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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미야"가 강남역 11번 출구로 들어가고 있다.
▲ <서든어택2> 시네마 트레일러 영상 중 캐릭터 "미야"가 강남역 11번 출구로 들어가고 있다.
ⓒ 넥슨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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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사건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많은 여성들이 분노했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단순한 공간을 넘어, 포스트잇을 붙이는 추모의 현장으로 그려졌다.

넥슨GT가 제작한 온라인 FPS게임(1인칭 슈팅게임) '서든어택2'의 시네마틱 트레일러 영상의 배경은 강남이다. 여성 캐릭터 '미야'가 현란한 간판 불빛 사이를 가로질러가는 모습이 나온다. 간판은 거의 커피 전문점이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인데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미소 성형외과'가 유독 눈에 띈다. 실제 강남에 존재하는 성형외과다. 광고인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트레일러의 처음부터 끝까지 캐릭터의 신체 부위가 유독 강조된다. 처음엔 엉덩이를 비추다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트는 장면은 굳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가슴이 강조된다. 그리고 미야는 '강남역 11번 출구'로 들어간다.

지나치게 가슴이 큰 몸매 좋은 여자, 강남, 성형외과. 굳이 이미지를 보지 않아도 이 세 가지를 연달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화가 나는데 심지어 '강남역 11번 출구'로 들어간다니. 이것은 대놓고 보내는 도전장인가, 조롱인가?

트레일러가 나온 뒤, 서든어택2는 성 상품화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넥슨은 '미야'와 같은 여성 캐릭터를 게임에서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캐릭터를 없애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관련 기사 : 넥슨, '선정성 논란' 서든어택2 여성 캐릭터 2종 삭제)

스토리는 없고 선정성만 남은 서든어택2

'이 게임은 여성혐오 게임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것과 다름없는 이 트레일러 영상은 게임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담고 있지 않다. 그저 캐릭터의 가슴과 엉덩이만 있을 뿐이다. 게임 개발팀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없어 보인다. '이 트레일러로 다른 무언가가 연상된다면 그건 당신 잘못입니다, 우리는 하던 대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여 장사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심지어 캠페인 모드 프롤로그 영상의 첫 장면도 '스칼렛'이란 캐릭터의 가슴이다. 과하게 큰 가슴을 자꾸만 더 과하게 보여준다. '미야'와 '스칼렛'뿐만이 아니다. 여성 캐릭터는 모두 지나치게 가슴이 강조되어 있으며, 이 영상들은 이것을 보라고 자꾸 눈앞에 들이미는 느낌이다.

강한 캐릭터일수록 노출이 심한 이유는 뭘까. 저런 '천 쪼가리'를 입고 있는데 무엇을, 어떻게 방어할까. 아무런 이유 없는 노출이다. 유저들의 유튜브 플레이 영상과 SNS, 관련 검색어, 플레이 후기엔 여성 캐릭터들의 가슴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게임에는 '스토리텔링'이라는 요소가 들어간다. 단순 플레이 게임이 아니라면 필수적인 부분이다. 그런데 서든어택2는 스토리텔링마저 허접하다. 특히 캐릭터 '미야'에 대한 설정은 유치하기 그지없다. 미야는 '전장의 아이돌'이라 그녀를 두고 작은 싸움도 일어났단다. 이런 캐릭터의 설정을 보면 넥슨GT가 여성 캐릭터의 존재를 어떤 식으로 전제하고 개발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전장의 꽃'은 여성을 대놓고 대상화하는 설정이다. 여성에게 '직장(일터)의 꽃'과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은 무례하며, 이는 여성혐오적 발언이라는 것은 이제 웬만해선 거의 외우다시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캐릭터 "미야"가 강남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 <서든어택2> 시네마 트레일러 영상 캐릭터 "미야"가 강남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 넥슨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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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게임의 여성 캐릭터는 항상 성적 대상화가 되었다. 쓸데없는 바스트모핑에 의미 없는 노출은 여성 캐릭터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이번 서든어택2는 거기에 익숙해져 있을 남성 유저들에게마저도 "너무 대놓고 보여준다"라는 평을 받는다. '슴든어택'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런데도 선정성에 문제가 없다는 게임콘텐츠등급분류위원회의 평가는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규율을 어긴 바가 없으니 선정성도 없다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규율에 허점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등급 설정 기준 자체가 '성행위 묘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 애초에 성 상품화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만든 규정이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대한민국 게임 시장이 그동안 여성의 성 상품화에 왜 그리도 관대했고 그것을 어떻게 유지해왔는지 여과 없이 보여주는 사례다.

넥슨GT 측의 반응도 재밌다. 넥슨 홍보팀 관계자는 지난 8일 <포커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유저들이 일부러 스크린샷을 찍지 않는 이상 선정적인 부분은 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대응을 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게임등급위, '서든어택2' 선정성 '무' 평가... 논란 확산) 여성 캐릭터 선정성 논란의 책임을 유저에게 전가한 것이다.

트레일러 영상부터 이번 게임의 초점은 여성 캐릭터고, 여성 캐릭터의 강한 면이 아닌 성적인 면이라고 목소리 없이 외쳐놓고, 실제 플레이에서도 불필요한 성적인 디테일을 한껏 살려놓고, 우린 그런 적 없으니 모른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차라리 '야겜'을 만들어라"라는 평이 줄줄이 나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넥슨GT는 게임 유저들을 다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격이다.

이전 버전의 서든어택에서도 줄곧 여성 연예인을 캐릭터화하여 한정으로 판매하곤 했다. (캐릭터는 "오빠 안아줘 응?" 따위의 대사를 하곤 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넥슨GT가 여성의 성적 대상화, 여성 혐오가 장사가 된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하지만 이번 서든어택2의 여성 캐릭터 성적 대상화는 주요 소비층인 남성들을 상대로도 먹히지 않는 전략이었다. 예쁜 여성 캐릭터고 뭐고 근본적으로 게임 자체가 재미가 없다는 평이 대다수고, 어찌 되었든 맹렬히 실패했음을 넥슨GT 주가가 보여주고 있다.

게임 속에서도, 게임 밖에서도 지워지는 여성

본사가 자꾸 간과하는 것은,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 외에도 여성들도 게임을 한다는 사실이다.
 본사가 자꾸 간과하는 것은,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 외에도 여성들도 게임을 한다는 사실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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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가 자꾸 간과하는 것은, 게임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 외에도 여성들도 게임을 한다는 사실이다. 여성 소비층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의 성비는 여성이 남성을 앞지른 경우가 많다. FPS 게임은 특징상 남성 유저가 월등히 많을 것이라는 게 보통의 고정관념이다. 하지만 '서든하는 여자'는 이미 몇 년도 더 전에 화제가 된 바가 있고 여성 유저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데도 넥슨GT는 여성 유저에 대한 어떠한 배려도 없이 남성적인 시각에서만 개발된 서든어택2를 내놓았다. 여성을 성적으로 희롱하기 쉽게 만든 캐릭터와 관음하는 남성 유저들 사이에서 서든어택2를 즐길 여성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오히려 별다른 차별성이 없는 FPS 게임의 블루오션은 헐벗은 여성 캐릭터가 아닌 여성 유저일지도 모르겠다.

게임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게임을 남성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오버워치' 여성 유저에 대한 해킹 프로그램 사용 논란이 있었다. 오버워치 닉네임 '게구리'로 활동하는 김세연(17)씨는 승률 팔십 퍼센트를 자랑하는 실력자다. 게임을 너무 잘해서 의심하다가, 해킹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다가, 나중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이어졌다. (관련 기사 : 실력으로 논란 잠재운 '오버워치' 게구리 "키보드 선도 연결 못하는데 어떻게 핵을 씁니까?")

만약 유저가 남성이었다면 이런 의심은 애초에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남성이 다수인 리그에서 여성이 선전하면 그들은 여성의 성에 대해 의심한다. 전개가 참 신기하게 흘러간다. 실력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도 "여자가 이렇게 잘할 리가 없어"라는 생각이 먼저였을 것이다. '구닥다리' 인식이다.

'게임 하는 여자'는 항상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고, 더 늘어날 것이다. 더는 그들은 여성이란 이유로 더 도드라지게 생각해서도, 투명인간 취급해서도 안 된다. 여성은 게임 안이든 밖이든 존재하지만 남성만을 위한 남성만의 게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간과해선 안 되는 사실이며 게임사뿐만 아닌 많은 이들이 자각해야하는 요소이다.

넥슨GT는 많은 돈을 들여 회사의 의식 수준을 알렸고 악평을 받았다. 앞서 언급한 오버워치는 여성 캐릭터의 승리 포즈가 성적인 요소가 있다는 지적에 바로 수정에 들어갔다. 서든어택2의 성 상품화 논란이 일자, 넥슨GT는 여성 캐릭터 '미야'와 '김지윤'을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것은 선정성 논란이 가장 거세었던 두 캐릭터의 삭제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서든어택2만의 문제도 아니고, 게임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중이 이용하는 미디어 매체와 문화산업에서 여성혐오의 성격을 지닌 콘텐츠는 여전히 많다. 대놓고 성적 대상화를 하는 콘텐츠부터 문제를 자각하지 못하고 만들어지는 콘텐츠까지 정도도 다양하다. 쏟아지는 콘텐츠들 사이에서 우리는 이 점을 계속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페미디아에도 올라갈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서든어택2,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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