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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이승만 국부론을 주장하는 대표적 인사 중의 하나다. 그는 해마다 국립현충원에서 열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추모식에 참석해 이승만을 국부로 모셔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는 대표 시절이었던 지난 2015년 이 전 대통령의 제51주기 추모식에서 "국가는 존재해도 국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국부를 국부의 자리로 앉혀야 한다"며 이승만 국부 논쟁에 불을 지핀 바 있다.

올해도 어김이 없었다. 그는 19일 이승만 추도식에 참석해 이승만 국부론을 다시 한 번 늘어놓았다. 그는 "이제는 한국의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국부로 모실 때가 됐다"며 "한국은 국가는 존재해도 국부는 존재하지 않는 부끄러운 나라"라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높아진 국가 위상과 이승만을 국부로 삼는 것 사이에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똑같은 멘트를 기계적으로 읊어댈 만큼 그가 이승만 예찬에 깊이 빠져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 전 대표의 이승만 찬가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건국 초기 흔들리는 국가를 지탱해 준 큰 기둥", "김일성이 적화야욕을 드러낼 때 한미 동맹으로 안보 기축 마련", "이승만은 국정철학과 균형감각을 갖춘 현실론자", "세심한 슬기와 우직한 결단을 적절히 활용하며 냉철하게 나라를 이끈 대통령" 등 이승만을 추앙하는 말의 성찬이 추도식 내내 이어졌다.

노골적인 이승만 찬양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거의 없다. 가치판단은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 아닌가. 나는 이승만의 '공'보다 '과'가 훨씬 도드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로 인해 이승만이 절대로 국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승만의 대표적인 '과' 몇 가지만 살펴보자. 이것만으로도 이승만 국부론의 치명적 오류와 위험을 입증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19일 오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제51주기 추모식'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19일 오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제51주기 추모식'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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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국부론이 위험한 세 가지 이유

이승만은 요즘 대유행하고 있는 전문적인 시위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던 인물이었다. 좌우의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해방 직후 정치적 입지가 미약했던 이승만은 기반 구축을 위해 '서북청년회'라는 전문시위조직을 적극 활용했다.

'서북청년회'는 공산주의를 피해 북한에서 월남한 지주출신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반공조직이었다. 이승만은 공산주의의 '공'자만 들어도 치를 떠는 이들의 적개심과 분노를 자신의 집권을 위한 도구로 삼았다. 당시 '서북청년회'는 우는 아이도 '서청'이 오면 울음을 그친다고 할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이들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이 제주도에서만 무려 3만여명에 달했다.  이승만이 이 끔찍하고 참혹스런 만행에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6·25 전쟁 당시 한강 인도교를 폭파한 사건 역시 이승만이 절대로 국부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 중의 하나다. 당시 그는 피난 행렬이 이어지던 한강 인도교를 폭파하는 (김 전 대표의 표현을 빌자면) '우직한 결단'을 감행했다. 이 사건으로 다리를 건너던 수백명이 사망했고 수많은 국민들이 한강 이북에 고립됐다. 더욱 기막힌 사실은 당시 대전에 피신해 있던 이승만이 인도교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도 국민에게는 국군이 의정부를 탈환했으니 안심하라는 거짓방송까지 내보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헌정질서를 짓밟은 '사사오입' 개헌은 또 어떤가. 박정희 유신독재의 모티브가 됐던 '사사오입' 개헌은 (다시 한 번 김 전 대표의 표현을 빌자면) 이승만의 '세심한 슬기'가 빛을 발한 역사에 남을 개헌이었다. 1954년 당시 이승만은 장기집권을 위해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 중임 제한을 없애는 기가 막힌 꼼수를 연출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이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의원 2/3(135.333명)에 해당하는 136명의 찬성을 얻어야 했다.  그러나 얄궂게도 135명의 찬성표가 나왔다. 개헌안이 부결되는 위기의 순간 이승만은 소수점 이하는 과감히 버리는 기지를 발휘해 장기집권의 길을 튼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깡그리 무시하는 엽기적 발상은 훗날 3·15 부정선거로 이어지는 단초가 된다.

투표함 바꿔치기, 정치 깡패 동원, 1인 중복 투표, 3인조·7인조 공개 투표, 선거인명부 조작, 투표시간 조작 등 선거에서 할 수 있는 부정이란 부정은 모두 다 등장한 1960년 3·15 부정선거는 부정선거의 교범이라 부를만한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부정·부패에 찌들어 있던 자유당 정권의 종말을 알리는 서곡이었고, 결국 이승만은 전국적으로 확산된 대규모 시위와 김주열의 죽음이 도화선이 된 4·19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나게 된다.

김 전 대표가 국부로 칭송해 마지않는 이승만은 '공'을 논하기에 앞서 이처럼 '과'가 확연히 드러나는 인물이다. 살펴본 것 외에도 사실보다 부풀려진 독립 활동, 상해임시정부 당시의 기행, 보도연맹 학살사건, 정적 제거, 부정 부패 등 일일히 열거하기에 벅찰 만큼 그의 '과'는 차고 넘친다.

김 전 대표는 한국이 국부가 존재하지 않는 부끄러운 나라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부끄러운 것은 이승만 같은 문제적 인물이 국부가 되는 상황이다. 아무리 인륜이 무너지고 도덕과 정의가 사라진 흉흉한 세상이기로서니 수많은 국민을 학살하고 배신한 비정한 사람을, 나라의 근본과 질서를 송두리째 어지럽힌 사람을 '국부'로 칭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는 국부 논쟁 이전에 '염치'의 문제이며 국가의 '격'에 대한 문제다.

물론 안다. 이승만이 친일부역자들에게 구세주나 다름 없는 인물이며, 김 전 대표의 부친이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김 전 대표와 뉴라이트 등이 부르짖고 있는 이승만 국부론, 국정교과서 같은 문제들이 이같은 역사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도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승만 국부론은 대권을 꿈꾸는 유력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대단히 부적절하다. 가치중립의 역사 문제를 가족사와 혼동하는 사람은 그 하나로 족하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국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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