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 이영오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 이영오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 KBS2


콘텐츠는 '소비'된다. 좀 더 의미를 분명히 하자면, '이야깃거리'가 된다. 대개 그 방식은 콘텐츠가 가진 자산을 갉아먹는 것으로 진행되고, 결국 피골이 상접한 콘텐츠가 '항복'을 선언하며 끝을 맺는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소모적으로 소비된다. 하지만 '좋은' 콘텐츠는 '고민(을 할 수 있는)거리'가 된다. 사유의 폭과 질을 높인다. '확장성'을 가진다. 그래서 소비되지만 줄어들지 않는다. 박제가(朴齊家)가 말한 '우물'을 떠올려도 좋다.

잠깐 행복한 '정주행'이었다. 좋은 드라마(콘텐츠)를 만나고, 그 드라마를 '몰아서' 볼 수 있다는 건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다. 아쉽게도 그 행복도 8회로 끝이 났고, 이젠 다른 시청자들처럼 다음 주를 손꼽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의학 드라마의 표피를 입고 있지만, <뷰티풀 마인드>는 단순히 병원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평범한' 의학 드라마가 아니다.

이 드라마가 평범하지 않은 이유

 김민재에 의해 이영오의 정체에 대한 폭로가 이뤄진다.

김민재에 의해 이영오의 정체에 대한 폭로가 이뤄진다. ⓒ KBS2


이 놀라운 드라마는 '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어렵고 무겁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끄럽게도 이 드라마가 던지고 있는 '고민'의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피상적 고민의 비루함이 들통날까 봐 걱정되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어 좀 떠들어 볼 생각이다. 이 덧댐이 '소모'가 아니라 (미약하지만) '확장'에 발을 걸치고 있길 바란다.

"이영오 선생은 더는 이 병원에 있어서는 안될 위험한 사람입니다. 타인의 감정이나 아픔을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공감 장애, 그래서 진정한 관계도,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상식적인 양심도 허락되지 않는 안티 소셜 디스오더, 반사회적 인격 장애, 사이코패스니까요. 가장 가까이에서 친밀한 특수관계를 통해 아주 오랫동안 관찰해온 주치의 소견입니다."

지난 5일 방송된 KBS2 <뷰티풀 마인드> 6회는 드라마의 '터닝 포인트'와 같은 역할을 했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를 지닌 천재적인 신경외과 의사 이영오(장혁)의 정체가 '공식적'으로 탄로 났기 때문이다. 그 '폭로'가 이영오의 오랜 연인인 신경과 펠로우 김민재(박세영)를 통해 이뤄졌다는 건, 극적인 효과를 더욱 배가했다.

이로써 반사회적 인격 장애, 흔히 부르는 말로 '사이코패스'라고 하는 '괴물'이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혼란이 시작됐다.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감정'이 거세된 존재, 사이코패스가 의사 가운을 걸친 채 메스를 쥐고 환자들의 생명을 좌지우지한다? 이건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의사가 타인의 감정이나 아픔을 전혀 공감할 수 없다니!

그렇다. 그 주장에 기를 쓰고 반박할 생각은 없다. 이영오가 보여주는 '이성적인' 모습들은 아들을 '보통 사람'들처럼 살게 하고 싶었던(사실은 아들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철저한 '감정 훈련' 덕분이었다. 하지만 호흡, 맥박, 체온, 혈압과 같은 바이탈 사인(vital sign)과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몸짓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100%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억지'다.

"난 이미 알아버렸어요. 내 의사로서의 재능은 텅 비어 있는 마음이라는 거"라고 말하는 이영오는 어려운 수술도 그 어떤 부담감이나 기복 없이 마치 '기계처럼' 성공해내지만, 결국 그 텅 빈 마음이 야기한 '오판(誤判)' 때문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만다. 자, 이제 '섣부른' 결론을 내릴 차례인가?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매우 위험한 '괴물'이고, 그러므로 '격리'되어야 하는 존재인가?

인간이 인간다운 이유

 인간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가 '감정'일까?

인간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가 '감정'일까? ⓒ KBS2


물론 <뷰티풀 마인드>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이영오가 계진성(박소담)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이야기로 귀결되겠지만, 우리는 그 '인간성'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쯤 고민을 해봐야 한다. 이를테면, "'진짜' 괴물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감정'이 결여된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위험성은 두말할 필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감 능력'과 '양심'이 스스로 있다고 자부하는 '보통 사람'들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가령, 교수가 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자신의 연인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김민재라는 인물은 어떨까? 또, 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아들의 정체를 들킬 수 없었던 아버지 이건명(허준호)의 '교육 방식'과 아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오로지 '돈'을 좇는 회장과 그의 아들인 강현준(오정세) 현성병원 이사장의 괴기스러운 '인간적' 모습들은 '인간성'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한다.

그들의 곁에 붙어서 온갖 '아양'과 '충성'을 다 바치는 '공감 능력'을 지닌 주변 인물들은? 그리고 자신의 '연구'를 위해 병원장 신동재(김종수)를 죽이고 만 기조실장 채순호(이재룡)은 이영오보다 훨씬 더 사이코패스 같은 인물 아닌가? 이들의 모습으로부터 '진짜' 괴물의 민낯을 보게 된다. 그래, 사실 그것이 '인간' 아니던가. 과연 '더는 이 병원에서는 안될 위험한 사람'은 누구일까?

마지막 질문 속의 '병원'을 '사회'로 바꿔보자. 이처럼 <뷰티풀 마인드>는 의학 드라마의 표피를 입고 있지만, 실은 우리 사회와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텅 빈 마음', 그러니까 공감 능력(이든 양심이든)의 '유무'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손쉽게' 타인을 향해, 이 질문을 던지는 데 만족하진 말자.

나는 선(善)하다, 나는 옳다, 나는 정의롭다고 자부했던 우리가 드라마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뷰티풀 마인드>에 등장하는 저 군상들이 '다른 사람'일 거로 생각하는 그 턱없이 얕은 '공감 능력'이야말로 진짜 '괴물'을 만드는 시작일 테니까 말이다.

 <뷰티풀 마인드> 포스터. <뷰티풀 마인드>는 단순히 시청률로는 평가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재미와 의미가 담긴 드라마이다.

<뷰티풀 마인드> 포스터. <뷰티풀 마인드>는 단순히 시청률로는 평가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재미와 의미가 담긴 드라마이다. ⓒ KBS2



뷰티풀 마인드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