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기획된 16부작을 14부작으로 조기에 종영하기로 결정 난 <뷰티플 마인드>. 하지만 부진이라는 말에 아랑곳없이, 조기 종영이라는 불명예가 무색하게, <뷰티플 마인드>의 서사는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다. 주제 의식은 명징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괴물의 아이, 이영오

 <뷰티풀 마인드>에서 사이코패스로 등장하는 장혁은 누구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뷰티풀 마인드>에서 사이코패스로 등장하는 장혁은 누구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 KBS 2TV


자신의 눈을 가렸던 선글라스를 벗고, 계진성(박소담 분)에게 다시 한 번 사랑을 시도해 보겠다고 다짐했던 이영오(장혁 분). 묵직했던 이야기가 말랑말랑한 연애사로 참기름 칠을 하나 싶더니, 그게 아니었다. 사람처럼 사랑을 해보고 싶다던 의사 이영오. 그가 처한 상황이 그를 다시금 뭉개버렸다.

레지던트 동하가 살려낸 친구가 햇빛을 피해야 하는 루푸스라는 질병에 걸렸음에도 먹고 살기 위해 건물에 오르다 추락해 응급실에서 젊은 생을 마감한다. 그 순간 동하를 비롯한 응급실의 모든 스태프들은 오열하고 만다. 하지만 눈물을 흘릴 수 없었던 단 한 사람, 이영오는 뇌 CT를 찍고 자신의 전두엽에 변화가 없음을 확인한다. 계진성을 만나 두근거렸던 심장조차 결국 학습이라고 결론 내린 이영오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사랑마저 포기하고 만다.

평범한 사람과 사이코패스의 간극에서 좌절하고만 이영오. <뷰티풀 마인드> 12회는 이영오의 좌절과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괴물의 슬픔, 그 이면의 진실을 폭로한다. 이미 앞선 회차에서 이영오의 사이코패스성이 아버지 이건명(허준호 분)의 의료 과실이었음을 드라마는 드러냈지만, 그 사실 이면에 또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음이 드러난다.

이영오의 아버지 이건명은 보통사람처럼 (확률이 아닌) '마음'으로 환자를 지켜보는 아들 이영오를 통해 자신의 교육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사실 이영오는 이건명의 의료 과실이 아니라 미흡한 의료 기술로 말미암은 오진이었다. 즉 이영오는 전두엽에 장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두엽에 장애가 있다고 '믿은' 이건명에 의해 사이코패스로 키워진 것이다. 결국 이건명은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이영오를 장기간에 걸쳐 교육이란 명목으로 정신적인 학대를 가했고 그 결과 이영오는 전두엽의 장애를 가진 인물로 태어났다.

누가 진짜 괴물일까?

 과연 누가 괴물인가? 사이코패스 이영오인가 아니면 그의 아버지 이건명인가? 어쩌면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KBS일지도 모른다.

과연 누가 괴물인가? 사이코패스 이영오인가 아니면 그의 아버지 이건명인가? 어쩌면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KBS일지도 모른다. ⓒ KBS 2TV


사이코패스가 되어버린 이영오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식을 위해서'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의 입신양명에만 힘을 쓴 많은 부모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자식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뷰티풀 마인드>에서처럼 그 본심은 자신의 명예, 자신의 위선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는 걸, 드라마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폭로한다.

그렇다고 이건명을 '괴물'이라 지칭하면 끝날까? 그러기엔 <뷰티플 마인드>를 통해 드러난 괴물들이 너무 많다. 당장 이건명은 평생을 바쳐 '외과 의사가 필요 없는 세상'을 위해 신약 계발에 매진해 왔다. 이건명이나, 현석주(윤현민 분)가 명예를 위한 이기심에 휩쓸렸다지만, 그를 비롯한 연구진의 열정은 '현성그룹'이라는 자본 앞에서 무기력하다. 자본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원장이 된 이건명을 과거의 오명으로 흔드는 건, 외국 자본의 앞잡이가 된 친구다.

한때 같은 반, 같은 책상에 나란히 앉았던 급우가 환자와 의사로 만나게 되듯, 세상 물정 모르는 의사가 우정의 선심으로 환자를 고쳐놔도, 몇 시간 만에 결국 생계의 전선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오듯, 우리가 사는 사회의 시스템은 한 개인을 넘어선다. 드라마는 곳곳에서 개인들의 이기심과 욕망, 그리고 갈등들이 터지지만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건, 시스템이다. 개인의 명예도, 자식을 위한 사랑도, 순수한 열정도 모두 '자본'이라는 시스템 속에 휘말려 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이코패스이자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의사, 인간적 유혹에 가슴이 뛰지 않는 의사가, 이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강직하고, 가장 선하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술을 펼치는 인간이 된다.

이것은 비단 드라마 내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4%조차 넘기 힘들어 조기 종영 '당하는' <뷰티풀 마인드>의 곳곳에서 만나는 문제들과 대사들은, 마치 이 드라마가 조기 종영당할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시의적'이다. 드라마 속 의사들은 환자를 생각하기 전에, 서슴없이 돈을 떠올리고, 의사로서의 위상을 앞세운다.

<뷰티플 마인드>는 올림픽을 이유로 애초 기획됐던 16부 대신, 14부로 조기 종영된다. 이 소식을 알리는 여러 기사들은, 마치 12부로 조기 종영할 것을 선심 쓰듯 14부로 마무리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자본 논리로 돌아가는 드라마 시장에서, 광고가 붙지 않고 젊은 한류 스타가 붙지 않아 해외 시장 판매조차도 쉽지 않은 이 드라마의 조기 종영은 당연한 듯 자본주의적 논리로 치부된다. 초반의 매끄럽지 않았던 진행에 그 책임을 묻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논리로 돌아가는 시장에서 예술이나 고상한 주제 의식은 손가락질받는다. 아이러니한 점은 KBS가 시청료를 받는 방송국이라는 것이다.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공영 방송. 이곳에서 한 편의 드라마가 조기종영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조기 종영을 둘러싼 불협화음들은 묘하게도 현성병원 속 자본의 논리와 맞물린다. 그 속에서 사람답지 않은 마음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영오는, 흔들리지 않는 주제 의식과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고자 애쓰는 <뷰티풀 마인드>와 겹친다. 사이코패스 이영오 뒤에는 그를 키운 괴물 아빠 이건명이 있다. 그리고 그의 명예심을 이용해 그를 뒤흔드는 '자본' 현성이 있다. 20부작이라고 해도 아쉽지 않을 드라마를 고작 몇 퍼센트의 시청률을 들먹이며 발목 걸고만 방송국이 있다. 과연 이 중에서 끝판왕 괴물은 누구인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뷰티플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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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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