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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에서 실비아 찾기

스페인 피게라스 어느 캠핑장에서 이웃으로 만나 다양한 추억을 만들었던 실비아를 만나러 간다. 12시에 가기로 했다.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가는 길에 보이는 큰 마트에 들려 선물을 사기로 했다. 쇼핑에 안목이 있는 남편이 혼자 들어갔고 예상한 시간을 많이 넘겨 꽃다발과 와인을 사가지고 나왔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실비아의 집을 찾아야 한다. 동네가 작았으면 좋겠다, '종로에서  김서방 찾기'는 되지 않길 바라며 내비게이션이 일러주는 길까지 갔다. 빨래를 널고 있는 내 또래 여자에게 물으니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 남편을 데리고 나왔다. 남편이 주소를 보더니 우리가 짐작하는 반대 방향을 가리키며 저쪽일 것 같단다. 어쩔 수 없이 우린 차를 돌려 교회를 지나 집집마다 번지를 훑으며 45번 집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갈래 길을 지나고 처음 만난 집이 50번지다. 이렇게 확 넘어가면 안되는데. 이곳이 아닌가봐.

다시 갈림길로 돌아가 동네 할아버지에게 주소를 보여주니 "아아~ 실비아"라며 불어로 길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볼펜을 권하며 그려달라는 요청에 할아버지는 "내 뒤를 따라 와. 내가 데려다 줄게." 하신다. 우린 졸졸졸 할아버지를 따라 처음 들어섰던 동네, 되돌아왔던 그 길로 돌아가 그 방향으로 훨씬 더 깊숙이 들어갔다. "저기가 실비아 집이야. 난 여기서 되돌아  갈게. 내 이름은 미셀이야. 안부 전해줘." 라고 말씀 하셨을 것이다. 불어만 사용하셨기에 그 내용은 짐작 할 수밖에 없다.

#. 오~ 사비에

실비아네 대문은 견고해보였다. 초인종 소리 뒤로 실비아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고 열리고 있는 자동문 사이로 사비에가 나왔다. 실비아는 아들 셋이 있는데 첫째는 다비드, 둘째는 올리비에, 셋째는 사비에 이다. 사비에는 미혼으로 부모님 집에 한마디로 얹혀살고 있는데 동그란 안경을 썼고 왜소한 편이며 참 많이 웃는 훈남 스타일이다.

알베르트가 3년간 벽돌을 직접 쌓아 만든 2층 집은 꽤 넓었다. 1, 2층 합하면 80평은 족히 돼 보였다. 텃밭, 수영장,  정원까지 합하면 500평은 되겠다. 언젠가 물놀이장으로써 역할을 충실히 했을 작은 수영장은 관상어 몇 마리가 노는 아주 큰 어항으로 바뀌어 있었다. 저기에 알베르트가 빠져 죽을 뻔했다고 실비아가 온몸으로 말해주었던 것이 생각난다. 얘기로 듣던 것을 눈으로 보니 스페인에서의 그 시간이 마치 아득했던 옛날 같기만 하다. 휴가지에서의 좋은 만남.

집엔 물론 알베르트, 나오미, 까흐뜨가 있었다. 올리비에의 이혼으로 나오미와 까흐뜨는 엄마, 아빠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는데 지금은 방학이라 할 수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머물고 있다. 엄마를 닮은 까흐뜨는 사진에서와 마찬가지로 많이 예민한 성격이 느껴지는 표정을 하고 있었고 나오미는 볼이 통통하고 깊은 눈을 가진, 유순한 아이였다. 나오미와 까흐뜨의 방학에 맞추어 서둘러 스페인에서 벨기에로 돌아가던 실비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때 자녀들 중 한 명이 이혼했을 것이란 추측, 그래서 손주들의 엄마 노릇을 해야 할 것이라 짐작은 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혼 후 자녀를 늙어가는 부모님에게 맡겨버리는 대한민국의 몇몇 부모에 비해 올리비에와 그의 아내는 법에 따라 양육에 대한 책임을 잘 감당하고 있는 듯했다. 물론 아이들이 어린 관계로 일 년에 두 번 방학 때는 할 수 없이 부모님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그 정도의 부담은, 자신들의 남은 생을 즐기며 살고 싶은 조부모가 부모인 죄로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 생각했다. 늘 웃고, 친절한 실비아는 손주에게 자애로움과 단호함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할머니였다. 우리에겐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단호함을 까흐뜨에게 가장 빈번하게, 개에게 보통으로, 나오미에겐 가장 적게 보여주었다.

실비아는 집 구석구석을 보여주었다. 정원의 한 구석 창고 문을 여니 바닥에 새장이 보였다. 세상에나 조류 천지다. 10평 남짓한 온실에는 토마토가 비 걱정 하지 않고 빨갛게 잘 익고 있었다. 내 머리 크기의 상추를 비롯한 샐러드 채소도 3~4종이 있고. 바깥 텃밭엔 빨간 무, 당근, 콩, 비트, 파 등이 있었다.

수영장을 지나니 또 조류가 있는데 아까 창고 속에 있던 것보다 크기가 커졌다. 저쪽 끝엔 거위 2마리가 있었다. 머리에 혹을 달고 이쪽을 쳐다보며 꺽꺽댄다. 들어가 보니 알이 참 많다. 각 알마다 연필로 날짜가 쓰여 있었다. 물어보니 조류는 사비에 담당이란다. 실비아와 알베르트가 스페인으로 휴가를 왔을 때도 사비에는 조류들에게 모이를 주며 그의 휴가를 보냈다고 한다. 야외 식탁 옆에 있는 보일러실 문을 여니 그곳엔 놀랍게도 갓 부화한 아기 조류들이 있었다.

사비에가 조류 학자인가 생각되겠지만 그냥 그의 집안일 중 하나일 뿐이다. 38세 노총각인 사비에가 장가를 가고 싶다면 '조류'를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사비에가 하는 일이란 궁극적으로 먹기 적당한 조류를 미리 잡고 손질하여 냉장고에 보관하였다가 실비아가 꺼내오라고 하면 신속히 가져오는 것이었다.  "오~ 사비에, 조류에 관한 한 박사급인데."

사비에가 키우는 조류
 사비에가 키우는 조류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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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가 키우는 조류 두번째
 사비에가 키우는 조류 두번째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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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와 알을 꼼꼼하게 관리하는 사비에
 조류와 알을 꼼꼼하게 관리하는 사비에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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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알베르트

사비에의 영어는 짧았다. 물론 우리의 불어는 그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이 짧았을 테고. 그래서 우린 영불-불영 사전으로 대화의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휴가지는 사람이 자신의 일상생활을 벗어난 장소임으로 나를 나타낼 만한 그 무엇이 없다. 그러나 이곳은 실비아와 알베르트가 30년 넘게 삶을 이어온 장소이고 보니 고스란히 그들의 역사가 있다.

알베르트는 원래 금속을 다루는 직업을 가졌었다. 운전기사는 가장 마지막 직업으로 10년 정도 했다고 한다. 그 시간을 제외하곤 평생 뜨거운 불로 금속을 녹여 무언가를 만들었다. 가장 큰 창고 안엔 알베르트가 쓰던 부품과 기계가 모두 남아 있다. 용접을 할 때 얼굴에 착용하는 마스크도 옛날 것과 최신 것 두개가 있었다. 알베르트는 '정말 덥다'고 말했고 '힘든 일'이라는 우리말에 그때 생긴 상처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집 안과 밖에 있는, 어느 정도 되는 크기의 조형물은 거의 알베르트가 만들었다는 것을.

예를 들면 창고 위에 풍향계를 달았는데 닭이 앉았을 위치에 말이 올라가 있다. 말을 포함한 그것이 모두 알베르트의 창작물이었다. 대단하다. 가구, 탁자 등 그의 업적에 대해 대단하다는 말로 추켜세우면 알베르트는 쌍둥이가 들어 있다는 농담이 생각나는 배를 쓰다듬고는 목을 한 바퀴 돌렸다. 그 자세는 스페인에서 술을 권하며 "물이야, 마셔!"라고 할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 저녁식사

전화가 온 후 2시간 있다 다비드가 왔다. 잘생긴 미남형의 얼굴에 역시 유부남이라 후덕한 살이 붙어 느끼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수줍음을 타는 성격인 듯 가끔씩 고개를 숙이고 웃을 때가 있었다. 아들놈만 여럿인 실비아를 위해, 실비아가 혹시라도 우리 식구의 방문으로 힘에 부치지 않을까 싶어 최대한 도와주고 싶었다. 실비아가 온실에 들어가면 따라 들어가 샐러드용 토마토를 같이 따서 그릇에 담고 또 따주는 방울토마토를 맛있게 먹고. 주방으로 들어와 샐러드용 야채를 씻는데 실비아는 유기농 야채를 정말 깨끗이 씻었다. 대충 씻어 먹은 후 사후 회충약을 먹는 방법을 택하는 나에 비해 참으로 꼼꼼히 씻었다. 그녀의 샐러드가 왠지 깨끗하고 신뢰가 가서 더욱 맛있을 거 같다.

내가 토마토를 썰 때 다비드의 아내인 아닉과 아들 줄리앙이 왔다. 낯선 동양 여자가 주방에서 자신이 하던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는 게 아닉이 보기에 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문득 이건 한국인만의 상상력일 수도 있겠다 싶어 그냥 출장 요리사의 조수란 기분으로 재료를 준비했다.

다비드와 올리비에가 알베르트에게 선물했다는 중국산 탁자는 가제트 팔처럼 안쪽을 꺼내자 길어졌다. 실내에서 의자를 날라다 자리 세팅을 했다. 어른이 8명, 아이가 5명이라 어깨를 가까이 붙여 앉았다. 정겨웠다. 오랜만의 큰 상차림인지 실비아는 주방 서랍에서 포크를 챙기다 말고는 서랍을 그대로 닫고는 저쪽 방(뭔가 이름이 있었지만 그냥 내 눈엔 식탁이 있는 큰 방)으로 갔다. 이 집에서 아이들 결혼을 비롯한 많은 집안 잔치를 했다더니 무척 많은 식기류가 있었다. 처음엔 방이 좀 어두워 실비아의 표정을 못 봤다. 실비아의 뒤에 섰다가 식기류를 받으려고 그녀의 측면에 서고 보니 실비아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회한의 눈물인건가? 나는 "실 비 아~ "라고 이름을 부른 후 안아주었다.

그녀가 왜 눈물을 흘렸는가에 대한 이유를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런 모습을 이전에 엄마에게서도 보았기에 어슴푸레 알 것도 같았다. 슬프고 억울할 때 눈물을 보이는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어린 내게 북적북적 기쁜 날 남몰래 눈물을 보이는 엄마가 좀 이해되지 않았었다. 생의 역사가 짧아 삶을 깊이 있게 느낄 수도 없었고, 인정도 야박했던 딸년으로 돌아가 내 엄마를 안아주듯, 정 많고 마음 여린 실비아를 안아주었던 것 같다. 여하튼 우린 서로 등을 토닥이고 웃으며 그 방을 나왔다. 

미리 만들어 놓은 드레싱은 싱싱한 상추 위로 쏟아져 내렸고 텃밭에서 키운 감자는 껍질째 식탁에 올라왔다. '자연', '흙', '텃밭', '건강한 먹을거리' 등의 키워드가 삶에서 빠질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상차림은 국제적으로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서 마음이 더욱 편했다. 계속 부엌을 드나들며 자신에게 'chef'라고 하던 알베르트가 어느덧 주방장이 되어 조리실에 있다. 메인요리인 스테이크를 익히고 있었다. 나에게 불어로 뭐라고 하는데 아마도 '굽기'에  대해 묻는 것 같았다. 'medium'이겠다 추측하고 오케이 한 후 접시에서 마주한 굽기는 'rare'였다. 피를 사랑하는 남편을 흡족하게 하는 굽기였지만 내 식성과는 맞지 않아 중심부에 남겨진 지름 3cm 정도의 고기 덩어리를 남편과 슬쩍 바꿔 먹어야 했다. 그냥 프라이팬에 익히기만 한 것 같은데 참 맛있었다. 그의 말대로 'chef'가 맞았다. 

먹고, 자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 직접 몸이 수고하여 그것을 만들어내는 자급능력을 두루 갖춘다는 것이 산업화, 분업화 되는 사회에서 얼마나 희귀한 일임을 알기에 알베르트와 그의 창작물들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무 소파에 앉은 현, 나오미, 쭈는 감자, 소시지, 샐러드를 맛있게 먹고는 정원으로 나가 나무 타기, 옆 돌기, 패거리지어 싸우기 등을 하며 놀고 있었다. 물론 사내아이 까흐뜨가 끼었기에 가끔 놀이의 수위가 격하고 험해졌다. 내가 직접 가서 표정과 액션으로 지도를 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정말 잘 어울려 놀았다. 날씨가 꽤 쌀쌀했었기에 우린 실내로 들어와 다비드의 아내, 아닉이 만들어온 빵을 먹었다. 특별한 날에 만든다는 아닉의 빵은 적당히 달콤하고 부드러워 2개나 먹고 말았다.

아이들은 금세 어울려 논다.
 아이들은 금세 어울려 논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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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우리는 마을 산책을 나갔다.
 오후 우리는 마을 산책을 나갔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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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정말 많은 실비아는 우리 아이들을 참 많이 예뻐해주셨다.
 사랑이 정말 많은 실비아는 우리 아이들을 참 많이 예뻐해주셨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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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리씨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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