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아무리 2부리그 선수들이라지만 단순히 경험을 쌓기 위해 전주성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준비된 역습 전술과 뛰어난 집중력 덕분에 믿기 힘든 대어를 낚을 수 있었다. 부천 FC 1995가 한국 프로축구 2부리그(K리그 챌린지) 팀으로는 처음으로 4강에 오르는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송선호 감독이 이끌고 있는 부천 FC 1995(K리그 챌린지)는 13일 오후 7시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6 FA(축구협회)컵 8강 전북 현대(K리그 클래식)와의 원정 경기에서 믿기 힘든 3-2 역전승을 거두고 파란을 일으켰다.

부천 FC 1995,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13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FA컵 6라운드 8강전 전북 현대와 부천FC 경기. 부천FC가 전북 현대를 꺾고 기뻐하고 있다.

13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FA컵 6라운드 8강전 전북 현대와 부천FC 경기. 부천FC가 전북 현대를 꺾고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일요일 저녁 전북은 홈에서 포항 스틸러스를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며 19경기 연속 무패 기록(10승 9무 34득점 21실점)을 기분 좋게 세우며 승점 8점 차이로 1부리그인 K리그 클래식 선두 자리를 굳게 지켜냈다.

그리고 주중에 맞이한 FA컵 8강 상대로 다른 팀들보다 훨씬 수월하게 2부리그 K리그 챌린지 현재 4위(9승 6무 5패, 21득점 13실점) 팀인 부천 FC 1995를 만나게 되었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나머지 K리그 클래식 팀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가장 손쉽게 4강에 안착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전주성에서 벌어진 경기 내용은 너무나 놀라웠다. 부천 FC 1995 선수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선취골은 전북이 25분에 비교적 손쉽게 김신욱의 머리로 만들어냈지만 전반전이 그냥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부천 FC 1995의 집념이 36분에 제대로 드러났다.

부천 FC 중원의 살림꾼 김영남이 비교적 먼 거리에서 오른발로 때린 중거리슛이 전북 수비수 김영찬과 최동근의 몸에 차례로 맞고 흘렀다. 이 순간 부천 FC의 새로운 골잡이 이효균이 골 냄새를 맡았다. 이효균은 전북의 베테랑 골키퍼 권순태보다 반 박자 빠르게 공에 접근하여 오른발 끝으로 천금의 동점골을 터뜨렸다.

지난 달까지 K리그 클래식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파랑·검정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있던 그가 벤치의 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과감하게 임대 생활을 결정한 것이 비로소 빛나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희망을 얻은 부천 FC 선수들은 후반전 초반에 전북의 장윤호가 부천 FC 미드필더 김영남에게 고의적인 잡기 반칙을 저질러 퇴장당하자 더욱 자신감을 얻고 대반란의 서막을 열었다.

부천 FC의 4강 상대, 떨고 있는 팀은?

이후 후반전 중반에 이르러 전북의 닥공이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그 때마다 부천 FC 골키퍼 류원우가 놀라운 반사 신경을 자랑하며 골문을 노리는 공을 제대로 막아냈다. 부천 FC는 그 덕분에 대역전극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66분에 보고도 믿기 힘든 역전골이 나왔다. 부천 FC 오른쪽 수비수 이학민의 슈퍼 골이었다. 오른쪽 옆줄 가까이에서 공을 잡은 이학민은 전북 선수들이 감당하기 힘든 속도로 질풍 드리블을 시작했다. 그를 막기 위해 전북의 풀백 이주용, 미드필더 이재성, 센터백 임종은이 차례로 달려들었지만 이학민의 몸에 붙은 속도를 도저히 밀어낼 수 없었다. 마무리는 오른발 끝에서 나온 반 박자 빠른 슛이었다.

이후에 전북의 닥공은 더 절박하게 부천 FC 골문을 흔들어댔다. 로페즈의 왼발 슛(75분)과 김신욱의 헤더 슛(85분)은 골에 근접했지만 부천 FC 골키퍼 류원우의 순발력은 그보다 한 수 위였다.

정규 시간 90분이 거의 끝날 때 부천 FC의 결정적인 추가골이 터져나왔다. 역습 과정에서 미드필더 김영남의 오픈 패스가 일품이었고 이 기회를 바그닝요가 빼어난 드리블 속도를 자랑하며 빠져들어가서 오른발로 골을 성공시켰다.

수많은 홈팬들 앞에서 자존심을 구긴 전북은 후반전 추가 시간 4분에 이종호가 얻어낸 페널티킥 기회를 레오나르도가 오른발 인사이드 킥으로 차 넣어 2-3 펠레 스코어까지 따라붙기는 했지만 남아 있는 시간은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사실 현재 1부리그(K리그 클래식) 최고의 클럽 반열에 올라 있는 전북 현대는 이 FA컵 대회에 대한 감회가 남다른 팀이다. 2005년 FA컵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얻은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본선 티켓을 써서 그 이듬해에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거기서 놀랍게도 K리그 클럽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축구 명가라는 수식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전북이 영광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던 그 해에 공교롭게도 이 경기 상대 팀 부천 FC 1995의 아픈 역사가 존재한다. 부천 FC의 전신인 부천 SK 프로축구단이 바로 2006년에 갑작스럽게 연고지 부천 시민들을 버리고 제주도 서귀포시로 도망(현 제주 유나이티드)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K리그 챌린지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FA컵 대회 4강에 오른 부천 FC 1995 팬들은 이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4강 대진 추첨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들의 상대는 수원 블루윙즈, 울산 현대, FC 서울 중 한 팀이 된다.

부천 FC와 울산 현대가 맞붙게 된다면 윤정환 감독 더비 매치가 성사가 된다. 울산 현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윤정환 감독이 이름을 떨친 클럽이 바로 부천 FC의 전신인 부천 SK였기 때문이다.

그 상대가 FC 서울이 될 경우에는 부천 FC 1995를 응원할 서포터즈 숫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연고지 클럽을 빼앗긴 아픔을 겪은 부천 FC를 위해 인근 지역인 안양과 서울에서 그들을 지지하는 축구팬들이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K리그에서 연고지 이전은 올드 팬들로부터 여전히 패륜이나 다름없는 못된 일로 지탄받고 있다. 2004년에 안양에서 야반도주하여 서울로 연고지를 옮긴 FC 서울은 그래서 '북패', 2006년에 부천에서 제주도 서귀포로 연고지를 옮긴 제주 유나이티드는 '남패'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그러니 그 아픔을 겪은 부천 FC 1995의 FA컵 4강 혹은 결승전 상대 팀이 FC 서울이 될 경우 그 부끄러운 역사를 지탄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경기장 관중석에서 크게 울려퍼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스토리 때문에도 부천 FC가 한국 프로축구의 최강팀이라 자부하는 전북 현대를 물리치고 4강에 오른 것은 그 의미가 더 특별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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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6 FA컵 8강 결과(13일 오후 7시, 전주성)

★ 전북 현대 2-3 부천 FC 1995 [득점 : 김신욱(25분,도움-이주용), 레오나르도(90+4분,PK) / 이효균(36분), 이학민(66분), 바그닝요(90분,도움-김영남)]

★ 울산 현대 4-1 인천 유나이티드 FC
★ 수원 블루윙즈 4(연장전 후 승부차기)3 성남 FC
★ FC 서울 4(연장전 후 승부차기)3 전남 드래곤즈
축구 FA컵 부천 FC 1995 전북 현대 K리그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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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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