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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한 무리의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 인터뷰를 했다. 책읽기 동아리 모임에서 읽고 있는 책과 관련하여 현직 교사로부터 우리 사회의 현실과 전망에 관한 생각을 듣고 싶다며 연락해 온 학생들이었다. 학생들 중 둘은 작년에 내가 가르친 제자였다.

"학생들을 교사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17년차 국어 교사"로 소개했다. 다시 자문해 본다. 교사와 학생은 동등한 인격체인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렇다면 학생들을 모두 동등하게, 그러니까 차별하지 않고 대하고 있는가?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누구나 평등할까> 표지
 <정말로 누구나 평등할까> 표지
ⓒ 착한책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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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지만 착각이다. 상식적으로 우리는 차별에 반대하기 때문에 차별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오즐렘 센소이 캐나다 밴쿠버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 교육학과 교수와 로빈 디앤젤로 미국 매사추세츠 웨스트필드 주립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책 <정말로 누구나 평등할까>에서 대부분의 차별이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아무리 정의와 평등을 신봉한다 하더라도 의도와 무관하게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차별의 역학에 대해 조사한 결과, 차별이 사람들이 의식할 수 있는 인식의 범위 바깥에 있음을 드러낸 연구가 수없이 많다고 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차별은 편견에서 비롯된다. 편견은 한쪽으로 치우친 내적인 생각, 감정, 태도, 가정 같은 것이다. 이 편견이 외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면 차별이다. 이들은 편견과 차별이 인간의 힘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편견이 있고 누구나 편견에 따라 차별한다! 그래서 차별을 최소화하는 첫 단계는 자신의 편견을 부인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에는 <민주시민을 위한 사회정의 교육 입문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들이 강조하는 비판적 사고는 '사회정의', 정확히 말하면 '비판적인 사회정의'를 위한 것이다. 비판적인 사회정의는 사회에서 인종・계급・젠더(사회적 성)・섹슈얼리티(성적 지향)・능력에 따라 구분되는 사회집단들이 서로 중대하고도 광범위한 위계관계에 있음(구분되어 있고 불평등함)을 인지하는 특정 이론적 관점으로 정의된다.

저자들은 비판적 사회정의가 불평등이 사회 조직에 구조적으로 깊이 뿌리박고 있음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꾀한다고 규정한다. 최근 급격히 고조되고 있는 이른바 '메갈리아 사태'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상충하는 다양한 논점과 주장들이 난무해서 매우 복잡해 보였다. 책을 읽다 몇 가지 중요한 단서들을 포착했다.

저자들은 사회적 불평등이 현실이고 실재하며, 사회집단마다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고 보았다. 따라서 사회정의를 이루려면 자신이 속한 집단 안에서의 사회화(위치성, positionality)를 성찰해야 하고,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불평등에 도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불평등한 사회 권력관계가 미시적(개인) 차원과 거시적(구조)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행사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비판적 사회정의를 위한 실천의 한 방편이라고 본다. 이들의 논리를 빌려 말해보자.

부인하고 싶은 남성들이 많겠지만 여성에 대한 사회적 성 차별은 '사실'이다. 살인, 폭행, 강간 등 여성에 대한 중대 폭력은 '문제' 있는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한 남녀 권력관계와 사회적인 성차별 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 여성과 남성 사이의 불평등한 사회 권력관계가 각 개인의 의식과 사회 구조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통계를 통해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에 따른 '폭력적인' 실태를 보자. 전 세계 강제노동・노예노동・강제매춘에 시달리는 성인과 아동은 1230만여 명이며, 인신매매 희생자 가운데 80퍼센트는 여성이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09년부터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집계하여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들의 통계를 내온 결과, 2015년까지 7년 동안, 남편 혹은 애인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잃을 위험에 처한 여성들이 1051명에 달했다고 한다. 최소 2.4일에 여성 한 명이 살해됐거나 살인미수 사건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다.

2015년 세계은행 분석 자료에 따르면 일생 동안 배우자로부터 신체적 혹은 성적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는 여성이 전체 여성의 30%에 달했다. 우리나라가 속해 있는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30퍼센트였다.

북미 지역은 21퍼센트로 우리보다 낮았다. 그런데도 미국 여성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은 강간을 당한다. 1년으로 치면 3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 현실이 익히 짐작된다. 경찰청범죄통계에 따르면 2011년 총 1만6404건의 강간·강제추행 범죄가 2014년에는 2만31건이 발생하며 3627건이 증가했다. 하루 평균 약 54건, 시간당 2.25건의 강간·강제추행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여성 대상 폭력에 대한 연구: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전국 19세 이상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53.5퍼센트가 남자 친구에게 폭력 피해를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성추행 유형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남녀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격차는 36.6퍼센트로 나왔다. OECD 평균은 15.6퍼센트였다. 우리나라 남녀 노동자의 임금격차는 2000년 이후 줄곧 1위다.

다른 통계를 더 빌려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직관적으로' 여성 차별이 심각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성차별 '구조'를 제대로 보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센소이와 디앤젤로가 펼쳐놓은 논점을 보자.

첫째, 지배문화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집단' 차원의 차별 패턴이 가려진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독립된 사건으로 보거나 특정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 사례로 포장하는 식이다. 이들에 따르면 억압을 나쁜 사람 몇몇이 행하는 개별적 행동으로 정의하면 사회제도가 성차별을 조직하고 유지하는 일상적 방법이 유폐된다. 극도의 심리적 불안이나 현실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사건들이 침묵 속에 은폐되는 탓도 클 것이다.

둘째, 기업이 생산하는 대중문화가 광고, 학교 커리큘럼 지원, 대중매체(인터넷) 등의 여러 진입경로를 통해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하는 제도가 되었다. 기업이 생산하는 장난감은 과거보다 더 여성성(양육, 돌봄, 아름다움과 관련된 놀이)과 남성성(공격성, 폭력성, 신체활동과 관련된 놀이)이 각각 과도하게 부과된 채 진열대에 놓인다. 기업 문화가 지배, 감정 절제, 강인함, 정서적 애착 등의 남성성과 수동성, 다정함 등의 여성성이라는 이분 구도를 강조한다.

기업이 이윤을 위해 고정된 성역할을 축소하기보다 강화하는 한편, 또 우리는 자유로운 나라에 살고 있다고 믿게끔 사회화된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정상이고 건강하고 더 낫게 비춰진다(예를 들어 우리는 쇼핑몰에 있는 체인점에서 노출이 심한 옷이건 아니건 마음껏 골라 입을 수 있고 브랜드를 선택함으로써 개성을 표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그들'(이슬람 여성-기자말)은 온몸을 가리는 똑같이 생긴 옷을 입어야만 한다는 식으로). 서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성차별의 사례에 관심이 돌려지는 한편, '이곳'의 성차별 사례는 과거의 일로만 여겨진다. 이렇게 하여 우리 주위에 있는 성차별주의의 패턴과 결과는 감추어진다. (160쪽)


북미 지역 현실을 바탕으로 한 진술이지만 우리나라 현실에 비춰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메갈리아 사태를 '눈이 먼 채' 바라보는 남성들이 많은 것 같다. 그들은 여성에게도 남성과 똑같은 투표권이 있으며, 여성들이 법이 보장하는 무수한 권리를 차별 없이 누린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군대를 가지 않는 여성들이 '특혜'를 받는 셈이니 오히려 남성 '역차별'이라며 볼멘소리를 하고 싶어할 수 있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이 책의 '머리말' 한 구절을 소개한다.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을 정상이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불평등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다. 특히 우리 모두가 이 체제 안에서 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죄책감을 자극하거나 여러분을 나무라려고 이 여정을 시작하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 죄책감이나 비난은 쓸모도 없고 건설적이지도 않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불평등을 유지하는 이 체제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 체제를 뒤흔들기 위해 애쓸 것인가, 아니면 고개를 돌림으로써 유지에 기여할 것인가는 개개인의 선택이다. 중립 지대는 없다. 불평등에 저항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불평등을 용인한다는 의미다. 이 책이, 여러분이 불평등에 반대하여 행동에 나서도록 북돋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19쪽)


<정말로 누구나 평등할까: 민주시민을 위한 사회정의 교육 입문서>(어즐렘 센소이・로빈 대앤젤로 지음, 홍한별 옮김 / 착한책가게 / 349쪽 / 2,0000원)

덧붙이는 글 | 정은균 시민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정말로 누구나 평등할까? - 민주시민을 위한 사회정의 교육 입문서

오즐렘 센소이.로빈 디앤젤로 지음, 홍한별 옮김, 착한책가게(2016)


태그:#<정말로 누구나 평등할까>, #메갈리아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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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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