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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해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2015년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오늘은 2015년 7월 5일 주일이다. 이번 여행에 동반한 박세희(가명) 교수와 호텔 식당에서 만나 아침식사를 함께한다. 우리가 원산에 다녀오는 동안 박 교수는 자신의 전공인 월북작가들의 전후 작품들을 찾아 줄곧 인민대학습당에서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박 교수의 말을 들으니 상당히 많은 작가들이 월북했다. 임화, 한설야, 정지용, 김기림, 홍명희 등 몇몇을 제외하곤 대부분 모르는 작가들이다. 그중엔 월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작가도 있다. 백석 시인이 그중 한 사람이다. 그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다. 그냥 자신의 고향으로 간 것일 수도 있다.

이들은 북에서 어떤 작품들을 남겼으며 그들이 바랐던 사회주의 조국 건설에 어떻게 기여했을까. 자신들이 작품에서 추구했던 사회는 오늘날 북한과 같은 모습일까 아니면 다른 모습일까. 기회가 되면 그들이 북에서 쓴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다.

지난번 주일에는 가톨릭 신자인 박 교수를 따라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이번 주일은 박 교수가 장로교도인 나와 함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한다. 오늘은 그동안 줄곧 찾았던 '봉수교회'가 아닌 '칠골교회'에서 처음으로 예배를 드린다. 박 교수의 안내원 송영혜 선생의 인솔로 교회로 향한다.

평양 칠골교회 집사님들과 인사를 나누며.
 평양 칠골교회 집사님들과 인사를 나누며.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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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골교회'는 평양시 만경대구역(구) 칠골동에 있다. 김일성 주석의 어머니 강반석씨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강반석씨의 친정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 일제 치하에서 민족의 교육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이 외가에 머무르며 다녔던 미션 스쿨인 창덕학교가 이곳에 있다.

이 학교의 설립자가 바로 김 주석의 외할아버지인 강돈욱 장로다. 이 지역에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주한 주민들 중 가정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기독교인들이 교회당 건립을 요청했단다. 그러자 김일성 주석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곳에 교회당 건립을 허락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내가 서 있는 이 길을 따라 주일 아침, 한손엔 성경책을 든 어머니의 또 다른 손을 꼭 부여잡고서 교회를 향해 밭두렁 사이를 걸어갔겠지. 김일성 주석의 유년시절 모습을 상상하니 기독교인인 나로서는 이곳에서 느끼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김 주석이 평양을 떠나 만주 용문중학교를 다닐 적,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됐을 때에도 김 주석을 감옥에서 빼냈을 뿐만 아니라 물심양면으로 보살피며 도와준 분도 목회자인 손정도 목사다. 손정도 목사의 아들이 훗날 한국의 초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손원일 제독이라니, 이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찬송가를 부르는 평양 칠골교회 성도들.
 찬송가를 부르는 평양 칠골교회 성도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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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칠골교회 주일 예배 대표기도 모습.
 평양 칠골교회 주일 예배 대표기도 모습.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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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칠골교회 예배를 마치고 나온 성도들.
 평양 칠골교회 예배를 마치고 나온 성도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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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당 안, 한쪽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는다. 눈물로 포효하듯 조국의 해방을 갈구하며 기도했을 선조들이 흑백 필름처럼 뇌리를 스친다. 가슴 한가득 불덩이 같은 기운이 목젖까지 복받쳐 오른다. 뜨거운 입김으로 되뇐다.

'주여! 분단의 아픔으로 신음하는 우리의 남과 북, 한민족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하여 부디 화평함으로 분단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게 자비를 베푸소서.'

진정 나의 하나님은 북한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끼며 칠골교회 목사님과 집사님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교회를 나섰다. 내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예전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던 이곳 평양에 더 많은 교회가 세워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교회들은 작금의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가 아닌,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안녕을 위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그런 교회여야만 한다.

진짜 평양냉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

고구려 시대 성문인 평양 보통문.
 고구려 시대 성문인 평양 보통문.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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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양랭민'(평양냉면)에 푹 빠진 박 교수가 점심은 옥류관에서 먹잔다. 박 교수는 미식가이면서도 냉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미국에서도 냉면집에서 만나자고 하면 늘 시큰둥했다. 마지못해 냉면집에 가면 그나마 물냉면을 무슨 맛으로 먹냐며 물냉면 전문식당에서 비빔 냉면이나 다른 음식을 주문하곤 했다. 그런 그녀가 평양에 와서는 물냉면만 찾는다.

우리가 탄 차량이 옥류관을 향해 '보통문'을 지난다. '보통문'은 6세기 평양성과 함께 건축됐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개건돼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애초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서울에 있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의 모습과 너무 흡사해 그저 조선시대의 성문 모습일 뿐 고구려의 자취는 없어 보인다. 그래도 원래 고구려의 성문이었다는 사실이 평양의 역사성을 한 층 더해준다.

박 교수는 옥류관에 가까이 다가서자 자신이 '피양랭민'을 좋아하는 이유를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구구절절 읊는다. 

"첫째, 국물이 달지가 않잖아요. 우리가 먹는 냉면국물은 그게 설탕물이지 육수 국물이에요? 근데 '피양랭민'은 전혀 달지가 않고 국물에서 온갖 맛이 다 어우러져 나오는 거예요. 둘째, 나는 냉면에 이렇게 많은 재료가 들어가는지 몰랐어요. 그냥 국수를 설탕물에 담가 고기 몇 조각과 오이채나 무채를 얹어 먹는 거로 알았지요. 근데 닭고기, 쇠고기, 돼지고기, 꿩고기…, 게다가 온갖 양념을 섞은 다대기가 정말 끝내줘요."

박 교수의 '피양랭민' 예찬을 듣고 있던 안내원 송영혜 선생이 냉면 국물의 비밀을 밝혀준다.

"박 교수님, 랭면은 국물이 전부입니다. 방금 여러 종류의 고기가 섞여 있다고 했는데, 여러 가지의 고기를 우려낸 국물이 바로 그 국물입니다. 고저 여러 고기를 섞어 우려낸 것이 다가 아니라 그 외 다른 재료가 들어가고 또 그 비율이 중요한데, 기건 요리사의 비밀이랍니다, 하하. 기래 '인민료리사'가 따로 있는 게지요."

송 선생의 설명을 듣고 있던 박 교수가 냉면이 맛있는 이유를 계속 이어간다.

"근데요, 냉면이 맛있는 이유가 또 있어요. 바로 냉면 먹기 전에 나오는 녹두지짐이에요. 처음 북에서 녹두지짐이를 보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몰라요. 남에서는 녹두지짐이를 빈대떡이라고 부르는데 엄청 재료가 많이 들어가거든요. 돼지갈빗살, 김치, 숙주 등 그 두께가 2~3센티미터는 되는데 이곳 빈대떡은 종이짝처럼 얇은 데다 가운데 조그만 돼지비계 한 조각 올려놓아 손 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겼거든요. 

근데 식초와 겨자를 섞은 소스에 지짐이를 살짝 찍어 한쪽 먹어보곤 깜짝 놀랐어요. 아, 이게 바로 녹두맛이구나! 녹두 고유의 은은한 맛을 처음 느껴 봤어요. 그걸 먹고 냉면국물을 들이켜니 식욕이 절로 생겨나더라고요."

"야아~, 박 교수님도 역시 조선 사람입니다. 외국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어도 그런 맛을 기래 자세히 말하다니…, 거 참. 지짐이에 이것 저것 얹으면 록두의 맛이 안납니다. 지짐이를 다 먹고 남은 끝에 고소한 돼지비계 한 점 먹고 랭면국물을 들이키면, 햐아~, 그 맛은 조선사람이라야 이해하는데…. 국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메밀과 밀가루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야만 메밀의 구수한 맛이 살아납니다."

'피양랭민' 예찬에 신바람이 나 달려온 우리 자동차가 옥류관에 도착했다.

"머리 길게 풀어헤치고 다니는 사람 없습니다"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박 교수가 꼬마에게 다가가자 아이는 울음을 터트린다.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박 교수가 꼬마에게 다가가자 아이는 울음을 터트린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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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관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박 교수가 한 가족에게 다가가 평양 말씨를 어설프게 흉내내며 말을 붙인다. 박 교수가 아이를 안으려 하자 아이는 울상을 지으며 엄마품에 안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이는 박 교수 품에 안길 생각이 없다. 박 교수가 안내원 송 선생에게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아니, 왜 아이가 나를 보면 울려고 그러지요? 미국서는 전혀 이런 일이 없었는데…. 게다가 평양 말투로 정답게 불렀는데도 말이에요."
"아무리 흉내를 내려고 해도 우리넨 들으면 금방 압니다. 기건 평양말이 아닙니다. 긴데 말투가 문제가 아니라…."

"말투가 아니면 뭐에요?"
"아이 참, 말씀을 드려야 하나…."
"어서 말씀해보세요. 저도 알고 있어야지요."

송 선생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겨우 입을 연다.

"저~, 우리네 사람들 중에서는 선생님처럼 머리를 기렇게 길게 풀어헤치고 다니는 사람이 없습니다. 선생님처럼 기래가지고 다니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한단 말입니다."

옆에서 안내원 얘기를 듣고 있자니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나는 그만 뒤돌아섰다. 남편은 마침 옥류관 주위를 배회하며 사진을 찍느라 이 자리에 없다. 참 다행이다. 만약 이 관경을 목격했다면 박 교수를 두고두고 엄청 놀려댔을 게다. 대화를 듣고 있던 아이 부모도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다. 아이의 엄마가 미안해하며 박 교수를 위로한다.

"우리 아이가 낯을 많이 가려 기런거지 선생님 머리 때문이 아닙니다. 아, 이거 안 됐습니다."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박교수가 얼른 머리를 묶는다.

"이젠 괜찮죠? 진작 말해주시지 않고."
"선생님은 조국을 찾은 손님인데 그런 말을 어케 꺼냅니까. 기런데 머리 묶어 보셔야 기게 기거지 뭐…. 선생님은 척 봐도 우리네 사람처럼 안 보이니 인민들이 이상하게 생각지는 않을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고저 외국인 관광객이나 해외동포인 줄 알 겁니다. 하하, 이거 안 됐습니다. 제가 '정신 나간 사람' 같다는 표현을 해서."

솔직히 송 선생의 말이 맞다. 단정하게 하려고 묶어봤지만 한쪽으로 대충 묶은 머리가 더 정신없어 보인다. 호탕한 성격의 박 교수가 '기왕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려면 내일부터는 머리에 꽃을 꽂고 나타나겠다'고 한다. 능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 약간 걱정이 된다.

평양 옥류관의 녹두지짐이.
 평양 옥류관의 녹두지짐이.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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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옥류관 냉면 .
 평양 옥류관 냉면 .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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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점심 메뉴는 녹두지짐이와 냉면. 박 교수는 송 선생이 일러준 대로 녹두지짐이를 다 먹고 남은 작은 돼지비계 한 점을 입에 넣는다. 그런 후, 냉면사발을 들고 시원스레 국물을 마신다. 이제 박 교수는 냉면을 먹기 위해서라도 꼭 평양을 다시 찾겠다고 다짐한다.

우리 일행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막 식사를 시작하려던 재일동포들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는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한다. 그러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신 선생님, 그래 다친 데는 없나요? 폭탄 테러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랬습니다. 이곳에서 선생님을 뵈니…, 에~, 정말 다행입니다."
"네, 괜찮아요. 철없는 어린 학생이 그만….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서 식사들 하세요. 다니시다 보면 우리 또 만날 거예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폭탄의 위력이 과연 대단하다. 어디서든 만나는 사람들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익산 폭탄 테러 이야기를 꺼내다니.

밝아진 평양 풍경

밝아진 평양 시민들의 의상. 가운데 소년은 노란 '폴로' 셔츠를 입고 있다.
 밝아진 평양 시민들의 의상. 가운데 소년은 노란 '폴로' 셔츠를 입고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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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살짝 염색한 평양 여성이 반려견을 안고 있다.
 머리를 살짝 염색한 평양 여성이 반려견을 안고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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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보통강변에서 놀고 있는 반려견.
 평양 보통강변에서 놀고 있는 반려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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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강'가로 산책을 간다. 길가에 비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4년 전 처음 북한을 방문했을 때보다 훨씬 환해졌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의상도 밝고, 머리를 살짝 염색한 여성들도 보인다. '폴로'(POLO) 같은 브랜드의 셔츠를 입은 아이들도 눈에 들어온다. 특히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강변엔 산책 나온 사람들이 꽤 보인다.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을 보곤 옛 생각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오래전 '북한에서도 사람들이 반려견을 키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먹을 것도 없어 굶어죽는 나라에서 반려견은 무슨…"이라면서 믿지 않았던 기억이다.

평양 보통강변의 낚시꾼들.
 평양 보통강변의 낚시꾼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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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놀이 하는 북한의 남녀.
 뱃놀이 하는 북한의 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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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보통강변의 낚시꾼들.
 평양 보통강변의 낚시꾼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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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은 강변의 낚시꾼들 뒤에서 훈수에 열심이다. '너무 빨리 챘다, 미끼가 틀렸다, 바늘이 너무 크다, 찌가 짧다, 줄이 너무 굵다' 등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몇 마디씩 참견한다. 뒤돌아보며 미소만 짓는 북한 낚시꾼들, 참 성격도 좋다. 나 같으면 "당신 때문에 집중이 안 되니 제발 저리 좀 비켜 달라"고 한마디 할 것 같은데.

박 교수가 보트를 타보고 싶어한다. 노를 저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없단다. 그래도 타보고 싶다며 급기야 배에 오른다. 문수물놀이장에서의 일이 생각 난다. 박 교수가 놀이기구를 탔다가 울고불고 하던 일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배가 나아가질 않고 그 자리에서 뱅뱅 돌기만 한다. 박 교수의 얼굴이 금방 겁에 질려 일그러진다. 결국, 보트장 직원이 배를 몰고 나가 견인해 왔다.

평양 보통강변에 놀이를 나온 가족들.
 평양 보통강변에 놀이를 나온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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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보통강변에서 소꿉장난을 하는 북한 어린이들.
 평양 보통강변에서 소꿉장난을 하는 북한 어린이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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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로 나온 박 교수가 흐트러진 머리를 고치며 소꿉장난을 하는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박 교수를 의식한 아이들 표정이 영 달갑지 않다. 박 교수의 몇 마디 질문에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반응이 시큰둥하다. 수줍음과 함께 아이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소꿉장난을 계속한다.

박 교수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않는 평양 어린이.
 박 교수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않는 평양 어린이.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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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가족들과 소풍 나온 한 아기에게 달려간다. 박 교수는 아기에게 갖은 '재롱'을 다 부려봤지만, 아이는 그만 울음을 터트린다. 박 교수가 몹시 속상해하며 안내원 송 선생에게 하소연한다.

"내 모습이 아직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이상한가봐요. 휴우~. 아니면 나한테서 '미 제국주의 냄새'가 나나?"

'미 제국주의 냄새'라는 말에 송 선생이 박장대소를 한다. 앞으로는 인민복으로 갈아입고 다녀야 겠다는 박 교수의 농담에 송 선생이 한마디 한다.

"그 머리에 인민복 입고 다니다가는 당장 병원에 신고 들어갑니다."

'병원에 신고 들어간다'는 송 선생의 대꾸에 "병원도 구경할 겸 내일 당장 인민복을 구해 입고 풀어헤친 머리에 꽃을 달고 나오겠다"라고 박 교수가 다짐한다. 정말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박 교수는 "인민복을 구하러 가야겠다"라면서 어서 호텔로 돌아가잔다. 과연 내일 박 교수는 인민복을 입고 머리에 꽃을 단 채 평양시내에 나타날는지….


태그:#평양, #평양냉면, #냉면, #북한,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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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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