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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말없는 약속 20년'에 이어 이제는 제 자신을 시작으로 나의 심리적, 생활상의 문제들로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에 걸림돌이 됐던 독(자신과 타인에게 해로움을 주는 요인)을 다스렸을 때 건강과 행복을 더 크게 느끼며 당당하게 생활하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이 연재기사의 이름은 '내 안에 독을 다스리면 덕이 되고, 복이 된 사연'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상담한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볼 겁니다. 이 연재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오마이뉴스>에 본인의 이야기가 실리는 것을 동의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름은 가명으로 합니다. - 기자 말

[앞선 기사] 1년 동안 집에서 '방콕', 과연 나오게 될까

1년 이상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녀를 상담소로 불러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사진은 영화 '웰컴, 삼바'(2014) 속 상담 장면)
 1년 이상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녀를 상담소로 불러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사진은 영화 '웰컴, 삼바'(2014) 속 상담 장면)
ⓒ 웰컴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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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제 상담소가 궁금하시면 다음에는 상담소로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라는 나의 제안에 그녀는 고개를 흔든다. 이해할 수 있다. 1년 이상 집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니 그럴 만하다.

그럼에도 그녀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이유를 내 생각이나 내 추측으로 단정짓기보다는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그녀의 말로 직접 듣는 것이 가장 좋다. 나는 그녀가 아니기 때문에.

"제가 제 상담소로 오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리자 고개를 흔드셨는데..."라며 그녀가 나의 말에 뒤를 이어주길 바라며 멈췄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망설인다.

10여 년 전만 해도 오늘날처럼 SNS가 활성화되지 않았기에 그만큼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일들이 잦았다. 지금은 집 안에서도 소통이 가능하다. 집 안에서만 생활한지 1년 이상을 보내고 있는 그녀로서는 무엇보다도 강한 욕구에서 나오는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 "혹시 지금 ○○엄마께서 밖으로 나가실 수만 있다면 가장 먼저 해보시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녀 : "딸이 있으니까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도 가보고 싶긴 해요."
: "지금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인가요?"
그녀 : "궁금해요."

딸에 대한 미안함이 담긴 듯 눈에 눈물이 그렁하다. 어느덧 본인에 대한 연민에서 흐르는 눈물은 실컷 흘렸는지 이제는 딸에 대한 연민이다.

: "딸 이야기를 하면서 두 눈에 눈물이 그렁한데... 딸에게 미안해서 그러시나요?"
그녀 : "미안도 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도 싶고요."
: "그러시군요. 그럼에도 지금 쉽게 가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그녀 : "사람들이 저만 쳐다볼 것 같아요."

: "사람들이 ○○엄마만 볼 것 같은 생각이 드세요?"
그녀 : "그럴 거예요"
: "이 동네에서 나고, 자라 결혼까지 했기에 OO엄마를 아시는 동네분들도 계시다보니까 혹시 친정집에 와 있으면 왜 와 있는지 궁금해하고 서로 이야기할까 봐 신경 쓰이시나요?"
그녀 : "네 그거예요. 많이 신경 쓰여요."
: "저 또한 ○○엄마 입장이라면 많이 신경 쓰일 것 같아요. 한편으로…"

이때 퇴근하는 그녀의 친정어머니가 들어오셨다. 나와 그녀는 친정집 거실에서 상담하고 있었다. 그녀를 상담하면서 사실 그녀 어머니를 따로 두 번 만났다. 지금 딸이 처한 상황과 심리상태, 어떻게 하면 딸을 도울 수 있는지 그리고 딸에 대한 어머니의 심정과 욕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머니께서 원하는 딸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어머니가 말과 태도를 어떻게 해야 딸을 도울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퇴근후 식탁에 조용히 앉아 계시던 친정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니, 니가 나보다 힘드냐?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볼 생각을 해야지. 지금 그렇게 있는 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러고 있니, 그리고 애 엄마면서 애가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가서 보기도 하고 해야지."

그동안 참는다고 참았으나 더 이상은 어려웠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사전에 나와 딸을 위해 조심하길 권했던 표현들을, 욕과 함께 불평을 있는 힘껏 토하듯이 말씀하셨다.

이 장면은 평소 그녀와 친정어머니가 둘이 있을 때 수시로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잘못을 꼬집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옆에 누가 있는지 신경쓸 수 없을 정도로 어머니가 오늘 힘드셨나 보다 싶어 나는 이야기를 건넸다.

: "딸이 이렇게 상담도 잘 받고 있으니까 하루 속히 건강해져서 친정어머니 마음 아프게 하지 않게 잘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고 집안에 있는 모습을 보시니까 답답하고 화가 나시는 것 같아요. 친정어머니로서는 충분히 그러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친정어머니 : "왜 아니겠어요. 선생님도 일을 하시지만 제가 지금까지 청소일 하면서 두 딸을 키워서 시집보냈으면 잘 살아야지. 이렇게 친정에 와서 맨날 방에만 있고, 무엇을 먹지도 않고 그러고 있으니 내 심정이 어떻겠어요. 저도 이제는 쉬고 싶고 힘들어요."

: "얼마나 힘드시면 평소에 예의를 잘 지키시는 분께서 지금 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겠어요. 잘하셨어요. 또 친정어머님만이 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누가 OO엄마에게 제때 밥 먹어라, 잘살아라 이런 말씀을 하시겠어요."
친정어머니 : "쟤는 또 제가 그런다고 잔소리 그만하라고 해요."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딸이 한마디 했다.

그녀 :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 내 머리 한 번이라도 예쁘게 묶어서 학교 보낸 적 있어? 그리고 아빠와 다투니까 아빠가 집에 안들어오는 거지."
친정어머니 : "선생님, 보세요. 쟤가 저렇다니까요. 내가 힘들어도 벌어서 입히고 먹여 키웠더니 지금 한단 말이 모두 내 탓이래요. 그러니 내가 어떤 심정인지 아시지요. 정말 죽고 싶은 사람은 저라고요."

이렇게 둘간에 비난·비판으로 치달을 때는 둘에 대하여 중재(NVC, NonViolent Communication, 비폭력대화의 심화과정)를 해야 한다.

"가능하시다면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내 말에 두 분 모두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지금부터 약 40분간 두 분에 대하여 중재(서로가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충족하기 위함)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또한 두 분 모두 얼마나 절박하셨는지 순순히 응해주셨다.

나는 두 분께 중재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중재 중에 서로가 지켜주길 바라는 규칙에 대해서도 전달했다. 중재란 서로의 말을 직접 상대에게 하는 대신 중재자(나)에게 하게 이끈다. 둘 중 한 사람이 말을 할 때는 아무리 본인 말을 하고 싶어도 상대의 말이 끝날 때까지 들어주는 것이 중재 규칙이다. 이 점은 중재를 시작하기 전 둘의 합의에 의해서 이뤄졌다.

또한 말하는 이가 상대를 비난·비판 더 나아가 욕을 하더라도(예를 들어 "쟤는 이기적이에요, 저밖에 몰라요"라 하면 "따님이 어머니 심정을 헤아려 일어나기 어려워도 일어나고 제 때 식사하기 싫어도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래도 딸이 잘 해보려는구나, 라고 느끼길 바라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이기적이라 생각한단 말씀이신가요?")라고 페러프레이징(Paraphrasing, 가시를 빼고 욕구를 파악하여 중재자가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을 해야 한다.

40분의 중재 중에 나는 그녀에게 "어쩌면 친정어머님이 지금 OO씨보다 더 어려움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보셨나요?"라 물었고 그런 생각은 지금 처음 해본 듯 친정어머니께 미안해 했다.

친정어머니 또한 "뭐니뭐니 해도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은 따님일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알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마무리됐다. 친정어머님은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이제 그녀와 나는 거실(그녀는 본인이 잠자는 방을 보여주기 원하지 않았다)에서 다시 상담을 이어가고 있었다.

: "중재를 통하여 친정어머님이 딸을 대견해 하고 진정으로 딸이 건강하게 생활하길 바라는 점을 아시니까 어떠신가요?"
그녀 : "(눈물을 닦으며...) 저도 그래요. 엄마가 지금 무릎도 아픈데 계속 청소일을 하시게 하고 대학까지 나온 나는 이러고 있으니 엄마한테 미안하고 속상해요."
: "한편으로 지금 ○○엄마는 보다 단단해지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과정으로 보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엄마와 똑 같은 아픔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아픔들을 잘 견뎌서 더 나아갈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조금 뜸을 들이다가 물어보았다.

: "한편으로 지금 가장 원망스러운 대상은 바람 피우며 이렇게 순하고 예쁜 아내한테 막말하는 남편일 듯한데..."

순간 잃었던 정신을 가다듬듯이 야무지게 입을 모은다. 남편에 대한 원망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굳은 표정으로 나를 본다.


태그:#엄마, #딸, #바람난 남편, #우울증,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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