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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말없는 약속 20년'에 이어 이제는 제 자신을 시작으로 나의 심리적, 생활상의 문제들로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에 걸림돌이 됐던 독(자신과 타인에게 해로움을 주는 요인)을 다스렸을 때 건강과 행복을 더 크게 느끼며 당당하게 생활하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이 연재기사의 이름은 '내 안에 독을 다스리면 덕이 되고, 복이 된 사연'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상담한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볼 겁니다. 이 연재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오마이뉴스>에 본인의 이야기가 실리는 것을 동의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름은 가명으로 합니다. - 기자 말

[앞선 기사] "남편이 무서웠어요, 혹시 아버지처럼 때릴까 봐"

남편을 이제는 만나보아야 할 시기가 되었다. 그녀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기 위한 작업(과외할 준비)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남편분을 만나보고 싶은데 처음부터 따로 만나기보다는 아내분과 함께 만나보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고, 그녀는 응해주었다. 그 때까지 외출을 하지 않은 그녀에게 좋은 외출 명분이 되었다.

첫 외출인 만큼 내가 그녀의 친정집에 가서 그녀와 함께 인근 카페로 나갔고, 남편을 거기서 만나기로 했다. 사실 그녀가 상담을 계속 받겠다곤 했지만 상담소에서 친정집까지 왕복 세 시간 거리를 오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다고 그만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마음 속 응어리에 대해 말했고, 살고자 하는 욕구가 분명했다. 돕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지만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역시 사람 살리는 일에는 헌신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재확인했다.

남편에게 앞서 전화로 상황을 말씀드리고 뵙기를 청하자 그러겠다고 했다. 아내가 건강하고 자기 일을 찾아서 하면 부담도 적고 지금처럼 숨 막히지는 않을 거라고 첫 통화에서 말했다. 남편 또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음을 짐작하게 했다. 약속한 날 아내의 친정집 인근에 위치한 카페에서 우리 셋은 만났다.

할말이 많은 남편은 인사를 건네고 앉자마자 말을 이어간다.

남편 : "제가 괜히 그러는 거 아니에요. 학창시절엔 예쁘고 똑똑했는데 결혼하고 보니까 영~ 맹탕이에요."
: "맹탕이라면~ ?"
남편 :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스스로 알아서 애를 데리고 밖에 나가 놀아주지도 못하고, 다른 엄마들은 혼자서도 잘 하잖아요."
 : "아내께서 남편 없을 때 혼자서라도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 놀아주기도 하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아서 답답하시단 말씀이신가요?"
남편 : "그렇지요. 제가 조금 늦으면 맨날 전화해서 언제 오냐 하고 일이 늦게 끝날 것 같다 말하면 나는 집에서 애하고 혼자서 힘들어 죽겠는데 왜 퇴근하고 바로 오지 않느냐는 등... 그러니 누가 집에 들어가고 싶겠어요. 꼭 장모님 말투와 똑같다 느껴요. 장모님도 가끔 우리가 처갓집에 가면 그런 말씀을 하시거든요. 아주 둘이 습관이에요. 교양 없이."

그러자 옆에 있던 아내가 눈에 독기를 품으며 한마디 한다.

그녀 : "뭐라구요. 교양 없이~ 당신은 교양 넘쳐서 바람 피우고 그래요?"
남편 :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

남편은 얼굴에 핏대를 올리며 아내에게 큰소리로 말한다. 이렇게 다급하게 감정이 올라올 때는 주위에 누가 있는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화난 감정에 몰입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런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이성을 선물로 받았지만... 감정을 그동안 어떻게 관리해왔는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남편과 그녀는 지금 카페에서 폭언을 하고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상담 후에 이곳(카페)에 들러 미리 사장님께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카페 가장 뒤쪽 한적한 곳이어서 다행이었다. 이쯤이면 둘에 대한 중재(Mediation)가 필요하다.

두 분께 중재의 필요성을 이야기했고 합의를 보았다. 한 분이 이야기할 때는 중간에 아무리 뛰어들어 맞대응하고 싶어도 상대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규칙에 대해서도 둘은 '알겠다'고 했다. 그 후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 "두 분 중에 누가 먼저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남편 : "제가 먼저 할게요. 제가 오죽하면 집을 나왔겠습니까? 집에 들어가면 무엇 하나 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일에 치여 산 사람한테 애 보라고 하면서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자기는 하루 종일 힘들어 죽겠었으니까 애를 보라고 해요. 아니 젊은 여자 입에서 그게 나올 소리예요. 다른 엄마들은 애 안 키워요?"

남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녀의 남편에 대한 선입견(집에 들어오기 싫어진 원인을 아내가 제공하고 마치 아내 때문에 바람 피웠다고 합리화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등)이 올라왔다. 그로 인하여 중재시 한 사람의 편이 되어서는 안 되는 중립성이 흔들리고 있었음을 느꼈다.

다행히 내 속에서만 일어난 일이라 나는 그것을 알아채고 바로 중립성을 유지했다. 내 마음과 판단이 왔다갔다 하는데도 그녀 남편은 계속해서 아내가 불편한 이유, 못마땅한 이유 등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중간중간 그녀의 남편이 불만스럽게 표현하는 욕구를 짚어주면서 공감을 계속하고 있다.

: "집에 들어가시면 무엇 하나 남편분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는데 가능하시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남편 : "아내면 기본적으로 그리고 젊으니까 깔끔하게 입고 그리고 집안도 정리를 좀 하고 그래야 하는데 집에 들어가는 현관에 널브러진 신발들부터 시작해서 거실, 방, 주방 어느 한 곳 깨끗하게 정리된 적이 없었어요."
: "남편께서는 아내가 깔끔하게 입고 있길 원하시고, 집안 정리를 잘 해주면 좋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집안 정리라면 현관에는 필요한 신발만 놔두고 거실과 방, 주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길 원하신단 말씀이신가요?"

내가 아내의 비난 뒤에 있는 본인의 욕구를 읽어주자 "그렇다"고 한다. 남편이 아내에게 바라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아내에게 남편의 욕구를 그대로 전달한다.

: "남편께서 원하시길 아내가 젊고 예쁘시니까 남편이 퇴근할 때 깨끗하게 입고 계시길 바랍니다. 또한 현관 신발을 정리하고 거실과 방, 주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기를 원하시는데 이런 남편의 욕구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중재를 할 땐 같은 장소에서 한 테이블에 T자 형식으로 앉는다. T자 끝에는 중재자가 앉고 양쪽으로 한 사람씩 앉는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으므로 상대가 한 말을 서로가 다 듣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둘은 중재자에게만 말을 하는 형식이다.

중재자가 두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고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때 서로의 비난, 비판, 폭언에 대하여 중재자는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 부정적인 표현 대신 그 표현 뒤에 있는 욕구 즉,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찾아서 전달해 주는 것)을 하는 것이다.

아내 : "저도 그러고 싶죠... 그런데 하루 종일 애하고 씨름하는데 어떻게 깔끔하게 입고 있고, 거기에다 집안 정리까지 할 수 있겠어요."
: "아내분도 남편께서 원하는 정도로 깔끔하게 입고 있고 싶으시고, 집안 정리를 잘 하고 싶으시지만 하루 종일 애하고 씨름하느라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내 : "누가 너저분한 것을 좋아하겠어요. 그럴 거면 남편이 일찍 들어와서 애라도 돌봐주면 제가 집안 정리 할 수 있는데 맨날 늦게 들어오고."

이때 남편이 본인이 말할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불쑥 말한다. "내가 언제 맨날 그렇게 늦게 들어왔어"라고 끼어드는 남편에게 "이야기할 시간을 드릴 테니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요청하고 아내의 말을 이어 내가 질문한다.

: "맨날 늦게라면 몇 시(서로의 '늦다'라는 시간 개념이 다를 수 있으므로 정확한 시간에 근거할 때 서로의 문제가 풀리는데 도움이 된다. 한쪽 생각이 아닌 사실을 근거로 할 때)를 말씀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내 : "'뻑'하면 12시구요. 더 늦을 때는 새벽에 들어와요."
: "아내분께서는 남편이 퇴근하고 곧바로 집으로 들어오신 후 아이를 봐주면 집안을 남편이 원하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단 말씀이신가요?"
아내 : "그럼요. 내가 처음부터 어질러놓고 산 건 아니거든요."
: "아내분께서 생각하실 때 남편이 일주일에 며칠을 늦게 들어오시는 것 같은가요?"
아내 : "제가 친정으로 오기 전까지 매일 늦게 들어왔어요."
: "친정으로 오기 전 남편께서 매일 늦게 들어오셨다면 제가 생각할 때 직장일이나 모임등이 있을 수 있으므로 매일 퇴근하자마자 귀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어 여쭤볼게요. 일주일에 며칠정도 남편께서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와주시면 좋을 것 같으신가요?"

아내는 내가 구체적으로 묻자 잠시 생각하더니...

아내 : "단 4일만이라도..."
: "단 4일이라고 남편분께 전달해보겠습니다."

남편에게 이야기하자 6일 중 4일을 퇴근하자마자 집에 들어오는 것은 어렵고 일단은 함께 살게 되면 이틀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월요일은 아무래도 정시퇴근이 어렵고 하니 화요일과 목요일에 그렇게 하기로 남편과 합의를 보았다.

2시간을 중재로 진행했다. 전에는 서로가 비난, 비판 등만 표현하며 화만 냈기 때문에 서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몰랐으나 중재를 통해 서로가 원하는 욕구를 본인들 입을 통해 말할 수 있도록 도왔다.

서로가 원하는 욕구를 본인들에게 맞는지 확인까지 한 후에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선에서 서로의 욕구를 들어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야 서로 화합하는데 도움이 된다.

중재를 하면서 놀란 점은 아내보다 남편이 더 말을 많이 하기를 원했다는 점이었다. 아내에게 불평할 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불평을 뒤집어 보면 그 속에 본인이 아내에게 원하는 욕구가 있었다.

아내가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풀릴 수 있었던 것은 남편에게 아내에 대한 기대감이나 함께 잘 살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또 한 회기가 마무리 되었다.


태그:#남자, #여자, #친정, #아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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