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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청년의 중학교 친구들이 군포시청 앞 버스 정류장에 꾸민 추모 공간, 아버지가 메모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19살 청년의 중학교 친구들이 군포시청 앞 버스 정류장에 꾸민 추모 공간, 아버지가 메모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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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메모지
 노란 메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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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인가? 그렇다면 누가 19살 청년을 죽음으로 몬 것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던, 19살 청년의 죽음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유서도 없는데, 경찰은 자살로 단정했다. 그러나 청년의 아버지는 자살했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하고 있다. 만약 자살이라면, 누가 아들을 자살로 몰았는지 밝혀야 한다며 생계를 미루고 원인 규명에 나섰다.

청년의 중학교 동창들은 친구가 출근하던 군포 시청 앞 버스 정류장을 아담한 추모 공간으로 꾸몄다. 이 추모 공간이 청년의 죽음을 세상에 알렸다. 버스정류장 벽에 붙어 있는 노란 메모지에,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하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노예 계약 반드시 해결합시다. 김군 자살사건 재수사 촉구합니다."
"스무 살이 되어서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채 일만 하다가 져버렸습니다. 무엇이 한 아이를 벼랑으로 몰았는지 밝혀내야 합니다."

"제 친구가 하늘나라에서 맘 편히 쉴 수 있게 끝까지 수사 부탁합니다."
"오빠 많이 힘들었죠. 비극적인 선택이지만, 천국에 가서는 슬프지 말고 힘들지 말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들도 지키지 못하고, 자살하고 싶었다"

노란 메모지, 하늘 나라에서는 행복하라는.
 노란 메모지, 하늘 나라에서는 행복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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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이 죽은 지 49일 후인 지난 24일 오후, 그의 아버지를 추모 공간 앞에서 만났다. 밝은 표정으로 간혹 웃기도 하다가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자초지종을 차분히 설명하다가 "아들도 지키지 못하고, 내가 자살하고 싶었다"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군은 특성화고(경기도 군포) 3학년이던 지난해 12월, 분당에 있는 한 외식업체에 취업했다. 그리고 약 5개월 후인 지난 5월 경기도 광주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김군의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지난 5월 7일 오전. '아들이 죽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보이스피싱'이라 단정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아들의 전화번호였다. "교통사고"냐고 했더니, "자살"이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경찰은 자살로 단정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형(직장 상사)들이 욕을 많이 하고 자기에게만 힘든 일을 시킨다"는 하소연을 듣기는 했지만, 그만한 일로 자살할 심약한 아들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회사를 그만두기로 하고 마지막 출근을 했기에 마음이 그 어떤 날보다 홀가분했을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자살했다는 장소도 그렇다. 아들이 일하던 분당(성남시)과 대중교통으로 1시간 30분 거리인 광주시(경기도) 한 농로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만 다니던 19살 아들이 그곳을 알 턱이 없다.

그 장소와 아들이 관련이 있다면, 아들이 다니던 외식업체 식료품 물류창고가 인근에 있다는 게 전부다. '아들은 어째서 그곳에서 목을 맨 것일까!'

정말 자살을 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아버지는 아들의 친구와 직장 상사를 만나 아들에 대해 물었다. 직장 상사는 "정말 잘 해줬다"라는 말을 되풀이했지만, 아들과 함께 현장 실습을 나간 친구들 말은 달랐다.

친구 A : "00이가 실습생 중에 가장 힘든 일을 했어요. 혼나고 욕먹고, 지각하면 일찍 출근해야 하는 '오마(오픈마감)'라는 벌을 받았고. 그날(마지막 날)도 엄청 혼나는 모습을 봤어요. 혼나고 난 다음에는 힘도 없고, 축 처져 있고."

친구 B : 00이가 원래 인사 잘하는데, 그날은 눈이 마주쳤는데 인사도 안 해주고 얼굴 빨개져서, 엄청 화나 보였어요. 00이 정말 힘들었어요."

직장 상사 : "저희는 정말로 00이를 진심으로 잘 챙겨 줬어요. 저 또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요."

청년이 죽은 날, 회사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노란 메모지, 재수사를 촉구하는 내용.
 노란 메모지, 재수사를 촉구하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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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아버지가 궁금한 것은 아들이 죽은 날,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나 하는 것이다. 청년은 5월 6일 오후 5시께 근무지를 무단이탈한 뒤 다음 날 새벽 5시께 주검으로 발견됐다. 주검 옆에는 근무복이 차곡차곡 개어져 있었다.

만약 자살했다면, 그날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 같은데, 아들의 직장 상사들이 말을 아껴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아들의 휴대폰에 찍힌 문자 메시지는 그날 분명 어떤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직장상사 A : "무서워하지 말고 연락해, 너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직장상사 B : "어디니, 도대체 왜 간 거야, 사람들 때문에 그런 거야? 이유 좀 말해 줄래, 아니면 형이 뭐라고 해서 그런 거야? 다 너 걱정되고 잘하라고 그런 거야."

정말 가슴 아픈 것은, 죽은 다음에야 그동안 아들이 직장에서 겪은 고통을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아들이 죽은 다음에 알게 된 사실인데, 입사할 때 55㎏ 하던 몸무게가 몇 개월 후인 지난 3월 건강검진 할 때는 48㎏, 부검 때는 42㎏ 였어요. 키가 170㎝가 넘는데, 이게 말이 되나요. 하루 11시간 이상 일하다 보니 잠은 고작 5시간 정도. 아들이 너무 힘들다고 할 때 조금만 참고 열심히 하라고 말한 게 정말 후회스럽습니다."

분통이 터지는 일은, 그 누구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것이다.

"회사는 '관리 감독 못 했으니 미안하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학교는 '실습생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문제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으면 좋겠는데. 지금 하는 거 보면 '우린 알 바 아니다'란 식이에요. 그러니 제가 더 죽겠는 거예요."

회사 관계자 "직무상 혼낼 수 있지만, 사건과 연관 짓는 건 억지"

친구가 남긴 메모
 친구가 남긴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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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아버지는 아들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다. 만약 자살했다면, 그 원인이라도 밝혀야 한다며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에 따르면 경찰은 단순 자살로 단정하고 수사를 5월 말경에 종결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30일 담당 경찰과 통화를 했지만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말만 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어 버렸다.

회사 관계자는 30일 전화 통화에서 '아들이 굉장히 힘들게 일했다'는 아버지의 주장에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직원들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재입사율도 높다"라고 부인했다. 곧바로 '11시간 근무면 힘든 게 사실 아닌가?'라고 묻자 "점심시간, 휴식시간 빼면 실제 근무 시간은 9시간 30분 정도"라고 답했다.

이어 회사 관계자는 "마지막 날 많이 혼났을 것"이라는 아버지의 주장에도 "크게 혼낼 일도 없고, 그러지도 않았다. 직무상 혼을 낼 수도 있지만, 이것을 사건과 연관 짓는 것은 억지"라고 반박했다. "우리도 경찰이 정말 자세히 조사해서 자살 이유라도 밝혔으면 좋겠다"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태그:#19살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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