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영화 <부산행> 속 성경(정유미)은 결코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임신부라는 설정 아래에서, 모성을 발휘하며 누구보다 굳건하게 위기 상황을 돌파한다. ⓒ NEW


<부산행>을 늦게 보았다. 그리고 참신한 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좀비물 같이 잔인한 장르의 영화를 전혀 못 보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한국에 좀비가 상륙했다는데 한 번 영접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만 달성 이후 다소 한산해진 영화관에 들러서 비교적 쾌적하게 보고 왔다.

관람 이후 (스포일러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리뷰를 찾아보니, 감독이 의도적으로 잔인함을 배제한 덕분에 나 같이 심장 약한 사람도 이 영화를 보는 게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곡성>이 말초신경을 바짝 서게 만들었다면, <부산행>은 엄청난 좀비의 추격 스피드에 주인공들과 함께 쫓기는 느낌이었다. <설국열차>가 공간과 계급의 한계 때문에 두통을 느꼈다면, <부산행>은 공간을 뚫고 나가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였다.

이미 넘쳐나는, 지적이고 세련된 리뷰와 분석들에 감탄하면서 영화 밖 재미까지 덤으로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영화 <부산행> 속에서 여성은 무력하다"는 주장들 대해서 결코 찬성할 수 없었다. 그런 주장들을 반복해서 계속 접하다보니 약간의 불쾌감마저 느껴져 결국 한 소리 적고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여러 평론에 걸쳐서 '클리셰를 철저히 따라 여자와 어린애만 살아남았다', '임신부와 여자어린이는 살아남는 것 빼고 한 일이 없다', '좀 더 능동적인 역할을 여성이 수행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왜 하필 임신부여야 했는지 모르겠다?' 등의 주장과 감상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엄마'의 입장에서 평론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걸까. 대체 '살아남는 것'만큼 커다란 성공이 어디 있다고!

그저 진부하다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영화 <부산행>의 남성 캐릭터들이 좀비와 치고 박고 분투하는 동안, 여성 캐릭터는 그저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마동석을 컨트롤하고, 움직일 동기를 제공하는 게 정유미가 맡은 인물이다. ⓒ NEW


정유미(성경 역)가 임신부로 설정된 건, 그녀에게 어린이를 끝까지 살리는 임무를 부여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임신부가 아닌 여자였더라면, 남의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끝까지 성심을 다해 보살필 확률이 다소 줄어들지 않을까. 물론 자상한 남자가 있고 무뚝뚝한 남자가 있듯이, 모성이 강한 여자가 있고 모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여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기를 낳아본 여자는,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경험에 의해 강한 모성을 품게 된다.

뱃속의 아이는 수안이(수안 역)가 배 위로 손을 만져 보았을 때 꿈틀거림이 느껴지는 수준으로 많이 자라났었다. 태아 잠잠이는 이미 엄마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생명체이다. 엄마는 아빠와 사랑하는 사이이고, 그러니 분명 곧 태어날 잠잠이에 대해서도 사랑으로 충만해 있을 것이다. 임신과 출산을 겪어본 '엄마' 중에는 세상의 모든 아이를 내 아이처럼 여기고 보살피려는 마음을 갖게 되는 이들이 많다. '열차 안에서 아이를 하나 만난다, 좀비들이 덮쳐서 위험하다, 이 아이를 내가 돌봐주자'라는 고리가 '보다' 강력해지기 위해서는, 임신부 여자라는 설정이 '보다' 설득적이다.

정유미가 적극적인 여성이라는 것은 남편을 대하는 태도에서 보인다. 주먹을 쓰는 게 범상치 않은 마동석(상화 역)은 (부산행 KTX에서 가장 안전한 좌'석'이다) 분명 결혼 전에 심상치 않은 삶을 살았던 남자일 것이다. 그러나 정유미는 그런 남편에게 조금도 기 눌리지 않고, 그의 사랑 하나 믿고 까분다기엔 아주 당당하게, 남편을 이 새끼 저 새끼 불러가면서 씩씩하게 행동한다. 수안이 앞에서 아이 아빠 흉을 봤다고 남편을 나무라는 장면은 선생님과 학생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들 부부 관계에서 아내는 남편의 정신적 지주인 것처럼 보인다.

정유미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충분히 능동적이었다. 우선 수안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한 것이 그렇다. 남편과 함께 보호하긴 했지만, 수안이를 안정시키고 위로한 것은 정유미였다. 아마도 극한의 공포에서 만난 아이를 돌보는 '박애'는 아무나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또한 그녀가 무능하지 않다는 것은 화장실에 수안이와 노숙자와 함께 갇히는 신에서 증명된다.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서 화장실 문을 사수한다. 남편이 없는 위기 상황에서 함께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보호해야 할 사람들로 판단되는 순간 초인적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렇게 능동적인 미덕을 충분히 갖춘 것으로 판단되는 정유미가 정작 영화 속에서 보다 적극적인 활극 신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왜일까? 클리셰라서? 그렇다기보다 영화가 굉장히 캐릭터의 현실적 감정선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부는 자기 태중의 아이를 본능적으로 지키려고 한다. 그를 위해서 감정과 동작을 지나치게 다 드러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는 좀비로 가득 찬 열차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 여인이 보통내기는 아니라는 반증이 된다. 마지막 터널을 건너가기 직전, 태아가 조산할 기미를 보일 때 많은 사람이 "에이, 클리셰"했겠지만, 임신부로 설정한 이상,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조산 기미가 일어나는 게 오히려 정상이 아닐까.

살아남았다, 그 자체만으로도 강하다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여성 캐릭터만이 생존했다. 남성 캐릭터의 일방적인 보호와 희생 아래에 그저 우연히 살아남은 게 아니다. 위기의 고비마다, 그녀도 강한 면모를 보였다. ⓒ NEW


마지막 터널을 뚫고 가는 신에서 여자와 아이가 함께 걸어간다. 남자들은 다 죽고 여자들만 남았다. 남자들의 보호를 딛고 일어선 무기력한 여자와 아이라고? 생명을 관장하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는 여자이다.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는 사실상 지옥의 관장자이다. (남편 하데스는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한다) 삶과 죽음, 차안과 피안에서 여자들은 모두 끈질긴 생명력을 갖는다.

남편 마동석이 죽어가는 장면에서 그는 아이 아빠인 공유(석우 역)에게 자신의 가족을 부탁한다. 이 대사는 새겨 들어줘야 한다. 그는 여자를 짐짝처럼 맡긴 것이 아니라, 이 여자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함께 있어달라, 그녀를 도와달라, 자신들의 아이를 살릴 임무를 맡게 된 이 여자를 도와달라고 외친 것이다. 정유미는 그냥 슬퍼하고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기보다, 뱃속의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감내하고 있다. 아이 아빠인 공유가 몸을 던질 때, 미칠 것 같은 공포 속에서도 운전대를 잡고 브레이크를 당긴 것은, 수안이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터널 속을 걸어 나오는 사람을 다시 잘 보자. 분명 셋이다. 아이 수안이, 태아 서연이, 그리고 그 두 생명을 끝까지 지켜낸 용감한 어머니.

<부산행>을 두고 보다 적극적이고 통쾌한 여성의 활약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여성의 온건한 저항에 보다 의미를 두어 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온건하지만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다. 클리셰라서 손발이 오글거린다고? 미안하지만, 이것은 클리셰가 아니라 진리이다. 아이들이 없이는 우리의 미래도 없고 살아가는 의미도 없다.

수안이가 노래를 불러서 여자를 살리는 장면도 필시 오그라들었을 사람들 많지만, 그마저도 현실적이다. 사실 어른이 아이를 보호한다고 착각들을 많이 하지만, 어른이 살도록 힘을 주는 쪽이 아이인 것이다. 아이들의 힘이 이렇게 놀랍다.

끝맺으며 클리셰 하나 더 투척.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우리 인생이 좀비 열차 속보다 더 낫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지금 우리가 탄 열차는 감염되지 않고 청정한 것이 확실한가? 지금 살아남아 있는가? 끝까지 살아남은 여자와 아이를 우습게보지 마라. 그 얘기가 진짜였다면 결코 쉬운 게 아니니까.

부산행 정유미 모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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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작가, 임학박사, 연구직 공무원, 애기엄마. 쓴 책에 <착한 불륜, 해선 안 될 사랑은 없다>, <사랑, 마음을 내려 놓다>. 연구 분야는 그린 마케팅 및 합법목재 교역촉진제도 연구. 최근 관심 분야는 환경 정의와 생태심리학.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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