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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 미국 신시내티 본사
 P&G 미국 신시내티 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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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난상토론이었다. 질문은 계속됐고, 답변은 진중했다. 예정됐던 30분을 훌쩍 넘어, 100분이 다 돼갔다. 지난 12일 오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프록터앤드갬블(이하 P&G) 본사 1층 대회의실. P&G는 세계 180개국에서 생활건강용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아이보리' 비누로 유명한 P&G는 오랄비, 질레트, 페브리즈 등이 각분야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날 대회의실에는 한국에서 온 기자 수십여명과 P&G 본사 관계자와 연구원 등으로 가득찼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진지했다. '한국인은 페브리즈를 음식점에서 사람과 입은 옷을 향해 마구 뿌리는 경향이 있다', '방에 누워있는 아이가 코를 통해 흡입할 경우 위해하지 않을까' 등. 질문은 꼬리를 물었다. 독성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학자인 존 칸드웰(영국 리버풀대) 명예교수의 '페브리즈 안전성'에 대한 발표가 있은 후였다.

P&G 본사 고위 임원 뿐 아니라 연구개발센터의 주요 연구원과 박사 수십여 명도 자리를 잡았다. 마크 프리처드 P&G 글로벌브랜드 최고책임자는 "1837년 회사가 만들어진 이후 외국기자들에게 우리의 모습을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며, 역사적인 일"이라고 했다. P&G의 또 다른 관계자는 "입사 이래, 이렇게 많은 연구원들을 한자리에 만나 본 적이 없다"면서 "이런 토론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페브리즈가 뭐길래..."1분에 1300번 뿌려야 유해"

P&G 에어 및 패브릭 케어 수석연구원 메리 존슨 박사.
 P&G 에어 및 패브릭 케어 수석연구원 메리 존슨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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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의 핵심은 페브리즈의 유해성 여부였다. 이미 한국에선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생활용품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었다. 섬유탈취제인 '페브리즈'도 소나기를 피할 수 없었다. 페브리즈는 스프레이 형태로 분무기의 버튼을 당기면 물방울이 뿌려진다.

문제는 이 물방울에 들어있는 성분의 안전성 논란이다. 페브리즈는 물과 알코올, 구연산 등 10여 가지 성분으로 돼 있다. 이 가운데 안전성 논란을 빚은 성분은 디데실디메틸암모니움클로라이드(DDAC)라는 물질이다. 주로 방부제와 항균제로 쓰이는데 4급 암모늄의 일종으로 수영장 소독 등에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한국에선 식당 등에서 냄새를 빼기 위해 페브리즈를 옷 등에 수차례에 걸쳐 직접 뿌리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코 등을 통해 DDAC 물질이 흡입될 가능성에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P&G 연구개발센터의 메리 존스 박사는 "한국 소비자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페브리즈는 이미 80개국에서 20년 동안 사용되고 있는 제품"이라며 "(페브리즈의) 입자 크기 때문에 인체의 폐까지 들어가지 않으며, 1분에 1300번 이상 뿌려야 코 점막에 약간의 이상을 줄 정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반 성인 남성도 페브리즈 분무기를 1분에 최대 200회 이상을 뿌리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또 이 회사에서 한국 소비자를 상대로 사용량을 조사한 결과, 하루에 페브리즈를 많이 뿌리는 사람은 평균 9~11회 정도. 결국 '안전에는 전혀 문제없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P&G는 이어 미 환경보호국(EPA)으로부터 승인받은 독성실험 연구자료까지 취재진에 공개했다. 이 자료는 우리 환경부에도 제출됐다.

"페브리즈 공기 중에 뿌려도 1분 지나면 사라져"

P&G 글로벌 과학기술부의 제인 로즈 박사.
 P&G 글로벌 과학기술부의 제인 로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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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학 분야의 세계권위자인 칸드웰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난 50여년 동안 정부기관 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등으로부터 각종 화학물질의 인체 흡입독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고 소개했다. 이어 "페브리즈 역시 독립적인 연구 평가를 수행했으며, 과학적으로 엄중한 안전 기준을 따르고 있다"며 "제품이 표기하고 있는대로 사용하면 흡입 독성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과연 정말 흡입 독성에 문제가 없을까. 그들이 말하는 페브리즈의 안전성을 따져보면 이렇다. 우선 페브리즈의 DDAC 성분이 우리 몸 속에 들어가 축적될 수 있느냐다. 결론은 페브리즈 입자의 크기가 물방울 크기여서 사람의 폐 속까지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제인 로즈 P&G 글로벌과학기술부 인체안전성 독성학자는 "보통 스프레이 제품의 경우 입자 크기가 100 microns(마이크론) 이상의 경우 중력 때문에 공기 밑으로 바로 떨어진다"면서 "30~50 마이크론의 입자는 코, 목 등 상부호흡기에, 10~30 마이크론 정도는 기관지, 기도 등까지 갈 수 있고, 10 마이크론 이하의 작은 입자정도가 폐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전했다.

로즈 박사는 "페브리즈의 경우 입자 크기가 대개 85~120 마이크론 정도로 만들어지고 있다"면서 "이를 공기 중에 뿌려도 1분 정도 지나면 거의 남아있지도 않고, 사람의 폐로 흡입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권석 박사(독성학)도 "설령 아주 소량이라도 코와 목 등 호흡기에 DDAC가 들어갔을 경우에는 대개 기침이나 가래 형태로 외부로 빠져나온다"고 전했다. 권 박사는 "페브리즈에 들어있는 DDAC의 농도 역시 미 환경보호국에서 제시하고있는 안전 기준치보다 447배나 낮은 수준"이라며 "안전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재차 설명했다.

178년 동안 '할머니 법칙' 따른 그들, 유해성 논란에 답하다

P&G 아이보리데일 혁신센터에서 실험중인 연구원.
 P&G 아이보리데일 혁신센터에서 실험중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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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제품 안전'에 대한 자부심은 P&G 연구개발 센터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신시내티 시내의 본사로부터 차로 10여분 거리에 떨어진 아이보리데일(Ivorydale) 혁신센터. 지난 13일 기자가 찾은 이 곳은 다른 글로벌기업의 연구시설 처럼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돼 왔다.

마크 프리처드 P&G 글로벌브랜드 최고책임자는 "1886년에 만들어진 이곳 혁신센터는 우리의 심장과 같은 곳"이라며 "외부인에 이곳을 공개하는 것은 130년만에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김주연 한국 P&G 사장도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출입 절차 역시 까다로웠다. 개인 신상에 대한 확인 뿐 아니라 실내에선 회사 관계자의 통제 아래 움직여야 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사고에 대비해 보안경을 써야 했고, 신발은 발가락이 나오지 않도록 앞이 반드시 막혀 있어야 했다. 물론 사진을 비롯한 영상 촬영은 전면 금지됐다. 이곳에는 100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고, 이 가운데 650명이 화학과 독성 등 관련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특히 이날 기자가 찾은 입자크기, 성분분석실험실이 인상 깊었다. 이곳에선 페브리즈 성분 가운데 유해성 논란을 빚고 있는 DDAC에 대한 입자 크기와 공기중 잔류 여부 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코에서 5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스프레이를 분사한 후에 해당 시점에서 DDAC를 측정해보니 0.032가 나왔다. 이후 1분 후에는 아예 검출되지 않았다.

자이 리우 수석연구원은 "실제 소비자들의 제품 이용 행태에 따라 같은 환경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대체로 사람들이 옷에 페브리즈를 뿌릴 때 45도 각도로 여러 곳에 걸쳐 3번 정도 분사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페브리즈의 모든 성분은 안전 기준치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해 관리되고 있다"면서 "입자 크기 역시 커서 분사 후에는 곧바로 바닥으로 떨어지게 돼 있다"고 소개했다.

이 회사 안전성관리부의 스콧 하이드 박사는 "자연 성분이라고 인공 성분보다 모두 안전한 것도 아니다"고 했다. 그는 주황색 당근이 담겨져 있는 바구니를 들어보이며, "이 바구니에 들어있는 당근 70개를 한꺼번에 먹게되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연이든, 인공이든, 적당한 양을 적절한 시간에 맞게 조절해 가며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특히 어느 범위까지 안전한 것인지를 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이드 박사는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면서, "모든 제품이 나의 할머니가 사용해도 좋은 것인지를 고려하는 '할머니 법칙'을 항상 따르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김주연 한국P&G 사장도 "제품 안전은 178년 동안 절대 타협하지 않은 회사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서 안전성 논란이 불거진 후 페브리즈 성분 모두를 공개하고, 정부의 조사에 관련 연구자료를 제출하는 등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도 했다. 사실상 페브리즈를 둘러싼 안전성 논란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얼마나 반응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오는 9월 말 환경부에서 섬유탈취제 전반에 걸친 안전성 전수조사 결과 발표가 분수령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P&G가 이번에 보인 제품 안전과 정보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열린 토론 등은 국내 다른 기업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좋은 본보기였다.

한국 P&G 김주연 사장.
 한국 P&G 김주연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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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P&G, #아이보리데일, #김주연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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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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