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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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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에 사망한 북한 김일성 주석이 요즘 국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6월 28일 정무위 업무보고에 참석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해방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김일성의 부모(김형직·강반석)에게도 독립운동 훈장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극우 세력의 아이콘인 박 처장의 평소 행보를 생각해보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박 처장의 이러한 발언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추궁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박 의원은 국가보훈처가 2012년 김일성의 외삼촌(강진석)에게 훈장을 줬던 사례를 거론하며, "그렇다면 김일성의 아버지·어머니에게도 훈장을 줄 거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박 처장은 "검토해보겠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곧바로 말을 바꿨다. 지난 29일 국가보훈처는 김일성 부모에게 훈장을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김일성의 외삼촌과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에게 줬던 훈장도 거둬들이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노무현, 비겁해서 김일성 아버지에게 훈장 안 줬겠나"


이 와중에 박 처장을 몰아붙인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업무보고 당시 박 의원은 "우리 국민들이 김일성 외삼촌에게 매달 연금 390만 원씩 줄 뻔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게 불씨가 됐다.

박 의원을 향한 비판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해방 전에 사망한, 그러니까 김일성이 1950년 한국전쟁을 일으키기 한참 전에 죽은 독립운동가 외삼촌에게 '김일성의 죄'를 물을 수 있냐는 것이다. 연좌제를 적용했다는 얘기다.

다른 하나는 박 의원의 추궁으로 인해 논란이 생기면서 보훈처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서훈을 취소하려고 한다는 지적이다. "연좌제, 색깔론을 거두라"는 비판이 한때 민주노동당 대변인이었고, 현재 제1야당 국회의원인 박 의원을 겨누고 있다.

30일 오전 8시 50분께, 박 의원의 입장을 듣고자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하며 10분 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던 박 의원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야 제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을 거 같다"라면서 대면 인터뷰를 제안했다. 이날 박 의원의 정무위 질의가 마무리된 후 오전 11시 30분께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박 의원은 가장 먼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거론하며, 자신을 향한 지적에 항변했다. 박 의원은 "처음 사회주의 계열 인사에게 훈장을 줬던 노 전 대통령도 김일성 아버지에게 공훈이 있었던 것을 알았지만 결국 훈장을 주지 못했다"라며 "국민 정서를 고려해 정무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왜 그랬을까? 그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라며 "반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덮어놨을 것이라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8월 "좌·우 대립에 묻힌 독립운동사를 밝혀야 한다"라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의 재평가를 시사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색깔론이 이어졌지만, 이듬해 광복절에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47명이 결국 훈장을 받았다.

2006년 8월에도 노무현 정부는 조선공산당 사건의 이재유 등 일제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당시 민주노동당 대변인이었던 박 의원은 "서훈을 환영하고 이념을 이유로 평가되지 못한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이 제대로 평가받는 일이 더 많아져야 한다"라는 논평을 냈다. 이날 만난 박 의원은 "아직도 그때 논평이 또렷하게 기억난다"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그런데 그때도 서훈 명단에 빠진 사람이 있었다"며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을 거론했다.

"김형직의 독립운동 기록이 우리 독립기념관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은 (노무현 정부였던) 2005년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김형직이 독립운동가인 걸 알았는데 왜 훈장을 안 줬을까? 비겁해서? 연좌제 때문에? 색깔론 때문에? 지금 박용진을 욕하려면 노무현도 욕해야 한다."

이어 박 의원은 "2005년 이미 (김형직이 독립운동가였다는 게) 알려졌는데 지금까지 훈장을 주지 않았다면 이후 11년 동안 진보진영은 모두 연좌제의 공범이었냐"고 반문했다.

"김일성과 연관지을 수 없다? 박승춘이 그런 말 할 사람인가"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서울 강북을)이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서울 강북을)이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손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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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원의 말을 종합하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게 훈장을 준 노 전 대통령도 '김일성 아버지'에게는 그런 대접을 하지 못했다. 박 의원은 이를 '노무현의 기준'이라고 표현하며, "노 전 대통령은 꼼수 없이 기준을 제시했고, 이후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이 대단한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노 전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 현실적인 자세를 취했고, 결국 성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박승춘 처장은 (노 전 대통령과 같은) 합의의 과정을 거친 것도 아니고, 누군지도 모른 채 (2012년 김일성 외삼촌에게) 훈장을 준 것 아니냐"라며 박 처장을 겨냥했다.

"누가 봐도 박 처장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게) 훈장 줍시다' 할 사람 아니잖나? 정무위에서 바로 그 이야기를 한 거다. 색깔론에 시달리던 노 전 대통령의 과감한 추진은 너무 대단하고 고맙다. 그런데 박 처장의 사례는 그런 논쟁 과정을 거친 게 아니다."

국가보훈처는 2012년 훈장을 수여한 강진석이 김일성의 외삼촌이었다는 사실을 시민의 민원을 통해 알았다. 박 의원은 이런 상황을 두고 "행정적 무능에 따른 결과"라고 지적했다.

정무위 당시 박 처장이 "(강진석이) 해방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김일성과 연관지을 수 없어 공훈을 주는 것으로 결정했다"라고 말한 것을 두고도, 박 의원은 "자신의 철학이나 기준을 두고 이야기한 게 아니라 실수와 무능을 덮으려고 하는 모습"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정무위 당시 박 처장도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모르는 멘붕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싸움터에서 상대방 무기 뺏어 싸웠더니 비난 돌아와 황당"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불법 대선개입 의혹을 부른 '나라사랑교육',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 호국보훈의 달 퍼레이드 논란 등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야당 의원들의 질타에 난감한 표정 짓는 박승춘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불법 대선개입 의혹을 부른 '나라사랑교육',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 호국보훈의 달 퍼레이드 논란 등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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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박 의원은 "통일 전까지 김일성의 친인척에게 훈장을 주는 건 유보돼야 할 사안이다"라면서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자연인 박용진 혹은 SNS에 글쓰는 박용진이라면 '김일성 아버지면 (훈장 주는 게) 어떠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때문에 정치적 균형을 형성하며 나아가야 한다. 영화 <고지전>을 보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주변에 6.25전쟁 참전 용사가 많이 있는데, 그들을 그냥 '꼴통'으로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뭔지도 모르고 끌려갔다가 가족, 친구 다 잃었고, 그것의 모든 원인이 김일성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이 분들에게 '김일성 친인척에게 훈장을 주겠다'라는 걸 어떻게 설득하겠나."

- 김일성의 외삼촌은 해방 전에 죽었는데 그 이후에 자기의 조카 일에 대해 이런 식으로 대우받으면 억울하지 않은가?
"억울할 수 있죠.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친일파 자손들에 대해서 갖고 있는 엄격함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법적으로도 친일파 재산 몰수·환수한다. 아니,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무슨 죄가  있나? 아버지가 친일했다는 얘기가 나오니, 우리는 김무성에게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나는 우리나라엔 국민정서법이 있다고 본다. 연좌제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새로운 기준을 얘기해야 한다. 지난 10년 진보진영이 이 문제(김일성 인척 서훈)를 책임있게 논의한 적이 있나?  아무도 제안하지 않고 비겁하게 가장자리만 밟고 있다. 내가 이 문제를 논의해보자고 했더니 뒤에서 돌이 날아온다.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

박 의원은 자신을 향한 비판에 "정치적 행위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고, 그것에 찬반 의견을 제시하는 건 모든 국민의 권리"라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싸움터에 나가 상대방의 무기를 뺏어 싸웠더니 비난이 돌아와 당황스럽더라"라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무위에서 내가 문제 삼았던 건 이거다. (2004년 노 전 대통령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이야기 꺼냈을 때 한나라당, 너희 무슨 말 했는지 기억 나냐? 노무현 정부에서 만약 김일성 친인척에게 훈장을 줬다면, 대통령 끌어내리려고 했겠지? 당신들(새누리당) 기준이라면 김일성 친인척에게 훈장 주면 안 되잖아? 그럼 빨리 박 처장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해! 그런데 지금 (우리 진영에서) 난리가 난 거다. 심지어 정무위 회의장에서도 같은 당 의원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확 느껴지더라."

박 의원은 "이를 토대로 새로운 논쟁을 시작했으면 한다. 단기전이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향한) 비판 의견을 소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라면서 "그러면 같이 박 처장부터 잡고 보자"라고 제안했다. 자신의 임기 중 국가보훈처가 제안,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해 준 서훈을 취소하는 상황에 놓였으니, 어떻게든 박 처장에게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게 박 의원의 생각이다.

"박 처장의 간사한 행위, 그리고 박 처장 때문에 대한민국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임기 말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확히 가르쳐 줘야한다. 그게 제 1방향이다. 그리고 제 2방향은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는 거다. 거기에 박용진을 단두대에 세우든, 말든 상관없다. 어쨌든 지금 진보진영이 해야 할 것은 제1방향, 민주주의, 국민, 야당을 조롱한 박 처장을 잡는 거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당 국민통합위원장은 박 의원을 가리켜 "이분 언제 새누리당으로 옮겼나요"라고 하더라.
"김홍걸도 이야기 해야지. 김일성 부모에게도 훈장 주자고 당당히 이야기해야지."(김 위원장은 이미 "보훈처가 앞으로도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좌우를 떠나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다 인정하는 개방된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좌제가 폐지된지 오래인데 극우세력도 아닌 진보언론이나 야당에서 상대가 밉다고 이런 일을 시비하는 것은 원칙을 지키는 자세가 아니다"라며 "솔직히 제가 박승춘 처장을 두둔하는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 박용진에 대해 최근 알게된 사람들은 종편에 나와서 인지도를 쌓은 점을 들어 모르는 사이에 종편의 보수적인 가치관에 주입된 게 아니냐고 한다.
"동의할 수 없다. 내가 종편에 나가서 진보진영의 기본적 인식을 배신하며 한 말이 있다면 내놓아보라. 얼마든지 논쟁할 수 있다."


태그:#박용진, #더불어민주당, #박승춘, #국가보훈처,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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