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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태 위원장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특조위 조사 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이석태 위원장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특조위 조사 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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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오전 10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아래 세월호 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이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희생자가족대표회의에서 추천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급' 인사가 올해 또다시 정부를 상대로 농성을 하는 '진귀한(?)'장면이 발생한 것이다.

이석태 위원장은 정부가 지난해 2015년 3월 27일 입법예고한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안(아래 시행령안)'이 조사범위를 축소시키고, 파견공무원을 의사구조의 상층에 배치시켜 세월호 특조위가 내부로부터 무력화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시행령안을 철회하지 않자 그는 같은해 4월 27일 광화문 광장에서 일주일 동안 연좌농성을 진행했다. 

지난 27일, 또다시 농성에 나선 이 위원장은 기자회견문에서 2016년 6월 30일부로 세월호 특조위 조사 활동을 강제종료한 정부의 방침은 위법하고 부당한 행위라며, 조사활동의 '연장'이 아닌 '보장'을 주장했다. 

"정부는 특조위가 작년 1월 1일에 출범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조직의 체계와 틀을 규정한 시행령은 5월에 제정하였고, 사업비 항목을 대폭 삭감한 예산은 8월에 들어서야 마지못해 지급하였습니다.

별정직 직원 최고직인 진상규명국장을 끝끝내 임명하지 않아 진상규명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으며, 19명이나 되는 공무원도 파견하지 않아 조사활동에 전념해야 할 조사관들이 일반 행정업무에 과도하게 투입됨으로써 업무스트레스를 가중시켰습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 6월 30일로 특조위 활동기간이 끝났다고 하면서, 조사활동을 일방적으로 종료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2016년 7월 27일 이석태 위원장 기자회견문 중)

장관급 인사가 또 농성에 나섰다, 정부 때문에

지난 7월 1일 오전 서울 중구 저동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특조위)앞에서 열린 특조위 강제해산 중단과 성역없는 진상조사 촉구 기자회견.
▲ "세월호특조위 강제해산 안돼!" 지난 7월 1일 오전 서울 중구 저동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특조위)앞에서 열린 특조위 강제해산 중단과 성역없는 진상조사 촉구 기자회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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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15년 7월 27일 별정직 조사관에 임명되어 조사활동을 시작했다. 내 시각으로 이석태 위원장은 법률가로서 평소 법률적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온건한' 인사다. 이런 위원장이 농성까지 이르게 된 것은 도저히 법리로서도 해석되지 않는,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정부의 방침에 '최대한'의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을 채택한 것이라고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을 둘러싼 논란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필자가 임명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2015년 7월 30일, <경향신문>은 "특조위 개시 날짜, 정부 주장 1월 1일은 타당하지 않아"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고, 7월 31일 국회 입법조사처는 박원석 당시 정의당 의원의 특별법 검토요청에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5월 11일이나 사무처 조직 구성 완료일을 활동 시작일로 보는 것이 특별법의 입법 목적, 특조위 활동의 실효성 보장을 중시하는 적절한 해석"이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또한 탐사전문채널인 <뉴스타파>의 2016년 6월 30일 "세월호 특조위만 다른 잣대... 정부의 전대미문 법해석" 보도를 살펴보면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등 특별법을 통해 구성된 역대 정부 산하 12개의 위원회에 대해 조사한 결과, 모두 위원회의 구성 시점을 1. 법률 제정 후 2. 시행령이 만들어지고 3. 시행령을 바탕으로 조직과 예산이 확보된 후로 기산하고 있었다.

즉,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 개시일을 세월호특별법 발효일인 2015년 1월 1일 로 규정하고, 2016년 6월 30일에 조사활동 강제 종료를 집행한 것이 법리적으로 온전한 해석도 아니고, 사례도 없는 강제적이며 자의적인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스스로의 모순을 여지없이 남기기도 했다. 지난 2015년 11월 19일 <머니투데이>가 단독 보도한 "해수부 '세월호 특조위, BH 조사시 與위원 사퇴 표명'…'대응방안' 문건" 기사를 보면 해양수산부는 자체적으로 특조위의 활동 개시 기준을 2015년 3월 9일, 이석태 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받는 날로 삼고 있다. 해수부는 이를 '합리적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 종료일은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2016년 9월 9일이 된다. 해양수산부는 문건에서 그것을 '합리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미 활동기간은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보고 '거래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정부는 가장 보수적이며 극단의 판단을 한 것인가. 그에 대한 추측은 이미 여러 가지 경로와 보도를 통하여 전달된 바 있으니 이 글에서는 생략하도록 한다.

문제는 늘 '강제적'이라는 데 있다. 법리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사안을 보는 입장이 다를 수 있다. 민주사회 국가는 이럴 경우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조정과 타협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 있어 논란이 발생할 경우 결국 리트머스 시험지를 회수하는 것은 늘 정부였고, 그 선택은 항상 소극적이며 방어적인 것이었다.

2014년 7월부터 세월호참사국민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청원운동이 무위에 그친 것을 시작으로, 2015년 5월 정부 측 시행령안 통과, 2016년 6월 세월호 특조위 강제종료에 이르기까지 유례없는 참극을 가져온 세월호 침몰 사고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뭐하나 전향적이며,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다.

무엇이 위원장을 단식 농성으로 내몰았는가

지난 5월 이석태 위원장이 경기도 안산 단원고에서 희생 학생 제적처리 및 기억교실 무단 철거 항의하는 유가족들의 농성장을 방문했다.
▲ 단원고 농성장 찾아온 이석태 위원장 지난 5월 이석태 위원장이 경기도 안산 단원고에서 희생 학생 제적처리 및 기억교실 무단 철거 항의하는 유가족들의 농성장을 방문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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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보자. 이석태 위원장이 정부를 향해 농성을 하는 것이 사실상 결정권을 쥐고 있는 박근혜 정부와의 직접적인 담판이자 문제 해결의 가장 빠른 길인 제1차 돌파선이라고 한다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에서의 세월호 특조위 안건은 제2차 돌파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16년 5월 10일 그동안 세월호 특조위의 활동기간 보장 문제로 파행을 거듭해왔던 농해수위의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아예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문제에 대응했다. 조사활동의 보장을 넘어 활동기간의 연장과 조사권한의 강화를 축으로 한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이 상임위에서 빛조차 보지 못하고 힘의 우위에 의해 자동 폐기된 것이다.

여야의 권력교체가 이뤄진 20대 국회에 들어서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국회의원 128명이 공동 입법발의하고 국민의당이 보조한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이 2016년 6월 7일 발의되었지만, 국회 본회의까지 상정되는 절차가 만만치 않다. 그런 까닭에 다시 공은 농해수위로 돌아와 법 개정이 아닌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세월호TF까지 설치되었지만, 지난 7월 14일, 18일 두 차례에 걸친 TF회의에서 여야의 입장차만 확인하고 폐회됐다. 점점 아까운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더군다나 지난 5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원내지도부와의 회동에서 세월호 특조위 활동연장을 두고 "국민 세금도 많이 들어가고, 여론도 찬반이 있다, 국회에서 협의해 줬으면 좋겠다"고 포문을 연 마당에 세월호TF 여당 측 의원이 청와대로부터 별도로 전향적인 메시지를 얻지 못한다면 과연 누가 문제해결에 앞장 설 수 있겠는가. 결국 밝은 전망을 세우기는커녕 핑퐁게임을 하자는 얘기로 귀결되고 있는 흐름이다. 이렇게 세월호 특조위가 계속해서 사지로 내몰렸던 역사가 지금 이석태 위원장의 농성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적어도 선체 조사까지는 해야 하지 않겠나

지난 5월 29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초선 당선인과 유가족을 태운 어선이 전남 진도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세월호 인양작업중인 중국 상하이셀비지 바지선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5월 29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초선 당선인과 유가족을 태운 어선이 전남 진도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세월호 인양작업중인 중국 상하이셀비지 바지선을 둘러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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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이런 질문을 할 수가 있다. 그간 검경합동수사본부에서도 밝혀내지 못한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이, 또한 그간 짧게나마 진행된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과정에서 밝혀내지 못한 직접적인 원인이 조사기간 몇 개월이 보장된다고 하여 밝혀질 수 있는가. 물론 그것은 누구라도 장담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지만 적어도 세월호가 인양된 이후, 할 때까지는 해보고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2015년 11월 12일 세월호 선원 사건 판결문에서 사고의 원인을 특정하지 못하고 조타유압장치의 솔레노이드벨브(Solenoid Valve) 안에 오일찌꺼지가 낀다거나, 엔진 이상 등으로 좌현 프로펠러만 작동했을 가능성을 명시했다. 세월호 인양 후 선체조사는 세월호 침몰의 진상규명에 있어 ABC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선체를 조사하여 진상을 규명하는 독점적이고 고유한 권한을 세월호 특별법이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6.30 강제종료 통보에도 불구하고 이 사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월호 특조위 위원장은 농성으로서나마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동시에 위원회는 예산이 없음에도 전체회의를 통해 9월 1일과 2일 양일에 걸쳐 제3차 청문회를 의결했다. 대다수의 별정직 조사관들은 출근투쟁을 통해 일상 업무와 '제한된' 조사를 병행 중이다.

상상해보자. 정부로부터 독립된 사고조사위원회를 수립하기 위해 650만 명 이상의 서명을 통해 '세월호 특조위'가 만들어졌다. 이제 머지않아 배가 인양되는데, 특조위가 조사권한을 상실한다면 여야의 입장 차이를 떠나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역사는 정부의 조사 권한 배제 결정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기술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논란들에 대한 가치 판단은 필자의 시각에서는 제법 간단한 문제다. 2년이 넘게 지났다하더라도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우리사회에 도움이 되는가, 해가 되는가? 세월호 침몰과 관련하여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빠짐없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러지 않아도 되는가?

논란이 발생한다하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엔 침몰로 죽어간 생명들의 가치가 너무나 고귀하다. 부디 세월호 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의 광화문 농성이 고립되지 않도록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부탁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동환씨는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입니다.



태그:#세월호 특조위, #이석태 위원장, #세월호 특별법, #단식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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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생기면 항상 펜을 잡는 자유기고가. 시민단체 흥사단에서 이사로 활동했으며, 최근까지 국회 정무위원장 비서관으로 일했습니다. '근거있는' 소통의 공간을 열기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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