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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게는 2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이들과 나란히 앉아 강의를 들으려니 조금 어색하고 쑥스럽기까지 하다.
 많게는 2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이들과 나란히 앉아 강의를 들으려니 조금 어색하고 쑥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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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둘러봐도 나보다 더 나이 든 연수생은 보이질 않는다. 교사 신분에서 잠시나마 학생으로 돌아가 공부할 수 있다는 건 나름 즐거운 일이지만, 많게는 2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이들과 나란히 앉아 강의를 들으려니 조금 어색하고 쑥스럽기까지 하다. 십수 년 전 직접 가르쳤던 제자가 교사가 되어 같은 연수생 신분으로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으니 참 묘한 기분이 든다.

지금 외지에 와서 '1급 정교사 자격 연수(아래 1정 연수)'를 받고 있다. 지난 18일부터 시작해 내달 5일까지 3주 동안 전국 각지의 사범대학 등에서 교과목별로 한창 진행되고 있다. 기간제 교사 경력을 포함하여 교직에 3년 이상 근무한 교사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교육과정의 이해와 수업능력 개선 등을 목적으로 교육부 고시 1정 연수 표준교육과정에 따라 방학 기간을 활용해 시행된다.

교육청이 연수비용의 전액을 부담하는 1정 연수는 임용시험을 거쳐 신규 교사로 발령받은 후에 이어지는 재교육이라는 의미가 있다. 개인에 따라서는 자칫 타성에 빠질 수 있는 즈음 다시 마음을 다잡을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교육철학을 재정립하고, 전공 교과 지식을 더 쌓는 한편, 새로운 수업기법을 배우고 익히며 자신의 현재 모습을 성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일부에선 '교직 생애의 전환점'이라며 치켜세우기도 한다.

사범대학을 졸업하면 2급 정교사(아래 2정) 자격을 취득하게 되는데, 평가와 함께 연수를 마치면 1급 정교사(아래 1정)로 승급이 된다. 물론, 대학원에 진학하여 동일 교과의 석사 학위를 취득한 경우에도 같은 자격을 받을 수 있긴 하다. 사실 학교 내 업무 수행에서는 별반 다를 게 없지만, 규정상 1정과 2정 자격은 주어지는 처우에서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

우선, 교감과 교장으로 승진하는 과정에 차등을 두고 있으며, 인사 등에 있어서도 평가 기준으로 작용한다. 지난 정부 때 교사들의 승진 기회를 늘리겠다는 이유로 도입된 수석교사제도 1정 자격을 요구한다. 또, 2정 자격의 경우에는 교육청 단위의 외부 강의를 하는 데에도 제약이 있을 뿐만 아니라, 수능은 물론 모의고사의 출제나 검토를 위한 교사 위원으로도 일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사가 최소 기준인 경력 3년을 채우자마자 앞다퉈 1정 연수를 신청하는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한 호봉 급여가 오르기 때문이다. 9호봉을 기준으로 초임 발령 후 3년 만에 1정 연수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대략 5만 원 정도 월급이 오르게 된다. 연봉으로 환산하는 등 이후 누적 급여로 치면, 1정 연수를 늦게 받으면 받을수록 손해가 막심하다.

1정 연수는 교사들이 여느 때 받는 연수와는 사뭇 다른 특징이 있다. 3주라는 긴 기간도 그렇거니와, 전국에서 모인 같은 교과 동료교사들과 치열한 점수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그 기간 강의실은 노량진 고시촌을 방불케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1정 연수 성적은, 특히 공립학교 교사들의 승진에 가히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만큼 중요한 지표다.

'교감, 교장은 1정 연수 때 이미 결정된다'는 이야기마저 회자된다. 그래선지 1정 연수 성적은 1등부터 꼴찌까지 일렬로 줄 세우는 상대평가로 환산되고, 과락은 물론, 동점자 처리 기준까지 세밀하게 마련되어 있다. 애초 연수의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쨌든 석차를 내야 하는 '순위 고사'로 변질한 셈이다. 교사들 사이에서 1정 연수를 두고 '두 번째 임용시험'이라 부르는 이유다.

점수에 목메는 교사들, 1정 연수는 '제2의 임용시험'

1등을 향한 치열한 경쟁은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우선, 대학 측에서 준비한 교육과정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부실하다.
 1등을 향한 치열한 경쟁은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우선, 대학 측에서 준비한 교육과정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부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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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을 향한 치열한 경쟁은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우선, 대학 측에서 준비한 교육과정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부실하다. 교과목에 대한 특성과 교사들의 요구를 반영하기는커녕 하루 6시간씩 대부분 천편일률적인 강의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 현직 교사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시답잖은 서양의 교육이론들이 아니라, 실제 수업과 상담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법이다.

일방적 주입식 수업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파워포인트 하나 띄워놓고 두세 시간 동안 강의하는 모순적인 수업 행태는 쓴웃음을 짓게 한다. 질문이 사라진 교실에서는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텐데, 교사들은 학생들과 다를 거라고 생각한 걸까. 졸음을 참지 못해 고개 떨군 몇몇 연수생들의 모습은 중고등학교 교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과학 교과에는 당연히 실험 과목이 들어있어야 하고, 역사나 지리 교과에는 마땅히 답사 꼭지가 배정되어 있어야 할 텐데도, 그마저 강의에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듣자니까, 과거보다 1정 연수 기간이 한두 주나 짧아진 탓이라는데, 그렇다면 강의 시간을 줄여야지 알짜배기 꼭지를 없애야 하는가.

그런데, 무성의한 대학 측만 나무랄 순 없을 것 같다. 만약 승급되어 호봉이 올라가는 '인센티브'가 없다면, 이런 식으로 꾸려진 연수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교사는, 단언컨대, 없다. 교육과정을 대충 짜도 교과별로 정해진 연수생은 오게 돼 있으니 대학 입장에서야 이런 '꽃놀이패'는 없을 듯하다. 더욱이 점수에 목숨 거는 교사들 처지에서는 대학 측에 대놓고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토로하기도 어렵다.

거칠게 말해서, 1정 연수는 강의의 내용이야 어떻든 점수만 잘 받으면 된다고 여기는 연수가 됐다. 많은 교사의 그런 태도가 강의 내용의 부실로 이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강의 때 교수마다 입버릇처럼 내뱉는 "여기에서 몇 문제 출제했다"는 그 말에 일제히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하는 교사의 모습은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다. 어디든 마찬가지일 테지만, 평가로만 수험생을 옥죄는 수업은 그 질이 낮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교사답지 못한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드러내기도 했다. 만약 학교에서 그들이 가르치는 아이들이 그랬다면 혼쭐을 내도 몇 번은 냈을 일이다. 강의가 진행되는 도중 필기를 대체할 목적으로 파워포인트 화면을 통째로 담기 위해 여기저기서 팔을 뻗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은 하나의 '장관'이었다. 시끄러운 셔터 소리에다 뒷사람의 시선을 가리는 건 예사였다.

그것이 단상 위 강의하는 교수와 다른 연수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무례한 행동이라는 걸, 명색이 교사인 그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기꺼이 무례를 무릅쓸 수 있는 건, 오로지 점수 때문이다. 말하자면, 1등만 할 수 있다면 그깟 결례 정도는 '기회비용'쯤으로 여길 수 있다는 태도다. 강의가 진행된 200여 석의 콘서트홀은 일순간 '진짜 콘서트홀'이 되고 말았다.

동점자 처리 기준까지 만들어 서열을 정해야 하는 상대평가는 교사들의 협력과 소통, 나아가 진정한 학습을 방해한다. 학교에서도 문제풀이 방식의 정량평가를 지양하고 서술식 정성평가로 대체되고 있는 판국에, 하물며 그렇게 아이들을 평가해야 할 교사에게 다섯 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라는 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로지 순위를 매기기 위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어렵기만 한 문제에 목매게 하는 건 교사의 자존감을 해치는 일이기도 하다.

과문한 탓인지, 교직에 몸담은 지난 18년 동안 동료 교사들로부터 1정 연수를 통해 수업 능력이 향상됐다거나 아이들과의 소통에 보탬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관행화된 자격 연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10여 년 전 1정 연수를 다녀왔다는 한 교사는 사전 공지된 이번 연수 교육과정표를 보고 10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내가 진정 바랐던 1정 연수는 이런 것이었다. 기간이 충분한 만큼 교과별로 프로젝트 수업을 만들어보고, 수업 실연을 통해 상호 장학을 하며, 서로 돌아가며 아이들로 분해 대화하고 소통하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또한 상담자와 내담자가 되어 상담 실습을 하고, 그 상황을 지켜본 전문가의 조언을 듣게 되면 천방지축 아이들과의 만남에 자신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게 어렵다면, 차라리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과 각기 다른 학교 현장의 고충을 나누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았겠다. 데면데면함을 무릅쓰고 제자뻘인 후배 교사들과 함께 열심히 배우겠다며 여름방학을 반납하고 이 먼 외지까지 애써 온 이유다. 교수는 일방적으로 떠들고, 교사는 그걸 무슨 진리인 양 받아 적고 암기해야 하는 방식은 분명 퇴행적이다. 요즘 중고등학교에서조차 이런 수업은 없다.

1정 연수를 유치한 대학들과 교육부에 바란다. 부디 연수의 본래 취지를 살려 실효적인 교육과정을 만들고 운영해 달라. 그러자면 관행에서 벗어나 교사들의 중지를 모으고 개선 방향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지금처럼 연수에 참가한 많은 교사가 오로지 승급과 승진을 위해 점수에 목매다는 풍경은 전혀 교육적이지 못하다. 그런 연수라면 족히 수십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나.


태그:#1급 정교사 자격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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