 느낀다면, 혼자라 느낀다면, 오늘 밤 라디오를 켜라. 당신만의 푸른밤이, 꿈꾸라가, 별밤이 기다릴 테니. 언제든 비빌 언덕이 돼줄 무언가를 만날 테니. 그로 인해 당신의 삶은 좀 더 풍성해질 테니.

덧붙이는 글 내가 사랑한 <푸른밤 문지애입니다>
문지애 푸른밤 라디오 고3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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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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