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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호남출신 대통령을 배출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친노 대리인만을 지원하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나 하는 자괴감을 느끼는 것, 내게는 이것이 현재 호남에 내재된 이중심리로 보인다. (229쪽)


'영남패권주의(영패주의)'라는 말을 활자로 처음 만난 건 작년 가을이었다. 이충렬이 쓴 <한반도 삼국지>(2015, 레디앙)에서였다. 호남이 '들러리 정치'를 하고 있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그 근인을 한 마디 말로 표현하고 싶었다. 마땅한 게 없어 답답했다. '영패주의'를 만나고서야 속이 조금 뚫렸다.

<아주 낯선 선택> 표지
 <아주 낯선 선택> 표지
ⓒ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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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 서남대 교수가 <아주 낯선 선택>에서 지적한 호남인의 '이중심리' 역시 영패주의의 자장권 안에서 이해해야 할 듯싶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정치를 세속적 욕망의 반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런 시선을 차용해 말해 보면 지역주의를 절대악처럼 보는 시선은 위선적이다. 저자의 말처럼 '민주적 지역당'이라면 달리 볼 수도 있을 것 같겠기에 말이다.

"'영남 없는 민주화'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속지 안쪽에는 니체가 <아침놀>에 남긴 문구가 제사(題詞)로 박혀 있다. "나는 현실을 존중하기를 원한다"로 시작한다. 니체의 말을 빌려 저자가 강조하고 싶었던 '현실'이 무엇일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지역주의'. 글머리 인용구에 등장하는 호남인의 '이중심리'를 한 예로 볼 수 있겠다. 동향 출신 정치인이 지도자가 되는 걸 마다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지역주의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이미 위에서 밝혔다. 이른바 '민주적 지역당'. 우리나라 정치 지형에서 '민주적'이 가능할지 미심쩍긴 하다. 하지만 당위의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내세울 수 있는 주장이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 '민주세력=반새누리당=선'과 '반민주세력=새누리당=악'은 '민주 개혁'을 외치는 이들에게 아주 익숙한 현실 도식이다. 그런데 '민주 대 반민주 구도'라는 현실은, 이면의 차원에서 읽어야 민낯이 드러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시종일관 천착하는 지점이 이 대목이다.

'민주화 이후의 영남패권주의' 시대인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이른바 '민주‧개혁' 세력은 신앙처럼 '호남몰표'에만 목숨을 건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우리나라가 아직 '민주/반민주' 구도 속에 있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호남몰표에 달려 있지 않다. 호남은 이미 민주화 돼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영남결집 해체'에 달려 있다. 그들의 주장 그대로 영남의 절대 지지를 받는 새누리당이 반민주세력이라면 그렇다.

문제는 여전히 반민주 상태에 머물러 있는 영남의 책임은 현실 바깥으로 추상화시키고, 현실 속 민주화의 근원인 호남몰표에만 정치공학적으로 집착하면서, '민주(선)/반민주(악)'를 부르짖는 위선적 이데올로기에 있다. 나는 이 아이러니한 위선적 이데올로기를 '영남 없는 민주화'라는 키워드에 담아 설명하려 한다. (11쪽)


저자는 20대 총선 막바지에 등장한 '호남자민련'을 디딤돌 삼아 '영남 없는 민주화'와 '반지역당 이데올로기'를 비판했다. 호남자민련을, 국민의당이 호남을 석권할 징후를 보이자 쏟아지기 시작한 '프로파간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저자의 논리를 보자.

저자는 현실적 지역당은 존재하지만 이념적 지역당은 없다고 주장한다. 모든 정당은 전국당을 지향하지만 능력 부족으로 소수당에 그친다. 그런데 진보적인 인물들일수록 능력이 없을 뿐인 소수당을 지역당이라고 비난한다. 저자는 이를 부도덕한 프로파간다 논리로 규정한다.

국민의당이라는 소수당을 호남당이니 호남자민련이니 하며 비난하면서도, 정의당이라는 소수당을 '고양자민련'이니 '창원자민련'이니 하는 식으로 비난하는 경우는 못 본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에서 지역당을 지역당이라고 공격하는 이데올로기가 동원되는 것은 그 당이 영남패권주의에 저항하는 경우일 때만 그렇다. (212쪽)


지난 제20대 총선이 끝난 뒤 '호남개새끼론'이 나타났다.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돌풍을 일으키면서였다. 저자는 '호남개새끼론'을 외치는 이들에게 왜 새누리당을 지지한 영남인들을 향해 '영남개새끼론'을 주창하지 않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호남개새끼론'이, 새누리당을 더 위축시킬 수 있었는데 호남 때문에 그렇지 못했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왜 새누리당의 본거지이자 주된 지지 지역인 영남을 향해서 '영남개새끼론'을 펼치지 못하느냐는 것.

저자는 이런 현실의 근본 원인을 '영남 없는 민주화'에서 찾는다. "민주화운동 주류 역사 속에서 영남패권주의 독재 권력을 지지하는 영남인들을 직접 타격 대상으로 삼는 민주화 논리를 보지 못했다. (중략) 언제나 그 독재권력을 패권적으로 지지하는 여권결집이 아니라 그 독재권력을 무너뜨리지 못하는 야권분열이 문제였던 것"(169쪽)이라는 대목에서 이 책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의 핵심이 드러난다.

'영남 없는 민주화'에 호남인들을 향한 '인종주의적 무의식'이 드리워 있다고 보는 저자의 거침 없는 일갈은 호남과 광주를 '민주주의의 성지'로 만들어 일방적 헌신을 강요하는 '진보판 영패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새누리당과 싸우고 싶다면 그 근원의 지지세력인 영남의 결집과 싸워야 한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호남의 민주적 분열에 욕을 하는 건 개혁주의자라고 칭찬까지 받으니 너무 쉽지만, 영남의 패권적 결집에 시비 거는 건 빨갱이로 몰릴 수도 있으니 너무 무서워 안 된다고? (중략) 그렇다면 자신을 민주주의자라고 참칭하면 안 된다. 그리고 그렇다면 어차피 대한민국 민주화는 불가능하다! (292~293쪽)


이 책의 문체는 낯설다. 보통의 정치 비평과 달리 일인칭 주어 '나'가 표면에 직접 드러난다. 노골적으로 거친 표현을 구사한다. 그런 문체 요소들이 의도적인 '도발'처럼 다가와 조금 불편하다. 그런데도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까닭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호남만이 아니라 - 기자 말) 영남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체의 책임"(6쪽)이라는 말이 갖는 설득력 때문이다. 정치적 원칙과 대의의 측면에서 맞는 말 아닌가.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다른 것에 집중하느라 명백한 시각적 정보를 놓치는 경우를 가리킨다. 보고 싶은 것만 집중해 보다 보면 오판에 빠지기 쉽다. 저자는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활용해 최선의 정치가 이루어지게 하려면 사태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대한민국 정치의 이상과 현실을 함께 고민하는 이들이 새겨 들을 말한 말이다.

<아주 낯선 선택>(김욱 지음 / 개마고원 / 2016.6.2. / 309쪽 / 1,6800원)

덧붙이는 글 | 정은균 시민기자이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아주 낯선 선택 - '영남 없는 민주화'에 대하여

김욱 지음, 개마고원(2016)


태그:#<아주 낯선 선택>, #김욱, #영남패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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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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