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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예술가 루피 카우르의 월경혈 사진. 이 사진은 삭제 조치됐다.
 미국의 예술가 루피 카우르의 월경혈 사진. 이 사진은 삭제 조치됐다.
ⓒ 루피 카우르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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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월경 25주년을 맞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당시엔 25주년이라는 걸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여느 달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월경을 하며 지나갔다. 두 달 후 생리대값이 비싸 '신발 깔창'과 휴지, 수건을 사용한다는 한 여학생의 사연이 기사로 소개되면서 인터넷이 생리대와 월경 논란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월경을 하지 않는 남성들은 월경에 대해 몰라도 정말 너무 몰랐다. '월경이 하루 만에 끝나는 줄 알았다'는 이도 있었고 심지어 '생리혈이 파란색인 줄 알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연애를 할 때면 남자친구와 월경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눠온 터라, 남성들이 월경에 대해 무지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남성들도 주변 여성들을 만나면서 '상식' 수준의 지식은 습득해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15세 이상 50세 미만의 여성이라면 대부분 한 달에 한 번 하는 월경.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한 달에 3일에서 7일은 월경을 한다. 이 기간에 여성들은 몸과 감정에 많은 변화를 겪는다. 하지만 여간해선 이 변화를 드러내지 않는다. 변화가 있되 드러내선 안 된다. 왜? 월경은 지극히 사적인, 게다가 '부끄러운' 일이란 생각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타자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당연히 나에게도 똑같은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월경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어렵게 여겨왔던 것은, 나의 변화와 상태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드러낸다는 것이,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나 월경 중이야! 배가 아프고 아래가 축축해서 기분이 나빠!"라고 떠들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나 오늘 점심에 김치찌개 먹었어!"라고 큰소리로 외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맛이 기가 막히게 좋은 김치찌개 집을 발견했을 때 그 이야기를 편하게 하듯, 내 몸과 기분에 변화가 왔을 때, 또는 문득 월경에 대해 궁금한 것이 생기거나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언제 어디서든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주변 사람들과 월경에 대해 깊이 대화해본 적이 많지 않다. 누구에게나 첫 월경이 있었을 텐데, 그 첫 경험을 들어본 기억이 내겐 없다. 엄마의 첫 월경, 언니의 첫 월경, 후배의 첫 월경, 친구의 첫 월경... 그 무수히 많은 하나하나의 역사에 나조차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생각 끝에, 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졌다. 모든 출발은 나에서 시작한다.

처음 꺼내는 '나의 첫 월경이야기'

생리를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회에서 생리대는 감춰야 할 것, 숨겨야할 것이다.
 생리를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회에서 생리대는 감춰야 할 것, 숨겨야할 것이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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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 날을 기억한다.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그날은 3월 6일이었다. 학년 주임은 카리스마 넘치는 음악 선생님이었다. 첫 음악시간,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자세를 바로 잡으라고 다그치며, '허리 세우고! 어깨 펴고!'를 수업시간 내내 외쳤다. 나는 선생님에게 주의를 받을 세라 열심히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폈다.

그다음날, 허리와 아랫배가 계속 욱신거렸다. 나는 음악 선생님의 가르침을 너무 열심히 따른 나머지 여기저기 근육이 아픈 거라 생각했다. 제대로 앉아 있기도 힘들어 의자에서 엉덩이를 뺐다가, 당겨 앉기를 반복하며 오후를 보냈다. 청소시간엔 속옷까지 축축해졌다. 피곤하거나 몸 상태가 안 좋을 때면 분비물이 나오곤 했기에 어제 음악시간에 긴장을 참 많이 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려는데 속옷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거무스름한 것이 속옷을 적셔 놓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조금 전까지 허리와 배에서 느껴진 통증은 그동안 진통제 광고에서만 들었던,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겪은, 생리통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양이 적어 샐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엄마를 불러 속옷을 보여줬다. 당황한 나와 달리, 엄마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이제야 생리를 시작했구나"라고 말하며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언제 준비해 두었는지, 생리용 속옷(방수가 되는 팬티)과 생리대를 꺼내 왔다. 그러곤 팬티에 생리대를 제대로 놓는 시범을 보였다. 제대로 생리대를 찼는지, 몇 번이나 앞뒤를 손으로 짚어가며 확인도 했다. 새지 않게 잘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색깔'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나는 월경은 빨간 피가 나오는 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내 속옷에 묻은 건 분명 까만색이다. 몸에 이상이 있는 걸까? 내가 조바심을 내자 엄마는 "원래 월경 기간 중 초기엔 검은색이 나온다"고 했다. 곧 빨간 피가 나올 거라고 했다. 엄마 말이 맞았다. 다음 날, 기다리던(!) 빨간 피가 나왔다. 나는 학교에서 생리대를 서너 번 갈았다. 혹시 새지는 않을까 무척 신경이 쓰였다. 생리통도 전날보다 심해져 힘들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날 저녁 엄마가 축하하는 의미로 뭔가 소소한 먹을 것을 해주었는데, 그게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때 해준 음식을 기억하느냐고, 내 첫 월경이 그렇게 반가웠느냐고, 그리고 엄마의 첫 월경은 어땠느냐고.


태그:#월경, #생리, #첫 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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